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6시 안양에서 한 분과 합류하고, 7시쯤 안성에서 또 한 분과 합류했다. 무전기를 대여하기 9시쯤 전주 시내로 들어갔다. 무전기를 대여하고 테스트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서둘러 남원을 거쳐 구례 천운사를 지나쳐 시암재 쉼터를 오르니 이미 11시가 되었다.
지리산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수경스님, 문규현 신부를 찾았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하여 오체투지를 시작한지 3일째였다.
법불교도대회가 있었던 지난달 8월 27일, 수경스님은 현 정부의 오만함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오체투지’를 선언했다. 오체투지를 통해 낮아질 대로 낮아져 생명, 평화, 사람의 길을 찾아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문규현 신부와 함께 하겠다고 선언한 수경스님은 9월 4일 오체투지의 첫발을 내디뎠다.
(오전 오체투지를 마치고 쉬고 있는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11시 오전 오체투지를 막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신 두 분을 만났다. 잠을 잘 수 있도록 개조해 바닥을 만들어 놓은 25인승 버스에서 만난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지친 몸을 누이고 있었다. 바닥이 차가웠다. 오전에 많은 비가 내려 온 몸이 젖고 힘든 오전을 보냈다. 반가히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인사를 나눈 후, ‘오늘은 더 힘들다’고 첫 운을 떼셨다. 왜 힘들지 않을까, 마음이 착찹해졌다. 두 분은 이렇게 어려운 길을 나선 이유를 현 정부가 생명과 평화, 그리고 사람의 길을 옳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그 길을 계속 걷겠다고 스스로 힘든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오전에 오던 비가 그치려나 했더니 다시 시작될 시간인 1시 30분경에는 상당히 많은 비가 내렸다. 다행히 2시경에는 빗줄기가 잦아졌지만, 왔다갔다하는 비로 인해 쉽지 않은 오후를 보내야 했다.
오후 2시, 시암재 쉼터에서 150m 윗지점으로 다시 올라가 오체투지가 시작되었다. 왕복 2차선에 경사가 심하고 굽은 도로가 많아서 지난 이틀간은 상당히 위험했었단다. 오후부터는 위 아래쪽에서 두 사람이 무전기로 차량 통제를 할 수 있어서 위험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약 100여 미터를 오체투지로 이동하고 10여분을 쉬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인지 한 번 오체투지를 할 때마다 두 분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난다.
오체투지에 동행하며 하루 찍은 그림들이다.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 세 걸음을 걷고 머리까지 온 몸을 땅에 밀착하며 이동하는 것이 오체투지이다. 한 번의 동작만으로도 상당히 힘이 든다.
토요일 비로 인해 지리산에 운무가 가득하다. 드라이브 하기 참 좋은 날이다. 이런 날 두 분은 사진 사이 사이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저 길을 오체투지로 한 걸음씩 내려가는 것이다.
오체투지단 아래로 보이는 지리산 자락의 운무가 환상이다. 아름다움과 고통이 어우러져 있다.
지난 삼보일배의 후유증으로 무릎이 성치 않는 수경스님은 일어설 때, 거의 두 팔만을 의지한다. 내리막길이라서 일어서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 두 팔로만 지탱하며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아프다.
100여미터 이동하면 10여분을 쉰다. 잠시 쉬는 시간에는 지친 몸에 한기가 올라온다. 물 한 컵과 담요를 의지하고 잠시의 쉼을 가지면 또 오체투지를 시작한다. 잠시의 쉼이 달콤할까, 아니면 두려울까 생각해 보니, 나 였다면 두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60을 훌쩍 넘어버린 두 분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한다.
다시 시작되는 오체투지, 걸음 하나에 생명, 두 번째 걸음에 평화, 마지막 걸음에 사람을 걷고, 온 몸으로 땅을 디디며 기도한다. 이렇게 한 걸음씩 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는 생명을 이해하고, 누군가는 평화를 노래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 모든 사람이 동참하게 될 것라는 소망을 기도에 담는다.
오락가락하는 비로 인해 온 몸이 젖어있다. 오전에도 쏟아지는 비로 힘들었는데, 이미 비로 인해 젖은 몸은 차갑고 더 많은 고통을 불러온다. 너무 힘든 다리를 동행자들이 주물러주고 있다. 온 몸이 이렇게 젖어도 일정은 그대로 진행된다. 옷도 갈아입을 수 없다. 날씨라도 좋아야 할텐데, 라는 생각이 머리에 계속 남는다.
하루 구간 순례자로 동행한 젊은 부부의 아이, 차 지나가는 소리를 따라 돌린 눈망울이 초롱하다. 이 아이에게 물려줄 좋은 미래를 위해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두 분도 순례의 걸음을 걷는 것일 게다.
두 분의 옷이 완전히 젖어 있다. 하지만 피로가 가득한 얼굴에도 단단한 결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후 5시 6일 오체투지 일정이 끝났다. 마지막 순서는 순례자 전체가 함께 맞절로 끝을 낸다. 서로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일요일에는 일정이 없다. 문규현 신부님의 미사집전을 위해 일요일은 일정을 없앴다.
오체투지를 하는 두 분의 동영상이다. 몰아쉬는 두 분의 숨과 짧은 신음들이 그 고통을 알게 한다.
이 분들이 걸었던 길은 오르막을 걷자면 그냥 걷기도 어려운 길이다. 그 길을 오체투지로 내려오려면 고통이 만만치 않다. 온 몸을 대기 위해 몸을 숙일 때도 조금만 힘이 빠지면 그대로 땅에 충돌해 버린다. 일어설 때도 몸을 뒤틀지 않고 일서서기 때문에 엄청난 힘을 필요로한다. 경사가 심할수록 쉽게 지치고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군데군데 1단 기어 사용을 권장하는 표지판과 브레이크 파열로 인한 사고 사진들이 붙어 있다.
경사가 20%라는 표지판이다. 20% 경사라면 산악도로 중 가장 경사가 급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리 험한 산도 20% 이상 경사도로를 찾기는 쉽지 않다. 수경스님은 오늘 코스를 이동하며 너무 앞으로 경사가 심해 힘이 들기도 하지만, 구토증세가 나는 것을 참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런 이유로 식사 양을 평소의 반 정도로 줄였지만 내리막길이 계속해서 어려움을 주게 될 것 같다. 힘든 일정에 식사 양을 줄이는 것은 체력적인 문제를 가져오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
월요일에 두 분이 지나야 할 도로이다. 너무 가파른 길을 어떻게 내려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에 담았다.
무릎을 대고 팔꿈치를 대고 머리를 대며 온 몸을 밀착시켜 우리의 땅을 이동하는 이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생각하게 된다. 이 땅에 상상치도 못했던 회오리가 치고 있다. 경제는 10년 전으로 정치는 20년 전으로 이념은 30년 전으로 후퇴해 버렸다. 방송은 서서히 땡전의 향수로 밀려가고 있고, 박물관의 국보법이 걸어 나와 서슬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권력기관은 이미 시녀가 아니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비명으로 온몸을 던져 충성하고 있을 뿐이다. 수십만의 촛불을 보고 반성했다는 북악산 전설이 채 다 전해지기도 전에 촛불은 사냥감이 되어 던져진지 오래이다. 질긴 촛불은 그래도 숨을 쉬고 저항하고 있다.
이 시대 생명도 평화도 사람도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그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참지 못한 이들이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이다. 그래서 두 분의 오체투지 길은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다.
추가: 지난 기사에서 염려했던 월요일 코스 중 일부가 삼보 후 반배로 바뀌었습니다. 위의 사진지역입니다. 회전과 경사면이 도저히 차량통행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서입니다. 토요일에도 일단 정지했던 차량들 중 다시 출발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월요일 코스 중 일부 구간은 삼보 후 반배로 내려오고 다시 정상적인 오체투지로 진행됩니다.
순례팀 공지 붙입니다.
안녕하세요.
'기도-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오체투지 순례 진행팀입니다.
순례진행팀은 지난 3일간의 순례를 진행한 이후
일요일인 오늘 7일(일) 다음주 예정 구간에 대한 답사를 진행한 결과,
월요일 예정 구간인 시암재휴게소에서 구례방향 1.5km 지점부터 (성산재에서 구례방향 2.5km지점)에서 천은사 구간까지 급경사 구간에서는 삼보 후 반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긴급 변경합니다.
천은사 구간에 이르기까지 급경사와 급커브길로 차량의 교행시의 시야확보가 안돼 안전에 대한 문제발생과, 급경사 구간에서의 오체투지는 두분 성직자의 두통과 어지러움증, 구토증상으로 인해 진행상 어려움이 있어 급하게 일정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삼보걷고 반배하는 형식으로 전체가 함께 진행을 하는 방식으로 하고, 이후 천은사 삼거리와 광의면 중간지점 부터는 오체투지의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