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신앙에 대하여
오늘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신앙에 대해서 적겠습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불자佛子님이 아니시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시던 염불소리를 듣고 자랐을 겁니다.
‘나무’는 ‘돌아간다.’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나무아마타불은 이마타 부처님께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볼 관觀, 인간 세世, 소리 음音에 보살을 더한 이름인데,
범어로는
아바로키테스바라 보디사트바Avalokitesvara Bodhisattva라고 합니다.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중생의 소리를 살피는 데 걸림 없이 자유로운 보살님,
☆ 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의 빛이 되시는 보살님,
☆ 관세자재보살觀世自在菩薩:
중생을 자유롭게 살피시는 보살님,
☆ 관세음자재보살觀世音自在菩薩:
중생의 소리를 자유롭게 살피시는 보살님이라고도 하며
그래서 줄여서 관음·관세음·관음보살이라고도 합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화신으로서 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이 때문에 쓰고 있는 보관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입적 이후부터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 까지,
갖가지 어려움으로부터 세상을 지켜 주며,
구재할 중생의 정신적 수준인 근기根機에 맞추어
서른세 가지의 몸으로 세상에 나타납니다.
이 서른세 가지의 몸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나라의 중생을 부처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관세음보살이 부처의 몸으로 설법하며,
벽지불·성문·범왕·제석천·자재천·대자재천·천대장군·
비사문·소왕·장자·거사·관리·바라문·비구·비구니·우바새·
우바이·장자부인·거사부인·관리부인·바라문부인·남자어린이·
여자어린이·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
마후라·사람인 듯 아닌 듯 한 것·집금강신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각각의 몸으로 나타나 설법하여 제도한다.”
이 말은 관세음보살님이 특정한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모습으로 나타나 구제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모습이어야만 제도될 중생에게는
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어린이의 모습이 필요하면 어린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들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장자나 거사 관리의 몸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귀신인 야차나 아수라의 모습으로도 제도한다고 합니다.
왜 그런 모습으로 중생을 제도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중생의 근기.
중생의 수준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험상궂고 행동이 거친
조직폭력배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 사람 앞에 곱상한 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깔보고 무시하거나 어쩌면 두들겨 패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험상궂고 덩치도 좋은 사람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바로 제압되어 버릴 것입니다.
이렇듯 관세음보살은 무수하게 많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7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성관음聖觀音:
가장 단순한 형태로서 한 손에 연꽃을 든 채,
서 있거나 앉아 있습니다.
②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머리가 열 하나, 팔이 둘,
또는 넷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③ 천수관음千手觀音:
1,000개의 팔을 가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④ 준제관음准提觀音:
18개의 팔을 가지고 앉아 있는
가장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⑤ 불공견색관음不空絹索觀音:
올가미 밧줄을 독특한 상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⑥ 마두관음馬頭觀音:
사나운 표정을 한 말의 머리를 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말의 수호자로 부르는 하야그리바에서 나왔습니다.
⑦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6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여의주를 들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성관음이 본신本身이며,
나머지는 변화신變化身있습니다.
이 가운데 천수관음이라고 하는 이름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천수경을 독송할 때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이런 구절을 낭송 했을 겁니다.
이 천수관음이 관음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중생에 고통 속에서 허덕이면서 부르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소리를 천개의 눈으로 살피시고,
천 개의 손을 내밀어 중생을 도와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개는 순자 998, 999 다음의 1,000이 아니라,
무수히 많다는 의미의 수입니다.
그리고 1,000개의 눈은 육안肉眼이 아니라 심안心眼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마음을 꿰뚫어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볼 간看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볼 관觀자를 쓰는 것입니다.
즉, 마음으로 헤아려 안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계속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4년 01월 12일 오전 06;35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