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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처럼 음악적인 종교도 없다. 구약시대의 시편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있다. 시편 가는 한절씩 교대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중세의 그레고리오 성가로 발전되었다. 중세 시대의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5년 재위)에 의해 당시 각 지방에 산재했던 가톨릭 전례음악을 정리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1000년 이상 그 생명을 유지해 나왔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라틴어 가사의 단선율 음악으로 1962년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 때까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불려졌다. 르네상스시대는 다성 음악이 꽃을 피운 시기로 참으로 아름다운 다성 종교음악이 탄생되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과 그의 만인사제라는 전례관에 의해 성가대가 아닌 많은 회중이 함께 제창하는 단순한 선율의 개신교 음악인 코랄이 탄생되었다. 음악에 대해 비교적 편협한 생각을 가졌던 칼뱅에 비해 음악에 대해 매우 관대한 포용 정책을 편 루터에 의해 쉬츠로 출발하여 바흐로 이르는 도도한 독일 음악의 새로운 전개가 일어나게 된다.
바흐와 헨델로 대표되는 바로크 시대에는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의 새로운 음악 장르가 탄생되어 종교 음악은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바흐 이후 고전파 시대에 이르러 종교 음악은 더욱 만개하게 되지만 종교음악은 점차 교회내의 예배 목적에서 벗어나 음악회장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낭만주의시대, 근대에 오면서 기악음악과 오페라들의 발달로 인해 종교음악은 그 자리를 그들 음악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주목받을 만한 종교 작품이 계속 나와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1. 기독교 교회음악의 태동
불교와 힌두교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상과 불상을 눈에 보이도록 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소위 미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비해 기독교는 노래하는 종교이다. 기독교 교회음악의 원천은 초기 유대교에서 찾을 수 있다.
구약의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고 에굽의 군대를 피하여 무사히 홍해를 건너 해변에 도달한 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으며, 여리고성을 나팔을 불어 함락시켰다는 등 음악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 그것이 기도로 정말로 일치하고 있다. 유서 깊은 전통으로 종교적 축제에 음악이 사용된 것은 시편의 저자이기도한 다윗 왕이다.
그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을 때는 약 백 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음악적 축전이 있었다. 구약시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음악의 원천은 시편 가였다. 신약시대에 있어서 음악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최후의 만찬 후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함께 찬미가를 부르고 감람산으로 향하셨다(마가 14;26).
사도 바울은 “노래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고 되풀이하여 말씀하셨고 노래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으로, 기도하는 것은 노래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훌륭한 기독교 종교음악이 많이 작곡되어 왔다.
성경은 처음부터 오늘날의 형태로 된 것은 물론 아니다. 처음에는 단어에 의해 말이 계승되어 왔다. 노래 부르게 된 것은 긴 텍스트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히브리어로 쓰인 유대교 성서에는 글귀 위에 열쇠 또는 막대와 같은 부표가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절회(한절씩 교대로 부르는)의 지시였다. 구약성서 시편은 노래로 불리었던 찬미가의 텍스트집이였다. 그것이 차츰 절회가 틀이 잡히어 그레고리오 성가로 발전되어갔다.
2.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황 그레고리 1세(Gregorius 1, 590~605 재위)에 의해 당시까지 산재해 있던 가톨릭 전례음악을 정리한 것으로 가톨릭교회에서 공인된 전례음악이다. 라틴어 가사로 된 단선율 성가이며, 일명 플레인 송(Plain song)이라고도 불린다.
예배 의식의 진행을 위해 만들어진 곡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듣는 이의 감정을 움직이는데 목적이 있지 않는 엄격한 의미에서 기능 음악에 속한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성가는 이것만이 가지는 고요하고 은은하며 성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약 1,000년 이상이나 되는 역사의 전통 위에 형성된 과거의 음악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오늘날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갖가지 변화를 거치면서 살아남아 있는 현대의 음악이기도 한다.
3. 미사(Mass Missa)
미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들였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마태복음(26장 26~28)의 말씀을 기념하는 것이다.
미사를 드릴 때에 사용하는 음악을 미사음악이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사제와 성가대가 응답으로 노래하는 폐회 형식인 "Ite Missa est"(미사가 끝났으니 평안히 돌아가시오)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가톨릭의 전례음악으로 통상문은 신자들이 하는 노래로 가사(라틴어)가 정해져있으며 다음 5곡이 기본으로 되어있다.
1). 키리에(Kyrie, 긍휼히 여기소서)
2). 글로리아(Gloria, 주께영광)
3). 사도신경(Credo)
4). 상투스, 베네딕투스(Sanctus, Benedictus, 거룩할지어다. 복있을 지어다)
5). 아뉴스데이(Agnus Dei, 신의 어린양)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까지 모든 음악가들이 그의 온 정성과 정열을 바쳐 작곡한 장르가 바로 미사음악이다.
뒤파이, 조스캥 데 프레, 라수스, 팔레스트리나와 같은 르네상스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들의 수많은 명곡이 작곡되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이 된 후에도 수많은 작곡가에 의해 명곡 미사곡이 계속 작곡되었다.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부르크너, 리스트, 구노, 현대에 와서도 스트라빈스키, 브리튼, 힌데미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4. 종교개혁과 코랄 (Choral)
1) 종교개혁
1517년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에 대한 95개조 반박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종교적, 정치적으로 일대변혁을 일으켰다. 음악사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 음악 : 코랄(Choral)의 탄생.
루터는 독일어를 음악과 긴밀하게 일치시켰으며 회중이 쉽게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회중가로서 코랄이 탄생됨. 예) 『내주는 강한 성』, 『고뇌의 깊은 심연으로부터』
음악가 : 루터, 요한 발터, 하스러, 프레토라우스.
영 향 : 쉬츠, 샤인, 바하로 이어지는 바로크기의 독일 음악의 도도한 전개.
2)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음악관
류트와 플루트를 잘 연주하였고, 합창에서는 테노르 파트를 불렀으며, 약간의 작곡도 남겼다.
"나는 확실히 이와 같이 판단하고 선언하여도 부끄럽지 않다. 신학 다음으로 음악에 필적할만한 학예(Ars)는 없다. 신학만이 할 수 있는 일. 즉 영혼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터에 의하면 음악은 “신의 선물”이었으며 이 귀중한 선물은 인간에게만 부여된 것이며, 인간은 신을 찬양하도록 지어졌다.
이러한 루터의 음악관과 만인이 사재라는 그의 전례관 때문에 루터의 새로운 교회는 음악을 의외로 중요시 여겼다.
초기의 코랄은 화성이 없는 단성으로 불렀으며 반주를 곁들였다. 이어 다성으로 편곡된 첫 찬송가집은 발터(Johannes Walter, 1496~1570)의 편곡된 『종교적인 노래집』(Geystliches Gesank BuChleyn)이다. 내용은 3성으로부터 5성으로 된 곡들로 38곡은 독일곡, 5곡은 라틴어 곡이다. 이중 24곡이 루터의 코랄에서 유래된 곡이다.
5. 수난곡
수난곡은, 예수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눈 때부터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까지의 고통 받은 역사를 노래한 것이다. 이러한 수난 받은 이야기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으며, 부활절이 시작되는 주간(週間)동안의 예배 의식에서 연주된다. (마태 수난곡-일요일, 마가 수난곡-목요일, 누가 수난곡-수요일, 요한 수난곡-금요일). 부활절은 성탄절과 아울러 기독교 교회에서 가장 큰 행사에 속하므로, 수난곡은 중세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계속 작곡되어 연주되고 있다.
1) 수난곡의 발생
부활절이 시작되는 주간(수난절)에 예수의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교회에서 의식화된 것은 그 기원을 4세기경부터 찾아볼 수 있으나, 예수의 수난사를 노래로 부르기 시작한 시기는 확실히 알기 어렵다. 초기에는 예수의 수난기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읽다가, 차차 운율을 붙여서 낭송하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12세기경부터는 가사의 뜻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역할을 분담하여 노래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는데, 모두 세 명의 성직자가 노래했다. 한 성직자는 해설자(Evangelist)로서의 역할과 복음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맡았고(중간 성부), 두 번째의 성직자는 예수의 역할을 하였고(낮은성부), 그리고 세 번째 성직자는 그 외의 여러 인물들을 묘사했다(예를 들면 빌라도, 유다, 베드로 등, 높은 성부) 또한 군중들을 표현할 때에는 세 사람이 함께 노래하였다.
2) 바흐의 수난곡
바흐는 라이프치히에서 요한 수난곡과 마태 수난곡을 지어 성 토마스 교회와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연주하였다. 요한 수난곡은 1723년에 마태 수난곡을 1729년에 각각 초연되었으며, 예수의 수난일인 부활절 직전의 금요일에 연주되었다.
이곡의 형태는 오라토리오적 수난곡과 수난곡적 오라토리오의 특징들이 섞여 있다. 즉 그 당시에 구식으로 여겨졌던 성경 구절이 가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형태와, 동시에 새로 자유롭게 지은 가사가 함께 나타남으로써 가사에 따른 음악의 다양성을 통하여 수난곡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바흐의 수난곡을 연주할 때는 솔로 가수들, 대합창단,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기본적으로 꼭 필요하다. 마태 수난곡에서는 여기에다 소년 합창단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 예수의 고난 받은 이야기를 테너인 해설자(복음사가, Evangelist)가 노래하며, 예수의 목소리는 바리톤이 묘사하고, 합창단은 중간 중간에 신도들의 소리 또는 유대인이나 로마 병사들의 소리를 노래한다.
합창단이 부르는 곡들 중에는 프로테스탄트교호의 찬송가 선율을 사용한 것이 많은데, 바흐가 화성적으로 편곡한 아름답고 느린 템포의 찬송가는 예수의 수난 받음을 느끼는 신도들의 마음을 표출한다. 바흐의 수난곡은 가사의 내용이 민감하게 음악적으로 표현되어 청중을 강하게 감동시키는 점이 더욱 주목된다고 하겠다.
요한수난곡 중에 예수를 재판하는 장면은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손꼽히고 있다. 현악기가 불길한 느낌을 주며 연주되는 위에, 비탄의 선율이 목관 악기로 연주되는 전주에서부터 청중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감하게 한다.
6. 오라토리오
오라토리오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나 종교적인 내용의 이야기를 극화하여 교회나 음악회장에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솔로, 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로 편성되어 있고, 레치타티브, 아리아, 합창으로 음악이 구성되어 있는 것은 오페라에서와 같다. 그러나 무대장치를 하지 않으며, 분장을 하거나 연기를 하지 않는 점이 오페라와 다른 점이다.
1) 오라토리오의 발생
오라토리오란 장르가 이탈리아에 나타난 시기는 오페라가 출현하기 시작한 때와 같다. 로마에 있는 성 지롤라모(San Girolamo)수도원에서 네리(F. Neri)승려가 오라토리오(Oratorio : 기도실이란 뜻)에서 성담을 이야기해 주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17세기 초반).
초기의 작곡가로 대표적인 사람은 이탈리아의 카리시미(Ciacomo Carissimi, 1605~1674)이다. 그는 라틴어 오라토리오를 13작품 이상 작곡하였다. 카리시미의 작품은사순절 일요일에 로마에 있는 성 마르셀로(St. Marcello)안의 기도실(Oratorium)에서 대부분 연주되었다. 그 중에서 『예프타(Jephta)』(1665)라는 작품은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다.
2) 헨델의 오라토리오
헨델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작곡가로 이름이 나 있지만, 오페라보다 오라토리오 작품들이 더욱 뛰어났다. 영국 오라토리오의 개척자이자 완성자라 일컬어지고 있다. 헨델은 오라토리오를 모두32곡 작곡하였는데 1723년『에스터(Ester)』를 첫 작품으로 하여 1737년부터는 오라토리오 작곡에 전념하다시피 했다. 헨델은 오라토리오 작품들을 모두 영어로 지었고, 영국의 중류 시민 계급을 대상으로 영국에서 연주하였다.
오라토리오는 자국어인 영어로 노래하고, 내용도 성서에서 온 것이어서 모두 잘 아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교를 믿는 영국의 중류계급시민들이 무척 사랑하였다고 한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작품에는 전 유럽의 작품 기법이 모두 융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영국의 찬송가인 안뎀(Anthem), 이탈리아의 실내악과 오페라, 독일의 교회 칸타타오 수난곡적 오라토리오 등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작품은 거의 오페라와 비슷하여 분장과 무대장치를 하였고 막으로 분리된다. 형식은 서곡, 레치타티브, 아리오조와 아리아, 합창 그리고 앙상블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아는 대단히 기교적인 면을 강조하는 수법으로 작곡되었고, 합창은 푸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씩씩한 느낌을 준다.
헨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에스터(Esther)』(1732),『이집트의 이스라엘인(Israelin Egypt)』(1732),『유다스 마카배우스(Judas Makabaus)』(1747),『사울(Saul)』(1739),『요수아(Joshua)』(1748),『솔로몬(Solomon)』(1749),『예프타(Jephtha)』(1752) 등이 있으며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는곡은 1742년에 작곡된 『메시아(Messias, Messiah)』이다.
메시아는 1941년 두 달 동안에 걸쳐서 헨델이 구약과 신약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작곡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7. 칸타타 (Cantata)
칸타타란 1620년대 이태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소나타(악기로 연주되는 작품)의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초기의 칸타타는 여러 절로 구성된 서정적인 성악작품으로 각 절의 선율은 모두 다르나, 베이스는 같았다. 칸타타는 오페라의 축소판으로 기교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칸타타는 레시타티브와 아리아를 포함한 3개내지 4개의 악장으로 된 성악 독주곡에 콘티뉴오 반주를 덧붙인 형식을 가지게 된다. 가사는 보통 성경이나 코랄, 혹은 그 당시 시집에서 따왔다. 초기의 작곡가로는 루이지 로시, 안토니오 체스티, 지아코모 카릿시미를 들 수 있다. 당시 칸타타는 사랑에 대한 주제도 포함해 작곡되었으며 작곡가 중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에는 600여 곡의 칸타타를 남겼다.
반면 17세기 후반 독일에서는 루터파 교회 음악의 하나로 발전된다. 교회용 칸타타는 보통 가스펠과 설교 사이에 쓰이며 교회력에 따라 그날의 분위기에 맞추어 신앙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17세기 독일 칸타타의 예로 북스테후드(Dietrich Buxtehude: 1637-1707)의 작품 중 <예수는 나의 기쁨>을 볼수 있다.
요한 크뤼거(Johann Cruger)의 코랄 선율에 바탕을 둔 이 작품은 코랄 가사를 변주곡 형태로 쓴 작품이다. 18세기 대표적인 칸타타 작곡가로는 1100곡의 칸타타를 남긴 텔레만(Georg Philip Telemann : 1681-1767)과 요한 세바스찬 바흐(J. S. Bach)가 있다.
낭만주의시대, 근대에 오면 바흐 이후 고전파 시대에 이르러 종교 음악은 더욱 만개하게 되지만 종교음악은 점차 기악음악과 오페라들의 발달로 인해 종교음악은 그 자리를 그들 음악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주목받을 만한 종교 작품이 계속 나와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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