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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르멜산 성모 재속가르멜회 원문보기 글쓴이: 장미비
출처
로마의 하늘 아래에서
장석훈 베르나르도수사
본질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이 뒤바뀌어 살아가는 듯한 우리의 삶 안에는, 자기가 자신에게 독백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곳에 와 되돌아본 저의 실체는 하느님 앞에서의 현존과 고독이 아닌 고요 안에 있는 텅 빈 자신이었습니다.
공부하자니 힘이 들고, 잘살아보자니 기가 막힐 때가 많아서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무슨 운명을 이리도 모질게 타고났는가!’ ‘무엇이 나를 이토록 가만있지 못하게 굴었는지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도록 했는지’ 다시 한번 묻게 됩니다.
처절하리만큼 가난하고, 무능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조용히 고향 땅에서 지낼 것이지’ 이런 주제에 이 먼 곳 타국 땅에까지 와서 이런 비참을 보게 되는가 하고 자문도 해 보았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도 자신을 키울 수 있다던 부풀었던 희망도 ‘내가 나에게 거는 기대’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에 대한 응답도 여지없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작아질수록 저 스스로에게 기대할 것도 없고 더구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던 기대도 사라져 갈수록……. 어떤 의미에서는 불쌍한 자신이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눈길이 하느님의 손길이 스며들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행복한 셈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능을 깊이 절감할수록 그분의 따뜻한 눈길이 자비와 용서의 시선으로 다가오고 있고, 기존의 가치관과 관습 그리고 인습에 대한 새로운 시야도 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각 속에서 잘못된 삶을 깨치면서 살아가는가 봅니다. 그래서 ‘타인과 더불어 살면서 나도 모르게 남을 아프게 한 일이 없었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 반성 속에는 저와 가까이 지냈던, 가까이 살고 있는 이와의 관계에서 빚어진 사건들이 새로운 시각 안에서 조명해 보고 있습니다. ‘인간을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더 잘 볼 수 있고, 그러면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무지를 봅니다.
술은 어두운 곳에서 더 잘 빚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술은 자기가 변해 가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면서도 침묵을 깸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하나의 시작임을 보기 때문입니다.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 안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자신 안에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저에게도 적용되나 봅니다.
* Haris Alexiou - Patoma (비가 내리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