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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콩깍지] 02 - 거짓말
#1S 카페 (낮)
정 미 (손 흔들며) 오빠! 여기야!
오 빠 (다가오며, E.) 정미야! 잘 갔다왔어?
정 미 내 친구들이야, 오빠. 인사해. (화기 애애)
은영 올려다보면, 정미의 남자친구가 경수다.
이때 인사하려던 경수도 은영을 보게 되고, 놀라는 두 사람.
경 수 (당황해서) 어?
은 영 어...? (순간 어리둥절해서 시선 돌리는데)
정 미 둘이 아는 사이야?
경 수 (약간 무게 잡고) 어, 니 친구니? (말투가 달라서인지,
은영을 대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게 정미를 대한다) (앉으며 인경
에게) 안녕하세요...
인 경 안녕하세요...? (은영을 보고)
정 미 (은영에게) 둘이 어떻게 아는데?
은 영 같이 선거 아르바이트 하다가...
정 미 오빠두 그거 해?
경 수 어... (난감한) 어떻게 여기서 만나네...? 반갑다.
은 영 그래...
인 경 저기 그럼 은영이 파트너두 누군지 아시겠네요? 어떤
애예요?
은 영 (얼른 인경의 옷을 잡아당기는데)
정 미 그래, 오빠가 그 괴물 같은 놈 좀 불러다 혼내줘. 얘가
파트너 잘못 만나 가지고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경 수 (!)너 그 동안 나한테 아주 불만이 많았나보다?
은 영 (순간 더욱 곤란해지는데) ....
정 미 (뭔가 찜찜해지며 은영에게) 그럼 둘이 파트너야?
은 영 으응...
경 수 근데 내가 어째서 괴물이냐? 니 입으로 그랬지? 괴물
이라고.
은 영 지금 그런 거 따질 처지가 아닐 텐데? 나한테 뭐 찔리
는 거 없니?
경 수 (순간 멈칫 하지만, 얼른) 내가 뭘?
정 미 (은영과 경수 번갈아 보며) 무슨 소리야? 왜 그래, 오
빠? 말해봐.
경 수 아무 것두 아니야...
정 미 (은영과 경수를 심상치 않게 보는데)
인 경 (생각보다 재밌게 됐네?) 그러니까 이게 춘천바닥이
너무 좁아서 생긴 일이네요... 그죠?
경 수 (애매한 미소) 아 예, 그렇죠.
정 미 (은영에게) 근데 너 왜 우리오빠한테 반말하니...? 이
오빠 삼수 했어.
은 영 (떨떠름한 미소) 넌 오빤지 몰라두, 난 그렇게 부르긴
좀 그렇다. 그만 가볼게. (일어나면)
정 미 어머, 얘, 왜 벌써 가...?
굳은 표정으로 빠져나가는 은영. 은영을 올려다보는 경수.
그런 경수를 의아해서 돌아보는 정미. 한 화면에 담겨지며. (화이
트 아웃)
#2S 소제목 -애니매이션
화면에 커다란 커서가 깜빡거린다. 386흑백 모니터 화면의 느낌.
컴퓨터 자판소리와 함께 자모음이 하나씩 더해지면서 소제목이 찍
힌다.
2. 거짓말
#3S 카페 밖 (낮)
거칠게 카페 문을 열고 나오는 은영.
은 영 (괘씸한) 기가 막혀서. 뭐? 여자친구가 없어? 사귀어
보자구?
은영 급히 가는데, 이때 인경이 쫓아 나오며,
인 경 은영아! 같이 가!
그럼 너... 그날 같이 있었다는 사람이 저 사람이야?
은 영 그날이라니?
인 경 왜, 하루 안 들어온 날 있잖아.
은 영 으응... 너 정미한테 그 얘기하면 안돼. 괜히 오해 살
라. 알았지?
인 경 알았어... (그러나 이상하다는 표정.)
#4S 동 카페 (낮)
정미 맞은편 자리로 옮겨 앉으며,
정 미 쟤가 왜 저러지...? 오빠 쟤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경 수 아니.
정 미 그 동안 은영이한테 뭐 실수한 건 없었지?
경 수 실수 할 게 뭐 있나...? 기집애가 원래 잘 삐지던데 뭘.
정 미 그럼 됐구... (삐치며) 참, 오빠 왜 스키장에 한번두 안
왔어?
나 안보구 싶었어?
경 수 보고 싶었지. (넌지시) 근데, 은영이랑은 어떤 친구
니? 둘이... 친해?
정 미 친하지. 우리 같은 고등학교 나왔어. 3년 내리 같은 반
하고.
경 수 (생각보다 친하군. 실망) 그래...?
정 미 (혼자 히죽 웃더니) 근데, 오빠 걔네 아버지 뭐하시는
줄 알어?
경 수 (관심 없다는 듯) 알어.
정 미 우리 고등학교 때 걔네 아버지가 학교 똥 꽁짜루 다 퍼
줘서 교장이 은영이 되게 예뻐했다. 웃기지? (*** 확인요)
경 수 (한심하다는 듯) 넌 그게 재밌니? 걔네 아버지가 딸 생
각해서 고생하신 건데, 그게 재밌어?
정 미 (금새 주눅이 들며) 아니, 안 재밌어... (하지만 이상하
다는 표정.)
#5S 춘천역 앞 (해질녘)
데이트는 투표 후에! 등산도 투표 후에! 젊은 일꾼 기호 3번 박준섭
을 국회로!
역광장의 멀티비전에서 선거송과 홍보화면이 흘러나온다. 봉고
차, 길가에 서면 경수 내린다.
조직, 가려는 경수를 불러 봉투 몇 개를 주며 귓속말을 한다. 매우
친밀한 태도. 봉고차 떠나고 경수, 역광장으로 간다.
선거복장에 띠를 두른 은영이 행인들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있다.
은영, 무심코 전단을 내밀고 보면, 경수다.
은 영 (뚱하니 외면하며) 니 여자친구 괜찮더라? 이쁘구?
경 수 (무안한) 어... 뭐,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더니, 진짜
그러네...?
은 영 너 다른 데 가서도 여자친구 없다고 허위광고하고 다
니니?
경 수 허위광고라니. 그럴 수도 있지. 너 나비가 한 꽃에서
만 꿀 따는 거 봤냐?
은 영 뭐? 나비? 똥파리 주제에...
경 수 (되려 더 뻔뻔한 태도로 나가며) 야, 내가 어딜 봐서 여
자친구가 없을 거 같냐? 여자가 줄줄 따르면 몰라두. 너 그 말 진
짜 믿었어?
은 영 (기가 막혀) 정미 걔 괜찮은 애야. 불성실 하려거든 사
귀지 마.
경 수 (찔끔하지만 딴척하며) 뭘 오해하는 모양인데... 나 걔
랑 사귀는 거 아니야.
은 영 뭐? 키스까지 했다면서 아니라구?
경 수 (당황하지만) 키스... 그래... 키스 그거 몇 번밖에 한
거 없어.
은 영 (기겁하는) 몇 번밖에?
경 수 걔가 좋다구 막 달려드는데, 어떡하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만나주는 거야.
은 영 너 참 뻔뻔하다. 백일기념으루 여행가는 게 그냥 만나
는 거니?
경 수 (움찔하지만) 여행...? 그것두 걔가 막 가자고 하는 통
에 아주 미치겠다. 무슨 여자가 막 덤비는지...
은 영 너 아주 못쓰겠다? 정민 내 친구야. 내가 잘 알어. 둘러
댈 걸 둘러대야지...
경 수 너... 나한테 관심 있니?
은 영 뭐?
경 수 그렇지 않고서야 왜 꼬치꼬치 따지니? 남의 일을?
은 영 (기가 막혀) 그게 남의 일이니? 내 친구 일이지?
경 수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아직 실망하진 마라. 이 오빠
가 너한테도 기회를 줄게.
은 영 난 정미 친구야. 예의를 지킬래? 그리고 같은 여자로
서 경고하는데, 너 그렇게 살지마. (돌아선다.)
은영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행인들에게 전단 나눠주는데,
뻘쭘해진 경수 전단 챙긴다. 이때 경수 앞에 나타나는 목발 짚는
걸인.
걸 인 (손 벌리며 구걸하는) 학생. 조금만 도와줘...
경 수 예? (주머니 뒤지며, 곤란한) 제가 지금 돈이 없는데...
걸 인 배가 고파서 그래...
경 수 저기, 저도 가난한 학생이에요... (도움 청하듯 은영을
보면)
은영은 힐끔 돌아볼 뿐 관심 없다.
걸 인 어제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어. 조금만 도와주면...
경 수 (주머니 다시 뒤지는데) 이거 어떡하지...? 나두 없는
데... (그러나 안주머니에서 돈봉투-1씬에서 보였던 것과 같은- 딸
려 나온다.)
걸 인 (봉투를 간절히 보고)
경 수 이건 제 께 아니라서요... (주머니에 다시 넣으려는데
눈이 마주친다. 곤란하다. 갈등) 아이, 참, 이건 안 되는데...
은 영 (뭔가 싶어 또 불안해서 다가오고)
경 수 에이, 할 수 없지. (봉투에서 만원 짜리 한 장 꺼내는
데)
은 영 (안 된다는) 야아~.
경 수 나중에 채워 넣지 뭐. (걸인에게) 자요. (하면서 건네
준다.)
이때 어디선가 후레쉬 터지면서, 찰칵 사진이 찍힌다.
경수와 은영 놀라서 보면, 돈을 받은 걸인은 어리둥절해서 보다가
목발 들고 뛰어서
사라지고, 카메라를 맨 사내1과 사내 몇이서 달려들어 순식간에 경
수의 목덜미를 잡아챈다.
(1부에서 돈 봉투 사건으로 쫓아오던 그 사내다.)
사 내1 (잡아채며) 너 요놈. 드디어 잡았다.
경 수 아저씨, 왜 이러세요? 이건 아니에요.
사 내1 (봉투 뺏어들며) 증거가 이렇게 확실한데, 아니야? 가
자, 이 놈아.
경 수 (사내1에게 질질 끌려가며) 아저씨, 제 말 좀 들어보세
요. 은영아!
순간 경수네 선거원들 달려들어 경수를 구출하려 하지만 역부족이
다.
은 영 어? 어...? 경수야..!
#6S 선거사무실 밖 (밤)
건물에서 몇 명의 사내와 급히 나오며 버럭 소리지르는 조직부장.
조 직 넌 뭐하고 있었어? 옆에서 구경하라고 둘이 보낸 줄 알
아?
(봉고차에 오른다.)
억울한 은영, 얼른 조수석에 올라타고, 차 떠난다.
#7S 경찰서 앞 (밤)
입이 나온 은영이 같이 온 사내들과 서성거리면, 조직부장과 경수
가 함께 나온다.
경 수 (끌려갈 때 다쳐서 얼굴에 상처가 난) 죄송합니다.
조 직 (골치 아픈) 가까스로 선관위에 고발되는 건 막았는
데, 내일부턴 나오지 마라.
경 수 네?
은 영 (차라리 잘됐다 싶은데)
조 직 그 동안 수고했다. (봉고차로 가려는데)
경 수 (쫓아가며) 저기, 다음부터 이런 일없게 잘 할 수 있는
데요.
조 직 안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한번만 더 눈에 띄면, 너
고발되는 건 둘째치고, 후보님 당락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어.
몰라서 그래?
경 수 ....
조 직 (냉정하게 차로 가는데)
경 수 (따라가며) 저기, 그럼 오늘까지 일한 보수는 어떻게
되나요? 지금 좀 받았으면 좋겠는데요...
조 직 지금은 그렇고, 나중에 은영이를 통해서 줄테니까. 그
렇게 알고 있어.
경 수 제 걸 왜 쟤한테 줘요?
조 직 넌 정식으로 등록된 운동원이 아니잖아. 네 통장으로
바로 들어갈 순 없으니까, 어쩔 수 없어.
경 수 (어리둥절 수긍) 예...
조직부장과 사람들 봉고차에 타고 가버리고, 은영과 경수만 쓸쓸
히 남는다.
은영 뚱하니 힐끔 볼 뿐 말이 없다.
경 수 (은영에게로 오며) 미안하다. 괜히 나 땜에... (풀이 죽
은)
은 영 (그런 경수를 보다가 외면) ...
경 수 잘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주머니 뒤적이며) 참, 볼
펜 있냐? 내 연락처 적어줄게.
은 영 (말없이 수첩과 펜 꺼내주면)
경 수 (적으며) 내가 좀 급하거든? 돈 나오는 대로 바로 연락
줘야 된다.
은 영 알았어. 누가 니 돈 떼먹을까봐? 온라인 번호도 적어.
경 수 그건 지금 모르는데?
은 영 그럼 나중에 전화할 테니까 그때 불러 줘.
경 수 (섭섭한) 너 다시 안 만날 것처럼 그런다? 우리가 또
만나야지, 은행 수수료를 아깝게 왜 무냐? 그 일 아니어도 종종 보
자. 언제든지 연락해.
은 영 (받아 넣고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갈게. (간다.)
가버리는 은영을 아쉽게 보고 있다가 돌아서는 경수. (F.O)
#8S 은영집 전경 (낮)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집 전경.
#9S 은영집 거실 (낮)
난초 잎을 걸레로 꼼꼼하게 닦고 있는 은영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소리.
아너운서 (E) 전국적으로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국 만5천백87
개의 투표소에서 일제히 투표가 개시되면서 1992년 14대 총선은
현재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국의 2천9백만 유권자
들은 이른 아침부터 가족과 함께 투표소에 나오는 등 비교적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집계된 기록으로 보면 예전보
다 높은 투표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은영, 2층에서 하품을 하면서 내려온다.
은영부 선거운동은 열심히 해놓고 투표는 안 하니?
은 영 있다가 나가는 길에 하지 뭐...
은영모 (과일 깎으며) 밤늦게 돌아다니더니, 그놈의 선거운동
끝나서 속이 다 시원하다.
은 영 ....
은 호 (과일 먹으며) 누나 월급 받으면 용돈 좀 줄 거지?
은 영 바랠 걸 바래라? (힘주어) 엉뚱한 생각이나 하면서. 그
러니 공부가 제대로 되겠니?
은 호 (찔끔해서 일어서고 피하는데)
은영부 엉뚱한 생각이라니?
은 영 (은호랑 시선 마주치자) 아니에요.
#10S 옷가게 (낮)
봄옷을 고르고 있는 은영과 인경.
인 경 (옷을 대보며) 어때?
은 영 (고개 젓는다.)
인 경 이건?
은 영 (보는데)
정 미 (E) 이거 어떠니?
은영과 인경, 돌아보면,
거울 속으로 정미가 커플티 두개를 들어 보인다.
정 미 (속삭이듯) 오빠랑 여행갈 때 같이 입게.
인 경 괜찮다.
정 미 자전거 타고 제주도 일주하기로 했거든. 생각만 해도
근사하겠지? 참, 니들하고 같이 간다고 할거니까, 나 여행 갔을 때
우리 집에 전화하면 안 된다?
은 영 난 거짓말 못하는데...
정 미 (은영을 빤히 쳐다보자)
은 영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어.
정 미 (옷을 다시 몸에 대보는데)
은 영 (조심스레) 정미야, 너 여행 진짜루 갈 거야?
정 미 (멋쩍게) 응.
은 영 아직은 좀 그렇지 않니? 더 사귀어보고 나중에 가지 그
래?
정 미 ... 그냥 오빠 믿을래.
은 영 안돼, 너. 믿을 사람이 따로 있지, 어떻게 그런 앨 믿
니?
정 미 (돌아보며) 그런 애라니...?
은 영 아무튼... 니네 오빠...
정 미 (섭섭한) 너 왜 경수오빨 그렇게 안 좋게만 보니? 우리
오빠한테 뭐 기분 나쁜 일 있었니?
은 영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내가 보기엔 좀 아닌 거 같애
서...
정 미 뭐가?
은 영 그 사람...
정 미 우리 오빠가 뭐?
은 영 바람둥인지도 모르잖아.
정 미 바람둥이? (잠시 생각, 표정 험악해지며) 거기서 선거
운동 하다 어떤 년이랑 무슨 일 있었니?
은 영 (뜨끔하며) 아~니.
정 미 있었으면 말해봐.
은 영 아니야. 그냥 그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구...
정 미 정말이지...?
은 영 그럼... (웃는다.)
그런 은영을 이상하다는 듯 보는 인경.
<<<뮤지컬 넘버2 - 가게 점원의 노래>>>
너희가 남자를 아느냐? (신중하게 생각해요)
(대사)
점원; 나도 젊었을땐 동네 제일가는 미인이였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어.
그런데 내 인생에 갑자기 남자가 나타난거야
그 후로 나의 모든 꿈은 끝장이 나 버렸어.
옆가게 점원3; 여자의 인생이란 순식간에 바뀌죠. 남자를 만난 후
에
애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아줌마가 돼 버렸죠.
점원; 예나 지금이나 남잔 다 똑같애
손님4; 남잔 다 똑같애
점원; 처음엔 달콤하고 꽃도 보내주지만
옆가게 점원3; 그것도 잠시뿐야
아이를 유모차에 끌고 업고 한 아줌마 3; 어느새 설거지에 빨랫감
에
점원; 아기는 울어대죠.
신중하게 신중하게 생각해요.
(간주/간단한 안무/대사)
점원;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보고 다 해봤지만
남은건 거칠어진 피부, 뚱뚱해진 엉덩이.
옆가게 점원3; 여자의 인생이란 순식간에 바뀌죠. 시집가고 나면..
애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지나던 할머니3; 할머니가 돼 버렸죠.
점원; 예나 지금이나 남잔 다 똑같애
손님4; 남잔 다 똑같애
점원; 처음엔 달콤하고 꽃도 보내주지만
옆가게 점원3; 그것도 잠시뿐야
아이를 유모차에 끌고 업고 한 아줌마 3; 어느새 설거지에 빨랫감
에
점원; 아기는 울어대죠.
신중하게 신중하게 생각해요.(은영, 정미를 자꾸 쳐다보고)
신중하게 신중하게 생각해요.
신중하게 (대사)
신중하게 신중하게 생각해요.
#11S 도서관 (낮)
칸막이 안. 책에 붙어있는 도서관 바코드를 살짝 떼어내고 버리는
경수.
그 책을 가방에 슬쩍 넣는데 뒤에서 나타난 정미가 경수의 두 눈
을 가린다.
경수 깜짝 놀라면, 정미 키득대며 손을 떼는데,
경 수 (소근소근) 놀랬잖아! 니네 학교 가지, 왜 남의 학교 와
서 그래?
정 미 (옆자리에 앉아, 쇼핑백에서 옷 꺼내는) 오빠, 내가 옷
샀다. 맘에 드나 봐봐.
경 수 (옷 보며) 괜찮네.
정 미 참, 오빠 혹시 다른 데 가서 여자들한테 잘해주고 그러
는 거 아니지?
경 수 응? 내가 잘해주기까지 해봐라. 큰일나지. 지금도 여자
들이 줄줄 따라서 문젠데.
정 미 정말이야? 여자들이 줄줄 따라? (심상치 않은 표정)
경 수 ... 아냐, 농담이야.
정 미 (옷 집어넣으며) 근데 은영이한텐 좀 잘해주지 그랬
어. 오빠가 고생시켜 가지구, 걔 오빠 되게 미워하는 거 같더라.
경 수 그 이상 뭘 더 잘해주냐? 고생은 내가 더 많이 했다.
걔 때문에. 이상한 애네...
정 미 아무튼 걔가 자꾸 오빠랑 여행가지 말라는 통에 정말
괴로워.
경 수 그래...? ...뭐, 걔 말도 일리는 있지. 우리가 지금 여행
갈 때냐? 시국도 어수선하고, 경제도 안 좋은데?
정 미 갑자기 왜 그래?
경 수 아니, 뭐 그렇단 얘기지... (말꼬리 돌리며) 배고픈데,
나가자. 오빠 밥 좀 사주라.
정 미 (여행 얘기 끊겨서 찜찜한) 어? 어...
가방 챙겨서 일어나는 경수. 찜찜한 표정의 정미 (화면 뒤집히면)
#12S 은영방 (밤)
의심에 찬 인경의 얼굴이 나타난다.
은영은 츄리닝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는데, 인경은 외투만 벗어든
채 앉은 상태,
인 경 너... 솔직히 경수오빠한테 마음 있지?
은 영 뭐?
인 경 그래서 정미 여행 못 가게 말리는 거 아니니?
은 영 얘가 왜 이래?
인 경 너 저번에 그랬잖아. 같이 지내보니까 그 사람두 괜찮
다고.
은 영 (흥분하는) 그건 그때 얘기지. 누가 정미 남자친군지
알았냐? 그놈이 정미하고 사귀면서 나한텐 뭐라 그런 줄 알어?
인 경 뭐라 그랬는데?
은 영 자긴 여자친구 없다구 한번 사겨보자 그러더라.
인 경 어머, 어머... 문제 있는 놈이네?
은 영 (오바하는) 시골집에서 묵었던 날. 그 날은 내가 무서
워서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야.
인 경 왜?
은 영 글쎄 갑자기 자다말고 이 놈이 키스를 하자는 거야.
인 경 어머머머... 그래서?
은 영 그래서는 뭘 그래서야. 정미도 처음에 그렇게 넘어간
것 같애.
인 경 진짜 문제 있네? 안되겠다, 정미 말려야지. 어떻게 그
런 놈을 믿고 여행을 가니?
은 영 (곤란한) 근데 너 이런 얘기 정미한테 절대루 하면 안
돼. 걔 기분 나쁠 거 아냐.
인 경 그럼, 당연하지. (한술 더 떠) 근데 여행이 문제가 아니
라, 아예 헤어지게 해야 되는 거 아냐?
은 영 내 생각두 그래.
이때 문이 열리면서 은호 나타난다.
은 호 누나 공부 안 해?
인 경 (일어나며) 어, 시작하자.
은호와 인경 나가면, 은영 괜히 말했나...? 하는 찜찜한 표정.
#13S 자취집 마당 (밤)
경수 들어와 주인집을 피해 살금살금 자취방으로 향하는데,
이때 나타나는 주인아줌마.
아줌마 경수 학생! 경수 학생!
경 수 (똥 씹은 표정. 이내 미소로 바뀌며) 안녕하셨어요.
아줌마 영진이 학생도 그렇고, 요즘 둘 다 통 얼굴보기가 힘들
어? 들어와서 잠은 자?
경 수 그럼요.
아줌마 (좀 껄끄러운) 방세 안낸 거는 알고있어요?
경 수 그러문요. (어떻게 뭉개보려고 히죽 웃으며) 저기요,
그게요... (험악한 표정 보고는) 곧 드리겠습니다.
아줌마 가버리고 나면, 경수 착잡한 얼굴이 된다.
#14S 동네 전화부스 (낮)
전화를 하고 있는 경수. 크레인 부감
경 수 아버지세요? 저 경수예요. (사이) 예, 잘 있어요. (사
이) 저기, 아버지! 이번에 등록 못하면 군대가야 되거든요?
#15S 경수부 회사사무실 (낮)
경수부 (전화) 추가등록기간이 언제까지라구? (사이) 그래, 알
았다.
수화기 내려놓고 잠시 생각하는 경수부. 사내 점퍼차림이다.
창밖엔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데, 건물 앞에 광부복장의 노동자
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체불임금 지급하고, 폐광신청 철회하라." "경영부실 책임지고, 동
자부는 각성하라.
부 장 (E) 서과장!
경수부 예, 부장님.
보면, 부장이 경수부보다 훨씬 젊다.
부 장 (턱짓으로 밖을 가리키며) 기자들 몰려오면 모양세가
안 좋으니까, 서과장이 내려가서 해결 좀 해야겠어.
경수부 예, 잘 알겠습니다.
부 장 부탁해요. (간다.)
착잡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려다보는 경수부. 점퍼자크를 채워 올
리고는 돌아선다.
#16S 동 빌딩 앞 (낮)
빌딩 현관 앞에서 수위들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건물 진입을 막아
내고 있다.
양쪽의 몸싸움 계속되고 노동자들 구호소리 더욱 높아진다.
"폐광으로 이득 보는 자본가는 물러가라!" "재취업 보장하고, 이직
자금 지급하라!"
"광산쟁이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 "부당해고 철회하
라" "어용노조 분쇄하자"
내용의 피켓 보이고, 노동자들 '막장을 간다' 라는 노동가를 부른
다.
*** 막장을 간다.
태백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한맺힌 막장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막장
상처입은 광부를 나는 잊었나
광부여 들리는가 한맺힌 이 함성
광부여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경수부, 곤혹스런 표정으로 수위들 사이로 나선다.
경수부 (노동자에게) 여러분, 돌아들 가세요. 여기 와서 이러
문 안돼요. 상황만 더 안 좋아져요.
노동자1 (경수부와 비슷한 연배. 뒤에서 삿대질하며) 야! 서문
택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
경수부 폐광대책비 받으면 다 잘될 거예요, 형님. 돌아들 가세
요.
노동자2 (역시 비슷한 연배. 경수부 코앞에서) 얼마 전까지 같
이 탄밥 먹던 생각을 해봐! 니가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노동자1 너 말고, 사장 나오라 그래, 사장!
일 동 그래, 사장 나오라 그래!
경수부 왜들 이래... 사장님 지금 안 계셔...
그 사이 경수부와 노동자 1, 2의 대화 중에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
젊은 노동자3과 수위1이 몸싸움을 하다 욕을 주고받고 급기야 '너
몇 살이야? 새끼야'
'이게 어디서 욕을 해? 이 깡패같은 새끼...' 하더니 급기야 주먹이
오고가고,
광부들,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과 헬멧을 벗어서 휘두른다.
급기야 양쪽이 서로 밀어붙이며 엉키게 되는데,
경수부, 사람들에 밀려 자꾸 노사 양쪽의 중간 접경지역으로 밀려
들어간다.
양쪽으로부터 밀쳐지고 맞기도 하는 경수부. (부감. 지미집)
이때 갑자기 뒤쪽에서 고함소리 나더니,
노동자4 온몸에 신나를 붓고 라이터를 든 손을 내밀고 나타난다.
순간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놀란 사람들 말을 잃고 좌우로 흩어진
다.
노동자4 (비장한) 광산쟁이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 부당
해고 철회하라!
노동자4, 라이터를 켤 듯이 비장한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 말리려고 하면서도 겁이 나서 거리를 두고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데,
마침내 노동자4, 라이타를 켜는데 비가 와서 켜지지 않는 라이터.
사람들, 비 내리는 하늘을 잠시 쳐다보고는 노동자4에게 뛰어들어
라이터를 뺐는다.
갑자기 안도의 표정과 함께 힘이 쭉 빠지며 멍해지는 경수부의 표
정.
#17S 대학 복지과 사무실 앞 (낮)
영진이 기다리고 있으면, 경수 사무실에서 나온다. 표정 시무룩하
다.
영 진 뭐래?
경 수 근로장학금도 등록을 해야 신청할 수 있다는데?
영 진 추가등록기간에 등록할거라고 얘기하지.
경 수 안된대...
영 진 그럼 어떡하냐...?
경 수 어떻게 되겠지. 등록 못하면 군대나 가지 뭐...
근데 선거 끝났는데, 얘는 왜 연락이 없지? 돈이 나왔
을 텐데...?
#18S 시민회관 앞 광장 (낮)
정미가 위태롭게 자전거를 타고 있고, 인경이 뒤에서 잡아주고 있
다.
인 경 야, 너 자전거도 못타면서 무슨 자전거 일주를 한다고
그래?
정 미 오빠가 가르쳐주기로 했어. 금방 배운댔어.
인 경 무슨 소리야? 위험하기도 하고, 안돼. (눈치보다) 저
기, 정미야, 은영이가 그러는데...
정 미 (이때 경수 발견하고) 어머, 오빠! 이제 오면 어떡해?
경 수 (달려오며) 안녕하세요, 인경씨.
인 경 (별로 탐탁지 않은) 안녕하세요... (소근대며) 야, 니
네 오빠 오기루 했다는 말 왜 안 했어...?
정 미 (인경에게) 뭐, 어때? (경수에게) 오빠! 오빠가 잡아주
라.
경 수 어, 그래. (인경과 역할 바꾸며) 내가 할게요. 와! 인경
씨, 머리 그렇게 하니까 진짜 이쁘다. 앞으로 그렇게 하고 다녀요.
(자전거 따라 간다.)
인 경 (속마음, E) 아니, 저 인간이 이제 나한테까지? (못마
땅해서 얼른 따라가며) 저기, 정미야. 그럼 난 그만 가볼게.
정 미 (계속 타며) 왜? 있다가 같이 영화나 보자.
인 경 영화?
경 수 오늘 은영이는 안 오니?
정 미 걘 늦게까지 수업 있어.
경 수 그래...?
인 경 영화는 둘이 봐. 난 갈게.
경 수 아니에요. (정미에게) 인경씨랑 둘이서 봐라. 오빠가
아는 선배 좀 만날 일이 있었는데 잊었구나. (인경에게) 좀 잡아줄
래요?
인 경 예?... (하면서 자전거 잡게 되고)
정 미 (멈춰 서며) 오빠! 어디 가는데? 오자마자 그냥 가면
어떡해?
#19S H 대학, 1층 강의실 (낮)
언론학 수업을 받고 있는 은영. 필기하며 강의에 열중하는데,
이때 학생들 웅성거리더니,
옆 남학생이 은영을 툭툭 치며 턱짓으로 창 밖을 가리킨다. 은영
보면,
창밖에 '최은영 좀 불러주세요!' 라고 적힌 노트를 흔들며 경수가
은영을 찾고있다.
순간 놀라서 당황하는 은영.
이때 은영을 발견했는지, 은영아! 은영아! 부르며 반갑게 펄쩍펄
쩍 뛰는 경수.
그 모습 위로 교실 안에 와르르 터지는 웃음소리.
창피하기도 하고, 죽을 맛이 되는 은영.
#20S 동 건물 밖 (낮)
은 영 너 왜 그래? 나랑 무슨 웬수졌니? 남 수업 받는데 와
서 웬 소란이야?
경 수 3시간 연강이던데, 어떻게 기다리냐... (되려 신경질)
아, 그럼 전화번호래두 갈켜 주든가! 나는 뭐 한가해서 여기까지
왔겠냐?
은 영 누가 오랬어? 누가 기다리래? 별꼴이야, 증말...?
경 수 (열 받지만) 미안하다.
은 영 무슨 일인데? 빨리 말해.
경 수 아니... 선거 끝났는데, 왜 연락이 없냐? 돈은 받았어?
은 영 내일 준대.
경 수 그럼 진작 연락이라도 해주지. 내일 어디서 만날까?
은 영 만나긴 뭘 만나? 온라인으로 보내줄테니까 계좌번호
나 적어 줘.
경 수 되게 냉정하게 그런다?
은 영 빨리.
경 수 알았어... (노트 찢어 적으며) 너 며칠 안본 사이에 디
게 이뻐졌다?
은 영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 (받으려하는데)
경 수 (종이 안주며) 언제 끝나니? 여기까지 왔는데 기다렸
다 같이 밥이나 먹자.
은 영 (종이 잡으려하면) 빨리 줘.
경 수 (못 잡게 치우며) 내가 너한테 그깟 돈이나 받을라구
왔겠냐? 맛있는 거 사줄게.
은영, 억지로 달려들어 종이를 채간다. 이때 들리는 소리.
정 미 (E) 오빠! 여기서 뭐해?
은영과 경수 돌아보면, 정미와 인경이 서있다.
은영은 난감해서 애매하고 미소짓고,
경 수 (얼떨결에) 어? 너 자전거 연습 안 해?
정 미 (말없이 와서 종이 보며) 그게 뭐야?
은 영 어... 온라인번호. 저기, 난 수업중이라 들어가봐야 되
거든? 나중에 보자... (얼른 돌아선다. 괴로운 표정.)
정 미 (경수 뜩 보더니) 오빠 이상하다? 선배 만나러 간다면
서, 은영이가 선배야?
경 수 어? 아, 선배 만나러 가다가 은영이도 잠깐 본거야...
정 미 근데 왜 나한텐 그런 얘기 안했어?
경 수 어? 저기... 그건...
정 미 오빠 일루 와봐. (경수를 끌고 간다.)
경 수 왜 그래... (끌려가고)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는 인경.
#21S 교정 다른 곳 (낮)
경 수 (정미에게 끌려오면서) 정말이야! 돈 받으러 왔다니
까? 우리 여행도 가야하고 그래서...
정 미 (놓고는) 근데 왜 거짓말을 해? 돈 받을 일이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하고 만나면 되지?
경 수 니가 오해할까봐 그랬지. (이제까지 정미를 대하던 태
도와는 다른 수세적인 태도.)
정 미 내가 무슨 오핼해? (순간 잠시 생각) 이상하네? 둘이
무슨 일 있었어?
경 수 아니. 일은 무슨...?
정 미 아니야. 그러고 보니 은영이도 좀 수상해. 무슨 일이
야?
경 수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정 미 아무 일도 없었으면 왜 나 몰래 만나? 둘이 분명히 무
슨 일 있었어. 빨리 말해.
경 수 미치겠네. 우린 깨끗해. (답답하다는 듯) 정말이야! 얼
마나 깨끗하면, 한방에서 잠을 자두 아무 일이 없었겠냐?
정 미 (눈이 동그래지며) 한방에서 자다니?
경 수 어? 어... 선거운동 하러갔다가...
정 미 선거운동 하러 가서 뭐?
경 수 말하자면 길어... 어쨌건 그날 고생 무지하게 했다. 날
은 추운데, 농가는 띠엄 띠엄 있지...
정 미 농~가?
경 수 어... 한군데는 갔더니 또 빈방이 없대요, 그래서...
정 미 빈~방? 그래서? 둘이 뭐했는데?
경 수 뭐 하긴...? 그냥 잤지, 피곤해서...
정 미 뭐? 오빠 솔직히 말해봐. 그날 무슨 일이 있었지?
경 수 얘가? 여태까지 얘기했잖아.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정 미 정말 아무 일 없었어?
경 수 그럼.
정 미 정말이지? 내 눈 똑바로 보고 얘기해.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경 수 그렇다니까...
오히려 의혹이 짙어지는 정미의 표정.
#22S 은호방 밖 (밤)
은호와 인경 공부를 하는데,
은호, 인경의 브라우스 가슴 근처에 붙은 실밥을 떼어준다.
인 경 (화들짝 놀래) 왜?
은 호 뭐가 붙어서...
인 경 (은호 손을 확인하며) 어디 봐봐. 정말이야?
은 호 버렸지...
인경 의심스러운 눈 흘기고는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다시 문제 풀
이하는데, 이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은영모 (E) 은영아! 정미 왔다! (정미에게) 올라가 봐라. 방에
있을 거야.
인 경 (그 소리에 멈추며)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은 호 뭐가?
인 경 (책 덮으며) 아니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은 호 웬일이야, 누나? 이뻐 죽겠어. (기습적으로 볼에다 뽀
뽀한다.)
인 경 (밀치며 일어나는) 얘가?
#23S 동 2층 복도 은영방 앞 (밤)
은호의 방문이 빼꼼히 열리고, 인경이 분위기 살피는데,
계단에서 올라온 정미, 은영의 방문을 불쑥 열고 들어가면,
이윽고 인경이 나온다. 은호도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나오고,
인경이 은영 방문까지 와서 엿들으면, 은호 따라와 무슨 일인가 싶
다.
인 경 (은호를 밀쳐내며, 소근소근) 넌 저리 가.
그러나 은호, 다시 와서 인경을 안 듯이 뒤에서 밀착하고 함께 엿
듣는다.
#24S 은영방 (밤)
정미 들어온 상태로 잠시 서있고,
은 영 (장롱에 옷을 걸다가 눈치 살피며) 웬일이야...? 쥬스
라도 줄까?
정 미 (마치 자기 방인 양) 아니. 너 이리와! 앉어!
은 영 (책상의자 돌려주고, 침대에 엉거주춤 걸터앉으며)
어... 너두 앉어.
정 미 (앉지 않고) 나 속일 생각하지마. 너 우리오빠랑 한 방
에서 같이 잤다며?
은 영 (놀라서 멈칫하고는) 어?... 인경이가 그러디...?
정 미 뭐? 인경이까지 알면서 같이 날 속였니?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인경이 들어오며,
인 경 (은영에게) 아니야,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왜 나한테
그러니...?
정 미 (은영에게) 아무튼 그날 오빠랑 무슨 일이 있었지?
은 영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정미야, 일단 앉아봐. 좀 차
분차분 말해보자.
정 미 나 지금 차분한 상태 아냐. 니가 먼저 오빠한테 꼬리쳤
니?
은 영 어머, 별 소릴 다 듣겠네? 경수 걔가 그러디? 내가 꼬
리쳤다구?
정 미 꼬리 쳤어? 안쳤어?
은 영 꼬리 친 건 그 자식이야. 내가 왜 걔한테 꼬릴 치니? 기
가 막혀서 진짜.
정 미 뭐? 오빠가 꼬리를 쳐?
인 경 그래, 은영인 아무 잘못 없어. 그날 얘, 은영인 밤새 한
잠도 못 잤대.
정 미 왜 잠을 못자?
인 경 그 오빠가 갑자기 키스할려구 그래서 무서운데 어디 잠이
오겠니? 너 그 사람 만나지 마. 아주 질이 안 좋은 놈이야.
정 미 (더욱 놀라며) 뭐...? 키스를 해...?
은 영 아니, 키스를 한 게 아니구... (인경에게) 넌 왜 나서
니? 아무 것도 모르면서?
정 미 아니면 뭐야? 너,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은 영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정말이라니까?
정미 믿지 않는 듯 굳은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횡하니 나가버린다.
은영 난감한데, 이때 열린 문으로 은호 들어서면서,
은 호 (놀라서) 누나 진짜 무슨 일 있었어?
은 영 (더 죽을 맛이 되며) 뭐?
#25S 자취방 (밤)
들어서던 경수, 어이없어 보면, 한쪽에 빈 소주병들과 신나통과 기
름통
영진과 후배들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한쪽엔 제작된 화염병들
보인다.
후배 몇은 기타 들고 '이 세상 어딘가에' '선봉에 서서' '영산
강' '날개만 있다면' 등
운동가요를 조용히 부르고 있다.
경 수 뭐 하는 짓이냐? 집에서?
후배들 (눈치 보며) 안녕하세요...
영 진 어, 형. 금방 하고 갈 거야.
경 수 (못마땅하게 신 벗고 들어서는데) 어? 방이 왜 이렇게
냉골이야? 보일러 고장났냐?
영 진 아니... 돈이 모자라서... 우리가 좀 빼서 썼어. (***확
인요)
경 수 뭐? 보일러 기름을 빼서 화염병을 만들어? (후배들, 경
수 눈치보고 노래 그친다.)
영 진 미안해, 형. 그렇게 됐어.
경 수 당장 오늘 여기서 어떻게 자?
영 진 얘네 집에 가서 자면 돼. (후배들에게) 야야, 다된 거
먼저 가지고 내려가라.
후배들 라면박스에 화염병 챙겨 가지고 나가는데,
경수, 못마땅해서 담배 물고 라이터 꺼내 불붙이려고 하면,
영 진 (얼른 라이터 채가며) 안돼, 형. 위험해. 나가서 펴.
경 수 (담배 뽑고) 아휴, 이 자식이... 야, 창문이나 좀 열고
해. 어지럽지도 않냐? 아휴 머리 아퍼. (창문 열려하면)
영 진 놔둬, 형. 짭새 온단 말이야. (어서 자리 뜨려고 박스
에 챙긴다.)
경 수 어이구... 내가 왜 너 같은 놈하구 같이 사나 몰라...
영 진 (귀찮다는 듯) 알았어, 미안해... (챙겨서 가려고) 형
같이 가자.
경 수 싫어. (이불 깐다.)
영 진 여기서 어떻게 잘려고? 냉방인데?
경 수 너나 가서 자.
영 진 그럼 내가 미안하잖아. 같이 가.
경 수 아, 됐어!
영 진 고집은... 나중에라도 추우면 내려 와! (나간다.)
경수 화가 나서 외투를 잔뜩 목까지 올리고 벌렁 누워 눈을 감는
다.
#26S 은행 (낮)
돈 다발을 손에 들고, 입금표를 집어드는 은영. 경수에 관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다.
경수가 써준 메모를 보며 신경질적으로 입금표 쓰는데 볼펜이 나
오지 않자, 신경질 더 난다.
다른 비치된 볼펜을 보면, 다른 사람이 쓰고 있고,
은영, 돈다발을 데스크 위에 놓고 가방에서 볼펜을 찾는데, 시간
이 걸린다.
마침내 볼펜을 찾아 입금표를 쓰는 은영,
쓰다가 문득 보면 옆에 놓여있던 돈다발이 없다.
은 영 (깜짝 놀라며) 엉? 내 돈 어디 갔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는 은영.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롭다.
갑자기 당혹감이 들려드는 표정의 은영.
#27S 전화부스 (낮)
수첩의 경수 연락처를 펴들고, 고심하고 있는 은영.
죽을 맛이다. 몇 번인가 자책의 한숨 쉬다가 이윽고 전화를 건다.
은 영 거기 서경수씨 계신가요?
#28S 자취집 마당 (낮)
아줌마, 무선 전화기를 들고 자취방문을 두드린다.
아줌마 경수학생! 안에 있어? 전화 왔어! 전화 받어!
이때 문 열면, 쉽게 열리는 문.
아줌마 (들어서며) 전화 왔다니까?
#29S 전화부스 (낮)
동전이 뚝뚝 떨어지자, 얼른 100원짜리를 연거푸 넣고 기다리는 은
영.
#30S 자취방 (낮)
경수 끙끙 앓아 누워있고, 방까지 들어온 아줌마가 경수를 들여다
본다.
아줌마 아니, 방이 왜 이래? 경수학생. 어디 아퍼? 전화 왔는
데?
경수 못 받는다는 시늉하고 이내 비몽사몽 앓는 소리한다.
아줌마 약은 먹었어? (경수 반응 없자) 여보세요? 경수학생이
지금 많이 아픈데?
은 영 (E) 그래두 좀 바꿔 주실 수 없나요?
아줌마 지금 전화 못 받아요. (여기저기 밥통이며 살펴보며)
근데 영진이 학생도 어제 안 들어온 거 같고, 감기몸살인 거 같은
데, 누가 약이라도 사다 줘야지. 나도 지금 나가야 되는데, 학생이
좀 와보지 그래요? 친군 모양인데?
#31S 전화부스 (낮)
은 영 (곤란한) 저 친구 아닌데요...?
아줌마 (E) 그래도 누가 와봐야지, 그냥 두면 큰일 날 꺼 같은
데. 난 우리 아저씨가 병원에 입원해서 거기 가봐야 돼요. 학생이
약 좀 사가지구 와요.
은 영 (점점 난처한) ...
#32S 자취집 앞 골목 (낮)
약 봉투를 들고 마지못해 온다는 표정의 은영,
대문 앞을 지나쳤다가 다시 와 멈춘다.
#33S 자취집 마당 (낮)
두리번거리며 주인집으로 먼저 향하는 은영.
아닌 것 같아 다른 곳을 기웃거리며 돌아 나온다.
은 영 (나직이) 서경수... 경수야...! 이 집이 아닌가...? (하면
서 자취방문을 본다.)
#34S 자취방 (낮)
밖에서 문이 열리고 안을 들여다보는 은영.
은 영 여기 경수네 집 맞나요...! 계세요...?
현관근처에 밥상이 차려져 신문지로 덮여있고,
앓아 누운 경수가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경 수 (귀찮다는 듯) 누구세요...? (다시 이불 둘러쓴다.)
은영 그제야 말없이 들어와 현관에 서서 안을 둘러보다가,
잠시 후 신발 벗고 들어와 가까이 오더니, 약봉지만 놓고 그대로
서서,
은 영 (감정 좋은 상태 아니다. 뚱하니) 자, 약 사왔어. (잠
시 후) 많이 아프니?
경 수 (그제야 보고는 어리둥절 일어나 앉으며) 아니, 니가
여긴 어떻게 왔니...?
은 영 니네 주인 아줌마가 와보라 그래서...
경 수 그럼 그게 꿈이 아니었나...?
은 영 (어색하기도 하고, 둘러보며) 물은 어딨니?
은영 소형 중고냉장고를 보고 가서 열어본다. 냉장고 텅 비었다.
은 영 (닫고) 참, 밥 먹고 약 먹어야 된다 그랬는데...? (밥상
들춰보고 들고 와서 놓아주며) 자, 밥 먹고 먹어.
경수, 그런 은영을 얼이나가 보고 있고,
은영, 그제야 엉거주춤 앉으며 목도리만 풀어놓으며,
은 영 방이 왜 이렇게 차니? 불 꺼졌니?
경 수 가서 기름 사와야 돼. 돈은 부쳤니? 가져오지 그랬어.
은행 가기 그런데.
은 영 저기... 그게 말이야... 어떡하지? 실은 그 돈 잃어버렸
어.
경 수 (믿을 수 없다는 듯) 뭐...?
은 영 은행에서 누가 집어갔어. 내 돈까지 전부다...
경 수 (놀라며) 뭐? 아니, 어쩌다가?
은 영 입금표 쓰느라고 잠깐 옆에 놔뒀는데... (한숨)
경 수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너 참 답답하다. 왜 하는 일마다
그 모양이니? 으이구...!
은 영 내가 일부러 그랬니?
경 수 그럼 니가 잘했어?
은 영 (화난) 아무튼 할말없어. 어쨌든 내 잘못이니까, 니 돈
은 내가 어떻게든 줄게.
경 수 (화내는) 됐어. 니가 무슨 수로 그 돈을 주니?
은 영 어떻게든 줄테니까 걱정 마! 그리고... 돈 필요한 거 같
은데, 일단 있는 대로 놓고 갈게. 병원이나 가. (지갑에서 3-4만원
정도를 꺼내놓는데)
경 수 (화도 나고) 됐어. 그냥 가지고 가.
은영 그냥 일어나면, 경수 돈을 집어 은영 손에 화가 난 듯 쥐어준
다.
은영 뜩 쳐다보더니, 어쩌지 못하고 그냥 가방만 챙겨 나가버린
다.
속상한 경수 신경질적으로 이불 덮어쓰고 눕는다.
#35S 대문 앞 골목 (낮)
은영 화가 나서 나와서 가고 나면,
다른 쪽에서 정미가 와서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정미도 화가 나있
다.
#36S 자취방 (낮)
잔뜩 짜증난 경수 돌아누워 있는데,
정미 들어오자마자 경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정 미 오빠 일어나 봐!
경 수 나 지금 아퍼...
정 미 엄살 떨지 말고 빨리 일어나. 하루종일 어딨었어?
경 수 나 지금 진짜 아프다니까...?
정 미 오빠 은영이 하고 키스했지?
경 수 뭐? 그건 또 뭔 소리냐?
정 미 일어나 봐. 빨리. (그러다 옆에 놓인 목도리를 발견하
고) 아니... 이게 뭐야?
경 수 어? 뭐...? (한눈에 봐도 은영이 거다. 찔끔한다.)
정 미 (은영이 것임에 틀림없지만) 이거 누구 꺼야?
경 수 몰라... 영진이 건가...?
정 미 여자 껀데? 누구 왔다갔지?
경 수 (일어나 앉으며) 오긴 누가 왔다고 그래?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은 영 (들어서며) 저기, 목도리를 놓고 가서... (정미와 눈이
마주친다.)
정 미 세상에... 설마 했는데... (바르르 떤다.) 이거 찾니? 니
가 여긴 왜 왔었니?
은 영 어... 저기... 정미야...
정 미 너 여기 처음 아니지? 그 동안 몇 번이나 왔어?
은 영 정미야, 그건 오해야...
정 미 너 내 눈 똑바로 봐봐. 둘이서 나 몰래 몇 번이나 만났
어?
경 수 (벌떡 일어나) 정미야, 너 왜 이러니? 은영인 다른 일
때문에 잠깐 온 거야.
정 미 내가 그 말을 믿을 거 같애? (은영에게) 너 경수오빠
좋아하지?
은 영 저기, 난 더 이상 끼어 들고 싶지 않거든? 둘이 잘 얘기
해... (목도리고 뭐고 그냥 가버린다.)
정 미 (목도리 들이대며) 이래도 아무 일도 없었다구?
경 수 그래, 아무 일도 없었어!
정 미 (목도리 던지며) 이게 아무 일도 없는 거야?
경 수 (버럭 소리지르며)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다! 이제 속이
시원하니?
정미 경수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나가버린다.
경 수 정미야, 정미야...! (쫓아나가려다 몸도 괴롭고 그만둔
다.)
#37S 은영집 거실 (밤)
괴로운 표정의 은영 들어오면,
은영모와 은영부 심각하게 앉아있고, 은호 슬그머니 일어나 2층으
로 내빼는 분위기다.
은영모 은영이 너 이리와 좀 앉아봐.
은영 심상치 않은 분위기 감지하며, 빠져나가는 은호를 보면서 앉
는다.
은 영 무슨 일인데...?
은영모 당신이 얘기해요.
은영부 당신이 얘기하지...
은 영 무슨 일인데 그래요...?
은영부 저기, 은영아.
은 영 ...?
은영부 (서론 늘어놓으며 헤매는) 은영인 아빠 딸이고... 아빤
은영이 믿는다만...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우리 사이
에 비밀이 있어선 안되구...
은영모 (답답해서) 이 이가? (은영에게) 너 똑바루 대답해. 같
이 일했던 그 남자애하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은 영 (죽을 맛이다.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오다가) 엄마! 아
빠! 왜들 이러세요, 정말? 미치고 팔짝뛰겠네! 으이, 씨...! (2층으
로 쿵쾅쿵쾅 올라가 버리고)
은영부와 은영모 서로를 본다. 의심이 사라지지도 않고, 우리가 잘
못했나 생각도 들고.
#38S 은영방, 인경방 (밤)
거칠게 문 닫고 들어온 은영, 은호방 쪽 보려보더니... 한숨.
이내 무선전화기를 들고 전화 건다.
은 영 인경이니? 나 돈 좀 꿔주라. 급해서 그래. 아르바이트
해서 갚을게.
인 경 (E)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
은 영 우리 엄마한테 월급탄 거 있잖아!
인경의 방 화면이 들어오면서, 화면 둘로 나눠지고.
인 경 (얼굴에 온통 머드팩을 한 모습) 그거 영어학원 등록하
고 지금 나 쓸 거밖에 없어. 얼마나 필요한데...?
은 영 아니야, 됐어.
인 경 (조심스럽게) 근데 너 어떻게 된 거야...? 정미 지금 난
리 났어.
은 영 몰라. 그 얘긴 하고 싶지두 않아. 나두 내가 거기까지
왜 갔는지 이해가 안돼...
이때 인경의 수화기 속에서 작은 부자음이 울리면,
인 경 야, 전화왔나부다. 잠깐만. (버튼만 누르고) 여보세
요?
은영은 수화기 든 채 대기상태로 기다리고,
화면이 더 좁아지며, 술집 일각 전화부스의 정미가 화면 속에 들어
온다.
정 미 (취한) 인경아, 나 너무 속상해.
인 경 정미니?
정 미 아무리 생각해도 경수오빠랑 은영이 그년이랑 무슨 일
이 있었던 것 같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인 경 너 어디야? 술 마셨니?
정 미 내가 지금 술 안 먹게 됐니?
인 경 저기 잠깐만. (버튼 누르고, 은영에게 급히) 야, 정미한
테 전화 왔거든? 잠깐 기다려.
은 영 (괴로운 한숨)
은영의 화면은 아웃되고, 정미와 인경의 화면만 남는다.
인 경 여보세요? (심호흡하고) 정미야 좀 진정하고...
정 미 (신경질) 진정은 무슨 얼어죽을 진정이야. 오늘 오빠하
구 은영이하구 또 만나는 현장을 이 두 눈으로 봤는데... 어떻게 가
장 친한 친구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흐느낀다.)
인 경 뭔가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
정 미 (절규하듯) 오~해? 오빠 혼자 있는 집엘 드나드는데,
나보고 오해라구?
인 경 설마... 은영이가 무슨 다른 볼일이 있었겠지...
정 미 너도 은영이 그년 편이구나?
인 경 아냐... 정미야...
정 미 (분노에 찬) 다 필요 없어. (전화 끊고)
정미 화면 아웃되면서, 인경, 전화기 누르면 은영의 화면이 다시
들어온다.
인 경 여보세요?
은 영 뭐래?
인 경 ... 너 혹시 그 사람 좋아하는 거 아니니?
은 영 절대 그런 거 없어.
인 경 근데 그 남자 혼자 있는 방엔 왜 갔어? 그 남자랑 무슨
일이 있긴 있었지?
은 영 있긴 무슨 일이 있니?
인 경 설사 아무 일이 없었대두, 감정은 모르는 거잖아. 그
남자가 키스하자고 했을 때, 너 솔직히 가슴 뛰고 흥분되고 그랬
지?
은 영 얘가 증말...?
인 경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구? 난 솔직히 누가 가까이 접
근하면 좀 야릇하던데? 너 니 마음까지 속일 순 없는 거다.
은 영 너까지 왜 이러니? 나 지금 복잡해. 그 자식 만난 후로
다 꼬이고, 엉망이 됐단 말이야. 돈 못 꿔주면 끊어!
인경의 화면 사라지면서, 전화를 끊고 더욱 화가 나는 은영의 표
정. (F.O)
#39S 춘천역사 안 (아침)
학생증과 돈을 꺼내들고 매표구 앞에 줄을 서는 경수. 마스크도 하
고 아직 아픈 상태다.
이때 전경이 와서 검문을 한다.
전 경 학생 어디가?
경 수 서울이요.
전 경 서울 어디?
경 수 봉천동이요.
전 경 (어깨 잡으며) 안돼. 거기 오늘 못 가.
경 수 (뿌리치며) 왜 이래요? 우리 집도 못 가요? (무시하고
매표구에 돈과 학생증 밀어 넣으며) 청량리! 학생 하나요!
이때 전경 피곤하다는 듯 잡아채려 하면,
경 수 놔요!
#40S 동 기차역 승차장 (아침)
실강이를 했는지 숨차게 달려와 짜증내며 돌아보는 경수.
기차에 오르면, 기차 움직이기 시작한다.
#41S 기차 안 (아침)
경수 빈자리 찾아가는데,
피곤에 지쳐 모자 눌러쓰고 창에 기대어 잠이 든 영진.
경수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영진을 본다.
앞좌석의 몇몇 후배들, 경수에게 뻘쭘히 인사한다.
경수 인사 받으며, 영진 옆의 학생을 툭툭 치면, 그 학생 일어나
고, 경수가 앉는다.
경 수 (못마땅한, 영진 툭툭 치며) 야, 야! 떼지어서 어디 가
냐?
영 진 (부시시 보며) 어... 서울에 볼일이 좀 있어서... (하품
한다.)
경 수 전대협행사 가냐?
영 진 형이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오늘 민주세력 총단결의 날
이거든. 형두 같이 갈래?
경 수 됐다, 난. 장남이라 몸조심해야 돼.
영 진 난 장손이야, 형.
경 수 (멋쩍어 뜩 보더니) 아무튼, 다음부터 외박할래문 전화
나 해, 자식아.
영 진 남자가 무슨 전화를 해?
경 수 걱정했잖아, 임마! 어디 끌려간 줄 알고.
영 진 알았어, 미안해. (생각난) 마침 잘 만났다. 라이터 좀
있으면 줘봐.
경 수 (뭐할지 아는) 싫어.
영 진 아이, 좀 줘봐. (화염병 붙이는 동작) 지난번에 가투 나
갔는데, 딱 붙일려고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라이터가 후져가꾸
리 아무리 켜도 불이 안 켜지는 거야. (주위 후배들은 웃고) 좀 내
놔봐.
경 수 (고집스럽게 돌아앉으며) 있어도 못 줘, 임마.
영 진 (창 밖 향하며 잠 청하는) 싫음 관둬. 가다가 하나 사
지, 뭐...
영진은 다시 잠을 청하고, 착잡한 표정의 경수.
#42S 환경업체 (낮)
차고지에 똥차들이 즐비하고, 그 앞을 걸어 들어오는 은영. 근심
이 가득하다.
차 옆에서 얘기하고 있던 인부1과 사무직원 남자를 만난다. (1부에
서 똥차 인부다.)
인 부1 아니, 은영이 아니냐? 니가 여긴 웬일이냐?
은 영 (고개 인사하고) 아버지 좀 뵐려구요...
(인사하고는 건물로 향한다.)
#43S 동 현장사무실 내 사장실 (낮)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은영.
은 영 (들어서며) 아빠, 저 왔어요. (순간 뭔가 못 볼 걸 본
듯 시선 피하는데)
다방 아가씨와 나란히 앉아있던 은영부, 화들짝 놀라 떨어져 앉으
며,
은영부 아니 니가 여긴 어쩐 일이니...? (하면서 아가씨 보면)
아가씨 (눈치껏 얼른 보온병 챙겨 일어서며) 어머, 따님 이신
가봐요? 이쁘게 생겼다...
아가씨 나가면서 은영과 눈이 마주치자 씽끗 웃고, 은영은 황당해
서 어쩔 줄 모르는데,
은영부 (헛기침하고) 이리 와... 앉아라.
은 영 (주춤주춤 와서 앉으면)
은영부 무슨 일이냐? 니가 여길 다 오구? (난감한데)
은 영 .... 그냥 요...
은영부 (표정 살피며) 무슨 일이 있긴 있구나...?
은 영 (여러 가지로 잘못 왔다싶다.) 네...? 아니야, 일은 무
슨...
은영부 저기 은영아, (충고를 하긴 상황이 이상하지만) 내가
엄마한텐 비밀로 할테니, 나한테만 살짝 말해봐, 무슨 일인지. 이
아빠가...
은 영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다 들린 거야. 아빠두 참... (엉
거주춤 그냥 일어나며) 그만 가봐야겠다.
은영부 (엉거주춤 같이 일어서며) 아니, 니가 이 근처에 무슨
일이 있다구?
은 영 난 뭐 이 근처에 일없나? 가볼게요. (돌아서려다가 시
선 마주치지 않고 다른 데 보며) 저기... 다음부터 커피 같은 건...
그냥 미스김 언니한테 타달라 그러세요.
은영부 어? 어, 그거... 너 오해하면 안 된다. 오늘 어쩌다 한번 그
런 거야. 알았지?
은 영 (시선 피하며) 예...
서둘러 나오는 은영, 괴로운 표정이다.
#44S 서울. 경수집 (낮)
허름하고 오래된 서민주택. 한눈에도 궁핍해 보인다. 별로 필요가
없어 보이는 옛 물건들이 놓여 있는 좁은 마당에선 할아버지가 반
팔 셔츠 차림으로 뚝딱거리며 낡은 책상의자를 고치고 있고, 마루
에서 경수 밥을 먹는데, 경수모 그 옆에서 생선가시 발라준다. 마
루 중앙에는 가족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조 부 어떤 일을 하든 천만 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야
지, 천만 명을 못살게 하는 사람이 되선 안 된다.
경 수 천만 명을 어떻게 먹여 살려요? 4인 가족도 먹여 살리
기 힘든 판에.
조 부 아, 그 누구냐, 페니실린 발명한 사람이나, 김우중이
같은 사람이 되란 말이여. 이완용이 같은 놈은 되지 말구.
경 수 (피식 웃으며) 알았어요...
경수모 아버님, 그만하세요. 그거 안되요. 갖다 버려야지.
조 부 안되긴 뭐가 안돼?
이때 대문 열리고 경선이 들어온다.
경 선 (들어서며) 으이, 신경질 나.
모두 쳐다보면, 마루로 올라서는 경선의 다리, 스타킹이 나가있
다.
경 선 (마루로 올라서다, 경수보고 뚱하니) 언제 왔어?
경 수 좀 전에. (다리보고) 칠칠치 못하게 여자가 그게 뭐
냐?
경 서 새 스타킹 사야된다구 그렇게 말했는데, 안 사주니까
그렇지! (방으로 문닫고 들어가 버린다.)
경수모 기집애가 덜렁거리구 뭘 오래 신는 법이 없다.
이때 안방에서 경수부가 나와 조용히 경수 옆에 앉는다.
이마에 피멍이 들어있고 팔에 파스도 붙였다.
경수부 (돈 다발 경수 옆에 놓으며) 조심해서 갖구가라.
경 수 (밥 먹다 말고, 받으며) 죄송해요...
경수부 니가 죄송할 게 뭐 있니? 공부하는데 드는 돈인데.
경 수 ....
경수부 나를 봐라. 사람은 뭐든 많이 배워야 돼. 공부는 잘하
지?
경 수 네...
경수부 그럼 됐다. 항상 니가 우리 집 장남이라는 거 잊지 말
고.
경 수 네.
경수부 이상한 데 휩쓸리지 말란 얘기야. (일어나며) 어여 먹
어. 늦기 전에 내려가라.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경 수 예... (이마 가리키며, 엄마에게) 어쩌다 저러셨어요?
경수모 (소근소근)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좀 있었나 보더라.
넌 신경쓸 거 없어. 우린 너만 잘되면 된다.
경수 마음이 안 좋은데, 이때 옷 갈아 입은 경선, 불만인 투로 쿵쾅
거리며 나와서는,
경 선 나두 용돈 줘! 왜 오빠만 줘?
경수모 기집애가 잔뜩 바람이 들어 가지고. 직업반에 가랬다
고 저 난리다.
경 수 (처음 듣는) 왜요? 경선이도 대학 가야지...? 너 공부
안했구나?
경 선 (어이없이 경수 보다가 그냥 밥 먹으려는데, 가시만 남
은 생선 보인다. 젓가락 상에 탁 놓으며) ...엄마, ...오빠만 대학 보
낼 거면 난 왜 낳았어?
경수부 (안방문 열고 엄하게) 경선이 이리 좀 들어오너라.
경 선 (경수부의 말에 더 화가 난) 오빤 삼수씩이나 해서 그
알량한 대학 갔는데...
경 수 야~ 경선아.
경 선 ... 난 챙피하게 스타킹도 안 사주면서 왜 낳았냐구!
순간, 경수부가 베게를 던져 경선의 머리에 맞는다. 놀라는 사람
들.
경수부도 순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데 경선 그대로 밖으로 나
가버린다.
경수부 방에서 쫓아 나오는데, 경선 이미 대문 꽝 닫고 나가버린
후다.
경수와 경수부 시선이 마주치고, 경수부 다시 한숨 쉬며 방으로 들
어간다.
경수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45S 동네 골목 (낮)
경수, 여기 저기 둘러보며 경선을 찾으며 달려나온다.
M-못생긴 얼굴
열 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내 얼굴을 보더니 손가락질 해
그 놈의 손가락질 받기 싫지만
위선을 싫다. 거짓은 싫어.
못생긴 내 얼굴
맨 처음부터 못생긴 걸 어떻해.
너네는 큰집에서 네명이 살지
우리는 작은 집에 일곱이 산다.
그것도 모자라서 집을 또 사니
너네는 집 많아서 좋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우리집도 하얗지.
#46S 동 동네, 어느 집 앞 (낮)
음악, 이어지며
대문이 열리고 경선의 친구1이 나온다.
친 구1 (반갑진 않은, 고개인사하며) 언제 왔어, 오빠?
경 수 (집안을 보면서) 경선이 여기 안 왔니?
친 구1 아니.
경 수 전화도 없었구?
친 구1 응. 또 무슨 일 있었어?
경 수 아니야. (돌아선다.)
#47S 동네 다른 집 마당 (낮)
좁은 마당 너머에 대문을 사이에 두고 경수와 친구2가 서있다.
친 구2 경선이 여기 없는데요...
경 수 그래...?
친 구2 (문 닫으려는데 눈치가 이상하다)
경 수 (가려다 돌아서며) 저기, 그럼 경선이 만나면 이거 좀
전해줄래?
접어진 만원권 서너 장을 주고 가는 경수.
대문 닫고 돈을 들고 들어오는 친구2.
굳은 표정의 경선. 힐끔 돈을 보지만 그대로 있다.
#48S 춘천행 기차 (해질녘)
객차와 객차 사이의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경수.
덜컹덜컹 열차 달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피우던 담배꽁초를 힘없이 밖으로 던지는 경수. 착잡한 기분이다.
음악 끝난다.
#49S 춘천거리, 뒷골목, 어느 건물 등 (해질녘~밤. 몽타주)
은영이 커다란 보퉁이를 들고 낑낑 걸어온다.
열쇠를 돌려 길가의 커피자판기 문을 여는 은영. 열쇠꾸러미 상당
히 많다.
서투른 손놀림으로 용기에 커피가루를 쏟아 붓는다.
다른 자판기. 행주로 더러운 자판기 내부를 청소하는 은영.
자판기 문을 닫는 은영. 잘 닫히지 않는다.
손바닥으로 치고 온몸으로 밀어 닫는 은영. 손을 털다 보면 시꺼멓
다.
서둘러 보퉁이를 들고 간다.
언덕진 건물 앞의 자판기.
줄줄이 높이 세운 종이컵을 갈아 끼우다가 그만 떨어뜨린다.
굴러가는 종이컵들을 집으러 쫓아가는 은영. 힘들어 보인다.
은영이 자판기에 메모를 붙이고 있다.
은영, 힘이 드는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짐을 들고 사라지면,
메모만 남는다. '고장. 동전 넣지 마시오!'
#50S 경수집 앞 (밤)
경수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기다리고 있던 정미와 눈이 마주친다.
정 미 어디 갔다 이제 와?
경 수 너 언제부터 여깄었니?
정 미 (애처롭게 쳐다볼 뿐) ....
경 수 또 왜...?
정 미 오빠... 은영이 정말 좋아해?
경 수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들며) 아니야. 아니라는데 왜 이
러니...?
정 미 그 말 믿어두 되지...?
경 수 그럼.
정 미 난 오빠 믿고 싶어...
경 수 그래, 내말 믿어. (안아준다.)
정 미 그럼 우리 내일 여행 가.
경 수 (놓으며) 정미야, 오빠 지금 여행 갈 상황이 아니야. 돈
도 없구...
정 미 돈은 나한테 있어.
경 수 돈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가 너랑 룰루랄라 여행 다
닐 처지가 못돼. 이것저것 상황도 안 좋구, 빨리 과외자리라도 하
나 구해봐야겠다.
정 미 갑자기 왜 그래? 언제는 자전거 타고 제주도 여행하면
죽인다며?
경 수 (기침하고) 오빠 다음학기 등록금 좀 미리 벌어놔야
돼. 안 그러면 이번 학기 끝나고 바로 3년간 여행가야 될지도 몰
라. 군대루.
정 미 솔직히 말해. 은영이 때문에 그러지?
경 수 자꾸 쓸데없는 소리할래?
정 미 돈두 내가 대겠다, 차표두 내가 다 예약했겠다, 오빤
몸만 가면 되는데 왜 못 가겠다는 거야? 은영이 때문이지?
경 수 (피곤한) 아니야.
정 미 그럼 됐어. 그게 아니라면 내일 아침 7시까지 춘천역으
로 나와. 우리가 어떤 사인지, 은영이한테도 확실하게 보여줘야
돼.
정미 가버린다. 경수 더욱 난감하다.
#51S 공중전화부스 (밤)
정미 잠시 굳은 표정으로 생각하더니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건다.
정 미 은영이니? 나야. 우리 내일 여행가. 그러니까 앞으로
한번만 더 경수오빠 만나면, 그땐 너 나랑 끝이야. 무슨 말인지 알
지? 끊는다.
#52S 은영방 (밤)
뚝 끊기는 신호음. 전화를 받은 은영, 어이없고 기분이 나쁘다.
#53S 자취방 (아침)
영진과 후배 몇 명, 곤하게 쓰러져 자고 있다. 벗은 양말 들 아무렇
게나 뒹굴고 있고.
라면 끓여먹은 상도 치워지지 않은 체 한쪽에 치워져 있다.
경수, 혼자 벽에 기대 생각에 잠겨 있다. 심란한 표정.
#54S 춘천역 앞 (아침)
카메라도 매고, 여행가는 차림으로 경수를 기다리는 정미.
그러나 즐거운 표정은 아니다. 심각하다.
#55S 춘천역 근처 유흥가 골목 (아침)
술집들이 즐비한 한산한 골목에 커피 보퉁이를 들고 나타나는 은
영.
문득 보면, 취객 두명 이 자판기와 씨름하고 있다.
취 객1 (자판기에 주먹질) 아이, 씨... 이거 뭐 이래? 내 돈 내
놔. 내 돈 내놔, 임마!
은 영 (겁이 나지만) 아저씨, 그러지 마세요. 그거 망가져요.
취 객1 넌 뭐야? (힐끗 보고 무시하고는 다시 주먹 발길질) 아
이, 씨. 되는 일이 없어. 이걸 그냥 확! (비틀거리며 이단 옆차기 하
는데)
은 영 (무섭지만) 왜 이러세요? 그거 고장나요!
취 객1 뭐? 이년이...?
은 영 (주춤 물러나며)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안되겠다. 돌
아서는데)
취 객1 (손목 거칠게 잡아채며) 너 일루 와봐. 니가 뭔데 참견
이야?
은 영 으악! 사람 살려!
이때 심란한 표정으로 지나가던 경수, 문득 소리가 나는 곳을 보
게 된다.
은영이임을 알게 되자 놀라며 달려간다.
경 수 어? 은영아! (취객에게 달려들며) 당신 뭐야?
달려든 경수에 의해 풀려나는 은영.
이후 취객과 경수의 격투를 보는 은영의 표정만.
얻어맞는 소리와 함께, 은영의 비명과 점점 끔찍한 표정들.
#56S 춘천역 앞 (낮)
시계를 보며 표정이 굳어지는 정미.
시계 7시를 막 넘어가고, 역내에서 들려오는 안내방송 소리.
방 송 (E) 청량리, 청량리행 열차가 발차합니다. 아직 승차하
지 않은 승객께서는...
#57S 병원 응급실 (낮)
코를 솜으로 틀어막은 경수의 가슴에 간호사가 붕대를 감고 있다.
그 옆에 은영, 괴롭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한 난감한 표정으로 서있
다.
경 수 넌 괜찮아? 안 다쳤어?
은 영 (잡혔던 손목 움직여보며) 어... 괜찮아.
경 수 (대충 짐작하면서도) 아침부터 거기서 뭐하고 있었
냐?
은 영 넌 몰라두 돼...
경 수 내 돈 갚을라구 그러는 거면, 안 갚아도 돼. 그 일 여자
혼자하기 힘들겠던데, 하지 마라.
은 영 (다른 곳 볼 뿐) ... (잠시 후) 너 그러구 여행은 어떻
게 가니?
경 수 (그런 얘긴 하고싶지 않다.) 어... 여행 안가.
은 영 정미는 간다던데...?
경 수 (그제야 생각난) 어? 어떡하지? 정미 기다리겠네...?
그 말에 삐딱하게 시선 돌리는 은영.
#58S 자취집 골목 (낮)
화난 정미가 오는데, 대문에서 급히 튀어나오는 영진.
정 미 경수오빠 있죠? (하면서 들어가려는데)
영 진 형 다쳐서 지금 병원에 있대요!
정 미 (순간 놀라며 걱정되는) 네? 어쩌다가요?
급히 빠져나가는 두 사람.
#59S 병원, 응급실 앞 (낮)
응급실에서 나오는 은영과 경수.
경수 걸음을 떼면서 신음과 함께 가슴을 움켜쥐면,
은 영 (얼른 부축하며) 많이 아파?
경 수 아니... 괜찮아. (하면서도 은영과 붙어 있는 게 좋다)
은영과 경수, 부축한 채 걸어나오는데,
이때 급히 달려오는 정미와 영진. 서로 마주치게 된다.
은영과 경수를 보고 멈춰서는 정미. (영진은 은영이 의아하고,)
은영과 경수도 정미와 눈이 마주치고 놀라는데,
정 미 (큰 소리로) 야! 니네...!?
주위의 사람들, 은영과 경수, 정미를 쳐다본다. 은영과 경수,
동시에 서로에게서 화들짝 떨어지며 서로를 밀쳐내듯 모른다는 손
짓하면서...
은영,경수 (동시에) 아니야! 정미야...
정 미 (분노에 흐느낌까지)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은영,경수 (동시에) 아니야! 우린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 모습 그대로 스톱되며, 천천히 빛 바래고.
그 순간의 여러 광경들이 스톱화면으로 계속 디졸브 된다.
자기 감정에 복받쳐 바닥에 주저앉은 정미, 정미를 부축하면서도
영문을 모르는 영진.
정미에게 설명하려다 정미의 가방에 맞고 쓰러지는 경수.
은영을 보면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은 영 (N) 어떤 사람은 스치기만 해도 남의 인생에 빛이 되
는가 하면, 어떤 놈은 온통 먹구름을 몰고 오는 놈이 있다. 아, 그
날의 병원 응급실...다시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순간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