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언론들이 숨기기만 해 왔기에 한국인이 모르고 있던 박정희에 대한 글입니다. 보기 편하도록 단편으로 짧게 짧게 이어 놓았으니까.. 시간 나시는대로 보시고, 왜곡되어 있는 우리의 최근 현대사부터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여기 저기 복사해서 많이 퍼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
많은 사람들이 위선에 쌓인 박정희에게 속아서 일본의 충성스러운 개 박정희를 추종합니다.
1. 박정희는 가난을 몸소 겪은 사람으로 가난한 백성의 심정과 고통을 잘 알고 이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박성빈(朴成彬)과 백남의(白南義)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 났는데 90여 호가 사는 마을에서 박정희 이전에 보통학교를 다닌 사람은 박정희의 셋째형인 박상희 하나 뿐인 것으로 보아 사범학교까지 나온 박정희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자신도 가난한 농부출신이라는 이미지를 대다수의 가난한 국민들에게! 심어주어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하여 박정희도 가난농부의 아들인 것처럼 사실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2. 박정희는 의식주에 사치를 하지 않고 매우 검소하게 생활 하였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서민적인 대통령을 강조하기 위하여 막걸리 마시는 모습을 TV나 신문 잡지에 연출한 후 궁정동 안가에서는 어린 처녀나 인기연예인들을 데리고 일반서민들은 꿈에서 구경도 해본 적이 없는 시바스리갈 등의 비싼 양주에 취하여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양주와 양담배는 판매자체가 불법이었으므로 이중적인 사기꾼의 모 습입니다.
3. 박정희는 정이 많아서 밖으로는 엄하고 강하였으나 내적으론 부드럽고 인자하여 부하와 가족을 자기 몸같이 돌봤다. 부하나 나라위해 몸바친 사람들을 절대로 방치하지 않았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실제의 박정희는 정이 많기는 고사하고 독재정권 유지를 위하여 많은 억울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유치장에 보내고 죽이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박정희가 자기 부하들에게는 충성 경쟁을 시키기 위하여 잘 돌보아 주었겠지만 그것도 나라 돈이나 불법으로 모은 정치자금으로.! ..
박정희는 자신이 민족반역자이므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 耐?...민족반역자들과 그 후손들을 많이 고위공직자로 등용한 반면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자식교육을 잘 시키지 못하고 재산을 모으거나 지키지 못한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홀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대다수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고위공직자나 부자가 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4. 박정희는 국가관이 확실했다. 라고 주장합니다.
국가관이 확실한 사람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 바쳐 독립운동 하러 나가지 않고, 오히려 목숨 바쳐 독립운동에 나선 애국지사들 잡아 죽이는 일본군 장교가 됩 니까?
5. 박정희는 민족의 장래를 위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위대한 뜻을 가지고 된 그 좋은 초등학교교사 자리를 독립군 잡는 일본군 장교가 되기 위하여 헌신짝 버리듯 버리었겠습니까?
6. 더 기막힌 건 박정희가 민족을 위해 일본군장교가 되어 선진문물을 습득하고, 선진군사 제도와 전술전략을 습득하여 민족의 독립과 독립 후 국가재건에 기여 하고자 하였다. 라고 주장합니다. 독립운동가 들이 들으시면 대성통곡 하실 일이고 강아지?! ? 들으면 웃다가 배꼽이 달아날 일입니다. 일본놈들 역사왜곡하는걸 보고 닮은 모양입니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시절 일제의 패색이 짙어갈 무렵 독립군에 합류하라는 권유를 받고도 계속 끝까지 일본군대에 남아 있었던 충성스러운 일본천황의 개였습니다.
7. 박정희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혁명을 결행 하였다 라고 주장합니다.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쿠테타를 일으킵니까?
8. 박정희가 가난에서 해방시키고 보리고개를 없앴다. 라고 주장합니다.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킨 1961년 5월 16일로부터 10년이 지난 1971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반찬하나 없이 깡보리밥에 짠 조선간장을 반찬으로 하거나 쑥에다가 쌀가루를 살짝 뿌려서 쪄서 먹거나 요즈음에는 개 돼지도 잘먹지 않는 밀기울(밀껍데기), 감자, 고구마, 옥수수, 쌀이,거의 들어가지 않은 나물죽 등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허문회 서울농대교수등의 연구에 의하여 밥맛은 없지만 생산량이 많은 통일벼가 개발되었고, 1972년도에 시작된 통일벼 농사가 대다수의 농민들이 통일벼 농사를 짓게! 된 1974~5년도가 되어서야 겨우 국민들이 굶주림에서 해결될 수 있었습니? ?.
십수년동안 국민을 굶주리게 한 박정희는 얼마나 무능한 대통령입니까?
십수년동안을 국민을 굶주리게 한 박정희는 14~5년 동안의 독재를 행한 뒤에야 겨우 국민을 굶주리지 않게 한 무능한 박정희를 가난을 몰아낸 영웅이라니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보리고개를 없앤 공은 민족반역자 박정희가 아니라 통일벼를 개발한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가난을 몰아내고 산업을 발전시킨 공로는 사람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면서 박봉(薄俸)으로 굶주린배를 움켜쥐고 죽기 살기로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 의 몫입니다. 더러운 민족반역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공로가 아닙니다.
9. 박정희가 이순신장군을 존경했다. 라고 주장하여 마치 박정희가 이순신장군처럼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던지는 조국에 충성스런 한국사람인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일본군들과 싸우다 목숨을 바친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는 사람(박정희)이 일본군과 싸우러 독립군이나 중국군이나 소련군이나 미군에 가담하지 않고, 어떻게 독립군 잡는 일본군 장교가 됩니까?
10. 백번을 다시보아도 박정! 희는 자기자신만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사악한 전형적인 민족반역자입니다.
11 조국의 독립에 목숨을 건 애국지사 민족지사들 토벌(사냥)에 신바람이 나서 날뛰던 민족반역자 박정희를 한국경제를 일으킨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충성한 민족반역자 집단이 사실을 왜곡하여 여론을 조작 때문입니다.
12 민족반역자요 독재자인 박정희가 아니면 보리 고개를 면하지 못하게 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폄하하도록 세뇌한 일제에 의하여 세뇌된 민족반역자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거나 그들의 여론조작에 세뇌된 선량 한 사람들입니다.
13. 민족반역자 박정희의 기념관을 세워서 동서화합을 이룩하겠다는 DJ대통령의 생각으로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추진 중인데 이것이 DJ대통령의 최대의 실정이 될 것입 니다.
14.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애국지사께서나 박정희를 비롯한 민족반역자들의 죄악상에 대하여 상세히 아시고 싶은 분 또는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애국운동을 하시고자 하는 분들은 민족문! 제연구소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십시오. 홈페이지 주소는 www.banmin.or.kr ? 都求?.
15. 저는 경상도 사람도 전라도 사람도 아니고 지역감정의 노예는 더욱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배달민족을 목숨보다 사랑하는 순수한 민족주의자 일 뿐.....
김대중이가 싫어서... 경상도 출신이라서 민족반역자 박정희를 숭모하는 일은 말아주십시오. 경상도 출신 지성인들께서도 민족반역자 박정희를 비판하고 민족반역자 박정희기념관건립을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 나서주시길..
해방되던 해인 1945년 국민의 문맹율이 80%였고 5-60년대까지만 해도 한글을 모르는 경찰공무원이 상당수 였으니 일제시대에 사범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가정이 부유했다는 것을 말해주지요..김대중 대통령님께서도 넉넉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목포로 유학을 할 수 있었듯 말입니다..야튼 박정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물입니다...
첫댓글 나설만한 용기있는 사람들이 몇명이나 있을까싶네요
해방되던 해인 1945년 국민의 문맹율이 80%였고 5-60년대까지만 해도 한글을 모르는 경찰공무원이 상당수 였으니 일제시대에 사범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가정이 부유했다는 것을 말해주지요..김대중 대통령님께서도 넉넉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목포로 유학을 할 수 있었듯 말입니다..야튼 박정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물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그래도 최고였다고 죽고못하는 인간들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