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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이 오늘날 의향으로 불리워질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집안이 가학을 일으켜 선비를 양성했고 국난에 임해 의병을 창의하며 국토수호 및 국권회복에 선구자들을 배출한 전통 때문이다. 담양군 고서면에 위치한 수남학구당(水南學求堂·사진 위)과 죽림재(竹林齋). 수남학구당은 1570년(선조3)에 창평에 살고 있는 25개 성씨가 숭고한 도의(道義)와 국가의 문무정책에 따라 학업을 연구하며 유교의 기풍을 진작하기 위해 서원을 창건한 후, 1619년에 학구당이라 고쳤다. 죽림재는 죽림 조수문(曺秀文)이 사숙(私塾)의 수련장으로 창건해 창녕조씨 문중의 가학 장소로 사용됐다. |
우리고장 호남지역을 의향·예향·학향·미향 등 여러 가지 특성에 따라 각기 취향대로 규정하며 명명하곤 한다. 예부터 시량염선(柴糧 鮮)이 풍부해 사람 살기에 적합하다고 찬미했던 선인들은 시류에 쪼들리고 생활에 지치면 이 지역으로 들어와 모든 걱정 내려놓고 타고난 소질과 취미를 계발·연마했다. 이후 깊고 높은 경지에 이르도록 예능분야에 심취해 있다가 국가가 위난에 처하면 홀연히 일어났다. 위난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지역 특성을 간직한 고장이기에 그 요인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부르게 된 것이다.
◇위난 극복한 자랑스러운 지역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호남인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의병 창의에 앞장서서 국토수호 대열에 합류했으니 마땅히 ‘의향이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왜란, 호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 침탈 등에서 보여준 충의정신은 이순신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말처럼 빛나는 역사의 고장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시(詩)·서(書)·화(畵)를 비롯 노래(판소리) 등이 발달했으니 ‘예향이다’라고 보통명사처럼 이해하는 분들도 있다. 인류무형유산인 판소리와 강강술래 등 호남의 예술은 세계적이다.
또한 우리고장에는 서당이 유난히 많이 운영됐으니 그것은 가학(家學)이 왕성했다는 실증인데, 학구당과 같은 사설 교육기관이 곳곳에서 운영된 것은 이 지역의 학구열을 입증하는 사례로서 ‘학향이다(교육의 고장)’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음식 맛은 역시 전라도라고 하는데 좋은 쌀로 지은 밥은 물론이고 된장, 고추장, 소금, 젓갈로 버무린 맛깔스런 김치에서부터 김, 굴비 등 풍성한 해산물에 한우, 오리고기 요리 등이 어우러지는 토속적인 밥상의 음식은 전국을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전라도 특색의 음식점 간판을 걸면 소문난 식당이 된다는 속설이 도는 것을 보면서 ‘미향(味鄕)이다’고 일컫는 분들도 많다.
◇누정에서 미풍양속 이끌어
모두 의미있는 주장으로서 한결같이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들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들은 각기 타당하고 적합하기 때문에 이론이 많지 않다. 그래서 호남문화를 연구하고 진흥하는 일에는 이상의 4가지 호남 특색을 잘 현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4가지 중에서 특히 ‘의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호남의 후손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많다. 학문과 수양에 전념하던 선인들이 벼슬길에 연연하지 않고 의연히 후학을 양성하면서 의(義)를 실천하는 군자다운 삶을 살아온 고장이다.
누정에서 향약과 두레 등 미풍양속을 이끌며, 온 백성이 모두 인의예지신을 지키는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며 후학들의 성장에 기뻐했던 선비들의 고장이었다. 환로(벼슬길)에서 물러나 경기도나 충청도에 은거하는 경우는 집권자의 부름을 받을 수 있지만 전라도에 은거한 경우는 설령 부름이 있다고 해도 나서지 않겠다는 시국관을 가지고 학문에 매진하면서 가학을 이어온 경우가 많다.
광주시 생룡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금성범씨의 경우가 대표적인 호남 선비 가문이다. 포은 정몽주의 제자로서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의정신으로 두문동에 은거했다가 낙향한 복애 범세동 선생은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의 출사 권유를 수차례 사양하고 성리학에 정진했다.
범씨집안의 가학은 많은 인물을 배출했는데 범가용(可容), 범가종(可鐘) 형제와 범전창(傳昌), 범천배(天培) 부자(父子)가 성리학에 정통해 이름을 떨쳤으며, 범기생, 범기봉 형제는 의병창의해 김천일·최경회 장군 등과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했다. 가학은 영조·순조 대에 검양산인시집을 지은 범경문, 후진양성의 대가 양성당 범윤덕 등으로 이어졌다.
◇국권회복의 선구자들 배출
이와같이 의향의 초석이 됐고 국가 동량재를 키웠던 가학(家學) 전통을 수백년 전승한 호남의 가문은 금성범씨만이 아니다.
광주노씨 집안, 광산김씨 집안, 창녕조씨 집안, 남평문씨 집안, 무안박씨 집안, 울산김씨 집안, 하동정씨 집안, 행주기씨 집안, 진원박씨 집안, 금성나씨 집안, 죽산안씨 집안, 나주오씨 집안, 광산이씨 집안, 음성박씨 집안, 해주최씨 집안, 충주박씨 집안, 제주양씨 집안, 장흥고씨 집안, 회진임씨 집안, 창원정씨 집안 등 이외에도 여러 집안이 가학을 일으켜 선비를 양성했다. 국난에 임해 의병을 창의하고 국토수호 및 국권회복에 선구자들을 배출한 집안들이다.
호남이 오늘날 의향으로 불리워 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학술전통을 집안마다 이어온 풍속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향 호남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흘렀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호남인들은 옳고 그름이 항상 분명했다. 동학과 항일의병,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4·19와 5·18, 6월민주항쟁 등 근현대사는 호남을 빼고 서술하기 곤란할 정도다.
의향은 몇몇 인물 때문이 아니라 풍속을 구성해 문화를 형성하는 대다수의 호남인들 때문에 호남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됐다.
한때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온 호남 민심이 지역이기주의의 산물인 것으로 오해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의 논리였을 뿐이었고 결국 지난 대선을 경과하면서 이기심이 아니라 정의로운 판단력을 가진 호남인들이었다는 것을 전 국민이 인식하게 된다.
◇문화국가의 문화수도 기대
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의향정신의 현창과 계승을 위해 노력해 왔다. 광주시가 설립을 추진하는 재단법인 진흥원도 역시 의향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에 충실해 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몇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인권 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역사인물의 구체적인 행적을 연구하는 가운데 모범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인권이 꽃피었던 호남의 전통을 정립시켜주길 바란다.
둘째 민족적 공통체 문화를 대중에게 교육해 여러 사회집단간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통합과 통일을 이루는 정신적 토대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셋째 민족전통으로 이어온 홍익인간, 인내천와 같은 인류 보편의 정신을 세계화하고 상생평화의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국가로 도약하는 기반을 조성하기를 바란다.
프랑스의 유명한 박물관 관계자가 호남에 와서 ‘한국은 노천 박물관과 같다’고 할 정도로 문화산업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고장이 우리 지역이다. 수천년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민족의 생활문화유산들을 현대적 학술로 잘 설명해 낸다면 세계인들에게는 대단한 관광상품이 될 것이다. 문화유산은 문화예술 창작이나 관광의 원형으로 삼을 수 있도록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번역하고 연구해서 대중에게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
호남문화의 정체성은 전통의 향기가 묻어나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호남의 4가지 특성을 통해 정립해 나가야 한다. 전통시대 호남 선비의 학문전통과 인재양성 교육전통은 향촌에 퍼져 정신적 바탕이 됐고 농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서민들이 생존의 고통과 인생의 애환을 문화예술로 승화시켰으며 이와같은 미풍양속은 풍성한 인심으로 음식에 담겨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의향, 학향, 예향, 미향은 호남 그 자체이며 이제 그 정체성을 연구하고 현대적 문화로 계승시키는 과제를 설립될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중심이 되고 호남의 민관 모두가 더불어 힘을 모아 진흥시켜 나간다면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아름답게 향도하는 문화수도 호남이 될 것이다.
서명원
㈔한국학호남진흥원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