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팔공산에 있는 갓바위를 갔다. 등산길에 잠시 들러 머물렀지만 갓바위 부처님 얼굴은 참으로 자비로웠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에 가면 꼭 합장을 한다. 이 세상에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마음 때문이다.
흔히 쓰는 자비롭다는 자비(慈悲)에서 출발한다. 불교 용어로 한정을 하면 종교적이 되겠으나 나는 이 단어를 대중적이라 생각한다.
사랑 자(慈), 슬플 비(悲)가 들어가 자비롭다는 완성되는데 이 자비로운 단어에 슬플 비가 들어가면서 더욱 완성도가 높아진 셈이다.
결국 이 단어는 측은지심이라는 사자성어와도 연결이 된다. 종교를 떠나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에서 자비는 시작되는 것이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은 <약사여래불>이다. 약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병든 육체뿐 아니라 때론 마음도 치료가 필요하다.
내가 불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맞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약(藥)자가 들어 있기에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병든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빌고 싶은 마음은 갖고 있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이렇게 비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쪽을 골라서 찍었지만 수능을 앞둔 시점이라 어깨가 닿을 정도로 엄청 붐볐다.
소원이든 감사의 기도든 각자 비는 사연들이야 있겠지만 뒷모습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나도 한때는 간절하게 빈 적이 있다. 10년 전 아내가 몹쓸 병에 걸렸을 때 제발 살려 달라고 빌고 빌었다.
내가 영국에 살 때인데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 교회가 각 동네마다 있고 항상 열려 있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통곡을 했는데 어느 영국인 노부부가 다가 와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들은 내게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다.
번갈아 가며 내 등을 쓰다듬더니 내가 울음을 그치자 할머니가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이심전심으로 슬픔을 나눈 것이었을까.
그때도 서로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나의 기도는 제발 살려 달라는 소원에서 제발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는 것으로 바꼈다. 이왕 고칠 수 없다면 시한부라도 조금 늘려 달라는 간절함이었다.
내 바램을 저버리고 아내는 먼 길을 떠났고 나만 살아 남아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다.
갓바위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길이었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이렇게 쉴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이곳에 도착했는데 한 할아버지가 의자에서 쉬고 있었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이분 때문이다.
함께 갔던 대구 친구가 그 어른한테 올라 가는 길이냐며 인사를 건넸고 할아버지는 내려 오는 중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어색함이 사라지자 경상도 말로 대화를 주고 받았고 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 갓바위에 올랐다가 내려 가면서 힘이 부쳐 이곳에서 쉬고 있던 중이었다.
당신의 나이 81세, 그 노구를 끌고 지팡이 의지해서 갓바위에 올라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두 살 적은 아내가 병이 들어 치료와 요양을 번갈아서 한다고 했다.
너무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수술은 못하고 요양으로 버티고 있단다. 남편은 천금을 들여서라도 낫게만 해준다면 뭐든 다 하고 싶다고 했다.
이 가파른 계단길을 힘겹게 올라 부처님 앞에 간절하게 빌었을 어른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 것인가.
절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무릎이 성하지 않으면 엎드려 하는 절도 대단히 힘들다.
지팡이를 짚는 이 어른은 큰절은 못하고 합장한 채 허리를 굽히는 기도를 했을 것이다. 하긴 비는 마음이 중요하지 기도의 방식이 뭐 중요하겠는가.
병든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라면서 눈가에 습기가 도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남편은 젊어서 아내 속을 무지 썩혔나 보다.
비는 마음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조심 조심 계단길을 내려 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다가 내 친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님예, 지도 올라 가서 갓바위 부처님께 빌겠십더. 힘 내시소."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 보더니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비심이 가득한 순한 얼굴이었다. 산 아래에서도 자비로운 부처가 보였다.
첫댓글 간절한 기도는 들어 주시는데
그래도 안 들어 주시면
원망하는 마음이
들까바서
기도도 못 하고요
그냥 저냥 ~
반갑습니다. 기도는 내마음의 간절한 소망을 기도하는것이고 바라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을때도 내마음의 부족이라고 생가하면 편안할것같습니다.ㅎㅎ
리야님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안 들어준들 어쩌겠는지요.
서운함도 잠시,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원망을 비우기 위해 다시 기도할 수밖에요.
제 아내는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니는데 누군가를 위해 빌기도 하겠지만 다녀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해진답니다. 결국엔 자신을 위해 기도한 셈이지요.
리야님의 평온한 날을 빕니다.
아이들 고딩때
1주일에 한번씩 갓바위에 올랐지요
몇번 따라온 아들녀석이
"엄마
알아서 공부할테니 이러지 마세요?"
하더라구요
부담스럽다고ᆢ
그래도. 나는 쉬지않고 다녔답니다
명절엔 잠도 안 자고 갔었지요
엄마의 정성이 닿았는지
애들은 저들이 원하는 자리에서 다들 한 몫들을 하는 이제 의엿한 사회인이 되었지요
나는
아들 둘 결혼시키고는
이제는 내 영혼의 자유로움으로 살고있답니다~^^♡
ㅎ 하경님~~
저도 간절하게 기도를 해본 적이 있기에 하경님의 그 마음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 친구 말로는 갓바위가 기도발이 있다던데 정말 그러나 봅니다.
하경님의 귀한 자녀 분들 또한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았다니 소원이 통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을 빌려 오지 않더라도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에서 출발하는 거라 생각하네요.
하경님, 그동안 애 많이 쓰셨으니 이제 마음 놓고 인생 후반전을 즐길 일만 남았습니다.ㅎ
왜 글를 읽는데 눈물이 날까
간절한 기도를 해봤기에 ㅡㅡ
그 간절했던 때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내 기억 속에는 얼마전 일인양 더욱 또렸이 ㅡ
이런 기억들은 버려야 하는데 ㅡ
그 할부지도 지은 죄가 많아서 그 힘든. 기도를 하지 싶네요.
여전히 소녀 감성인 마야님이십니다.
눈물이 마음을 정화시켜서 감정을 촉촉하게 만들기도 하니 가끔 흘리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울고 싶을 때 우는 것만큼 솔직한 감정도 없습니다.
그날 계단길 내려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애처로웠지만 얼굴 가득 짓던 미소가 순해서 한편 마음이 놓였습니다.
많은 것을 이쁘게 보는 마야 누이의 아름다운 마음도 가을꽃처럼 곱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기도하러 팔공산 갓바위 를
간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글 읽으면서 눈물이 또르륵 .....
마력을 가지고 계신듯
유현덕 님의글 처음으로 봅니다.
님의글 관심으로 ... 등록합니다
카페에 유일하게 관심등록.. ㅎ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다빈님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에 공감을 하셨다면 제 글보다는 그만큼 님의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일 겁니다. 흔히 이런 것을 공감능력이라고 한다지요.
제 글에 관심 주신다는 말씀에 부담감이 생기긴 하지만 저의 못난 글쓰기는 초지일관일 겁니다. 해가 짧아져서 여섯 시 넘자 벌써 깜깜한 주말 밤이네요.
님도 즐거운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ㅎ
내 생애
간절한 기도를 두번 했었답니다
한번은 남편 때문에
한번은 큰아들 때문에.....
암튼~ 절실한 기도 2번 해봤습니다
아하~ 리디아님의 그 간절한 기도를 이해합니다. 제가 죄를 많이 지은 전과자라서 이런 것은 빨리 이해하지요.ㅎ
기도한다고 모든 것이 다 바라는 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리디아님이 기도하던 마음 만큼은 가장 순수한 영혼이었을 겁니다.
평화로운 주말 되셨으면 합니다.
그리운 팔공산
가슴이 찡합니다
오르내리든 갓바위 팔공산 동봉
드라이브길~
애정했던 곳이었는데
멀어져만 가는 대구입니다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설로
수능전뿐아니라
간절히 두손모으는 분들 많아요
저도 한번 가고 싶네요
ㅎ 반가운 정아님,,
이번에 팔공산에 갔다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대구였으나 산에서 본 대구가 더욱 좋아졌답니다. 내려 오니 투박한 사투리도 정겹고 음식도 맛나고 그랬네요.
케이블카로 올라 가서 보는 팔공산 풍경도 다들 멋지다고 하데요. 갓바위 부처님을 찾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그곳이 유명한 곳이긴 하나 봅니다.
갓바위 부처님은 항상 그 자리에 계신다네요. 훗날 나들이 삼아 쉬엄쉬엄 가면 팔공산이 반겨줄 거네요.ㅎ
무엇을 믿고 의지해 살던 간에 기도는
나를 위해 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명하려 합니다
그래서 자식이 아프더라도
내가 아프더라도
자식이 곤란한 지경에 처했더라도
내가 어려움에 처했더라도
제 기도는 주님 뜻대로 하소서 입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기도를 부탁해오면
진심을 다해 기도 합니다
주님 자비를 자비를 베푸소서
꼭 낫게 해주시고
소망을 이루게 해주소서 라고
나를 위해서건 자식을 위해서건
남을 위해서 하던지 어쨌든
나의 정성을 바쳐 기도를 한다는 것은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사람의 모습은 다 달라도
기도하는 진지한 모습은
하나같이 경건하신 착한 모습입니다
운선님 댓글에서 자비로운 기도의 품격과 진면목을 봅니다. 기도의 정석이라고 할까요.ㅎ
아쉬울 때만 기도를 했던 저와 달리 지금의 제 아내는 감사의 기도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저는 무엇을 비느냐고 묻지 않지만 기도하는 그 마음만은 운선님 말씀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타인을 위해 기도한 것보다 나를 위한 기도였기에 부끄럽기도 하네요. 앞으로 가능한 모두를 위해 기도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막바지 가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남편이 중환자 임을 알게 되던날
인덕원 부근의 어느 성당에 가서 대성통곡을 하였지요
꽃꽂이를 하던 자매님 두분이
보다못해 안아 주셨고
제가 우는소리에 수녀님도 오셔서 안아준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 기도는
남편을 살려주세요 였는데
이후의 제 기도는
제발 많이 아프지 않고 가게 해주라는 기도 였는데
3개월뒤 많이 아프지 않고 가셨답니다
댓글 읽자 제 코끝이 찡..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이젤님이시네요.
제가 기도를 하다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통곡을 어쩔 수 없었듯이 이젤님도 그랬을 것으로 보이네요.
저는 이젤님과 달리 어리석게도 통증에 시달리는 아내의 고통보다 제 옆에 좀더 있어 주기만을 바랬답니다.
이젤님 남편분이 많이 아프지 않고 가셨다니 편안히 영면하시길 빕니다. 고운 밤 되세요.
자비로우신 유현덕님ㅎㅎ
대구 다녀가셨군요.
팔공산 갓바위는 이 지역에서 유명하죠.
저도 여러번 다녀왔는데 사진을보니 여전 하네요.
소원을 빌어 들어 줄것 같으면야~~
하고 속없는 생각을 해 보지만
비는 사람의 정성이고 염원이 아닐까 합니다.
행복한 가을 되시길요.
커쇼님 반가워요.ㅎ
제가 이번에 팔공산 갔다가 완전 대구에 푹 빠졌다 나왔답니다. 작년에도 갔고 가끔 가는 대구지만 이번처럼 좋기는 처음이랍니다.
커쇼님도 갓바위를 여러 번 갔던 모양이군요. 그 부처님은 늙지도 않고 항상 자비로운 모습 그대로입니다.
무조건 이뤄질 거라고 비는 것보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기도이기도 하지 싶습니다. 어쨌거나 비는 사람의 마음이 순하고 아름다운 것은 분명하지요.
매사에 열심인 커쇼님두요.ㅎ
"산아래에서도 자비로운 부처가 보였다〟
참으로 멈칫 쳐다보고 있는 활자와 활자의
어휘 요리사다운 글맛과 데커레이션 글멋을
독자의 감상하는 입맛을 돋구아 주는 유현덕님의
필력(筆力)에 고개 끄덕여 보며 부러운 눈빛을 보내 봅니다.
참으로 물흐르듯 독자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네요.
얼릉 2번째 추천(推薦) 올려 드립니다., ^&^
ㅎ 삼족오님,,
부족한 글에 과찬을 하셔서 조금 민망하지만 좋게 읽어 주셨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민망함을 지워보렵니다.
막힐 때는 며칠 씩 한 줄도 못 쓰다가도 꽂히는 한 장면을 계기로 글꼬리가 술술 풀리기도 하네요. 며칠 전에 봤던 그 어른의 아내를 향한 마음이 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삼족오님의 응원 고맙습니다.ㅎ
네 저도 아들이 군대 가서~~
안전하게 돌아 오도록 빕니다.
자연이다님, 군대가 때론 학교처럼 인생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드님이 무사히 제대하기를 빌겠습니다.
어라...
앞사람 힢앞에 대고 절을 하는가 봅니다....농담입니다
정성을 들이면 이루어 진다고 하지요
절을 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넉넉한 공간 배치가 어려울 때도 있겠지요. 백팔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복해서 하는 절도 일종의 수행입니다.
빌고 싶은 간절함이 그 높은 곳까지 오르게 하는 힘이었을 겁니다. 평온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저의 모친께서 제가 한창 공부하던 중고 시절에
늘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제발 우리 아들 잘 되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곤 하셨습니다만
제가 미거하여 오늘 날 이 모양 이꼴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살면서 잘 된 거가 전혀 없진 않습니다.
한 아내와 오래토록 함께 하는 거
아들 딸 낳아 결혼 시킨 거,
마~! 그런 정도입니다.
정한수는 예전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 곡즉전님을 위해 빌었던 어머니 마음이 바로 맑은 정한수이기도 했을 겁니다.
장독대 정한수뿐 아니라 예전에 비는 방식은 여러가지였었지요. 마을마다 당집이나 서낭당도 있었고 오고가는 사람들이 소원 빌며 돌 하나 올려 놓고 간 것이 돌탑이 되기도 했다지요.
곡즉전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난 번에 눈이 안 좋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한데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일요 등산 마치고 집에 와 이제야 답글 다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