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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작은 역사를 더듬으며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다
<돌아보면서 생각난 분들>
-청노루 박목월 시인
-영부인 육영수 여사
-원로 사제 함세웅 신부
-성장현 전 용산구청장
-함석헌 옹 (씨알의 소리)
-장병림 전 서울대 교수
`일본 동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 중 제법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원효로3가의 한 동네.
2000년대 초까지도 적산 가옥이 여러 채 있었으나 대부분이 낡아 그 건물들을 다 헐고 3층 이상의 건물들을 지었다.
일본인 주거촌으로는 비교적 잘 사는 축에 속했던 지역이기에 바둑판식 가로에 집들이 잘서정연하게 들어서 있었다.
`전차 종점 터
당시 전차는 여기(원정 삼정목.원효로3가)에서 효자동까지 왕래하였다.
원효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전차종점 빈 터로 남아 있었다. 전차 궤도를 여기까지 깔아 준 것은 근처에 거주하는 일본인 주민들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광복 후에도 이 전차 종점으로 가끔 와서 전차가 오고가는 것을 보며 심심함을 달랬다.
`목월공원
집 앞에 있어 내가 자주 나가는 목월공원이다. 박목월 선생이 우리 동네에 살았다. 이 공원에는 박목을 시인이 지은 시들의 목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청노루(머언 산 청운사...)
-달무리(달무리 뜨는...)
-구름 밭에서(비둘기 울듯이...)
-나그네(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성장현 전 구청장이 잘 조성해 놓았다.
`박목월의 집
박목월 시인이 살았던 집이다. 여기서 많은 문학 작품을 남겼다. 박정희 대통령 때.육영수 여사가 자주 들렀던 집이기도 하다.
옛집은 헐리고 빌라가 들어섰다. 빌라 이름은 시인이 지은 시의 제목을 붙여 청노루빌이다.
`성심여고 `옛 용산신학교 터
박목월 시인이 살았던 집 옆에 성심여고가 있다.
박 대통령 딸 박근혜가 이 학교를 다녔다.
이 학교는 전에 신부님들을 교육한 용산신학교였다.
그 이전에는 함벽정 정자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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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소 터 `형제우물 터
동네 가까이에 풍전아파트가 있다.
이 자리는 제재소가 있었던 자리인데, 운영자는 바로 함세웅 신부의 아버님이셨다.
한강을 따라 내려온 뗏목을 여기로 운반하여 제재해서 시내로 보내곤 했다.
통나무가 밖에 많이 쌓였는데 거기서 내가 친구들과 놀았다.
풍전아파트 뒤에 형제 우물이 있다. 전에는 근처에 우물 2개가 있어 형제정이라고 했는데, 하나만 남아 있다가 주택이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아기 백송
용산문화원 위쪽 공원에는 옛날 백송의 새끼 나무인 아기 백송이 심겨져 있다.
이 나무는 성장현 구청장이 돌보다가 옛날 백송이 있던 근처에 옮겨 심은 것이다.
`심원정
심원정에는 약 600년이나 되는 큰 고목이 서 있다.
그 아래쪽으로 용산문화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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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의 소리 함석헌공원
씨알의 소리 함석헌 옹을 기려 만든 공원인데, 근처에 함 옹이 살던 집이 있다.
용산문화원과 아주 가깝다.
`함석헌 길 `함석한 옛집 터
함석한길과 함석헌 옹이 살던 집터이다.
함석헌 옹은 저 터에서 '씨알의 소리'를 여러 해 동안 발행해 왔다.
전에는 수풀이 우거지 단독 주택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이 집을 매입하고 빌라를 지었다.
`삼호정 터
삼호정이 있었던 곳 아래쪽으로 용산구에서 쌈지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용산구에서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안내문은 내가 작성한 것이다.
원래의 삼호정은 이 위치에서 100미터쯤 올라간 용산성당 구내인데, 거기에 삼호정 관련 시설을 만들고 안내판도 붙이려고 시도했으나 성당측의 반대로 듯을 이루지 못했다.
용산의 옛날 삼호정 심원정 함벽정 원효로 / 용산성당 주변 이야기 (배우리) : 네이버 블로그
https://cafe.naver.com/yongsanch/407?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Y2FmZS1wcg.eyJhbGciOiJIUzI1NiIsInR5cCI6IkpXVCJ9.eyJjYWZlVHlwZSI6IkNBRkVfVVJMIiwiY2FmZVVybCI6InlvbmdzYW5jaCIsImFydGljbGVJZCI6NDA3LCJpc3N1ZWRBdCI6MTc0Nzg3Mzk5MzMyMH0.q9-Xs_fEsKPk9xXBgVhEoNovC49NcT2NVSASvn2S2h4
`함벽정 터
삼호정 터 앞쪽으로 언덕이 보이는데 여기가 성심여고 후문쪽이다.
나무가 무성한 언덕에는 옛날 함벽정 정자가 있었다.
`용산성당 종탑
이 삼호정 터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용산성당이 나온다.
저 위쪽으로 용산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http://travelevent.net/spboard/board.cgi?id=01&action=view&gul=7170&page=1&go_cnt=0&chk_name=&chk_sub=on&chk_cmt=&keyword=%C1%BE%C5%BE&start_num=3500
용산성당 종탑 안내 (교육관 소성전 앞에 종이 전시되어 있거 란내눈 동판이 설치되 있다.)
우리 성당 종탑에서 종이 처음 타종된 것은 1950년대 초였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인 1953년 12월, 당시 청년회와 사목회의 주도로 성당과 종탑 건축을 진행, 다음 해 12월에 완공하여 노기남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했는데 이후부터 종탑의 종을 울려 왔다. 당시 종탑과 성전 건물은 인천 답동성당의 것을 모방해 건축하였다.
종탑은 높이 22.5m로, 성당 건물 모서리에 위치하고 종탑 하부는 천장아치(pointed arch)의 형태인데, 최상부에 이 종을 달고 줄을 이어내려 아래쪽 종탑 공간에서 치게 되어 있었다.
비록 그리 크지는 않지만 종이 갖는 의미는 매우 컸다.
한국전쟁 후에 어려웠던 시절, 아침 저녁 6시, 낮 12시면 종이 울려 용산 산비탈 아래쪽은 물론, 마포의 도화동, 공덕동까지 소리가 퍼져 나가 이 일대 주민에게 시간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종의 울림이 약하고 그리 웅장하지 못하다 하여 1970년 임화길 신부 당시 어느 신자의 도움으로 새 종을 주문 제작하여 종탑에 달게 되었는데, 이 종이 바로 그것이다. 울림이 은은하면서도 소리가 맑아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이 종을 단 종탑은 용산 산마루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어 주위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인근의 용산과 마포 지역 어디서나 볼 수 있어 용산성당의 위치를 알려 주는 표지와 상징이 되었다.
세월이 지나 종탑이 훼손되어 1983년, 1987, 1992년 등 몇 차례 보수를 했다. 한때는 위험이 따른다 하여 보존이냐 존속이냐를 두고 갈등도 겪었다.
2002년 교육관 건축 당시에 구성전만 헐고 종탑은 그대로 남겨 두었으나, 얼마 후 붕괴의 우려와 주차장 확장을 위해 종탑을 철거하면서 종만 따로 보존해 왔었다.
글 작성 배우리 (프란치스코)
-종의 제작과 재질 ; 성종사, 청동
-타종 시작과 종료 ; 1970년 7월~2005년 8월
`비변사 우물길 `비변사 우물
비변사우물이다.
옛날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떠올렸으나 지금은 그 모양이 수도식으로 바뀌었다.
용산공영 주차장 건물 안에 있고 망도 쳐져 있어서 이 우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바우독 언덕
비변사 우물 근처 냇가 건너쪽으로는 작은 언덕이 있는데 여기에는 바위들이 많았다. 지금도 주택가 골목길에서 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바우독
'바우독'이라는 큰 바위가 골목 안에 있다. '독바우'라고도 하는데, '바우독'이라고 더 잘 통해 왔다. 독처럼 생겨서 '바우독'이라고 부르는데, 전에는 아이들이 이 바위를 타고 놀았다. '고구마바위'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
이 바위를 신성시하여 동네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그래서 바위 밑을 잘 보면 촛불에 그을린 흔적이 조금 보인다.
`함벽정 터
삼호정 터 앞쪽으로 언덕이 보이는데 여기가 성심여고 후문쪽이다.
나무가 무성한 언덕에는 옛날 함벽정 정자가 있었다.
https://blog.naver.com/ureee/100056480991
`군자감 강감 터 `전환국 터
동네 가까이 군자감 강감터가 있다. 옛날에 군량을 받아들여 저장하던 관아였다. 일제시대에는 여기서 돈을 찍어내기도 했다.
`원효이발관 `원삼탕(목욕탕)
바우독 근처에는 원효이발관이라는 아주 오래 된 이발소가 있다. 이발소 영업을 주인이 계속 해 왔는데. 나이가 많아 이제 두어야겠다고 한다. 사라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근처에 원효목욕탕이 있는데 이 업소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 이미 2023년에 폐업을 했다. 60년이 넘은 목욕탕이었다.
`장병림 교수 집
이미 폐업한 목욕탕 위로 헐린 집이 하나 있다. 이 집은 전에 서울대 장병림 교수가 살던 집이었다.
돌보는 이가 없어 헐어 버리고 지금은 울타리만 쳐져 있다.
장병림 교수는 내가 결혼할 때 주례를 서 준 분이기도 하다. 그 딸을 내가 가정교사로 있으면서 지도를 했다.
`함세웅 신부 생가
함세웅 신부의 생가이다.
함 신부는 여기서 태어나 서울 남정초등학교에 다녔다. 나도 남정초 출신인데, 함 신부가 나의 1년 후배다. 생가 앞 우물터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함 신부와 여기서 구슬치기 놀이를 했던 생각이 난다.
`배우리 옛집 `한강마루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먼저 골목 안에 있는 옛날 집을 둘러보고 바로 지금 살고 있는 한강마루로 돌아왔다.
한강마루 건물은 지은지 1년 남짓 됐다.
이름짓기, 땅이름 연구, 교수와 교사, 강사 생활을 하고 기고와 방송 출연 활동을 하면서 그 수입으로 이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한글이름 운동에 일생을 바치다, 배우리, 이야기 저장소 - 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2020년 9월 제85호
세월이 지나 주위가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내 머리 속에 남은 역사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