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 (2023. 3.17)
동생, 엄마와 함께 서울에 있는 막내동생집을 방문했다. 제부가 회사를 퇴직하고 새로 물류센타를 운영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동생은 쉬다가 다시 약국을 운영하게 되니 엄마가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여 가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한 2박 3일 일정동안 나는 엄마와의 관계속에서 경계에 부딪히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순간 순간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경계에 끌려가버린 나를 되돌아본다.
경계1
서울가는 길에 먼저 물류센터에 들러 제낭의 회사 안내를 받는 중 이동하는 상황에서 내가 동생에게 얘기한 것을 엄마가 뭔얘기냐고 묻길래 “엄마한테 한 얘기 아니야~” 하니 엄마는 자기를 무시한다면서 서운해한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기에 반복되는 그런 엄마의 반응에 나 또한 요란해진다. 짜증이 났다.
** 나는 다시 얘기하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말하지만 상대는 그 말을 들을 때 상대는 따를 당하는 것 같아 서운한 맘이 들어지지요.
그것이 노인들의 서운함이더군요
그것을 다시 생각하는 공부를 통해서 알게 되었네요.
그럼 엄마 그 얘기 다시 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다음에 이야기 할게요 하면서 요란함만 없으면 여유만 챙기면 안하면서도 서운하지 않게 할수도 잇지요 **
[당신에게 하는 얘기 아닌 것 같으면 그냥 지나치면 좋은데 뭐냐고 물을 때마다 나로서는 이전에 한 말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게 싫었다. 그러니 “엄마한테 한 얘기 아니야~”라는 말에 그 마음이 묻어있었을 것이고 그 마음을 엄마는 느꼈으니 서운해 할 수 있었겠구나. 엄마의 되묻는 행동에 내가 걸려 있었고 그걸 알아차리고 엄마가 뭔얘기냐고 물었을 때 일어난 내 마음을 바로 보고 챙겼다면 ‘이런 얘기였어~’ 라고 말하거나 ‘엄마한테 한 얘기 아니야~’라는 말에 짜증을 보태지 않았을 것인데... 그리고 엄마가 나이듦에 청력이 약해져서 잘 안들리니 당신한테 한 얘기인지 아닌지 확인이 안되어 묻는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엄마를 자신과 관련없는 일에 너무 상관하는 사람이라는 분별심을 내었음을 알았다.]
경계2
회사를 둘러보고 저녁먹으러 나가면서 제부가 어머니는 자기차로 모시겠다고 해서 나는 먼저 우리차로 와서 타려고 하니(조수석에 제부가 개업때 들어온 화분하나를 엄마에게 가져가라고 해서 실어 놓았음) 엄마가 따라오셔서 당신이 화분을 잡고 가겠다면서 차에 타려고 한다.
나는 “엄마는 한서방 차에 타~” 했더니 싸~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가신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동생이 엄마 심기가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자기도 같이 엄마랑 제부차에 타고 식당으로 갔다. 엄마의 그런 표정과 행동이 나에겐 너무 당황스러워 정말 내 엄마이지만 어이없음에 한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그게 경계였음을 알아차릴 작은 정신조차 허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가 엄마에 대한 분별심을 내는 것처럼 엄마도 나에 대한 분별심이 작용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엄마는 한서방 차에 타~”라고 한 말이 엄마가 그렇게 서운하고 화를 낼 일인가 싶은데... 나중에 동생이 엄마랑 같이 차에 타려고 하니 ‘너는 왜 타냐’ 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보면 엄마 혼자 제부차에 타라고 한 것이 서운하셨나보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게 왜 서운하고 화날 일인가 싶지만 내 입장이 아닌 엄마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혼자’라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엄마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지고 이게 아니라면 혹시 엄마가 '엄마를 자기차로 모시겠다'는 제부의 말을 못들은 상황에서 내가 "엄마는 한서방 차에 타~ "라고 하니 그 말이 엄마를 서운하게 했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어진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의 엄마마음이 이해되어진다. (그래서 그랬구나~)]
** 엄마가 한서방 이야기를 들었다 해도 화분이 어쩔까봐 잡고 갈 생각에서 그럴기도 하겟네요
그거에 요란함이 없다면 내가 잘 운전해서 화본 걱정 없ㅇ 할테니 엄마는 한서방에 내 차 타라고 했으니 그 차로 가보라고 하면 되기도 하겠네요. 내 요란함만 알아 차리면 대처는 나에게도 다 나오게 되지요 **
[감각감상] 경계를 당하여 경계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엄마를 서운하게 한 내가 있었고 엄마의 행동에 대한 분별주착심으로 인해 나 또한 요란해지고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낸 내가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경계마다 마음 잘 챙겨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자 다짐하곤 하지만 내 안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분별주착심(편견과 선입견)으로 요란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글러지는 나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원하는 엄마’를 놓아버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실전에서는 잘 되지 않는다.
이번 나들이 동안 엄마와의 경계를 통해 다시 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하면서 연마해 보니 그게 ‘엄마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 네! 공부하고 보니 엄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임을 잘 찾았네요
이러한 공부가 나를 더 깊은 공부심을 찾게 해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