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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수를 받아먹던 소녀가 무리한 산행으로 이제는 지쳤는지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힘들게 하산하는 하산 길에는 등산객들과 어울려 담소를 즐기며 내려왔다.
헤드랜턴을 켠 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어두워진 오후 6시경.
모처럼 여유있는 시간을 가진 우리는 느긋하게 저녁을 해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2017년 1월 31일(화)
아침 일찍 눈을 뜬 우리는 지리산 남서쪽에 위치한 삼성재휴게소로 내비를 설정한 후 차를 몰고 가는데 문득 도로표지판에 -지리산 청학동-이 표시되어 있어 우주인과 우주신을 믿는 이상한 현대판 신비주의자인 친구에게 한번 들러 보자니 어떻게 발견했냐며 손뼉까지 치며 좋아한다. 이곳 청학동은 십몇년 전에 산악회원들과 지리산을 오르며 언뜻 지나친 적이 있다.
"야~ 가끔씩은 티격태격해도 역시 갑장인 우리는 공감대가 확실한 초록동색 유유상종이라니까~"
"이 친구가 놀리기는... 운전이나 잘혀~"
이런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좁고 구불구불한 포장도로를 따라 거림골을 지나서 산길로 한참을 들어서니 청학동 특유의 전통가옥, 민속주점, 수련원, 서당, 서원, 사찰, 사설예절학교 등과 함께 관광지 특유의 숙박시설과 펜션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아침부터 궁색하게 길가나 계곡에서 밥을 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우선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서릿발이 서있는 길가 식당마다 들렀으나 주인이 없거나 아침영업을 안했다.
신선이나 도인들만 사는 한국판 도원경이란 선입관 탓인지 자연경관부터 여느 산촌과는 확실히 다른 신비하고 신기한 풍경을 지닌 청학동... 그 깊숙한 곳 삼거리에 이르니 좌측 삼성궁, 우측 도인촌이란 묘한 도로표지판이 나온다.
"청학동에 왔으니 의관을 정제하고 도인들과 한판 멋지게 도에 대해 끝장도론을 펼쳐 보는 게 좋지 않겠어?"
웃으며 친구를 쳐다보니 농담 그만 하라며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잔소리 말고 삼성궁으로 가잔다.
삼거리에서 가까운 청학동회관 앞에 큰 규모의 성남식당이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 아침을 부탁하니 50대 여인이 웃자 우리는 고마움에 머리를 숙였다. 시각은 오전 8시 반.
여행때 찍은 가족사진인지, 벽에 걸린 사진에는 1남2녀를 둔 조선시대 지리산 선비와 금강산 선녀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대통밥 12,000원, 산채정식, 산채비빔밥, 된장찌개, 도토리묵, 파전이 8,000원, 닭백숙, 닭도리탕, 오리백숙, 옻닭이 50,000원, 동동주 7,000원........
우리는 달달한 전통 수제동동주와 지리산에서 난 온갖 산채가 든 산채비빔밥을 시켜서 모처럼 밥상 앞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동동주 맛은 입에 착 달라붙는 환장한 감칠맛이라 집에서 담근 술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이 맛은 가주가 금지되었던 박통시절에 우리 엄니가 힘들게 농사짓는 아부지를 위해 정성들여 아랫목에다 이불로 덮은 술독으로 빗어 내오신 바로 그런 달달한 맛이었다.
전국택배시 택배비 별도며, 5병 이상 구매시 택배비 포함이란다. 그래서 나는 저녁에 마실려고 동동주를 한병 더 시키며 명함까지 챙겼다.
<청학동 성남식당 055-882-8957/ 경남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길 15-18/ 청암면 묵계리 1537-5>
아침부터 알딸딸~ 얼큰술~해진 우리는 800m 윗쪽에 있는 기기묘묘하고도 신기막측한 삼성궁 마고성으로 갔다.
우선 이곳을 소개하는 안내판의 내용을 살펴보자.
★ 청학선원(靑鶴仙院) 삼성궁(三聖宮)
옛부터 두류산(頭流山:지리산)은 靈岳으로 동은 天皇峰이요 서는 般若峰으로 중앙에는 靈神臺가 있어 병풍같은 장막을 치고 있다.
영신대에서 남쪽으로 한갈래 脈이 이어져 三神峰을 만들고, 다시 동서로 맥을 이어 神仙臺, 三聖峰, 三仙峰, 시루봉, 미륵봉을 잇는 주위 40리의 청학동을 作局하였다.
이 청학동은 신라의 석학 崔致遠 선생과 道詵國師를 비롯한 역대의 先師들께서 동방제일의 名地로 가르킨 곳이다.
이 천하의 명지에 仙道의 組宗이며, 배달민족의 國祖이신 삼성(한인, 한웅, 단군)을 봉안하고, 청학선원 삼성궁이라는 배달민족성전을 일으킨 분은 한풀선사(大氣仙師)이다. 선사께서는 일찌기 樂天仙師 문하에 출가하여 선도의 가르침을 받고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비롯한 三倫, 五戒, 八條, 九誓를 공부하였으며, 또한 三法修行을 정진하며 우리의 춤과 노래, 仙家武藝인 仙武와 本國劍을 사사받았다.
선사께서는 이 땅에 배달민족혼을 일으키고 민족적 구심점을 형성하기 위한 배달민족성전을 건립하고자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칡넝쿨과 다래넝쿨을 걷으며 몇몇 제자들의 도움으로 손수 모든 솟대(돌탑)를 쌓았다.
이는 고조선 소도(蘇塗)를 복원하여 고대 조선문화에의 회귀를 꾀함과 동시에 오늘날의 잃어버린 배달 仙道文化를 재조명하고 민족문화 활동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
민족혼을 일깨운다는 이 아름다운 글을 보고 친구는 감격할 것이 분명하겠지만, 동서고금 인문학을 두루 공부하고 있는 나는 이 내용에 대해서 회의감을 감출 수 없다. 공부가 부족한 내가 우리 조상들에 대해 굳이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랜 시공간이 담긴 고대문서라는 것은 사실 후대의 사람들이 얼마든지 조작해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서쪽에는 진실이 든 예수의 복음서를 없애고 성스럽도록 조작한 신약4경(4복음서), 동쪽에는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해서 만든 일본의 일본서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유대교, 예수교, 마호멧교의 경전인 토라(모세5경)와 같이 신화와 전설에 불과할 수 밖에 없는 상고대사를 사실적인 역사로 믿고 섬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위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내용대로라면, 우리들이 광활한 조상들의 땅(만주)을 잃고 작은 한반도에 갖혀 살 이유가 없는 것이며, 더하여 인류사적이자 민족 최대의 비극인 동족살상전쟁(6.25사변) 또한 일어날 수 없음에도 우리 민족과 땅은 그런 참혹한 일을 겪고 반으로 뚝 갈려져 지금까지 서로 죽이지 못해 발광하고 있지 않은가!
소위 만년의 배달혼이 든 천부삼경(天符三經: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 역사에서 등장한 시기는 고작 1916년경이며, 그 내용(소장인, 배경, 연원)을 살펴보면 모순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국의 민족자료를 거의 말살한 일제 이전에 그런 위대한 경전들이 이미 존재했었다면 왜 우리 선조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2,000여년 이상이 된 유대교의 토라(예수교의 구약)나 이슬람의 코란 혹은 중국의 황제경처럼, 조선과 고려 삼국시대에 이미 우리 선조들이 지니고 있었거나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혹자는 말한다. 그 어떤 민족도 신화와 전설같은 상고사는 있게 마련이라 근거가 불분명하더라도 이런 자료가 있는 게 민족적으로 얼마나 큰 다행인가 하고. 과연 타당한 생각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주장한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침소붕대(針小棒大)로 거짓을 진실인양 조작한 문자(말)로 인민을 기만하는 행위야말로 진정 바보같고 위험한 짓이라고.
물경,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대하고 진실한 예는 이 세상에 얼마든지 많다는 걸 새삼 강조한다.
각설하고,
야얀들의 산적소굴도 아니고, 정의파들이 모인 양산박도 아니며, 그렇다고 정갈한 신앙촌이거나 고풍스런 민속촌이라기엔 시설물 분위기가 마치 무덤을 뚫고 나타난 고조선이나 고구려시대에 있을 법한 그런 기기묘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채와 시설물들로 이뤄진 삼성궁 마고성은 우리들에게 -시공을 넘어선 종교예술-로 다가왔다.
나는 장애자라 무료, 친구는 거금(7,000원)을 들여 매표한 후 선국(仙國)이라는 전서체 현판이 붙은 정문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보기와는 또 다른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한학, 역사, 사상, 예술, 고전, 종교에 관한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애들 장난같은 그런 이상하고 요상한 기물, 석물, 돌탑들이 우리들의 눈을 휘둥글게 만든다. 고대우주신을 섬기는 내 친구의 정신세계와 일치하는 각종 설치물들... 특히 고대동양의 석물을 연상케 만드는 각양각색의 석조물들은 상상을 초월해 있다.
친구는 기단을 앞에 둔 죽선자(竹仙子: 1대 강대주)라 조각된 표석에다 우주나 氣에 대한 원리를 도형으로 표현한 나선형 석조조각 앞에 묵념기도하더니 이마를 갖다대며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경건하여 감히 농담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신기한 조성물을 연신 촬영하다가 배터리가 바닥나는 바람에 주차장으로 돌아와 배터리 교체를 한 후 입장료를 받는 60대 중년에게 이곳에 대한 현실적인 내용을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대단한 곳이다. 나는 이곳 주인장의 공부와 내공에 연신 감탄하며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보며 사진을 찍었다. 미국 서부에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벽화나 천정화를 차용한 듯한 건물과 통로가 있는 것으로 미뤄 후대분은 분명 세계여행을 한 부유한 지식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곳에는 전국에서 모아 온듯한 각종 민속자료들과 석물들로 무궁무진하다.
선돌, 맷돌, 방아돌, 다다미돌, 연자방아, 디딜방아, 디딤돌, 비석, 묘지석, 문무석, 저승석, 남근석, 대문석, 계단석, 초석, 가마솥, 옹기, 오강, 똥장군, 기와, 귀면상, 장승, 신상, 석불상, 석불탑..... 이 민간민속문화재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옛 신물이나 오래된 물건들은 우상숭배, 미신, 혹은 구시대적인 쓸모없는 것들이라며 (근본없는 예수교에서 앞장선) 새마을운동 당시 전국적으로 파괴되거나 땅에 묻어 버려졌을 이 물건들을 힘들게 수집한 1960~1970년대 당시에야 헐값 혹은 쓰레기에 불과했을 것이나, 지금은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희귀하여 그 몸값이 쓸모없는 古物아닌 귀하신 高物아닌가!
색색의 예술적인 조각품에 가까운 신기한 문양을 바탕에 새긴 한문을 읽기 어려운 전서체로 새겨둬 한참을 궁리하게 만든다.
선국(仙國), 금당(金당), 학조대(鶴조臺), 목신지문(木神之問), 우복지문(宇福之문).... 어떤 글씨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이곳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남근을 목재나 석재로 조각해서 보관한 남근실은 따로 있고, 이 깊은 첩첩산중에 노를 젓는 배(목선)도 여러척 정박해 있는 넓고 깊은 호수까지 있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여러가지 조성물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큰 조형물은 따로 있었다. 마치 마고성을 지켜보는 듯하는 왕릉처럼 만든 맨 위의 자연동산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이 이런 거대한 조형물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돈과 인력과 예술가와 중장비가 투입되었을지... 성벽에 박힌 화장실은 시설 또한 일품이었다.
이곳 2세분의 연세는 몇인지 모르나, 내 능력으로는 추측이 불가할 정도로 큰 이상과 세계관을 지닌 멋진 선사라면 과찬일까...?
성벽으로 이뤄진 삼성궁을 지나 화살표를 따라 장승과 석탑이 있는 언덕을 넘으니 또 다른 별세계가 나타난다.
단군신을 모신 건국전(建國殿) 마당.
한창 조성중인듯 신축건물도 보이고, 제법 넓은 뜰과 연못도 있으며, 마이산에 있는 원뿔형 돌탑을 색다르게 모방한 돌탑이 여러개 보인다. 모든 길은 배달길이며 삼성궁으로 통하나 보다.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근본이 조선인인 나는 國祖인 단군을 모신 사당(건국전)을 기웃거리며 삼배를 올린 후 또 다른 별세계를 감상하다 홍익인간 이화세계라고 조각된 석장승과 건국전을 배경으로 지나가는 관광객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찍혔다.
마이산의 돌탑같은 돌탑 위에 있는 석불탑... 어디서 업어온 것일까... 생각해 보다가 수십발 물러나 기묘하고 신비한 장관을 펼친 건국전을 바라보며 이런 큰 공사를 개인이 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야, 대단하다!"며 탄성을 질렀다.
이곳 관리인인듯한 청년이 전통복을 입고 건국전 옆 기와집에서 나오더니 너와지붕을 한 가옥으로 내려간다.
화살표를 따라 다른 길로 동산을 다시 넘어와 마지막 관광구간을 지나는데,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도총부부총관전주이병항지묘-라는 한문비석이 유교적 남근석(남근석을 단조롭게 깎은 비석)과 함께 있는 것이 재밌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중추부의 동지사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은 종2품 고위직 무관인데, 저 비석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왔으며, 전주이씨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런 여러가지 상상을 하며 상상 속 이미지를 현실화한 재밌는 이곳을 다시 정리해 볼 요량으로 매표소 관리인에게 향했다.
"정말 대단한 조성물입니다.개인이 이런 대공사를 이뤘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혹시 선생님은 이곳 강씨집안분 아니십니까?'
하고 물으니 아니라며 부연설명해 준다.
이렇게 거듭 확인한 내용이지만, 청학동 마고성에 대해 안내판에 없는 내용들과 내가 구경하면서 추측정리한 내용을 축약해서 올린다.
★ 고시대 유물, 고분 출토물, 고분벽화 혹은 전승전래된 민속자료 등에서 얻은 민족사상과 청학동이라는 주제로 조성된 마고성과 삼성궁은 2대에 거쳐 조성되었기에 역사는 반세기를 넘지 못한다. 어려운 환경에 있던 선대(竹仙子:강대주)는 삼성궁을, 후대는 마고성을 중점적으로 지금도 자금을 투자하여 특별관광지로 조성 중이다. 뒷산과 합하면 수십만평에 이르는 이곳은 강씨 선산인데, 필요한 곳은 남의 땅을 매입해서 조성했다. 단군을 국조로 모시는 대종교, 천도교, 한얼교, 증산도 등 민족종교나 토속종교의 도움없이 순수하게 개인이 조성했기에 입장료 수입으로는 유지보수 내지 신설에 따른 부담이 큰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