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온천에서 일박하고 서산쪽으로서 방향을 잡았다.처음 찾아온 곳이인데 3층건물이 눈에 확 띈다.서광사 瑞光寺 충남 서산 읍내동 556,부춘산 아래 소재, 대한불교 조졔종 제7교구본사 수덕사의 말사.
[건립 경위 및 변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857~?]이 886년(정강왕 1)에서 893년(진성여왕 7)까지 부성군[현 서산] 태수로 부임했을 때 부춘산의 상부, 중부, 하부의 세 곳에 암자를 지었다고 하나 모두 확인할 수 없다. 상부암과 중부암은 일찍 폐사되고 하부암만 남았지만 이름은 1980년대 초까지 삼선암이라 불렸다. 1986년 법장이 주지로 부임한 뒤 전통 사찰로 지정되고 명칭도 서광사로 바뀌었다. 서광사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와 어우러지는 정경은 서산팔경의 제5경인 선암모종(仙庵暮鐘)[삼선암의 저녁에 지는 종소리]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 대웅전이 완공되었으며 2009년 11월 27일 여래보궁 봉안식을 열고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법당, 관음전, 여래보궁, 삼층 석탑이 있다. 법당인 대웅전은 3층 건물로 1층은 정면 7칸, 측면 5칸이다. 1층의 편액은 인곡수련원이고, 2층의 편액은 서광사이고, 3층의 편액은 대웅전이다. 대웅전 안의 벽과 외벽에는 『화엄경(華嚴經)』의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구도의 길을 떠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삼층 석탑은 3층의 기단 위에 세워졌다.
산진수회의 영산승지인 부춘산 옥녀봉아래 신라 경순왕 2년에 대경선사에 의해 上中仙 下化의 三仙庵으로 창건된 이래 천하의 선지식들의 보림처로 터를 다져오다 풍우에 퇴락된 下仙만이 남았을 무렵 다행히 시절인연을 만나 1984년에 조계종 비구 인곡당 법장대종사께서 석장을 꽂으시고 대작불사를 발원하시여 도장에 스리랑카국 불치사에서 석가모니여래의 진신치사리의 일과를 모셔와 여래탑을 조성 봉안하시니 실로 거룩한 적멸보궁으로 만중생의 귀의처가 되었으며 동년에 寺名을 서광사로 개명하였다.
또한 886년(신라 정강왕 1) ~ 893년 (진성여왕 7)까지 부성태수로 와 있다가 떠난 고운 최치원이 수도하기 위해 암자를 지었으나 그가 떠난 후 평소에 따르던 승려가 이곳을 관세음보살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설화가 있다. 서광사는 법장대종사께서 주지로 재임 당시부터 대작불사의 구상과 설계가 이루어져 이후 후임 주지들이 준비해오던 차2005년 8월 20일엔 덕숭산 수덕사 대덕화상과 대중 그리고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인곡당 법장 대종사를 증명법사로 모시고 대웅전 기공식을 봉행하였고, 2006년 6월 24일에는 상량체를 올리어 현 주지(도신스님) 先師(法大宗師)의 탄생인연 지역인 서산시를 불국정토로 가꾸기 위한 성역화 불사가 쉼 없이 추진되고 있다.
본 불사의 청사진을 만드신 법장대종사(전 총무원장)께서는 서산불교의 3대 과제를 이룩하는데 원을 세우셨다.
첫째, 백제불교의 문화유산 복원과 창달로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이 나라 민족사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영역의 근간이었던 백제불교를 되찾아 이 지역에 승화시키는 일이요.
둘째, 전법도생하는 생활불교의 실천으로 물질문명이 만연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고, 소시민적 개인주의가 범람해,
소외대중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도시 속에서 지역민과 함께 수도하고 포교하는 대승불교 사상을 고양하는 일이요.
셋째, 호서 서해안지역의 불교성지 벨트를 서광사를 중심(거점)으로 추진하는 일이다.
보원사지와 서산마애삼존불, 개심사, 천장사 부석의 간월암과 부석사 태안마애삼존불을 잇는 이 지역의 성지순례와 기도처로 조성하는 불사이다.
우리는 슬기로운 백제의 정신을 계승하여 오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대승보살의 이상과 원력으로 이 지역의 복지사업과 청소년문화 창달을 이루어 나가는데 동참하여 인류평화에 봉사하는 불교의 요람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