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지 날은 밝았다.
우리는 아침을 서둘러 먹었다. 아침 이르게 경비행기 편으로 울란바타르로 돌아가야 한단다.
전날 저녁, 양고기가 나왔으나 나는 한 점도 먹을 수가 없었다. 냄새 조차 역겨워서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는 가방에 남아있던 구이김을 몽땅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몽골 사람들은 구이 김을 좋아할까?'
문득 든 생각이었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할 사람들. 핑게 좋구나, 하며 그들 식탁에 구이김을 한 웅큼 가져다 주었다. 그것도 자알 후우가 집어들기 가까운 자리에.(날 욕하지 마. 사랑에 빠지면 다 그렇게 되는 법이야)
'사막을 두고 떠난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 것인가.
떠난다고 생각하니 모래알 한개도 애틋하기 짝이 없다. 하늘 한짝도 서늘하였다.
'뼈다구들은 어쩌냐? 도마뱀은 또 어쩌냐? 사막쥐는, 늑대에게 물려가다 간신히 살아나온 뒷다리 살이 벌겋게 벗겨진 염소는, 애교덩어리 털복숭이 양은 또 어쩌냐? 제대로 올려다 보지 못한 별은, 또 남보라빛 작은 들꽃은 어쩌냐? .....아아, 자알 후는 또 어쩌냐?'
나는 못 간다, 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딸들은 누굴 의지하고 살아 가나. 카페는 또 누가 접수하게 될까. 자작은 또 어쩌나. 신문에서는 까십거리로 실리겠지.
<대한민국의 대 아동문학가 대 이상교가 몽골 여행 중 실종. 동행한 이들의 말을 빌자면 승합차 기사인 50대 초반의 거무틔틔한 사나이와 눈이 맞아 애정 도피를 한 듯... 믿을 것 없는 세상이라더니...불쌍한 건 자작나무와...>
어쨌든지
여차저차
사흘 전 경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처럼 착륙장의 꽃 빛깔은 유난히도 또렷하고 맑았다. 하늘은 흐리더니 오락가락 비. 탑승하기 위한 절차가 밟아지는 동안, 구내 매점에 들러 남고비 사막을 소개하는 작은 책자를 15달러나 주고 샀다. (팁은 아깝지 않았는데 책 사는 돈은 아깝더라)
'자알 후 일행은 돌아가고 만 것일까?'
간간이 둘러보아 확인해가면서 떠돌기 한 시간 여, 울란바타르를 떠나 온 경비행기가 여행객들을 내려놓았다.(자알 후 일행은 새로운 여행객들의 가이더와 교섭, 일거리를 잡는 것 같았다)
표를 나눠 받고 탑승줄에 서고... 나는 일행 가운데 맨 뒤에 섰다. 일행은 세 승합차 기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고마운 인삿말을 주고 받았다.
내 차례다.
"미스터, 자알 후, 쌩큐 베리 머취!"
이 일을 어쩌나, 악수를 나누면서도 그이의 얼굴을 바로 바라볼 엄두는 낼 수 없었다.
잠깐, 등에 배낭을 옆에 있었던 계수나무님에게 맡겨놓고 푸른 빛 줄이 세로로 쳐진, 짐짓 겉에 다시 겹쳐 입고 있었던 남방을 벗어 그에게 건넸으니.
"마이 프레젠트!"
그는 약간 멋적기도 하고 수줍어도 하는 표정으로 남방을 받아 팔에 들었다.
'바이!'
다시 배낭을 받아 등에 메고 경비행기를 향해 걸어가는 내 발걸음은 그리도 허전했으니.
'내 마음의 껍데기를 그대에게 벗어놓고 떠나노니.'
경비행기를 타고 울란바타르를 향하는 동안 하늘은 올 때처럼 맑고 명쾌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구름 그림자가 코끼리라든지 공작새로 보이지 않았고 기분은 울울, 잠에나 곯아떨어졌다.
'아름다이 살아있는 사막! 자알 후우는 또 하나의 야성이 살아있는 소박한 한편 거친 다른 한 아름다운 사막이었으니, 우리 언제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인가? 영원하라, 내 가억 속의 사막이여!'
자알 후. 그는 사막이었다.
경비행기에서 자리르 찾아 앉아 감은 눈 속으로 눈물이 고였다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마치 사막에 내린 빗물이 마른 모래에 스며들듯.
(끝)
후기 - 체첵에게 사진들과 작은 선물을 전할 겸, 적어온 메일 주소에 글을 보냈으나 답글이 없다. 그녀에게 모든 여행객은 그저 단순한 여행객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어른답지 않고 덜 진지하게 보인 것이 아니었는지 돌이키게 된다. 그건 아니었는데.... 나는 이따금 싱겁게 굴어(쓸쓸할 때면)점수를 잃곤 한다. 만난 것은 헤어지게 마련이고 모인 것은 흩어지게 마련이라지만, 그리하여 잠깐 동안의 만남이 더 살가운 것 아닌지. 사막에서 보냈던 밤처럼 나는 또 잠이 아니 온다.
첫댓글 색다른, 진짜 여행이었던 같다. 좋은 구경 하고...마지막 선물이 아름답다.. 역시 이상교!!!
짝짝짝
고마우, 언니./ 같이 갔던 일행과 본 카페 계수나무님께 감사!
참 좋은 여행하셨나봐여, 읽기만 하는 저도 행복해져요. 두고온 것은 혹 알,맹,이, ?
알맹이를 두고 오면 클 나죠. 두고 온 건 껍데긴데, 자알 후에게 갔어요. 샘이 밤마다 까 주시던 앰플 영양제도 고비와 함께 잊지 못할 것임다.
아녀~ 껍데기여. 껍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