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관광호텔 커피숍 2시반에 만납시다.-
인터넷에서 만난 지인의 문자를 재삼 확인한 후 우리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순창에서 담양을 거쳐 복잡한 광주시로 들어서다 어머님 입원문제로 한번 들렀던 조선대학교 대학병원 뒷편 한적한 산 아래에 자리한 무등산파크호텔 앞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우리들은 아직 시간이 충분한 관계로 부근에 있는 원효사까지 가보기로 하고 삼림이 울창한 한적한 시골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산길을 천천히 가는데,
"야, 내가 학창시절에 목포에서 올라와 친구들하고 같이 무등산에 올랐던 일이 생각나네. 바로 이 길이지. 지금은 네비를 통해 무등산에 오르려면 화순 쪽으로 안내하더라고..."
옆자리 친구는 옛 친구를 만난듯 감개가 무량한지 미소를 띄우며 추억에 잠겨 길안내를 한다. 평일이라 고즈녁하고 한가한 산길.
날씨도 맑고 화창하여 원효사 앞 주차장 한켠에 차를 세워놓고 우리는 원효사를 구경할 생각은 않고 베낭을 새로 꾸리는 등 흩으러진 짐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각종 장비와 쓰레기로 넘치는 차 안도 깨끗이 치우니 기분까지 상쾌하다.
만년설을 밟은 것 같은 장기산행과 긴 여정을 말끔히 정리한 원효사 앞 주차장엔 봄을 알리는 따사로운 햇볕이 만연하다.
적당한 시간에 차를 몰고 무등산파크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인터넷을 통한 맞선(?)을 보는 특별한 자리인지라 입고 부산친구가 애용하는 것과 비슷한 멋진 카우보이모자를 비껴쓰고 친구와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로비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5인승 하드탑 클래식카인 엑스칼리버가 주단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안내문을 살펴보니 47만대가 생산되어 세계의 여러 특급호텔에 전시되어 결혼식이나 골프장 행사 등 각종 퍼레이드에 사용되고 있단다.
호화로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텅 빈 커피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네히트(네팔 히말라야 트레킹)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지인의 전화통화 소갯말이 생각난다.
"광주에서 회사에 다니는 저는 두살 아래입니다. 소개해 드릴 분은 선배님보다 두살 위인 한국여성상을 지닌 분이며, 딸 하나를 둔 사별녀입니다. 선배님도 사별했다고 하십시오...."
과연 어떤 여자가 나타날 것인가?
이 나이에 이런 자리를 택하게 된 내 처지가 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에 따라 누구나 겪을 수 없는 새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었다.
초로에 이르러 세계베낭여행을 하기로 작정한 내가 온라인 상에다 구혼으로 단 조건은 아래와 같다.
1.해외여행에 도움되는 기초영어 가능한 건강하고 지혜로운 분
2.여행, 등산, 사진(예술), 독서(학문)를 좋아하고 세계여행이 꿈인 분/예수교인 사절
3.고운 손톱에 흙이나 가축똥이 들어가도 오히려 삶에 감사하며 즐길 줄 아는 전원생활 희망분
4.후손이 없어도 변함없이 서로 사랑받고 사랑하며, 남편이 늙고 병들어 누워있을 때도 바보같은 남편만을 바라보고 사는 바보같고 착한 지조있는 분
쓰라린 경험을 해 봤기에 이제는 돈을 안밝히고 세대차이가 없는 마음 편한 상대면 족하다 여긴다.
잠시 후 친구또래의 한 중년이 안경을 쓴 맏며느감 여성과 함께 들어와 살피더니 악수를 청하며 친구에게 인사를 한다.
모야? 일부러 멋을 부린 내가 그렇게 못생겨 보였남??? (티격태격하던 내 친구, 나에게 한방 먹여줘 속으로 통쾌하게 여겼을 듯..ㅋㄷㅋㄷ)
서로 인사하며 명함까지 주고받은 우리는 커피를 시켰다. 구세대답게 그 흔한 아메리카노! ㅋㅋ
"죄송하지만 여기서 확인하고 싶은데요... 제 첫 인상은 혹시 좀 쌀쌀맞아 보이지 않나요...?"
그녀가 묻자 나는 말문이 막혔지만 대답은 해야 했기에 느낌대로 말했다.
"맏며느리감처럼 당차고 후덕하게 보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자 두사람은 좋은 시간을 가지라며 밖으로 나간다.
사별한지 오래 됐다는 거짓말을 하라고 했지만, 사별 반 이혼 반이라는 모호한 소개 외에 가난뱅이 무자식 등 사실적인 내 말을 듣고 부담없이 자기소개를 한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전언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는 의외로 농사와는 거리가 먼 서울 출신인데다, 광주부자를 만나 이혼한지 20년 됐는데 딸은 결혼했고, 아들은 미혼이며, 전남편은 살아 있으며, 돈이 필요해진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근무 중이란다. 결론인즉, 내가 원하는 그런 상대가 아니었다.
마주보며 마음 편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지 한 30분 지났을까?
밖에 나간 친구들이 들어와 웃으며 좋은 시간들 됐냐고 묻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육중한 SUV차량을 몰고온 그녀의 모습이 숲길로 사라지자 온라인 지인이 웃으며 나에게 묻는다.
"어때요, 맘에는 드십니까?"
"글쎄요... 맘에는 듭니다만, 요즘은 여자들 세상이라 선택권은 여자들에게 있지요. 하하하~"
"하하하~ 좋습니다. 닭 대신 꿩도 있고, 꿩 대신 봉황도 있으니 서두르지 마시고 맘을 넉넉하게 가지세요."
참 멋진 친구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내가 귀촌해서 고향에 살게 되면 자주 만나 술친구로 해야겠다.
그들과 헤어진 후 우리는 귀경방향 가까운 곳에 사시는 친구의 작은형님 댁으로 향했다.
마트에서 선물을 사들고 온 친구는 3층에 있는 아파트 몇호인지 깜박했다며 조심스레 벨을 누르더니 이내 화색을 띠며 안으로 들어간다.
듣기에도 정감있는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의 70대 형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영낙없는 고향의 이웃집 아짐씨다.
기다리며 음식준비를 했다며 산해진미를 내 오시는데... 오랫동안 독신생활을 해오던 내 입님과 뱃님이 진수성찬을 보고 환호성을 지른다.
멸치젓이 들어간 맛깔스런 해남김치에다 쇠고기국, 갈비찜, 갈치찜, 굴요리, 젓갈, 잡채, 고사리나물, 구운 김 등등..... 눈치 안보고 모처럼 포식을 했다.
식사 후 한참 지나 70대 후반인 작은형님이 오시자 분위기는 엎되어 더욱 화기애애해 진다. 만난지 2년이 지났다지만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좀 눕고 싶다니 형수님이 막내방에다 이불을 깔아 주시면서 편히 쉬라신다.
장기간의 산행에 장시간의 운전에 피곤한지라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자 잠을 청해보는데, 가만히 듣자니 작은형님은 칠순노령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까지 높여 박근혜 탄핵문제로 시끄러운 정치판에 대해 열띤 성토를 하신다.
역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피해와 소외를 당해왔기에 형성된 전라도 사람 특유의 기질이라면 과한 것일까...?
작은형님 댁에서 나온 우리는 드디어 귀경장도에 나섰다.
마누라와 차는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이, 이제까지 보여준 미덥지 않은 모습 때문에 친구가 소나타 운전을 원해도 핸들을 주지 않고 나는 끝까지 버티며 서울까지 혼자서 운전을 했다. 명절 연휴가 이틀 지난 고속도로는 평일처럼 막힘없다.
특별히 할 말도 없어 심심해선지 친구가 다시방을 뒤지더니 CD를 꺼내 음악을 튼다. 아내가 운전하며 친구들과 함께 들었을 중국노래도 들어 있는 MP3 복사판이다.
"참 좋은 음악이군. 알고보니 젊고 예쁜 자네 와이프는 센티멘탈한 면도 있었구만. 내 집사람은 그런 감정도 없이 오직 돈만 밝히고 살았어."
하며 소지하고 싶다며 복사를 해 달란다.
"내가 가난한 탓에 돈을 밝혀서 그렇지 착하고 예쁘긴 했지......"
돌아보니, 비록 삶의 방향과 인생관은 서로 맞지가 않았지만, 티격태격하면서도 10여년 동안 우리들은 나름대로 소중한 이야기거리들을 많이 남겼다.
산으로 들로, 설악산으로 백두산으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머나먼 미국 서부까지... 함께 손잡고 세계여행하는 꿈을 꾸는 내 여자를 만들려고 나는 그동안 참 많은 노력을 했었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못난 남편을 저버려서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넉넉한 돈을 만지다 죽고 싶어 하는 대견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조선족 여자...
법원에 이혼을 신청한 후 세상이 하두 원망스러워 12일 전에 인터넷을 통해 아차산 아래서 단 둘이 만난... 두 아들을 둔 사별한 여자는 문학적인데다 단아하고 지성미가 있는 내가 원하던 그런 참하고 고운 불교를 믿는 경상도 울진 백암 여자였는데... 자식들과 집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째서 그녀는 이 좋은 백세시대에 남은 인생을 과부로만 살다 죽으려 하는지....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몰려오는 피로감을 참아가며 맹추위에 잠긴 서울에 겨우 도착한 시각은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밤 11시.
온도계를 보니 -4도다.
친구를 보내고 썰렁한 집에 돌아온 나는 5박 6일간의 힘든 여정이 든 장비를 차에 둔 채 씻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나가 떨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