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멍에를 벗고 들어가세요” 대흥사 천불전. 천 가지 불상의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들어가는 길. 가허루의 짧은 통로를 지난다. 소의 멍에처럼 생긴 문턱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구속에서 벗어나 한결 가벼워진 느낌을 받게 된다. 마음을 비우고 천불전 앞마당에 발을 내딛는다. 새롭게 단청을 해 깔끔해진 꽃살문이 봄볕을 쬐며 사방연속무늬의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멋을 뽐내고 있다.
절 밖엔 용부터 다람쥐까지 재밌는 표정의 동물들이 부도에 새겨져 있어 나그네들의 눈요기가 된다. 탑이 부처를 모신 묘라면 부도는 스님의 무덤이다. 대흥사의 부도밭에는 총 56기가 자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의 부도에는 거북이·게·다람쥐 문양이 눈길을 끈다. 대흥사 이인수 포교과장은 “서산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독 화려하게 만들었다”며 “해양생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바다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댕그랑, “공양드릴 시간입니다” “점심(點心)이란 말은 마음에 점을 찍듯 조금만 먹으라는 불교 용어에요. 배부름은 심신을 졸리고 게으르게 만드니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겠죠.”
▲ 천불전 꽃살문
▲ 대흥사 천불전 불상
▲ 달마산 봉우리
▲ 일지암
문화관광 해설사 김중권씨가 경내에 울려 퍼진 공양 종소리를 듣고 말했다. 불교에서는 식사뿐만 아니라 차 공양도 일종의 수행으로 여긴다. 대흥사에서 20여 분 두륜산을 오르면 우리나라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가 머무르며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문호들과 차를 교류했던 일지암이 자리하고 있다. 더 깊은 두륜산의 산세를 느끼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고계봉(638m)에 올랐다.
발아래 백소사나무 군락이 촘촘한 그물처럼 펼쳐져 있다. 두륜산의 옛 이름은 우리말로 큰 산이라는 뜻의 ‘한듬’이었는데 앞말을 한자어가 대신하며 ‘대듬’이 됐다가 읽기 편하게 대둔산으로 불렸단다.
현재는 백두산과 곤륜산에서 한 자씩 채용해 두륜산이 됐다. 숲이 온통 안개를 머금고 있어 아득하지만 망망한 바다 저편 한라산도 마주 보인다.
▲ 대웅보전 돌계단 사자머리 조각
▲ 서산대사 부도 지붕돌
▲ 표충사 정조대왕 글씨
▲ 대웅보전 원교 이광사 글씨
“취재요? 시방 광준디 내일 내려 갈께라!” 수화기 너머 도솔암에서 만나기로 한 스님의 굳은 약속은 아쉽게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조그만 암자는 스님이 아니라 신선이 다녀간 듯 조용하고 신비롭다. 기다리는 신도는 밖에서 합장하고 안에는 겨우 두 사람 정도만 들어가야 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암릉으로 된 봉우리들이 구름처럼 감싼 능선에는 온통 진달래나무가 심겨 있다.
▲ 미황사의 낙조
달마산을 병풍으로 삼은 미황사 대웅보전은 단청이 없는 청초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원래부터 색을 입히지 않은 건 아니다. 200년 넘게 바닷바람을 맞고 곱디고운 색이 날아갔다. 이 사찰의 창건 설화는 부도밭의 거북이·게 문양의 유래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신라 경덕왕 때 사자포구에 닿은 돌배에서 경전, 불상 등과 함께 나온 검은 돌이 갈라지며 소가 나타났는데 그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은 자리에 지어진 절이 지금의 미황사다. 이는 이 지역의 불교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인도에서 전래됐다는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며 부도의 문양이 바다생물을 취하고 있는 이유도 말해준다.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하듯 부도밭과 미황사 대웅보전 주춧돌을 잘 살피다 보면 귀여운 게·거북이·물고기 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첫댓글 [점심]의 뜻을 이제사 알았구만요 ^^
다음에 고향에 가면 달마산을 만나보고 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