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집이 있는 가평으로 향하던 지난 8월 초,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엄청난 양의 비를 퍼부었다. 자동차 앞 유리의 와이퍼가 쉴 새 없이 비를 걷어내도 시야는 흐릿했고, 남이섬 부근으로 접어들자 뿌연 물안개가 북한강변에 자욱하게 끼여 몽환적인 느낌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방송과 잡지에 소개되며 ‘가평 심혜진의 저택’으로 알려진 그녀의 집 근처에 다다르자, 거기서 금대리 방면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신축 리조트 쪽으로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심혜진이 남편과 함께 7년 동안 준비했다는 ‘리조트 빌라 32’를 구경시켜주고 싶다는 것. 리조트의 대문을 지나 골프장의 코스처럼 구불구불 잘 닦인 산책로를 통과하자, 열대풍의 원피스를 입은 안주인 심혜진이 “무슨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 건지, 그냥 온 김에 시원한 맥주나 한잔하고 가요! 이따 바비큐도 구워줄 테니까, 취재는 맑은 날 다시 하고!”라며 막 냉장고에서 꺼낸 캔맥주 하나를 건넸다. 듣던 대로 ‘화끈하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 그대로의 심혜진이었다.
공기가 좋아서 술도 안 취해, 동네 목욕탕은 심혜진의 아지트
가평을 제2의 고향이라 말하는 심혜진의 표정은 밝았다. 공기 좋고 평화로운 동네에 살면서 얼굴 찌푸릴 일이 뭐가 있느냐는 그녀의 씩씩한 목소리가 강가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공기와 섞여 더 상쾌하게 들렸다. 가평군의 강변을 끼고 9900㎡(3000평) 대지 위에 자리한 그녀의 집은 부부에게 삶의 터전이자 완전한 휴식을 제공하는 지상 낙원이다. 가평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그녀는 일단 동네 자랑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집이라죠. 게스트 룸도 넉넉해서, 서울서 오는 지인들은 놀러왔다가 늘 자고 간다고 하던데 남편이 워낙 발이 넓다 보니 남편의 지인들이 많이 오고 제 친구들도 자주 와요. 사업 파트너들, 일가친척들, 친구의 친구들도 오고, 집이 꽤 알려져서 가평에 놀러온 관광객들도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먼발치서 구경을 하더라고요. 둘 다 손님맞이에 아주 익숙해요. 아무래도 같은 도심 속에 살면 오히려 서로 방해받지 않으려고 피하게 되는데, 우리가 가평에서 자연하고 가깝게 살다 보니, 일상에서 벗어나 쉬고 싶은 지인들이 많이 와요. 근데 이것도 한철이라, 여름에 많이 몰리는 편이죠.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아요. 아, 가끔 자고 가라고 하면서 못 가게 하긴 하네요. 남편이 손님들을 새벽쯤 돼서야 풀어주기도 하죠(웃음). 제 손님이든 누구든 오기만 하면 저보다 우리 남편의 친구가 돼서 돌아가요. 하여튼 우리 집은 항상 열려 있어요. 정말 항상.
내내 서울에서만 살다가 결혼을 계기로 사는 곳을 옮겼는데, 언제 봐도 가평에 푹 빠진 느낌이에요 정말이지 전 가평이 무척 좋아요. 기자님도 여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느껴지지 않아요? 여기서 서울이 3~4시간씩 걸리는 거리도 아니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서울에 갈 수 있고, 사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다 느끼고 만끽할 수 있거든요. 조용하고, 산 있고 강 있고, 물안개가 피고,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 안 들리고. 무엇보다 제일 좋은 건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잠에서 깬다는 거예요. 굉장히 기분 좋은 알람이죠. 이런 건 절대 느껴보지 않고는 모르는 느낌이니까요. 공기가 좋아서 술도 잘 안 취해요. 나중에 기회 되면 가평으로 이사 오세요.
역시 가평 홍보대사답네요(웃음). 도회적인 심혜진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자연 예찬’이네요 전 정말 바빴던 전성기 때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을 좋아하고, 그런 곳에 살고 싶었어요. 제 정서상 시끄러운 곳보다는 분위기 있으면서 적당히 인적도 있는 곳을 좋아했거든요. 결혼해서 꿈꾸던 곳에 실제로 살아보니 정말 만족스러워요. 근데 만약 제가 30대였으면, 글쎄요. 아마 여기서 사는 걸 따분해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미 그 나이도 지났고, 한창때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서 그런지 지금은 그냥 이렇게 여유 있고 편하게 제 생활을 갖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생활 자체가 저에겐 휴식이에요. 따로 쉴 필요가 없을 정도로요.
심혜진 하면 아직도 화려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서,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가평 주민들은 의외로 소탈한 심혜진의 모습에 놀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여전히 어려워하세요. 근데 대중목욕탕을 자주 가면서부터 주민들하고 많이 친해졌어요. 하도 목욕탕에 자주 갔더니 제 남편은 목욕이 그렇게 좋으냐며 아예 집 안에 히노키탕을 만들어줬는데, 그거랑은 다르죠. 대중목욕탕 안에서는 여자들만의 사회가 형성되잖아요.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요. 특히 ‘요즘 같은 계절엔 무슨 나물이 맛있다’부터, 온갖 지역 정보며 생활의 지혜를 많이 얻어요. 가평에 오래 사신 분들과 목욕탕에서 어울리다 보면 배울 게 정말 많거든요. 제가 연예인이라서 그들과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잖아요. 자주 드나들고 소탈하게 하니까, 이제는 정말 동네 주민 대하듯 대해 주세요. 오히려 지나치게 절 궁금한 눈으로 보는 분들은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에요. ‘어? 진짜 심혜진이네’ 하면서 뚫어져라 쳐다보죠. 전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열심히 목욕하고 동네 분들과 수다를 떨죠(웃음).
심혜진이 럭셔리 리조트 대표로 취임한 이유
결혼하면서부터 줄곧 가평 예찬을 외치던 그녀는 최근 집 근처에 대규모 리조트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한길개발의 대표 직함을 달게 된 심혜진은 대지 규모만 약 9만9000㎡(3만 평)에 달하는 부지 위에 총 18세대가 입주 가능한 3개 동의 고급 리조트 공사를 마치고, 올 9월부터 분양을 앞두고 있다. 자기만 누리기 아까운 가평의 깨끗하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는 심혜진의 꿈은 사실 리조트 사업 너머에 있었다.
이제 대표라고 불러야 하나요. 사업가인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겠어요 에이, 이름만 대표지 실상 아무 힘도 없는걸요(웃음). 부부가 같이 하는 일이에요. 한 7년 전부터 준비한 거예요. 처음엔 우리 별장을 지으려다가, 이렇게 좋은 곳에 사람들이 많이 쉬러 오면 좋겠다 싶어 기분 좋게 일을 벌인 거죠. 지금 3개 동은 지었고 2~3년 안에 3개 동을 더 지을 거예요. 주거 시설(클럽 레지던스)도 더 만들고 셔틀버스도 운행할 거고. 솔직히 인테리어며 완공까지 실질적인 일은 남편이 다 했어요. 전 “이런 스타일은 어때?”라고 물어보면 “좋다, 나쁘다” 정도의 의견 제시만 했어요. 제가 좋고 싫은 건 분명히 말하는 성격이라 그런 건 도움이 됐을 것 같네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둘이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호텔이나 리조트를 많이 갔던 터라, 특별히 우리가 좋아했던 동남아나 유럽의 스타일을 떠올리면서 참고하기도 했고요. 여백과 절제를 통해서 동양적인 미를 살리기도 했죠. 근데 여기 자연환경이 워낙 좋으니까 거추장스러운 인테리어는 필요가 없더라고요. 방갈로, 레포츠 시설, 와인 저장고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어요. 여기 와서 가평의 환상적인 자연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 좋은 걸 우리만 누리기엔 아까우니까요.
리조트에 살게 될 새 이웃과 ‘절친’을 맺을 것 같은 느낌인걸요. 밤마다 모여서 술도 자주 마실 것 같고요 내 집이면 몰라도 술은 좀 자제해야죠(웃음). 만일 나더러 혼자만 가평에서 살라고 하면 외로워서 못 살 것 같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살잖아요. 여기에 입주하게 될 분들은 어느 정도 나이도 있고, 삶의 여유도 즐길 줄 알고, 자기만의 공간이나 시간들을 잘 활용하고 싶고, 어떤 순간엔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기도 할 거예요. 그런 걸 충족시키려면 모든 이들이 다 드나드는 곳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약간은 프라이빗한 느낌을 주면서도 같이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거라 기대해요. 여기 모여서 음악회나 전시회도 즐길 수 있는 거고, 여러 사교 모임도 생길 수 있는 거니까. 남편도 저도 그런 점을 은근히 바라고 있어요.
이걸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드는 건가요 사실 제가 원래 하고 싶은 건 예술 아카데미를 만드는 거예요. 요즘엔 주연을 맡거나 대단한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은 별로 없어요. 다만 배우로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끼 있고 꿈 많은 학생들을 제대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남편이랑 나누다 보니 리조트를 시작으로 해서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 보자고 계획을 세우게 된 거죠. 저는 예술에, 남편은 사업 쪽에 오래도록 몸담아 왔으니까 둘이 합치면 뭔가 될 것 같더라고요. 아직 구체적으로 구상을 한 건 아니지만, 이 모든 사업이 결국엔 예술가를 양성하기 위해 활용될 것 같아요. 리조트 사업은 크게 수익성을 기대하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학생들을 많이 키우려면 분양이 잘돼야 할 텐데, 안 되면 어쩌죠(웃음).
남편과 만난 지 올해로 10년, 그 세월 돌아보니…
“우리 혜진이가 오니까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네!” 부엌에서 먹을거리를 내오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심혜진이 자리로 돌아오자 남편 한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주변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닭살 멘트를 보내는 남편을 보며 심혜진 또한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홉의 나이 차가 무색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 두 사람은 온갖 희로애락을 겪으며 10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 도도하고 거칠 것 없던 심혜진은 자신보다 훨씬 자신만만하고 리더십이 넘치는 한씨의 호방함에 이끌려 그를 ‘최고의 남자’라 생각하며 열심히 ‘떠받들며’ 산다고 했다. 때론 “쳇, 내 마음도 모르면서!”라고 남편에게 툴툴대기도 하지만, “혜진이가 정말 좋아”라며 의외의 타이밍(예를 들어 새벽 2시에 홍합찜을 먹다가)에 애정을 고백하는 이 남자의 종잡을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남편을 만난 지 10년이 지났어요. 돌아보니 어떤가요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흘러갔어요. 사람이 참 망각의 동물이란 게, 이 사람을 만나서 갈등하고 힘들었던 시간도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좋은 기억만 가득한 거 있죠. 지난 10년이 어땠다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어요. 살다 보니 더 가까워지고 정말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유일한 친구이자, 오빠이자, 아빠이자, 남편이니까. 한마디로 제겐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에요.
살면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해 놀란 적은 없나요 아직은 없어요. 사실 우리는 결혼해 산 기간보다 동거한 기간이 훨씬 길어 그때 이미 다 본 것 같아요. 좋은 모습도 봤고 나쁜 모습도 봤고, 서로 모든 걸 다 본 거죠. 근데 제 남편은 살면 살수록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전 30대 후반에도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다 해도 모두 다 행복한 건 아니니까. 겉으로만 행복한 척하는 연예인들도 많이 봤고요. 그래서 결혼이란 걸 꼭 해야 하나 싶었거든요. 저는 직업적으로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얼마든지 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거든요. 내 인생에서 결혼이란 게 꼭 필요한가 싶었죠. 하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생각이 자연스레 바뀌었어요.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왔었나요 네. 잘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은 자신도 모르게 오는 것 같고요. 참 신기하죠. 결혼도 그래요. 남편과 이미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출장을 갔다 와선 “내년에 우리 결혼해야 해”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쿨하게 “알았어!” 하고 바로 잤어요(웃음). 다음 날 “그래도 약혼반지는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했더니 자동차랑 백금 반지를 주더라고요. 나중에 듣고 보니 남편은 ‘늙어서도 내 곁에 있어줄 사람은 혜진이밖에 없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서 프러포즈를 했대요. 근데 사실 전 한 번도 제 머릿속에 남편을 이상형으로 그려본 적이 없었거든요. 생긴 것부터 성격까지 제가 원하던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어요. 근데 결혼해서 살다 보니 남편이 우리 아버지랑 정말 비슷한 거예요. 깜짝 놀랐죠. 디테일하고 꼼꼼한 성격도 비슷하고, 심지어 글씨체도 비슷하거든요. 전 평소에 아버지를 좋아했는데, 신랑도 비슷한 스타일이어서 무척 좋은 거 있죠.
부러울 정도로 칭찬만 하는데요. 혹시 싸운 적은 없나요 왜 없겠어요. 둘 다 다혈질이라 많이 싸우기도 하는데 하루 이상 가본 적은 없어요. 거의 2시간 안에 자연스럽게 풀려요. (이 질문을 듣자 한씨는 “거의 내 쪽에서 잘못을 하니까, 인정도 내가 바로바로 하는 편이야. 나 같은 사람은 비는 것도 확실하게 하거든(웃음)”이라며 말을 거들었다.) 싸워도 어디 멀리 안 가고, 늘 집에 붙어 있으니까 금방 풀리더라고요.
남편을 만나면서 달라진 모습도 많을 것 같아요. 한결 여유로워졌다는 말도 많이 듣죠 예전에는 굉장히 독선적이고 감정적이었어요. 항상 극단적이고 좋고 싫음에 대해서도 분명했고, 이야기가 통하지 않으면 그 어떤 행위를 해서라도 의사를 표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참 대단했죠. 하지만 남편과 살면서 그런 걸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법에 대해서요. 무조건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남편과 10년을 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 거죠. 점점 남편의 성격이나 스타일을 닮아가더라고요. 남편도 “넌 왜 이렇게 나처럼 하니?”라며 웃어요. 제가 나이를 먹은 이유도 있겠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감정을 걸러내는 법도 배우게 되면서, 지금은 모든 사람을 내 감정 위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보고 맞추는 노하우를 알게 됐죠.
갑작스러운 언니의 죽음, 가족애가 더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
심혜진은 지난 3월, 친언니인 심명군씨를 혈액암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1980년대에 데뷔해 CF 스타로 유명했던 언니와는 ‘쌍둥이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외모도 비슷하고 정도 각별했던 터라, 심혜진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큰 이모부까지 돌아가시면서 그녀는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곁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의 힘으로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연이어 가족을 떠나보낸 그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남편과 아버지, 시어머니, 조카들에게 더욱 정성을 쏟게 되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할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음을 친언니를 잃은 후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을 치른 후 심혜진은 엄마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 21세, 19세의 두 조카를 집으로 데려와 두 달 동안 맛있는 밥을 해 먹이고 운동도 함께 하면서 가족의 정을 느끼게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심혜진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더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터키로 여행을 가자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얼마나 저를 챙겨주던지, 만약 남편이 없었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참 감사했죠. 요즘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말은 ‘카르페 디엠’이에요. 현재에 충실한 것만큼 인생을 잘 사는 방법도 없겠더라고요.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라도 언제 이별할지 모르는 거잖아요.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요.”
취재_김민주 기자 사진_하지영(studio lamp)
첫댓글 나도 이런 남편하고 살고싶당....ㅋ 여자팔자 ㄷ ㅇ ㅂ 팔자라더니.. 역쉬~ 이혼하고 재혼 할만하네.. 나두 성공할테야~ㅋ
행복한모습 부럽군요 좋은경치 많은분들이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가능하시다면 그곳에 좋은 슬로우 라이프 관련 교육프로그램(좀 대중적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