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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025_전남 구례군 광의면 천은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46 12.03.19 16: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중기인 828년(흥덕왕3)에 인도의 덕운(德雲) 스님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명산을 두루 살피던 중 지리산에 들어와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은사 중건 당시 지어진 극락보전 상량문에 의하면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쓰여지어 있으며..."당 희종 건부2년(875년)에 연기(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하였다. <唐 僖宗 乾符二載 緣起相形而建設 德雲因勢而增修.....>"고 쓰여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간행된 구례읍지에는 이 기록에서 창건주 연기는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의 별호인데 이것을 유래로 잘못해석하여 도선국사 이후의 스님인 덕운을 창건주로 왜곡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들이 도선국사가 창건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유학시 일행선사로 부터 3천8백 비보사찰을 중건 혹은 창건토록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신라 조정에 긴밀히 모의하여 신라 국토 곳곳에 사찰과 탑을 건립하였던 점을 생각하면 천은사도 바로 이러한 경우일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렇게 볼때 인근 화엄사의 창건연대(544년)와 비교해 볼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기 보다는 중창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천은사 입구의 커다란 방장산 山門 뒤엔 남방제일선원 이라고...]

따라서 창건주에 대한 기록은 밝혀진 바 없어 그 시기와 유래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절은 더욱 번성하여 충렬왕 때(1275~1308)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그후 계속해서 많은 수도자가 진리의 광명을 터득하는 수행처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고,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는 등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후 다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610년(광해군2)의 일이다. 당시 절의 주지 혜정선사(惠淨禪師)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하고 선찰로서의 명맥을 이끌어 나갔다.

뒤이어 1679년(숙종5)에도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 이로부터 절이름을 감은사에서 천은사로 바꾸었다. 1715(숙종41)에는 팔상전에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고, 1749년(영조25)에는 칠성탱화를 조성하였다. 1774년(영조50) 5월에는 혜암선사(惠庵禪師)가 그 전 해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각을 중수하면서 절을 새롭게 중창하였다. 혜암선사는 수도암(修道庵)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남원부사 이경륜(李敬倫)에게 도움을 구하고 산내의 여러 사찰과 힘을 합쳐 2년간에 걸친 중창불사를 원만히 이루어냈다. 지금의 가람은 대부분 이때 이루어진 모습이니 혜암선사의 중창은 절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 천은사홈에 저술되어있다.

[천은사 일주문...]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건물로 산사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써 절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다. 사찰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통과해야 하는 문이 일주문이다. 이 문은 기둥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 하는데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져 속세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적인 번민과 욕망을 벗어버리게 하는 의식적인 상징물로서 건축적으로는 일직선 기둥 위에 지붕만을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 일심(一心)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즉 일주문을 기준으로 해서 승과 속의 경계가 이루어지며 세간과 출세간, 생사윤회의 중생계와 열반적정의 불국토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일주문의 지붕은 대개가 다포계의 맞배 지붕을 하고 있으며 보통 소속 산문과 사찰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을 걸어 사찰의 소속과 격을 알린다

[수홍문옆으로 천은사 계곡이...]

[천은사 수홍루(垂虹樓)의 모습...]

일주문을 지나며 속세의 마음을 벗어 버려서 인지 마음도 가볍고 또 몸도 가벼운 느낌이다. 잠시 좌측에 작은 댐형식으로 조성된 지리산 담수호를 내려다보며 수홍루을 생각해 본다. 이제까지는 계곡물로 흐르다 이 피안교를 지나면 다함께 모여있는 담수호르 들어간다. 왠지 그생각을 하니 일주문을 다시 돌아나갈 때가 생각되는 것같다.

[천은사 감로천...]

[감로천 누각 지붕위...]

[천은사 불심원...]

[불심원앞뜰의 약수터...]

[불심원앞의 정원수...]

[불심원앞의 정원석...]

[천왕문옆의 고목뿌리...]

[천은사 천왕문...]

수홍루를 지나면 위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고 그 끝에 정면 3칸, 옆면 2칸의 천왕문(天王門)이 서 있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모셔놓은 전각으로 수행의 중간단계를 의미하며 속세의 잡귀가 불세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천왕문은 수행의 중간단계를 의미하는 불가의 세계인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의 궁궐을 형상화하여 세워졌다. 천왕문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이것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졌다. 사천왕은 33천중 요계 6천의 첫 번째인 사천왕천의 지배자로서 수미의 4주를 수호하는 신으로 호세천이라 하며, 수미산 중턱 4층급을 주처로 하는 신이다.

[천은사 운고루...]

[천은사 보제루(법요식 집회소)...]

[천은사 운고각 정면...]

보제루 오른쪽으로 도량의 중정(中庭-한 가운데 정원)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오른쪽 축대 위에 운고루(雲鼓樓)가 있습니다. 보통 루(樓)형식으로 예불시에 치는 사물이 걸려 있으며 흔히 범종루(梵鐘樓) 현판도 있다. 이 종각에는 예불이나 행사시에 치는 사물(법고·운판·목어·범종)이 있는데 조석 예불 시에 연주하여 그 소리를 통해서 세상에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승불교의 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운고각옆에 벚꽃과 동백이...]

[운고각안의 목어...]

[천은사 범종각...]

[천은사 설선당 뒷쪽(종무소)...]

[천은사 극락보전...]

보제루 맞은 편에는 극락보전이 있다. 극락전 혹은 극락보전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그 협시보살들을 모신 법당이다. 사찰에 따라서 미타전, 아미타전, 무량수전, 수광전이라고도 하는데 천은사는 대웅전 대신 극락보전이 사찰의 주된 전각이다. 극락보전은 1774년 혜암선사가 중수하면서 세운 전각으로서 조선 중기 이후의 전통적 다포계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되어있다. 높직한 방형의 장대석으로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민흘림의 둥근 기둥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준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민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걸고 공포를 구성하였는데 포작은 외 3출목, 내 4출목의 다포양식으로 상부에는 계두와 연봉이 붙어 있고 중앙칸 기둥 위로는 봉두장식이 있는 등 전반적으로 화려하다. 주간포(柱間包)는 각 간 모두에 2구씩 배치하였다. 가구는 5양구조로서 종량 위로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창호는 정면 3간 모두 3분합문으로 중앙칸은 소슬빗꽃살, 양 협간은 정자살과 빗살(중앙부)양식으로 되어 있다.

[천은사 극락보전과 석등...]

[천은사 보제루...]

[천은사 설선당 정면...]

[천은사 회승당...]

[천은사 응진당...]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안에는 석가불상을 중심으로 아난·가섭상이 좌우에 있으며, 그 밖에 16나한상과 인왕상 2체가 있습니다.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와 나한도 6폭이 있다. 응진당에는 16나한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중앙에 목조여래좌상 1구가 안치되어 있다. 나발의 머리, 이마의 백호·육계·계주가 보인다. 상호는 동그스름한 원만상이나 생동감이 없고 목에는 삼도가 보이며 법의는 통견이다. 가슴중앙의 내의가 일자형이 아닌 연화문으로 조식되었고 무릎을 덮은 군의자락이 파상문을 이루고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재료는 목재이며 조성 시기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천은사 응진당...]

[천은사 방장선원입구...]

[극락보전 뒷마당에...]
[팔상전과 관음전, 멀리 삼성전이...]

[천은사 삼성전...]

삼성전은 관음전 우측(향좌)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치성광여래상과 독성상·산신상·동자상 2체가 봉안되었으며, 불화로는 최근에 그려진 칠성탱화 및 연대가 분명치 않은 독성탱화·산신탱화가 있다. 한편 전에는 1749년(영조 25)에 조성한 칠성탱화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삼성전’과 함께‘칠성전’,‘산왕각’ 현판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삼성전은 관음전 우측(향좌)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치성광여래상과 독성상·산신상·동자상 2체가 봉안되었으며, 불화로는 최근에 그려진 칠성탱화 및 연대가 분명치 않은 독성탱화·산신탱화가 있다. 한편 전에는 1749년(영조 25)에 조성한 칠성탱화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삼성전’과 함께‘칠성전’,‘산왕각’ 현판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

[극락보전 뒷마당...]

[첨성각...]

[천은사 보리수나무...]

[보제루의 뒷면...]

[수홍루에서 본 다리...]

[천은사 일주문을 뒤쪽에서...]

날씨는 좀 흐려서 화창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왼지 마음이 후련해지는 까닭은 무었일까? 일찍 서둘러 와서 그런지 천은사를 다돌았는데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랜만에 성삼재를 넘어 지리산의 봄을 만끽하러 또 장장 긴산을 넘어본다. 산아래에는 어느봄이 나를 반겨줄런지?....하는 마음에 단숨에 노고단을 넘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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