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청학동에서의 뜻하지 않은 신기한 구경을 한 우리는 반대편 삼성휴게소로 내비를 설정한 후 청학동을 빠져나왔다.
시각은 오후 2시 반.
천천히 차를 몰면서 점심을 해먹을만한 적당한 곳을 찾다가 문득 좌측편에 햇볕이 드는 멋진 장소가 있었다. 남남정맥에서 흘러내린 깨끗한 개천가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모처럼 여유롭고 따뜻한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계곡수 흐르는 바위에 앉아 봄기운이 도는 산하를 둘러보며 한잔의 커피까지 곁들어 마시니 마치 내가 신선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자네 때문에 멋진 구경을 하고 좋은 곳에서 점심까지 해 먹었네그려."
"그러게 말이여. 친구 잘 만나면 자다가도 떡 얻어 먹는다는 좋은 말이 있네."
"뭐? 이 친구는 꼭 귀에 거스르는 토를 단다니까..."
이런 농담을 주고 받으며 청학동을 빠져나와 반대편 노고단 쪽으로 향했다.
직선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내 차는 작년 봄에 재경동문회 벛꽃축제관광을 왔었던 지리산 남쪽 화개장터가 있는 하동의 섬진강을 돌고 돌아 서남쪽 구례로 향한다. 문득 도로표지판에 드라마 '토지' 촬영지인 '최참판댁'이 나타나자 친구에게 한번 들르자니 의외로 쾌히 응한다.
너른 들판 위가 아닌 산허리에 촌락이 펼쳐진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박경리의 '드라마 토지 촬영지'로 들어선 시각은 황혼무렵인 6시. (시간은 카메라 사진자료를 참작했기에 부정확함)
예전에 애시청한 드라마 '토지'의 배경이라는 조선시대 기와집군인 최참판댁은 마을 맨 꼭대기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가짜장애자라며 친구가 가끔씩 놀리는 장애등급을 가진 나는 이곳에서도 무료입장하며 옛 경상도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도록 관광지로 단장해 있는 곳곳을 촬영하자니 명절 다음날이어선지 관광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아 한적하고 편안하다.
"고관대작인 최참판댁하면 저택이 응당 평지에 있어야 할텐데 힘들게 높은 산허리 위에 있네요?"
명절 후인데다 민속관광지인만큼 한복을 입고 주변정리를 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으니,
"양반들은 대부분 체력이 약하기에 일부러 운동하기 위해 산 위에다 지었다오." 웃으며 답한다.
꼭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희비애락을 동반한 사람 사는 생활상은 크게 다를 바 없다.
남여 머슴을 여러명 둔 양반댁이 서민들과 거리를 둔 마을 맨 꼭대기에 있는 이유는, 자신들의 생활상이 일반 서민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일 뿐 아니라 마을을 굽어보며 윗사람인양 헛기침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이며, 권력을 쥔 자신들의 하수인과 다름없는 서민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일종의 권위의식 때문이다.
아무리 고고한 선비나 박식한 학자 혹은 천하의 열녀효부라도 부부싸움, 자식싸움, 형제싸움, 사랑싸움에선 자유로울 수 없기에 그런 집안의 천한 잡음을 비천한 동네사람들에게 들킨다는 것은 큰 수치로 여기는 양반들의 체면의식... 그런 것 때문 아니겠는가!
역사적인 실재인물은 아니겠지만, 최참판과 같은 양반모를 쓴 선비가 넓은 마당 한켠에 있는 벗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는 동상을 배경으로 수십칸이나 되는 찬판댁 저택을 찍은 후, 대문 앞에 놓인 놀이물 중에 투호가 있어 부모들과 함께 지나가는 아이를 불러놓고 3m거리에서 투호를 해 보는데... 한웅큼 쥔 50cm쯤 되는 투호용 시누대는 직경 12cm정도 되는 통을 향해 아무리 던져도 들어가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두번째로 던져보니 겨우 내 것 한개만 쏙!
아이에게 미안하여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접근하여 던져보라니 아이도 겨우 한개만 쏙! ^*^
귀엽게 생긴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한 후 어지러진 시누대를 정리해 두고 참판댁 정문으로 들어서니 후생에서나마 꼭 살고 싶은 고색창연한 기품있는 고관대작 기와집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최참판댁은 고관대작들만 향유할 수 있는 고품격의 조선시대 전각들이 단아한 기와담장과 연못, 각종 정원수 사이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각과 초당으로 향하는 뒷뜰 대밭에는 양반들이 거드름 피우기 좋은 담바꾸대와 세공품으로 이용되는 오죽도 섞여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특히 집주인이 거주하는 본채와 다름없는 사랑채는 손님을 맞는 좌측의 사랑방, 중간엔 큰 회당같은 위아래로 여닺는 4개의 문으로 된 대청마루, 우측엔 침실이 있고, 침실 앞에는 누각같은 누마루가 한 지붕을 연하여 멋지게 서 있었다.
이곳 참판이 거주하면서 집안의 대소사와 학문을 가르치는 공간으로 외부손님을 접대하거나 연회장소로 사용한 사랑채는 고택 아래 마을과 넓은 들판, 병풍같은 산야, 섬진강을 굽어보며 선비들과 각종 연회를 벌였을 대청마루나 누각(누마루)이 있는 사랑채 기둥에는 한시가 조각된 세로로 된 기둥현판(주련)이 있는데 그 내용이 참 재밌다.
한복을 입고 문화체험을 하러 온 60대 부부관광객을 맞아 안내하며 차를 마시고 난 참판모를 쓴 -하동군에서 위촉한 명예참판-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부탁드리니, 예서체로 조각된 주련의 조선시대 문신이자 문장가인 유호인(兪好仁) 한시를 맨 우측부터 설명해 준다.
1.一掬歸心天盡頭(일국귀심천진두) 한가닥 돌아가고 싶은 마음 하늘에 닿았는데
2. 岳陽無處不淸幽(악양무처불청유) 악양은 맑고 그윽하지 않은 곳이 없구나.
3. 杜谷林塘春日遠(두곡임당춘일원) 두견새 우는 골짜기 숲의 못은 봄 기운에 멀고
3. 輞川煙雨暮山浮(망천연우모산부) 굽이도는 섬진강 안개비 속에 저문 산이 떴구나
4. 雲泉歷歷編供興(운천역역편공흥) 구름은 뚜렷이 흥취를 돋우나
5. 軒冕悠悠惹起愁(헌면유유야기수) 동헌의 사부(士夫)는 넌지시 수심이 이네
6. 經筵每被催三接(경연매피최삼접) 글 자리에서 자꾸만 재촉 받으니
7. 睾負亭前月滿舟(고부정전월만주) 고부정 앞 달이 배에 가득하더라
岳陽洞天(악양동천)-유호인
★ 상기는 최참판댁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쓴 글, 아래는 인터넷 자료 ★
최참판댁은 소설 『토지』 속의 가상공간을 현실화 한 경우로, 주변의 고소산과 악양 들판, 그리고 유려한 섬진강이 어우러져 주변경관 또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하동의 지역 명소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1999년 12월 건립 공사에 착공했으며, 2년 뒤인 2001년 2월 총 부지 면적 9,529㎡, 건축 면적 508.48㎡로 준공하였다.
주 건축물로는 최서희의 조모 윤씨 부인의 생활공간인 안채, 최서희의 공간인 별당채, 최치수의 사랑채를 비롯하여, 문간채, 행랑채, 중문채, 사당, 초당, 사주문, 뒷채 등 10개 동으로 되어 있으며, 건물 내에는 별당채 입구의 우물과 별당채 경내 작은 연못과 수목들도 여러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외에도 읍내 장터와 화장실, 용이네와 강청댁, 물레방아 등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으로 사용된 시설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