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속 의학]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작품처럼 사물이 노랗게 보이면 ‘중심성 망막염(中心性網膜炎: 망막의 황반(黃斑)에 생기는 염증)’을 의심해보세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자화상. 얼굴부터 배경까지 모두 노랗게 그려져있다. /Van Gogh Museum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노란색과 소용돌이 형상이 많다. 인류가 사랑하는 작품 <별 헤는 밤>에서도 노란 회오리가 곳곳에 있다.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요양원에 있으면서 병실 밖에서 본 밤의 모습을 그렸다는데, 절망의 어둠도 몽환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캔버스에 오일, 뉴욕 현대미술관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그린 작품으로 자신이 보았던 아름다운 밤하늘을 자신의 마음을 담아 신비롭게 그렸다. 고흐가 그린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직접 밤하늘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았던 밤하늘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이다. 고흐는 별들이 반짝이며 빛의 잔치를 벌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란색의 별들과 달이 물결치듯 움직이며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는 듯 보인다. 왼쪽에 높이 솟아올라 불꽃처럼 보이는 것은 사이프러스 나무이다.
고흐는 자화상뿐만 아니라 많은 그림을 누렇게 그렸다. 의사들은 그것이 질병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는 지적을 한다. 시야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視症)을 의심한다. 그 근거는 고흐가 디지털리스(Digoxin 독성)라는 약초를 복용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 약초는 구토나 우울증 등 다양한 분야에 쓰였다. 고흐가 그린 자신의 주치의 ‘닥터 가셰 초상화’에도 의사 앞에 디지털리스 약초가 놓여 있다.
눈의 단면
중심성 망막염(中心性網膜炎:망막의 황반에 생기는 염증)은 '중심성 장액맥락망막병증'의 준말로 흔히 중심성 망막증(中心性網膜症)으로도 불린다. 눈의 안쪽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신경조직을 황반(黃斑)이라고 하는데, 시세포의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 있어 시력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황반 부위에 염증이 생겨서 물이 차서 부종이 생기는 질병이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까마귀 나는 밀밭Wheatfield with Crows>, 1890년, 캔버스에 유채, 50.2 x 103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고흐박물관
"그곳에 돌아가 나는 그림에 착수하였다.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것 같았다.
나는 어렵지 않게 슬픔과 깊은 고독을 표현했다."
ㅡ고흐가 남긴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대한 기록
디지털리스(Digoxin 독성)는 ‘황색 시력’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초 성분은 훗날 심장박동을 세게 해주는 강심제 ‘디곡신’으로 개발돼 널리 쓰였다. 이 약이 과잉 투여된 심장병 환자 중에 눈앞에 노란 필터가 낀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약을 끊으면 대개 노란 시야가 사라진다.
망막(網膜)에는 색을 구분하는 적색, 녹색, 청색 등 3가지 색각 세포가 있다. 디지털리스는 빨강과 초록 인지를 어렵게 하여 그 보상으로 시야를 노랗게 한다. 고흐 작품에는 본래 녹색이어야 할 초목도 노랗게 그려져 있곤 한다. 과다 복용 시 노란 시야를 일으키는 산토닌 성분이 들어간 ‘압생트’라는 술을 고흐가 즐겨 마셨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안과 의사들은 고흐의 노랑을 황시증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김안과병원 망막센터 유영주 전문의는 “약물 중독 형태로 황시증이 생기면, 흰색과 노란색을 구별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파란색과 보라색에 대한 지각이 없어진다”며 “고흐의 작품에는 파란색, 보라색, 흰색이 분명히 들어있기에 약물 중독에 의한 황시증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유영주 안과전문의는 “현대 안과 질환 지식으로 보면, 고흐는 젊어서부터 건강이 안 좋고, 예민한 성격이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보아 중심성 망막염에 걸리기 쉬운 상태였다”며 “망막 중심부에 물이 고이는 중심성 망막염의 경우 사물이 누렇게 보인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만약 고흐 그림처럼 사물에 노란색이 더해져 보인다거나, 빛 번짐 후광이 보이고, 회오리치듯 상이 왜곡되어 보이면 망막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여러 안과 논문에서 고흐는 진정으로 노랑을 사랑한 게 맞는다고 추정한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가? 그것도 안과 문제는 아니지 싶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화, 72.5×92㎝, 오세르 미술관
파리를 떠나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론 강의 밤 풍경에 깊이 매료되었고, 동생 테오에게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지고 있는 밤’의 모습을 그리겠노라고 의욕적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그 밤을 짙은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잡아냈다. 반짝이는 별과 강 건너 마을의 불빛이 선명한 노란색으로 그의 거친 붓질을 따라 론 강을 적시고 낮은 언덕 위에까지 그 흔적을 드리우고 있다. 넓게 칠해진 짙은 파랑의 밤하늘에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마지막 불꽃처럼 별이 빛난다. 별의 중앙은 그 짙음을 호소라도 하듯 흰색 물감으로 덩어리져 있다.
❁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비극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https://cafe.daum.net/201s/AYJ5/5554
출처: 조선일보 2022년 2월 24일(목) 문화○라이프 〉 건강(김철중 의학전문기자 편집국 사회정책부 의학전문기자)
첫댓글 시가 있는 아침이라는
칼럼에서 발췌한 정호승 시인의 "별"이라는 시 입니다.
새벽녘
마당에 오줌 누러 나갔더니
개가 흙바닥에 엎드려
꼬리만 흔듭니다.
비라도 한 줄기 지나갔는지
개 밥그릇엔 물이 조금 고여 있습니다
그 고인 물위에
초롱초롱한 별하나가
비칩니다
하늘을 보니
나처럼 새벽잠 깬 별
하나가
빈 개밥 그릇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해설: 별도 밤이 깊어지면 배가 고픈가 보다. 별도 더 깊어지면 외로운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새벽잠 깬 별이 개밥 그릇을 내려다 보고 울고 있겠는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저마다 똑같은 크기의
밥 그릇 하나씩을 부여받고 태어난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그릇이 수많은 이들이
밥을 먹을 수있는 큰그릇이 되고 어떤
이는 그 그릇이 간장종지 만하게된다.
불행이도 그런 그릇엔
개밥도 담지 못한다.
이 시에는 개밥 그릇에도 별이 뜬다.
왜 개의 밥그릇엔 별이 뜨는데 인간의
밥 그릇엔 별이 뜨지
않는가. 그건 개보다
못한 인간이 많기 때문이다. 정호승(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