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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여호와 샬롬/삿 6:19-24
성경본문 : 사기 6:19-24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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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박덕기목사
퇴임을 10여일 앞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송금문제로 지난 14일 드디어 대국민 사과를 하였습니다. 김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막고 국익과 평화를 위해서 한 통치행위이니 너그럽게 양해해달라는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한나라 당은 두 번째 국민을 속인 거짓말이라며 여당 단독으로라도 특검제를 통과시켜 파헤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서, 이로 인한 여야간의 정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미국은 작년 한 해 동안 계속해서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경고해오더니, 이제 그 공격의 시기가 임박했다고 떠들어 댑니다. 세상은 이렇듯 항상 전쟁 아니면 전쟁의 위협속에서 불안하기만 합니다.
싸움과 전쟁은 국가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탤런트 이경실 양은 남편의 구타로 갈비뼈가 몇 개씩이나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이혼을 하겠다는 발표를 해서 사람들의 화제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가정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주님없는 세상 고통과 죄악뿐 사람들은 무서워 떠네. 주님없는 세상 평화없네♪ 그렇습니다! 주님 없는 세상은 평화가 없습니다. 죄와 전쟁은 끝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온 인류가 애타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평화일 것입니다. 이렇듯 싸움과 죄악이 참혹한 땅에서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 중 ‘여호와 샬롬’ 곧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뜻을 상고해 보며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삿 6:1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7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이스라엘의 사사로 부름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인해 미디안 사람들의 침략을 받아 노예가 되다시피 하였습니다. 이처럼 죄악이 있는 곳에 평안이 없습니다.
사 57:20-21에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파종할 때나 추수할 때마다 침략하여 식량을 약탈했으며, 가축들도 노략질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로 이스라엘은 이제 어느 곳에서도 평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황을 감찰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기드온을 사사로 세워 미디안을 쫓아내어,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자를 기드온에게 보내어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자기 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정말 하나님이 보내셨는지, 그리고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는 그의 말이 사실인지 의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표징을 구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의 요구대로 그에게 표징을 보여주게 됩니다.
본문 19-21에“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고 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사자’란 세상에 오시기 전 구약 시대에 활동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보여 준 표징을 봄으로써 기드온은 비로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구원하여 평강을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 자신은 여호와의 사자, 곧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피조물인 태양도 바로 볼 수 없다고 했지요? 하물며 죄악된 인간이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도 환상중에 하나님을 본 후 떨면서 말하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 곧 하나님을 대면하고 난 기드온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22절에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고 하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에게 죽음 대신 평강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며, 자신에게 평강을 베푸셨음을 알게 된 기드온은, 표징을 위해 제물로 올려놓았던 그 반석 위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 즉 ‘여호와는 평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같은 하나님의 평강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1. 평강의 본질
빌 4:6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평강의 본질은 곧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평화입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려는 사람도 돈 많이 벌어 평안하게 살려고 해서입니다.
권력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도 권력을 차지해서 평안하게 살아보려 해서입니다. 머리를 싸매고 잠을 설치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좋은 학교에 다니고 좋은 직장 취직해서 안정되게 평안히 살아보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원하는 대로 많이 벌면 평안하게 삽니까? 소원하던 권력을 손에 쥐고 세상을 흔들면 평안합니까? 공부 많이 해서 학위 얻고 안정된 직장을 얻으면 평안합니까? 다 누려보고 얻어 보아도 바라는 평안이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의 비극입니다. 평안을 원하나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기 말씀대로 하면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평안을 줄 것 같은데 실상 평안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참 평안이 아닙니다. 돈만 많으면 평안할 것 같지요? 그런데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합니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더 불안하게 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조르고 언제 누가 자기를 헤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불안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대통령이 최고의 권력자인데 대통령의 자리가 평안한 줄 아십니까? 옛날 중국의 북경 자금성에 가보면 왕의 침실이 있는데 한 방에 동과 서로 침대가 둘 있다고 합니다. 궁중에서도 왕이 어느 침대에서 잠을 자는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소위 안가(安家)라는 곳이 몇 채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 이 안가, 저 안가 이동해 가면서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안은 평안합니까? 누가 지금 김대통령을 향하여 평안하다고 하겠습니까? 권력에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한 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돼 있을 때의 일입니다. 지난 날 그는 세계를 제패했던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죄인의 몸이 됐기에 좀처럼 남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기자가 어렵사리 그를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날을 회상할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백발을 날리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지. 잠시 전투가 그친 어느 주일 아침이었는데,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왔지.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들어갔다네.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며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다네”
천하의 나폴레옹도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을 찾았습니다.
탕자같이 방황했던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 첫 페이지에서 ‘하나님,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가 당신 품안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참된 안식이 없었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품안에 돌아와야만 진정한 하나님의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2. 평강의 기초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입니다. 골 1:20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는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죽음과 그 이후의 심판에 대한 공포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 인간은 결코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제거하시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즉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고 그로 인해 죽음과 심판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불안정한 평안과는 질적으로 달리하는, 다시 말해서 그 어떤 고난이나 문제도 흔들 수 없는 안전하고도 영원한 평안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만사가 순조로울 때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즉 아무런 문제나 고민거리가 없고 장애가 없을 때 평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안은 진정한 평안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만사는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변화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이러한 평안을 깨는 문제거리들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안은 참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위태롭고도 불안한 평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평안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어떠한 평안입니까? 그것은 모든 환경을 초월해서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령을 듣지 않아 체포되었습니다. “그놈을 독방에 처넣어라” “아니 되옵니다. 기독교인들은 독방을 더 좋아 합니다” “왜 그런고?” “조용한 기도실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잔인무도한 악당들이 있는 곳에 집어넣어라” “그것은 더욱더 아니 되옵니다. 악당들을 전도하여 기독교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끌어내어 목을 쳐라” “폐하! 그건 더 아니 되옵니다” “왜 그것도 안 된단 말이냐?” “기독교인들은 순교를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도 헛일이옵니다. 그들은 순교할 때 울지도 않사옵니다. 오히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그러면 그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은, 어떤 환경가운데서도 하늘의 태양처럼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모든 환경을 초월할 수 있는 참된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3. 평화의 종류
1)하나님과의 평화
십자가의 구속을 믿으므로 전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 진노와 정죄의 대상이던 내가, 이제 하나님으로 더불어 누리는 평화, 이것이 가장 원천적인 평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진노하시고, 형벌하시고, 죽게 하심으로,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화해하사,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 주시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2)마음의 평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한 사람에게는 내적인 깊은 마음의 평안을 주십니다. 이 평안은 예수의 평안이며,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인즉, 절대적인 것이어서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인 것입니다. 이 평화는 노한 파도가 부딪혀 깨지고,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의 절벽 위, 어미 새의 날개 속에 있는 새끼 새의 평안같은 것입니다.
3)이웃과의 평화
이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고, 내적으로 깊은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한 사람은, 그 속에 내란이 끝나고 전쟁이 그쳤으므로, 모든 이웃과 더불어 화평하게 됩니다. 싸움이 있는 곳에 화평을 심는 사람들이 됩니다.
4)영원한 평화
이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 영원 왕국에서, 사자가 풀을 먹고, 어린 아기가 독사와 장난을 하는 우주적 평화 시대의 시민으로 참여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영국의 시인 오던은 현대를 가리켜 ‘불안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오늘날 다른 어느 시대보다 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에너지 문제, 자원 고갈, 문제, 공해 문제, 식량 문제, 자살 폭탄 테러, 핵전쟁의 위협 등으로 불안합니다. 국내적으로는 북한의 핵문제, 끊임없는 여야 정당의 정쟁, 경제 문제, 청소년들의 문란한 성도덕, 가정의 파괴와 이혼 문제 등으로 불안감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환각제나 수면제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것을 보아서도, 이 시대가 얼마나 불안한 시대인가 단적으로 증명이 되고도 남습니다. 이렇게 불안과 혼란이 팽배해 있는 이 시대에, 사람들 모두가 크게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평강일 것입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 하나를 키우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원인 모르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먹구름이 그 가정을 덮은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린 딸이 엄마를 땅에 묻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현관에서부터 시작하여 방, 부엌, 응접실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두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어두운 밤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딸을 침대에 눕히고 기도해 주면서 편히 자라고 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딸의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가 가 보았더니 “아빠! 무서워요, 어두워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빠가 딸에게 타이릅니다. “아무리 어둡고 무서워도 아빠가 있으니 무서워 말고 조용히 자거라” 그런데 어린 딸이 눈을 감고 한참 있더니 “아빠! 아무리 어두워도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라고 하며 안심하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때 그 한 마디에 딸과 함께 상심했던 이 아빠는 새 빛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딸의 입술을 통해서 나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 감사합니다. 나의 주변이 아무리 어두워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므로 실망치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가정에 먹구름이 덮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이 느껴지지만, 내가 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고 힘을 얻습니다. 평안을 얻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할 때 그의 마음에 있던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을 그는 느꼈습니다. 그를 사랑하시는 면에서 만세반석이 되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을 그 때에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여호와 샬롬’ 곧 하나님의 평강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사랑하는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