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를 무시하고 걸어가던 할머니

[이상열Andrea]

1월 둘째주 연중제2주일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35-42)

나를 무시하고 걸어가던 할머니

(장호창 한국외방선교회 신부. 파푸아뉴기니 선교)

파푸아뉴기니에 와서 본당 신부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일입니다.

저는 한국처럼 한 달에 한 번 차로 갈수 있는 모든 곳은 병자방문을 다녔습니다.

그날도 늘 저를 기다리시던 할머니를 뵈러 갔는데.

할머니가 제 차를 보고도 무시하고 밭으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제가 할머니를 방문하려는 것을 아셨을텐데...

저는 마을 구역장님에게 할머니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면서

다음 달에는 오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제가 화가 많이 났다는 얘기도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음 달 병자방문은 건너뛰고

그 다음달에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제가 두 평 남짓한 흙바닥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께서 이렇게 사죄하셨습니다.

신부님. 그날은 배가 너무 고팠는데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밭에 가지 않으면 더 이상 움직이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신부님이 오시는 것을 보면서도 밭에 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가 할머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할머니에게 죄송합니다.

저는 사제로서 병자방문을 통해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저 제 생각만 고집하면서.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며 상처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 할머니를 찾아가

할머니. 왜 그러셨어요? 라고 한 번만 여쭤보고.

이야기를 들었다면 제 마음이 분명 달라졌을 텐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 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아마도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당신의 구체적인 삶 안으로 들어와 보고. 듣고. 체험하고 나서 판단하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나도 모르게 의욕만 앞서서 내 생각만 고집하다 보면

예수께서 원하는 것을 행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와서 보아라...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체험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성찰할 때.

우리도 `메시아를 만났소 (요한1.4)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분이 원하는 것을 우리의 삶 안에서 실천할 수 있을 테지요.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