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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89
1984년에 복구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치욕의 역사의 본보기로 놔 두자는 의견 들에 부딪혀 복원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8년부터 대규모의 복원 사업으로 원명원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강탈 당 한 보물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겠지요.
서양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박물관 관람을 하고 나서 감탄을 하는 그 수많은 관광객들, 그들이 본 것 은 그 나라의 문화유산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에서 갈취하고 강탈하고 약탈한 문화재들의 집합소에 다름 아닙니다.
일본의 박물관과 신궁을 채우고 있는 그 많은 보물들과 문화재들은 바로 우리의 문화 유산들인 것처럼요. 이 와중에 청 황제는 여름 별장으로 피난을 갔고 그의 형제 중의 한 명인 공친왕이 남아 협상 에 임했습니다. 결국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로 인해 청은 그 실체를 만방에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중국을 비롯한 동양 은,신비와 불가사의한 정신 세계와 고도 의 심오한 철학이 있는 곳이라고 서양은 인정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베이징 조약으로 인해 텐진 조약을 전면 수용하게 되었고 아편도 중국 어디서든지 판매가 가능하게 되었지요.
한 마디로 완전 벌거벗은채 사람들 앞에 세워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외국의 어 느 공사관이든지 베이징에 들어올 수 있었고 따라서 조차지는 무한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1,2차 아편전쟁을 통해서 중국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양면을 지니고 있으니, 강제로 열렸으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눈을 슬며시 뜨고 둔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상해는 세계 적인 대도시가 되기 위한 걸음을 걷기 시작했고, 중국의 해안 유역은 서양의 근대적인 건물과 기반 시설이 들어서서 얼핏 발전해 나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당한 치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원래 중국 대륙에서의 외국인은 여행이 엄격 하게 금지되어 있었는데,패전 이후 텐진 을 비롯한 모든 여행이 자유로워 졌습니 다. 11개의 항구가 개항되고 기독교의 전도 활동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양쯔강을 비롯해서 개항 항구에 서양의 군함들이 머물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서 너무나 가난했던 중국의 수 억 의 빈민들이 외국으로 노동 이민을 갈 수 있게 된 겁니다. 화교의 시작이지요. 쿠리라는 이름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으 면서 서양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노예와 다름없 는 이 노동 이민이 화교의 1세대입니다. 그들은 항구에서의 고된 노동은 물론이 요 험악한 산맥에서 철로를 놓았고,서양 인들의 손발을 대신해서 온갖 일을 다 했습니다.
티타임에 한 쌍의 쿠리를 구경시키는 것이 유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담하고 예쁘게 생긴 여자 쿠리에게 차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영국이나 프랑스 의 상류층 가정에서 유행이 되었는데, 중국 전통옷을 입혀 마치 인형처럼 꾸며 서 중국 전통차를 따르게 했다지요.
남자 쿠리는 과자 그릇을 들고 나오게 하는 등 ,흑인 하인과 함께 중국 쿠리는
상류층의 중요한 수집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 2차 아편전쟁의 패배는 단순 하게 청나라,중국의 패전이 아니라,아시 아의 중화사상의 근간을 뒤흔든 충격이 었습니다. 신비로운 정신을 품고 있는 동양의 어두운 단면이 적나라하게 서양 에 찢어 발겨진 것입니다.
청 조정의 양무운동은 격화되었으나, 이미 허물어진 모든 것을 밟고 서양의 문물이 무섭게 쏟아져 들어왔습 니다.
영국은 절대 신사의 나라가 아니었고, 아편으로 인해 전쟁을 일으킨 비난을 받았으나 엄청난 이득을 얻었으며 무엇 보다 홍콩을 백 년 동안 조차하게 되어 환호성을 올릴 수 밖에요.
이렇게 전쟁은 끝났으나 두 번의 아편 전쟁으로 인해 청나라는 그 왕조의 멸망이 앞당겨지게 되었고 식민지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배 운 왜국은 조선을 그대로 침략했고 조선은 청나라와 같은 멸망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서양열강은 동양의 구석 구석을 헤집어 잔혹하게 뒤집어 놓기 시작했고, 그것을 지금도 뉘우치지 않습 니다. 유럽의 문명이 제일이고 가장 세련되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는 사람들, 나는 글쎄올시다... 인류사의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양면을 지니고있음을 우리는 잊지말아야 합니다.
차 한 잔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고 다음 회는 아편전쟁과는 다른, 유명한 차의 전쟁이야기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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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음편,기대가 됩니다.
차이야기 그럴든 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