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제가 해외 성지순례를 갑니다.(13-17일까지) 그래서 14-16일까지 묵상을 미리 올려드립니다. 묵상하시는 데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매일 조금씩 묵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명경지수
사람들은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 고생하면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에게는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결심합니다. 특히 자식들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많이 가르치고, 재산을 물려주어서 호강시키려고 합니다. 흔히 '자수성가'(自手成家)란 말이 있는데 혼자서 고생하면서 가정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5-60대 이상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부모가 물려 준 것은 가난뿐이었는데 간혹, 토지나 집을 물려준 부모는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고집이 세고 자기의 인생관이나 목적이 너무도 뚜렷해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친구가 별로 없고 많이 친구를 사귀지 않으며 오로지 가정을 잘 이루어내겠다는 데에 생을 다 바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도 친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말 사랑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친하던 친구들이 벌써 하나, 둘 떠나가고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있고, 먹고 살기에 바빠서 정말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50~60년 만에 만나서 반갑게 악수해도 왜 그런지 많이 허전합니다. 가끔 친구라는 말을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밝은 거울과 잔잔한 물>이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아주 맑게 닦여진 거울을 보거나 잔잔한 호수나 샘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쳐볼 때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바로 나의 친구와 같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아무런 파장이 없이 아주 잔잔한 물에 비치는 내 모습은 바로 친구의 모습이며, “친구”는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명경지수’를 친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내가 더러우면 맑은 거울에 내 모습이 더럽게 보이듯 친구도 더럽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고,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로 사람들은 같은 사람끼리 모인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또 친구를 나타내는 ‘벗 붕’(朋)도 마찬가지 입니다. 달(月)이 두 개가 나란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울이나 호수에 달이 비치면 하늘의 달과 호수의 달이 두개가 나란히 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나와 거울을 보는 내가 같이 있을 때 친구가 됩니다. 이처럼 똑 같을 때 우리는 친구라고 말합니다. 호수를 바라보는 나와 그 속에 비친 나와 같이 나의 본 모습과 같을 때 우리는 친구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을 당신의 친구라고 부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꼭 닮은 친구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긴 말씀이 바로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말입니다.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말은 그리스도(Christ)라는 말과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ian)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천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부르고 있습니다. 정말 거울을 보면서 그 안에 비친 나의 모습이 그리스도로 비쳐지고, 호수에 비쳐진 나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보여야 주님의 친구가 되고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이라고 말을 자주 쓰고 있으며 부르고 있고, 스스로 말하고 기쁘게 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사귄 친구들도 함께하지 못하고,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마음에 새겨두지 못하면서 주님은 언제나 뒷전에 모셔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주님의 종이 될 자격도 없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당신의 친구로 격상 시켜 주신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모든 것을 지키지도 못하는 자신의 교만함이 부끄럽고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이 없다.’라고 (루카 1, 16) 말하였는데 바로 신발 끈을 풀어드리는 것은 종의 신분인데 종이 될 자격도 없다고 말하였는데 나는 정말 종의 신분도 부당한 처지이면서도 ‘친구’로 삼으시겠다는 주님의 그 말씀만을 염치없게도 덥석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삼기 위해서 당신께서 가지고 있는 말씀과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당신과 똑 같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끈질긴 짝사랑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신께서 손수 뽑아 세우시며 많은 열매를 맺도록 ‘사랑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당신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청해서 모든 것을 얻어 주시겠다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