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반공학생혁명, 소련은 815해방 직후에 김일성 북한괴뢰정권을 세웠다.
1945년 11월 23일은 신의주에서 학생들이 반소·반공(反蘇·反共) 의거를 일으킨 날이다. 한국이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1945년 11월, 북한 주민들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각종 강압정책을 쓰고 민족진영을 탄압하는 소련 공산당 및 그 추종세력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특히 소련군은 강간·약탈 등을 일삼았으며, 소련군의 꼭두각시인 김일성을 내세워 38선 이북을 접수하기 위한 작업을 노골적으로 진행했다. 김일성은 애국지사들에 대한 테러 행위를 자행하면서 소련의 공산화정책을 적극 옹호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일파와 공산당 및 소련군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게 됐고, 반발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1945년 11월 18일 신의주 서쪽 약 20km 지점의 용암포(龍岩浦)에서 학생과 주민들의 반공 궐기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이곳에서는 다른 곳과 같이 공산당이 추진하는 인민위원회를 환영하는 군중대회가 공산당의 각본대로 열렸다. 축하연설을 위해 연단에 올라선 학생대표가, 공산당의 여러 가지 비행(非行)과 소련군정의 압제와 소련군의 행패를 폭로·규탄하는 한편, 공산당의 정치훈련소로 사용하고 있는 수산학교(水産學校)의 반환을 요구했다.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고 기세를 올리자, 환영대회는 삽시간에 공산당 규탄대회로 변했다. 당황한 공산당은 보안대를 앞세워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에 반공 시위대 측에서 사망자 1명과 부상자 11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소식은 곧 신의주 지역 학생들에게 알려졌다. 신의주 학생자치대 본부 학생들은 그곳 공산당 당국과 소련군 현지 사령관에게 사건의 온건한 사후처리를 요구하다가 거절되자, 반소·반공을 위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로 합의하였다.
학생들은 ‘공산당을 몰아내자’, ‘소련군 물러가라’, ‘학원의 자유를 쟁취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가지를 행진했다. 공산당과 소련군은 학생들에게 발포하고 전차와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시위대를 사살했다. 그 결과 피살자 123명, 부상자 7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수많은 학생들이 체포·구속됐다.
신의주학생의거는 김일성과 소련 공산당의 한반도 적화 시도에 저항한 북한주민의 반공의식을 대변한 것이며, 이후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출처] 신의주 학생 반공의거|작성자 advance2012
첫댓글 종북은 이런말은 무조건 안들려 !!!
지금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공산당과 한통속이 되어
공산적화통일을 노리는 종북공산주의 역적들이
민주,진보로 위장해서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애국 국민여러분, 저들의 정체를 알리는 이러한 글들을 국민들,
특히 공산주의의 거짓되고 사악한 정체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신의주학생의거는 북한판 419학생의거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