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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군수 정광태 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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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독도 인근 해역 탐사계획을 국제수로기구(IHO)에 통보하고 기어이 탐사선을 출발시킨 바로 그 날. 그날로부터 꼭 8일이 지난 날 노무현 대통령은 장문의 담화를 발표 했다 독도가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빼앗긴 우리 땅이라는 역사그러므로 |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 이라는 논리 .가장 강렬하게는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어떠한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습니다”라는 두 줄. 한 나라의 통수권자로서의 의지를 만천하에 표명한 것이다.
그래서 이미 전 세계의 뉴스 채널이 보도한 대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까지 중재에 나서야 할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은 빼고 ‘국민 정서’만 놓고 보자면, 이 상황이 통쾌하지 않을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건 그렇고, 이토록 완벽하게 통합된 국민 정서는 언제부터 형성됐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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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질문을 듣자마자 통기타를 든 정광태의 영상을 떠올릴 사람이 꽤 많을 듯싶다. 1980년대 초, 정확히는 1982년 그의 기타 반주에 맞춰 ‘독도는 우리 땅’을 따라 불러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히트곡 덕에 스타가 되거나 재산을 축적했다는 가수 얘기라면 그야말로 쌔고 쌨다.하지만 히트곡 때문에 국가 영유권에 헌신하게된 가수라면 정광태 말고는 없을 거다.
대통령의 담화 발표가 있은 지 꼭 6일 후인 지난 5월 1일, 정광태는 독도에 있었고, 그로부터 4일 후에는 올림픽공원에서 ‘독도의 날’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시시덕 거리는 여고생들에게 “아저씨가 이 노래 부른 사람이거든”하고 말을 건네며, ‘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가 5절까지 적힌 그림엽서를 나눠주면서 제가 저 학생들 또래였을 때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가수를 만났다면, 아마 사인 받으려 난리였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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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 소절 불러주면 아이들이 ‘알아요!’ 하고 소리칩니다. 내가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이유는 다들 우리 땅인 줄 알기는 하지만 ‘아! 이래서 우리 땅이구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곡을 짓고 노랫말을 쓴 박인호 PD 역시 같은 마음이 었습니다. 1982년에 교과서 왜곡사건이 있었고, 이 노래로 일본의 주장이 왜 거짓인지를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니 내 얼굴 모르는 거야 무슨 상관이겠어요? 노래만 알면 됐지요. 더 좋은 건 저 아이들과 함께 독도로 가는 것이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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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명예군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노래 한 곡 때문에 그처럼 인생을 바꿀 수 있었는지요?
“저는 인생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정부의 주요 인사도 아닙니다. 1982년에 전 개그맨이었고 지금도 연예인 입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독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입니다. 2002년에는 선후배와 함께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뗏목으로 건넜고, 이듬해에는 같은 길을 릴레이 수영으로 건넜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대한의 여성 서른세 명이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런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할 뿐입니다.”
- 그래도 ‘독도는 우리 땅’의 가수라는 의무감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 저는 독도로부터 아주 큰 선물을 받은 사람입니다. 1983년에 처음으로 울릉도에 갔었습니다. 그땐 민간인은 독도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홍순칠 독도의용대장께서 직접 초대해주셨고, 감사패도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1984년에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때는 배를 댈 수 있는 시설이 없어, 독도 최초의 주민이신 최종덕 할아버지의 목선을 타고 독도로 갔습니다. 그분 역시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나를 데리러 울릉도로 오셨어요. 날 보시더니 ‘이 자식 여기 왜 왔어?’ 하는 눈으로 쳐다보시더라고요. 완전히 ‘노인과 바다’였죠.
그분의 조각배를 타고 파도에 쓸려 독도에 내렸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섬이었는지, 안 가본 사람은 모릅니다. 그날, 독도 경비대가 나를 위해 예포를 쏘아 주더군요. 그날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독도를 향한 짝사랑이요. 어떤 인연이나 숙명인 것 같기도 해요.”
- ‘독도는 우리 땅’을 녹음하게 된 데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면서요?
“ 그 노래를 처음 부른 건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였는데, 혼자가 아니라 네 명이 불렀습니다.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 그리고 나. 레코드사에서 취입을 하자고 해 다 같이 만나러 갔는데 레코드사 사람이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오지 않는 거예요.다들 가고 나만 남아서 그를 기다렸고, 결국 음반 취입을 저 혼자 하게 됐습니다. 제겐 큰 행운이 었던 셈이죠.”
- 미국영주권을 포기하고 독도로 본적을 바꿨는데, 결단 하기가 어렵지 않았나요?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형, 독도 문제가 너무 커’ 하는데, 순간 ‘독도는 독도경비대가 지키고 해양경찰이 지키는데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순간 후배가 ‘형은 미국에 살면 안 되잖아요.’ 독도는 우리 땅 부른 사람이잖아’ 하자 곧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알았어’ 하고는 한국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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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은 ‘독도는 우리 땅’이 금지곡에서 풀려난 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과 관계 돼 있는 인생도 쉽진 않았겠어요. “이 세상에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요? 내가 ‘독도는 우리 땅’을 처음 부른 날로부터 24년이 지났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슴에 품고 사는 말이 있습니다. 1954년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이었던 변용태 님 말씀입니다. ‘독도는 일제 침략 최초의 희생물 이었다. 대한민국 독립과 함께 대한의 품으로 돌아왔다. 독도는 대한민국 독립의 상징이다. 독도에 손을 댄 자는 한민족의 엄청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영예의 장이다. 독도를 잃고서야 어찌 애국을 생각하겠는가? 일본이 독도를 침략하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재 침략이라는 것을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할 것이다.’ 1954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같습니다.”
- 지난 5월 1일 독도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요. 이번 독도 행은 어땠습니까? “지금 독도는 법적으로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섬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섬이 허락해줘야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바다가…. 독도로 들어갈 수 있는 기상조건이 되는 날은 일년 중 40일에서 45일 정도라고 합니다. 그날도 독도는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우스개로 걸곤 하는 주문이 있습니다. ‘일본은 가라앉아라, 일본은 가라앉아라.’ 그랬더니 이종상 교수님이(1972년에 5000원권 지폐를 디자인하셨던 분으로 나 못지않게 독도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사죄를 받기 전까지는 가라앉으면 안 된다고요. 독도는 정말 민족적인 자존심을 대변하는 섬입니다. 우리가 독도를 지켜주고 있는 게 아니라 독도가 우리 민족의 자존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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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 동안 ‘독도는 우리 땅’을 불러온 정광태에게 독도란 어떤 존재입니까? “지난해 책을 하나 냈습니다. 역시 독도와 관련된 거죠. 유성이 형(전유성)이 추천사에 이렇게 썼습니다. ‘정광태는 독도 같은 사람’이라고 말이죠. 독도 같은 사람이라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 ‘돌 같은 사람’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독도가 돌이니까요. “명명백백한 자국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기 영토를 잃고 잃어 한반도 좁은 땅덩이에 정착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 민족의 선조들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거친 숨결로 호령하던 당당한 기마민족이었습니다. 오늘 그 민족이 주인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 또 하나의 영토를 빼앗기려 하고 있습니다. 훗날 그의 후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선조를 가졌다고 말입니다.”
- 한 편의 웅장한 시 같은 말을 남기고 정광태 씨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며칠 후 나는 그 마지막 대사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 줄을 알게 됐다. 정광태 씨가 술자리에서건 무대 위에서건, 언제나 똑같은 대사를 시처럼 읊고 사라진다는 것을. 아마 스스로를 독도에 붙잡아두기 위한 다짐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정다운 객원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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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06.06.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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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통일 된다면 누구도 함부로 들이대지 못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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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명예군수 정광태 ⓒ민중의소리 | 시마네현 의회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이 통과된 16일,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으로 시작되는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의 주인공, 가수 정광태씨를 만났다. 그는 독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공로로 독도 명예군수가 되었으며, 현재 가수 겸 음반 제작자로 활동중이다.
"여기 영토를 잃고 잃어 한반도 좁은 땅덩어리에 정착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 민족의 선조들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거친 숨결로 호령하던 당당한 기마민족이었습니다. 오늘 그 기마민족이 주인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 또 하나의 영토를 빼앗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훗날 그의 후손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선조를 가졌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선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자존심, 대한민국의 영원한 땅 독도를 지켜야 합니다"
정광태 명예군수가 가슴에 가장 와닿는 말이라며 들려준 얘기다. 다카노 일본대사의 '독도 관련 망언'과 '한승조, 지만원, 조갑제를 비롯한 친일국우인사들의 망언'으로 벌겋게 소름 쳤던 마음을 다스리는 듯 강하고 엄숙한 어조였다.
이어 그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도발에 분개하고 있는 북측의 반일감정에 대해 논하면서 "남북이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이 돼서 하나로 꿋꿋하게 섰을 때는 어느 나쁜 놈들도 함부로 들이대지 못할 것"이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다"
빙글빙글 돌아 난 아파트 단지 내 인도를 따라 정광태 명예군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 날'제정과 관련 인터뷰 요청이 많은지, 정광태 명예군수 집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기자가 왔는지도 모르고 전화 통화에 마냥 열심이다. 천안에서 궐기대회를 하고 왔다는 정 명예군수는 온몸에 피곤이 엄습한 듯 어깨가 축 처져 있다.
"며칠 전 시마네현 의회가 상정한 '다케시마 날' 제정이 조금 전에 통과 됐습니다. 이는 그들이 계획하에 저지른 일입니다. 그들은 이미 1905년에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서 불법적으로 독도를 편입시킨 바 있습니다. 그에 앞서 한국의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41호를 통해 '독도는 조선의 영토'임을 만국에 벌써 알린 바 있는 데도요."
그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불가사의함을 단박에 풀어주려는 듯 말했다.
"일본놈들은 우리나라를 침탈했던 도둑놈들입니다. 반성하고 사죄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독도를 자기 땅으로 만들기 위해 돈을 어마어마하게 쓰고 있죠. 세계 지도를 바꾸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그들은 나쁜, 아주 나쁜 도둑놈들입니다"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감춰졌던 일본의 간사함을 발가벗기려는 듯, 그의 성토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는 다케시마의 날이 100%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침탈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혔던 나쁜 놈들인데, 한낱 '다케시마의 날'을 통과시키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겉으로는 상냥한 척 하면서도 뒤로는 호박씨를 까고 있습니다. 꼬리 열두 개 달린 놈의 XX들, 쪽바리놈의 XX들."
정광태 명예군수는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발상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의 '다케시마 날'제정에 대한 억울함을 주체할 수 없어 거친 욕설로 속풀이 해보는 것이겠다.
"일본놈들은 양의 탈을 쓴 아주 간사한 놈들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외쳐도 침묵으로 일관해 왔고요. 우리 땅인데, 일본이 아무리 자기 땅이라고 우긴다해서 그 게 자기 땅이 되겠습니까? 생각해봅시다. 내 와이프를 지나가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 와이프라고 하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머리통을 깨버리든지 해야지."
그는 갑자기 불만 가득한 얼굴이 됐다. 정부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자신만만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잃을 게 없습니다. 어쨌거나 손해는 우리가 봅니다."
정 명예군수는 독도를 미사일 기지로 만들어서도 이 XX들(일본)과 한번 붙던지 해야 한다며 역정과 분함이 섞인 농담을 내뱉기도 했다.
외교단절을 불사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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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명예군수 정광태 ⓒ민중의소리 | 독도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불태웠던 정광태 명예군수의 눈빛을 본 사람이라면, 사연 많은 독도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강력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다나깐가 다줄깐가 그 다카노 주한일본대사가 얼마 전에 일본으로 출국했는데, 다시는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완전히 추방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그것도 청와대를 바라보면서,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그러는 놈입니다."
정 명예군수는 독도를 지켜내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라며 일본에 대한 비난을 늦추지 않았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탈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학살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자기들이 한국 사람들을 잘 살게 해줬다고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독도도 일본땅이었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고요. "
그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망언을 방관한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불쌍해지는 것과 같다고 일러줬다. 1983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가 나올 당시에도 교과서 왜곡문제가 있었는데,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면서 정부가 '다케시마 날' 제정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이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가서 부모님이 낳아주신 손을 절단하기도 했습니다. 현 정부는 강력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또한, 국민들은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절대로 잊어서도 안 됩니다. 그놈들은 간교하고 철두철미한 놈들입니다."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려는 마음을 져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에 파병하고 자위대를 강화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군국주의 망상이 아직도 꿈틀거림을 알 수 있습니다. 독도 침탈은 수십 년 전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
"조갑제, 한승조, 지만원이 이완용과 다른 게 뭐냐"
올해로 광복 60주년을 맞았다. 또한, 한일 우정의 해라고 하여 그 의미가 새롭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다케시마 날'을 제정함으로써 스스로 가식과 기만을 보여주고 말았다.
"우정은 개나발, 무슨 우정입니까. 그 XX들은 우정이라는 거 모릅니다. 우정을 안다면 사죄해야죠. 미친개는 몽둥이로 때려잡았다는데, 우리도 막강한 대한민국이 되어 억울한 것들을 빨리 갚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모두가 하나가 돼서 저주받은 일본을 이 지구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이웃사촌이면 그렇게 놀아야 합니다. 이건 이웃사촌이 아니라 날강돕니다."
그는 한국이 62년 정도 일본을 지배해서 쓴맛을 보여줘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농담하면서 미국놈이나 일본놈이나 다 똑같은 놈이니, 현 정부는 강력하게 대처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작금의 현실을 개탄했다.
또한, 그는 조갑제, 한승조, 지만원의 친일비호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지식인이라고 하는 조갑제, 한승조, 지만원. 그들이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언론에 그대로 얘기했다는 것은 불쾌한 일입니다. 자기들이 친일극우인사라 하더라도 마음속에 담고 있어야 할 얘기였습니다. 달린 입이라고 해서 막 말하는 것은 못된 짓입니다. 이들이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이과 다른 게 뭡니까. 자기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는 분명 잘못된 행위이며 나쁜 행위입니다."
덧붙여, 정 명예군수는 방치된 독도박물관에도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꼬집으면서 우리 모두가 독도에 대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대한민국의 자존심도 망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망언, 역사 교과서 왜곡, 일본 이 나쁜 도둑놈들아"
일본 망언과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렸다.
"일본의 지속적인 망언이 계속되면 우리 호국영령들이 일본을 저주받은 땅으로 만들어 가라앉힐지도 모른다. 일본 사람들이여! 망언 끝내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라. 그렇지 않으면 니네 일본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그때 무릎 꿇고 용서 빌지 말아라. 그때는 때가 늦으니, 지금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라. 이 일본놈들아. 이런 나쁜 도둑 놈들아."
그러면서, 정 명예교수는 일본을 두 가지 면을 지닌 야누스라고 표현했다. 일본은 과거사문제에 대해 사죄하지 않으면서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며, 과거사는 다 끝난 일이라고 얘기하면서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불러줬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에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삽십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독도는 우리땅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 연어말 물새알 해녀 대합실 십칠만 평방미터 우물하나 분화구 독도는 우리 땅
지증왕 십삼년 우산국 세종 실록지지리 오십쪽에 셋째줄 화와이는 미국 대마도는 몰라도 독도는 우리 땅
노일 전쟁 직후에 임자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겨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우리땅 노래 듣기
독도, 처음부터 우리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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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명예군수 정광태 ⓒ정광태 | "1984년 해양경찰청에서 초청해 한국일보 사진부 1명 취재부 1명과 함께 갔습니다. 그 당시 독도에는 접안시설이 안 되어 있었지요. 그때는 최종덕 할아버지 (독도 최초의 주민)가 살고 있었는데, 손과 발로 젓는 목선을 타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놈들이 왜 왔지' 이러면서. 최 할아버지는 아들딸과 함께 살면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김성도 선장이 독도 주민으로 돼 있는데, 독도에 살지 않고 울릉도에 삽니다. 시설이 미흡해서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김성도 선장이 독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합니다."
정광태 명예군수도 1999년에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에서 6번째로 본적을 독도로 옮긴 바 있다.
"제가 '독도는 우리 땅'을 불렀을 때, 독도 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이 '정광태씨가 국민의 독도에 대한 관심을 제일 불러일으킨 사람'이라고해서 명예군수가 됐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노래를 통해서 독도를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한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노래로 독도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봐요."
"내 몸을 던져서 뗏목을 타고, 헬기를 탔으며, 2004년에는 전국에서 모인 애국전사 45명과 함께 28시간 동안 릴레이로 수영하면서 독도에 다녀온 적도 있지요."
이는 울릉도 생활권이었던 독도를 뗏목 탐사나 수영종단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땅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음악가, 제작자, 독도 명예군수, 모두 다 최선을 다 하겠다
"저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서, 노래를 통해 국민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나온 것은 과거일 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국민이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너무 흥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막강 대한민국이 됩니다. 저는 가수니까 노래로써 나라 사랑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독도를 많이 알리는데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흥국씨랑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라는 제목의 싱글 음반을 낸다는 소식도 들려주었다.
"호랑나비가 너무 화가 나서, 월드컵 축구만 지키다가 쪽바리들이 너무 들이대니까, 독도 가수랑 월드컵 가수랑 만나서 음반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조만간에 국민들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4월에는 들려줄 수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음반을 제가 제작했는데, 아무도 안 사요. 아주 슬퍼요. 빚더미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일이니 염려하지 말아요. 죽기 아니면 까무치기 밖에 더 하겠어요. 제 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열심히 팔아주세요."
독도명예군수 정광태의 홈페이지는 www.dokdokorea.net이다. 다음 카페에서 독도지기 정광태를 검색하면 들어갈 수 있다.
"내 것을 내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독도는 대한민국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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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태 독도군수님,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