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대학로·신촌·홍익대·압구정 등지로 몰리던 서울 젊은이들이 새문안 길·사간동·평창동·청담동·삼성동 코엑스 인근으로 이동하고 있다.주머니 는 가볍지만 지적 호기심이 풍부한 젊은이들이 볼거리·들을거리를 찾아 새 로 조성된 문화 명소를 찾아나섰기 때문이다.영화와 테이크아웃 커피,스파게 티가 있으며,박물관과 미술관·공연장이 있는 곳.젊은 문화의 ‘새 메카’를 시리즈로 싣는다.
“이곳에서는 사람들한테 시달리지 않고 영화나 공연을 볼 수 있어요.10분 정도 걸으면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에서 태국·인도·중국 음식을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20분만 걸으면 인사동까지도 구경할 수 있고요.약속 시간이 잘 안 맞으면 교보문고에서 몇시간 책을 보는 재미도 있죠.”
위효선(26·이화여대 대학원생)씨가 신촌이나 홍익대 근처보다 새문안길을 남자친구와 자주 찾는 이유다.친구를 만나 차마시고 밥먹으면 마땅히 할 일 이 없는 신촌이나,‘클럽마니아’의 아지트인 홍대와는 달리 보고 배울 흥밋 거리가 널려 있다는 것.예술영화 마니아인 그는 최근 새문안길의 씨네큐브에 서 이란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본 다음 정동과 인사동을 쏘다녔다.18일까지 상영되는 ‘죽어도 좋아’도 곧 보러갈 계획이다. 지난 2 0여년 동안 ‘젊은이 공동화 현상’에 시달리던 새문안길이 이렇게 문화의 거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새문안길은 1960∼70년대 종로·대성학원 등 대 입 재수학원들이 몰려 있어,종로 2가와 함께 젊은이들의 명소 구실을 했다. 그러나 학원들이 4대문 밖으로 이전,젊은이들이 함께 떠나면서 이 일대는 도 시 중심부의 퇴락한 재개발예정지로 전락해야 했다.
‘문화의 불모지’로 잊혀진 새문안길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2000년대 들어 재개발이 본격화해 새로 세운 건물에 영화관·박 물관·미술관·아트센터·공연장 등이 잇달아 들어선 다음부터다.
시작은 ‘난타 전용극장’과 복합상영관인 ‘스타식스’가 경향신문 건물에 입주한 것.종로3가의 서울극장·피카디리에 몰리던 젊은 영화팬 일부가 먼 저 발걸음을 돌렸다.
잇따라 들어선 흥국생명과 금호생명 건물이 내용을 풍부하게 했다.흥국생명 지하 1층에는 예술영화 전문상영관 ‘씨네큐브’가 들어섰고,1층에는 미디 어아트를 중심으로 전시하는 대안공간 ‘일주아트하우스’가 입주했다. 금호 생명도 사옥 3층에 미술관과 공연장이 있는 ‘금호아트홀’을 열었다.특히 3 15석의 음악전용 소극장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각별한 공간이 됐다.금요 일 오후 8시에 열리는 ‘금호콘서트’는 최고의 연주자를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넓은 녹지가 펼쳐진 서울역사박물관도 올해 개관했다.기존의 성곡미술관과 함께 박물관·미술관 벨트를 형성한다.문화예 술을 사랑하는 학생과 주변의 젊은 직장인까지 흡인하는 요인이 됐다.
이은구(25)씨도 그렇다.미술학도인 그는 ‘공짜’로 뭔가를 구경하고 싶을 때는 일주아트하우스가 있는 흥국생명 빌딩을 찾는다.로비 앞벽의 강익중작 조각 그림이나,뒷벽의 잉고 마우러의 홀로그램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 히 만족한다.지난 7월에 건물 밖에 세운 미국 작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키 22m,몸무게 40t의 ‘해머링 맨’도 그를 즐겁게 한다.조각품의 망치를 든 오 른손은 천천히 움직이며 1분17초에 한번씩 허공을 내리친다.또 국내에서 보 기 어려운 다큐멘터리 필름이나 예술 영상물들을 모니터로는 들여다보는 재 미가 쏠쏠하다.
새문안길을 찾으면 정동과 광화문의 문화행사가 덤으로 따라온다.정동극장 과 세종문화회관,지난 5월에 이전 개관한 ‘서울시립미술관’과 천경자 상설 전시장이 그것.덕수궁에 들어서면 고궁의 정취와 아울러 국립현대미술관 분 관과 궁중유물전시관을 즐길 수 있다.
대한문 옆에서 서각을 하는 조규현(42)씨의 작업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겨울과 장마철만 빼고는 덕수궁 돌담길에 마련된 탁자와 벤치에서 삼삼오오 어울린 젊은이들이 샌드위치를 먹거나 책을 읽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도 어 렵지 않다.
젊은층이 몰려들면서 새문안길의 음식문화도 달라지고 있다.40, 50대를 겨 냥한 고기집과 한식 위주의 식당에서,20, 30대를 겨냥한 패스트푸드점,테이 크아웃 커피점,이탈리아 레스토랑,와인 전문점 등이 속속 생겨나는 것이다. 스타식스 앞에는 브라질식 숯불 바비큐집 ‘이빠네마’와 ‘스파게티 팩토리 ’가 있다.흥국생명 지하에는 퓨전음식점 ‘시안’과 ‘리틀 시안’,돼지고 기 바비큐 전문인 ‘토니 로마스’가 있다.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은 지하 2 층 음식백화점도 자주 이용한다.4000∼6000원대 한·일·중식이 모두 마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