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16-22)
여러분은 전쟁의 영웅을 존경하시나요?
아니면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를 존경하나요?
지혜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은 마음을 다스리는 절제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줍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실 때 절제할 수 있습니다. 절제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온갖 탐욕을 버리고 매사에 분수를 지킬 줄 아는 것입니다. 무조건 안 쓰고 아끼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할 곳에 최대한 쓸 수 있기 위해 아끼는 것입니다.
나눔을 할 때 절제하는 삶이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선한 일에 대해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에게 선한 일을 하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합니다.
어느 계명입니까?라고 묻자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부터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자신 있게 이 모든 것을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청년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선행이란 공로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복음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청년은 율법 이면에 있는 정신을 올바로 깨닫지 못함으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십계명 가운데 제5-10계명이 말하고 있는 행위들의 동기가 무조건적인 사랑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1절에서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청년이 근심하며 갔습니다. 영생보다 사라질 재물을 더 사랑한 청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참된 믿음은 나눔을 통해 증명됩니다.
22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청년은 계명을 잘 지켰다고 자랑했지만 계명의 정신을 따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십계명을 잘 지켰다고 해도 나눔이 없는 삶은 보람 없고 무의미합니다. 아무리 절제한들 나눔의 실천이 없으면 인색하고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일 뿐입니다. 참된 믿음은 나눔을 통해 증명됩니다. 우리의 경제적 삶은 세상에 보화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우리가 천국을 믿고 천국에 살기를 원한다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재물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결국 하나님을 외면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24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나눔을 통해 상급을 준비하며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나눔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디모데전서 6:17-19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나눔은 우리로 하여금 작아지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커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나눔은 우리의 작은 손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큰 손으로 되돌려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이 말씀은 가난한 이들과 나누기를 힘쓰는 선행에 반드시 더 큰 복으로 갚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자를 보시며 마치 하나님에게 하신 것처럼 기뻐하시며 풍성히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나눔을 통해서 더 큰 나눔의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참된 믿음은 나눔을 통해 증명됩니다.
둘째로, 나눔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2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말씀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실제적인 실천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이웃과 나누며 살라고 하십니다. 나누는 자에게 하늘의 보화가 있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찬양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나눌 때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그분이 기쁘게 웃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말씀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을 따라 나눔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눔은 돈만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나누는 사랑입니다. 시간을 나누고, 재능을 나누고, 김치도 나누고, 부침개도 나누는 것입니다.
어느 가난한 부부가 하나뿐인 딸이 아파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마음이 아파서 술 마시고 밤길을 헤매다가 불 꺼진 가게 문손잡이를 열었더니 문이 열렸습니다. 남자는 금고를 찾아 정신없이 주워 담고 있을 때 백발의 할머니가 “어디에 쓰려고? 무슨 딱한 사정이 있어 보이는데 그 이유나 들어보세.”
남자는 할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을 합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네. 오죽 힘들었을까.
힘내게!” 할머니는 남자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며 “부족하겠지만 이것으로 급한 불은 끄게나.”
“열심히 살아, 그러면 또 좋은 날이 올 거야.”
삼년 후 이 남자가 할머니 가게를 찾아갔더니 할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 딸에게 사연을 얘기하고 돈을 갚았습니다. 할머니 산소를 찾아갔는데 묘비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이후에 이 남자의 가족들은 할아버지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나누어 주며 살았습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트럭의 지붕에 매단 깃발에 “사람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간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경북 김천시 봉산면에 신암교회는 교인이 15명인데 70-95세 교인들입니다. 며칠 전 아내가 기도원에서 만났던 그 사모님과 통화하는데 집안보다 햇빛이 비치는 산이 더 따뜻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천 만원이면 사택을 수리를 할 수 있는데 교회 형편이 안되어 영하 7도나 되는 방에서 산다는거에요. 안타까워 알지도 못하는 그 교회와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초등학교 때 선교사가 되겠다고 한 것과 신학대학원에 갈 때 목사가 되어 농촌교회를 섬기겠다고 한 것입니다. 농촌교회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을 보면 내 대신 섬기는 분이라 여겨서 빚진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도와야 할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울 대상은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해야 하겠지요. 나눔은 형편대로 하시면 됩니다. 돈이 아닌 재능기부를 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보화를 원한다면 나누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은 뵙고 싶다면 나누십시오. 나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께 꾸어주실 분은 무명으로 신암교회를 위해 봉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설교=목천교회/김상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