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1-05-06 09:02 조회 : 1832 |
| | | 정읍 감상 (井邑感想)
임병식
정읍에 들러 부모님 산소를 둘러보고 호남고속도로 쪽으로 나오니 밭두렁에 웬 흰 꽃무리가 지천이다. 자세히 보니 장다리꽃이다. 옛사람들이 말하길 장다리꽃이 필 때가 가장 낮이 길다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시계를 들여다보니 네 시가 넘었는데도 해가 중천에 걸려있다.
장다리 꽃을 보니 문득 어떤 말이 생각난다. 뭐냐면 바로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는 말이다. 이말은 숙종 임금이 인현왕후를 내치고 장희빈을 들이자 백성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초성을 따서 장다리는 희빈장씨의 성이 장인 것을 말하고 미나리는 인현왕후 성이 민씨인 것을 이른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가사가 떠올랐을까. 아마도 그것은 이 고을이 이들 두 여인과도 무관치 않은 한분으로 바로 이곳이 영조임금의 어머니 숙빈최씨의 탄생지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숙빈 최씨는 이곳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대각교 아래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어려서 영특함을 보여 인현왕후 몸종으로 궁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 궁에서의 생활은 녹록치가 않아 무수리 생활로 힘겹게 보내다가 나중에 한 침방나인 생활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런 와중에 숙종임금의 승은을 입어 연인군을 잉태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조는 대군시절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궁에서 생활하시며 무슨 일이 제일 힘드셨습니까” 이에 숙빈이 대답했다. “누비옷 만드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영조는 그 후로는 한 번도 누비옷을 입지 않았단다. 뿐만 아니라 고생하며 거칠어진 어머니 손을 생각하며 손이 고운 궁녀와는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한편, 숙빈최씨는 당쟁의 와중에서도 몸을 낮추고 살면서 아들을 지켜내어 마침내 연인군을 임금이 되게 했다. 하지만 그런 광영은 생전에는 보지 못하고 사후 7년 후에야 이루어 졌다. 영조는 임금이 되자 숙빈의 비부터 세웠다. 그것도 직접 친필로 ‘朝鮮國 敬 淑嬪 昭寧’이라고 썼다.
최숙빈 말고도 정읍은 또 한사람 잊을 수 없는 여인이 있다. 바로 정읍사(井邑詞)에 등장하는 백제 여인이다. ‘하 노피곰 도다샤 /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외지로 장사나간 남편을 동산에 올라 기다리며 달을 보고 높이 떠서 비춰달라는 간곡한 염원을 올린 것이다. 이게 백제가요로는 유일하니 국문학사에서 귀중한 가치로 평가 받는다. 또한 정읍은 근세를 뒤흔든 동학혁명의 발상지다.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한 민중이 분기탕천하여 떨쳐 일어선 곳이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던지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온다. 즉, ‘일어서면 백의(白衣)요, 앉으면 청죽(靑竹)이다’라는 말이다. 수많은 민중이 흰옷을 입고서 서있으면 흰색일색으로 보이다가 앉기라도 하면 죽창이 푸른 물결을 이룬데서 생겨난 말이었다.
한데 나는 여기서 또다른 여인들을 생각해 본다. 앞장섰던 이들이 죽거나 붙잡혀 갈 때 그들의 어머니와 아내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단장의 아픔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달리 들어서가 아니다. 이 고을과 인연이 닿아 어머니를 이곳에 모셨는데, 살아생전 당신은 가족의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셨던 것이다. 장병의 며느리 걱정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동생이 아이들은 어찌 가르칠지 시름을 놓지 못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새삼 켜켜이 쌓인 역사속의 여인들을 떠올리자니 당신의 모습이 어른거린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이곳 정읍 땅은 여인의 땅, 모성의 고을이 아닌가도 싶어진다. (2011) |
| 강승택 | 11-05-06 10:36 | |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井邑이라는 고장과 여인들의 恨이 유독 깊은 인연을 갖는듯 합니다. 더불어 , 눈 감으시기까지 자녀분들의 걱정에 한 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으셨을 어머님에 대한 임선생님의 감회가 어떠하실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저역시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아픈 기억뿐입니다. 그러고보니 어버이 날이 얼마 남지않았습니다. | |
| | 임병식 | 11-05-06 13:09 | | 어버이 날을 앞두고 부모님 묘소를 둘러보니 이런 저런 상념이 많이 스쳤습니다. 정읍은 역사적인 고을이면서 애환이 많이 쌓인 고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
| | 임병문 | 11-05-06 14:07 | | 임병식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고전의 옛삶을 드려다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새삼 느껴지는 세월의 무상함, 그리고 최선으로 살아냈던 그 시절의 사람들. 모두가 기억하고 모두가 마음을 바로해 보아야하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들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군요. | |
| | 임병식 | 11-05-06 16:50 | | 부모님의 산소까지는 세시간 반이 걸립니다. 운전이 서툰탓도 있지만 워낙에 거리가 멀어 일년이면 두번가기가 어렵습니다. 불현듯 생각이 나서 다녀왔지요. 그곳에는 전국에서 가장 싼 한우 정육점이 있는데, 다녀온 김에 그곳도 들렸지요. 날씨가 꾸물댑니다. | |
| | 박원명화 | 11-05-06 22:43 | | 어버이날이 낼모레라 그런지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니 가슴 한켠이 찡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어머니 생각을 하시면서 그 고장의 여인들의 역사까지, 이렇게 글속에 매끄럽게 담아 내시는 기법이 놀랍습니다. 늘 많은 것을 배우게 하는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 |
| | 임병식 | 11-05-07 05:59 | | 어려운 중책을 맡아 수고 많으십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욕과 역량이 넘치신 분이 봉사하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문학기행때 뵙겠습니다. 건강 돌보시면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 |
| | 최복희 | 11-05-07 09:01 | | 숙연한 마음으로 선생님 글을 읽었습니다. 옛 여인의 삶을 엿보는 귀한 시간도 되고 탁월하신 선생님의 글 솜씨에 매료되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었구요. 고맙습니다. | |
| | 임병식 | 11-05-07 10:23 | | 정읍은 갈때마다 느낍이 남다릅니다. 물론 부모님의 산소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지요. 읽어주시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문학기행때 뵙겠습니다. | |
| | 김용순 | 11-05-07 09:58 | | 임병식 선생님, 얼마전 MBC 드라마 "동이"의 고향이 정읍이였군요. 정읍하면 "정읍사" 때문인지 역사적으로 여인에 대한 의미가 깊은 고장으로 떠올려 집니다. 저도 다섯 남매를 두고도 홀로 계시는 노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선생님의 어머님을 생각하시는 애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 |
| | 임병식 | 11-05-07 10:27 | | 김용순선생님, 반갑습니다. 함께 활동하시면 두루 좋은점이 많을 것입니다. 댓들 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윤행원 | 11-05-07 10:32 | | 임병식 선생님, 오랫간만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자애로운 임 선생님의 자당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그리고 임 선생님의 지극정성 어머님을 공경하는 모습 또한 떠 오릅니다. 문학기행 광주에서 뵙겠습니다. | |
| | 임병식 | 11-05-07 10:41 | | 이번에는 뵐수 있겠군요. 저지난해 보성문학기행때는 뵙지를 못했지요. 그날이 기대가 됩니다. | |
| | 이방주 | 11-05-07 11:02 | | 임병식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영조 임금의 서민적인 행적이 기억나기도 합니다. 보리고개에는 굶는 백성을 생각해서 보리밥만 드셨다고 합니다. 생전의 어머니를 생각하시고 정읍의 백성을 생각하셔서 그리 하신 모양입니다.
선생님의 역사에 대한 명쾌한 해석에 감동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임병식 | 11-05-07 11:26 | | 영조임금이 흉년이면 반찬가지 수도 줄여가며 식사를 한것은 애민사상이 몸에 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것은 어머니 숙빈최씨에게서 배웠겠지요. 당쟁이 극에 달한 시기에 중심을 잡고 정치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아픔을 겪기는 했지만. 댓글 고맙습니다. | |
| | 이진화 | 11-05-07 23:57 | | 임병식 선생님, 부모님 산소에 다녀오셨군요. 언젠가 어머님에 대해 쓰셨던 글이 생각 납니다. 정읍에 얽힌 역사적인 이야기들 잘 읽었습니다. 이번 문학기행 때 뵙게 되길 바랍니다.^^ | |
| | 임병식 | 11-05-08 06:55 | | 저는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저 때문에 제 가족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정읍을 갈때마다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문학기행때 뵙겠습니다. | |
| | 이희순 | 11-05-11 10:27 | | 정읍에 가시면 숙빈 최씨도 만나뵈옵고 백제 여인이 돌아오실 님을 기다리는 고운 달빛 만나셔도 짙어가는 그리움에 정한만이 깊어지시는군요. 자당께서 생전에 잠시도 내려놓으시지 못하셨던 자식걱정, 가족사랑 그 모정의 세월이 산소를 찾을 때마다 선생님의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어머니 살아계심에도 불효의 세월만 보내고있는 제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나 초라합니다. | |
| | 임병식 | 11-05-11 13:46 | | 이제 정읍은 제게 특별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합니다. 문학기행에 함께 동행 합시다. | |
| | 김자인 | 11-05-11 16:41 | | 임병식 선생님 글을 읽으니 고전을 읽는 느낌이 듭니다. 생전의 어머님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 깊으셨고, 선생님 또한 어머님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지요. 정읍은 여인들의 한이 많이 서려있는 곳인가봅니다.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
| | 임병식 | 11-05-11 17:04 | | 김자인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그곳을 오가면서 정읍사람을 많이 생각합니다. 박정만 시인이 그곳 출신이고, 송월주 전 총무원장이 그곳 출신이며 소설가 신경숙씨와 가수 송대관이 그곳 출신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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