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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무사-150
쿵쿵쿵-
“커헉!”
세 발짝을 물러서며 피를 토하는 계양의 얼굴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비
록 희극적이고 언제나 농짓거리를 좋아하여 중후함은 없지만 본 실력을 발
휘한다면 강호의 산천초목도 숨죽일 거라는 화산의 삼장로인 그가 이렇게
처절한 표정을 보이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으드득.
이를 갈아 부치며 입속에 뭉친 울혈을 퉷 뱉아낸 그가 힘겹지만 단호하게
오른손을 들었다. 비록 반 토막 난 검이지만 이것이 한번 스치기만 해도 상
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맞으면 말이다.
‘네놈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몰라도 이 늙은이를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말거
라. 썩어도 준치라고 했느니...’
수비식으로 가슴을 보호하며 전방을 응시하는 계양의 눈은 지옥의 눈동자와
같은 어둠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벅저벅.
무척이나 느긋한 발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를 헤치며 한 사내가 걸어왔다.
주위의 색과 너무도 대비되는 하얀 장삼을 펄럭이며 산책이라도 나온 서생
마냥 한가로운 기색의 중년인. 그의 가슴에 금방이라도 흘러갈 것 같은 구
름 문양의 자수가 너무도 뚜렷했다.
“내가 뭐라고 했소? 막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거늘...”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비웃음. 토해낸 말은 권태.
“후후... 몇 번 이득을 보았다고 너무 자만하고 있군. 그렇다면 이 검식도
받아 보거라.”
고개를 옆으로 까닥거리며 여전히 웃고 있는 사내의 초상을 향해 기합성과
함께 계양의 검이 날았다. 분명 화산의 창궁우전검의 형태이기는 하나 매화
향 짙은 고즈넉함이 아닌 사이함이 담겨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보법은 매화
검결에 맞춘 화산의 독문걸음이 아니었다.
뭐라고 할까?
일반적으로 보법은 펼쳐내는 공격초식을 보필하는 도구로의 구실을 한다.
그러나 계양이 밟고 있는 발걸음은 앞서의 상궤를 무시한 독립적 성격의 그
것이었고 소위 말하는 명문정파의 기법과 차원을 달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스르륵.
꺼지듯 제자리에서 사라지며 어느 순간에 상대의 옆을 노리는 독사 같은 움
직임!
무림명숙이 보았다면 ‘과연 화산삼장로!’란 말이 절로 나올만한 행사였고
빠르기와 각도 면에서도 의외성이 있었다.
쫙!
‘베었다!’
그의 칼은 멀거니 서있던 사내를 양단했다... 고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아
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으니 계양의 칼을 피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았다. 헛손질을 했을 때의 무감(無感)에 계양이 반사
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구름 문양의 사내가 그의 옆
을 빠르게 스쳐갔다.
파바방!
“크헉!”
단지 지나쳤다고 느꼈을 뿐인데 어느새 그이 배엔 세 번의 충격이 전달되었
고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계양을 사내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거 재미있군요. 화산을 대표한다는 삼장로 가운데 한분의 독문보법이
배교의 잠마주술이라니. 역시 세상은 우습게 돌아가는군.”
‘한눈에 잠마주술을 꿰뚫어 보고 역으로 공격까지 하다니. 어디서 저런 자
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잠마주술이라고 하면 독특하고 괴이한 무공과 존재 자체가 신비라는 배교의
문외불출(門外不出) 보법이다. 문도가 몇인지, 지휘체계가 어떻게 이루어
져 있는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전설의 문파.
배교의 독문보법을 사용했다함은 어떤 식으로든 배교와 관련되었다는 뜻이
니 계양의 과거에 이 신비한 문파가 드리워져 있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지
만 사내는 그저 재미있는 일 정도로 치부하는 정도였다.
사실 계양이 배교와 관련이 되었든 배교교주이든지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화산과도 아직은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
의 일을 저지한다면 누구라도 상대해줄 것이다. 가슴의 구름문양처럼 한가
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사내에게 양보라는 단어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이란격석이란 말을 아신다면 오늘의 참견을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오. 하
긴...”
사내가 고개를 옆으로 틀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조소일까? 그런데 계양
은 비웃음 섞인 표정에서 시뻘건 피비린내를 느꼈다.
“이 순간이 평생의 마지막일 테지만 말이오.”
“이노~옴!”
그의 빈정거림에 참지 못하고 폭갈을 터트린 계양이었으나 상황은 별로 좋
아 보이지 못했다. 상대의 무위는 그야말로 막강이었고 화산의 세 번 째 장
로가 보여줄 기예는 그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니까. 그렇다고 이런 수모
를 당한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화산의 이름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반선수 이전이 게양이 아닐 것이다.
반쪽만 선(半仙)이라 하였다. 무림인들은 모른다. 나머지 반쪽의 계양을 말
이다. 피와 죽음을 부르는 신선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신선의 얼굴을 벗어
던졌을 때 자리하는 악마만의 얼굴을.
사내의 공격은 눈으로 잡기 어려운 빠름에 그 묘리를 두고 있었다. 그렇다
면 쾌(快)의 요결이라는 건데 손을 섞고 보면 그렇게 간단히 정의 내릴 성
질의 공격도 아니었다.
수많은 섬전(閃電)들이 사방을 교차하여 공간 자체를 가득 메운 형태라고
할까?
단 한치의 빈틈도 없는 선들의 교차.
‘오냐. 아예 선 자체를 그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해주마.’
우우우웅-
급격히 치솟는 살기의 진동. 그와 더불어 계양의 얼굴은 구도자의 반쪽을
버리고 지극히 음침한 살인자의 영상이 뒤덮었다. 그러나 검을 움켜쥔 오른
손에서 여전히 화산의 기본 검법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조화의 기운이
떠도니 역시 극사(極邪)란 말은 어디까지나 가상 속에서 존재하는 단어일까?
'삼십 여 년 동안 눌러두었던 힘의 봉인을 뜯어버리마. 지옥이 무엇인지 똑
똑히 맛보게 해주겠다!'
스스스-
마음속의 외침과 함께 게양의 몸이 서서히 투명화되기 시작했다. 흡사 다리
부터 지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전신이 녹아 내리고 요광을 뿌리는 검
만이 제자리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 사내의 전신을 노려보았다.
이 기경할 모습에 사내의 눈썹이 조금 흔들렸다. 그로서도 이러한 광경은
처음 대하는 것이라 아무리 절대적인 자신감과 무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절
로 긴장되는 마음은 억제하기 어려웠으니까.
허나 사내는 선공을 취하지 않았다. 비단 앞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계양의 사이한 변화를 똑똑히 기억하겠다는 듯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팟!
마침내 검마저 사라지고 장내엔 사내 혼자 남았다. 마치 거짓말처럼 말이다
. 스쳐 가는 한여름 밤의 바람들이 나뭇잎들을 희롱하고 떠나가는 소리만이
분주하게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훗!"
다분히 의도적인 도발. 눈을 내리 감은 사내가 대상조차 불분명한 허공을
앞에 두고 짧은 조소를 쏘아냈지만 그에 화답하는 어떠한 소리나 움직임도
없었다. 만약 그저 고수급을 자처하는 무인이라면 이러한 순간에 평정심을
잃었을 터이다. 싸우던 상대가 느닷없이 꺼져버렸다면, 그러나 적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다면 누구라도 두려움을 느낄 테니까.
문제는 이 사내가 그런류의 사람과는 다르다는 거다.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게요? 본인의 유년기가 메말라 있다는 사실을 한눈
에 간파하다니, 역시 화산과 배교의 양대 무공을 두루 섭렵한 고수답구려."
말은 너스레지만 그의 귀와 감각은 활짝 열려 주위의 모든 사물을 뚫어보고
있었다. 이정도로 완벽한 은잠술이라면 귀신이라도 속일 위력과 힘을 담고
있음이나 세상에 완벽이란 없고 사내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저 몸을 감추고 도망간다면 말릴 생각은 없지. 허나 놀이에서 이기려면
언젠가 술래의 나무를 쳐야하는 법. 자~ 어떻게 나오실 텐가?’
완전한 침묵 속에 내던지듯 방임되어있는 사내 하나. 어찌 보면 지극히 여
유로운 광경이었지만 이 순간이야말로 배교의 최고환술 가운데 하나라 일컬
어지는 잠마주법의 완성형이자 한때 전 무림을 떨쳐 울렸던 살인기예, 공화
인(空化忍)이 무려 삼십년의 시공을 건너 완벽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
이다.
휘이이잉-
여름바람만이 밤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한가로이 장내에 머물다 가고 다시
오기를 몇 번씩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내
는 마침내 계양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으로 자신의 흔적과 숨결을 아니,
그 모든 기운을 이토록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는가? 배교라... 역시 우습
게만 볼 대상은 아니었군.’
그는 아직까지 계양의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계양으
로도 크게 득을 본 상태는 아니었다. 스스로의 흔적을 지우고 상대를 노리
고 있는, 싸움의 형태로 미루어 본다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감
히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한 치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어이가 없구나. 역시 저자는 그
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인가...’
숨 막히는 대치!
흔들리는 자가 목숨줄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한 순간 사내의 기운이 미친바람처럼 비산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급작스러
웠기에 칼끝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계양이었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했
다. 아니, 너무 완벽한 몰입을 했던 탓이었기에 그 놀람은 더욱 컸다.
콰콰콰콰-
‘뭐야!’
대저 이정도의 기운을 발산하려고 하면 제아무리 고수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힘을 응축해야만 하고 그 말은 자연 상대에게도 내공의 흐름 정도가
읽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내가 쏟아낸 기세는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
락처럼 급작스러웠고 또한 폭발적인 기세를 담고 있어서 일반적인 내공운용
과는 상궤를 달리하는 방식이었다.
쩌쩌쩌쩍!
바닥의 나뭇잎들을 말아 올리는 것도 모자라 어른이 두 팔로 감아도 손끝이
닿지 못할 아름드리 나무들도 마구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흔히 불러
일으킨 내공력만으로 주위의 사물들을 마구 부수고 터트린다고 하지만 현실
적으로 그만한 공력을 소유하고 있는 무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순간에 터트린 기세로 나무를 마구 가르는 사내를 본다면 무림 명숙이라
고 자처하는 인물들이 뭐라고 할까?
게양의 얼굴에 극도의 경악이 자리잡았다. 그는 이러한 내공 운용법이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직접 본적은 기필코 난생 처음이다. 준비 없이
이만큼의 힘을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분출하려면 몸 속을 뛰어다니는 내공의
수발을 완전히 통제해야 하며,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격상시킬수 있어야 한
다.
이른바 전설적인 고수들이 구사했다는 어기상인이 그것이다.
그의 놀람과는 무관하게 천지를 뒤덮은 공력의 여파는 당연히 계양에게도
다가왔다. 이건 버티거나 해서 막을 성질이 것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공을
일으켜 대항한다면 은잠술 자체가 깨진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 더
이상 피할 곳은 없다.
선택은 하나!
팟-
무언가 희끗하며 사내를 스쳐갔다. 그리고 사내도... 스쳐갔다.
휘잉-
대지를 초토화시킬 것만 같았던 광풍이 급작스레 잦아들고 바람의 여진(餘
震)에 따라 흩날리던 나뭇잎이 스르르 내려앉았다.
계양은 사내의 서너 발 뒤에서 등을 보인 채로 서 있었다. 사내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무얼 생각하는지 묵묵히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고만 있었
다. 만약 화산의 세 번째 장로이자 배교에서도 엄중한 위치에 있었던 노인
이 무릎을 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아침해를 대했을지도 모른다.
“커헉!”
한 사발 피를 토하고 억지로 고개를 돌린 계양이 사내의 뒷등에 대고 툴툴
거렸다. 이미 가래 끓는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이번의 격돌로 적잖은 충격
을 받은듯했다.
어이없게도 그의 은잠술은 깨졌다. 상대의 미약한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
고 그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 은잠의 기본이거만 너무도 갑작스러운 기의 장
벽에 오히려 약점을 보인 쪽은 계양이었고 선공을 취한다고 취해보았으나
사내의 기경할 빠름은 화산의 세 번째 장로가 따라잡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리고 계양을 훑고 지나간 강기의 파도.
“역시 무섭군. 그때 내가 있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거야. 크크크...”
등을 보이고 있던 사내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결과?”
“시치미 땔 건 없다. 삼 십 년 전의 일을 설마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 나
이로 미루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삼십년 전이라면 이른바 제2차 무림혈겁이라
는 흉몽지겁이 무림을 피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을 때다. 그러나 사내는 당
시에 겨우 열일곱이었고 그런 건 알지도 못했다. 그분이 흉몽지겁에 참여했
다는 정도나 알까?
그러나 사내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가 매우 좋았으며 대화의 방법
정도는 누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숙지하고 있었으니까.
때로 침묵은 몇 십 마디의 어절보다 가치가 있으며 지금이 아마도 그러한
순간일 것이다.
가타부타 아무런 말없이 서있는 사내를 보며 몇 번 피를 더 토한 계양이 자
조 섞인 한숨을 토했다. 그의 눈앞에 벌써 몇 십 년이 흐른 참상이 스쳐갔
고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신비의 문파, 그 잔영이 아프게 다가왔다.
“무림의 법칙대로 힘이 없는 자는 쇠락하는 게 순리겠지만 너희는 달랐다.
멸문으로도 부족해서 단 하나의 씨까지 파헤쳤으니까. 그래, 그까짓 종이
쪼가리가 그리도 소중했더란 말이냐!”
순간 사내의 전신에 격렬한 진동이 찾아왔다. 이것이야말로 무언가 감춰진
진실의 내막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내는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화산의 세
번째 장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고 전설의 화타나 편작이 와도 살려
내지 못한다.
어쩌면 배교에서 가장 강했을지도 모르는 - 그의 독백도 그랬고, 방금 전의
공화인 역시 아무나 받아낼 무공이 아니었다 - 노인의 마지막 한마디 한마
디는 더없이 사내에게 소중했지만 그렇다고 목줄을 틀어잡고 묻고 싶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인물에게 이 정도의 예의는 지켜줘도 괜찮지 않을까?
계속되는 사내의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계양 역시 꺼져 가는 자신의
생명을 잘 알고 있었고 드디어 활동을 시작한 이들을 막지 못하는 게 서글
펐다.
“자네는... 배교혈사에 관여하지 않았군.”
“음?”
썩어도 준치라고 했다. 다 죽어가면서도 계양의 예리한 안목은 사내의 마음
속을 투영했었나보다.
“몹시 궁금할 텐데 왜 묻지 않나? 그놈의 저주받을 종이쪼가리의 소재에
관해서 말이야.”
왜 묻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그것이 그토록
찾아 해매였던 혈서라고 하더라도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게양이 가지고
있지도 않을 것이 뻔했고, 어디다 숨겨 놓았을 리도 만무하다.
“그것이 만약 혈서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장로께서는 보지 못했음이 틀림없소.”
“어떻게 그리 단정짓는 건가?”
“만약 보았다면... 관둡시다. 가는 길까지 불편한 마음일 필요는 없지 않소.”
뜻 모를 말. 순간적으로 말을 잊었던 게양이 짧은 각혈을 거푸 하고 입을
닦았다. 분명 배교엔 그 종이쪼가리가 없었다. 허튼 소문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변명하지 않았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올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마지막 가는 길에 부탁하나 함세.”
고즈넉한 눈으로 계양을 바라보던 사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상적으로 들어주는 것도 아니요, 측은지심이 발동한 건 더더욱 아니다.
그저 그렇게하고 싶었다.
이때 강력한 기세가 뻗어 나와 흠칫 고개를 돌린 사내의 눈에 하얀 장삼을
나부끼며 나는 듯 달려오는 노인 하나가 보였다. 그의 신법은 거의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상태였고 단지 다가오는 것만으로 전신이 난자(亂刺)당하는
느낌의 예기를 발산하는 사람.
“이제야 오는군.”
첫댓글 구름운
바람따라
구름따라.
잘 읽고 갑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