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선 시인의 시를 읽다가
봉정암*
달의 여인숙이다
바람의 本家이다
거기 들르면 달보다 작은
동자스님이
차를 끓여 내놓는다
허공을 걸어서 오지 않은 사람은
이 암자에 신발을 벗을 수 없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요, 담백하되 과하지 않다.
달의 여인숙이자 바람의 본가
라 함은 그 표현을 넘어서 황홀하되 다향 물씬한
풍경을 눈으로 마주하는 듯하다.
아마도 시인의 눈에는 그 천년 사찰의 안주인은
대웅전 안의 부처님이 아니시고 산능성이를 타고
철 따라 공양하는 바람이자 밤하늘 홀로 불 밝히는
달빛인가 보다.
그 절을 들리시거든 부디 시인의 정중한 권유처럼
차가 아닌 허공을 걸어서 오시게들
별을 보며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활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시와 시학사 2005.
일제식민지 치하의 어두운 밤하늘에도 별은 어김없이
반짝거렸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청년
운동주에게 밤하늘을 황홀히 수놓은 무수한 별빛은
청동거울 속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갈구하는 시인의 열망은 잎새에
이는 바람소리조차 괴로워해야만 했던 것.
암울한 식민지 시대가 가고 광복의 환희를 외치던 조국의
운명은 미군정이라는 신식민지 시대였으며 6.25라는
민족 간의 이데올로기 전쟁이 발발하였다. 어쩌다 보니 휴전
이 되고 곪은 정부는 4.19라는 학생운동을 낳게 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강은 일제식민지시대 친일의 잔재를
척살하지 못하고 그만 먹고 사는 문제와 싸우고 있었다.
빨리, 빨리문화가 메이드 인 코리아로 수출되기 시작하였으며
그것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대 비록 물질은 풍족한
지 않았으나 이웃을 배려하고 상부상조하는 인간적 미덕은 넘쳤다
세상 풍속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하여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떠나면서 정신의 허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길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걷는 사내
급기야 올라온 취기에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순간 번뜩이는 사내의 눈에 밤하늘 수놓은 별들이 보이고
사내는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서)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눈물을 훔친다. 어찌하랴, 별이여! 내 너말고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미시령 노을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단시지만 나뭇잎 하나에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 내 존재자인 나에게
만물을 발현하는 시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툭 내 어깨를
치며 떨어졌다
순간, 나는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고 느낀다
우주라니?
(너무 )가볍다라니?
그 무게를 시인은 어찌 알았을까?
* 봉정암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 소청봉에 위치한 암자임을 부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