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선이 위연(喟然)히 찬탄하기를 [종문(宗門)에 모신 지 이십여 년에 대종사의 한 말씀 한 행동을 모두 우러러 흠모하여 본받아 행하고자 하되 그 만분의 일도 아직 감히 능하지 못하거니와, 그 가운데 가장 흠모하여 배우고자 하나 능하지 못함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순일 무사하신 공심이요, 둘은 시종 일관하신 성의요, 셋은 청탁 병용(並容) 하시는 포용이라. 대저, 대종사의 운심 처사(運心處事) 하시는 것을 뵈오면 일언 일동이 순연히 공(公)하나 뿐이시요, 사(私)라는 대상이 따로 있지 아니하사, 오직 이 회상을 창건하시는 일 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말씀도 행동도 없으시나니, 이것이 마음 깊이 감탄하여 배우고자 하는 바요, 대종사의 사업하시는 것을 뵈오면 천품이 우월하시기도 하지마는 영광 길룡리에서 우리 구인을 지도하사 간석지를 개척하실 때에 보이시던 성의나 오랜 세월을 지낸 지금에 보이시는 성의가 전보다 오히려 더하실지언정 조금도 감소됨이 없으시나니, 이 또한 마음 깊이 감탄하여 배우고자 하는 바요, 대종사의 대중 거느리시는 것을 뵈오면 미운 짓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잘 무마하시고 애호 하시며 항상 말씀하시기를 "좋은 사람이야 누가 잘못 보느냐. 미운 사람을 잘 보는 것이 이른바 대자 대비의 행이라"하시니, 이 또한 마음 깊이 감탄하여 배우고자 하는 바라.] 하니라.
☆ 어구 해석
김 광선 : 본명은 성섭(成燮). 법호는 팔산(八山). 법훈은 대봉도. 소태산대종사의 구도 당시 의형(義兄)으로 정신적 물질적으로 후원ㆍ조력했고, 소태산이 대각을 이루자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 구인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단창업에 앞장섰고, 1924년(원기9) 불법연구회 창립총회 후 익산총부 건설당시 공동체 삶에 참여하여 전무출신했다. 농업부원을 시작으로 총부 감원, 영산 서무부장, 마령교당 교무, 원평교당 교무 등을 역임하면서 교단창업에 혈심과 공심의 표준이 되었다.
김광선은 소태산의 구도과정에서부터 대각 후 교단창업에 이르기까지 지근거리에서 허물없이 상의하고 조력한 혈심인물이었다. 그는 소태산의 연상이면서도 항상 몸을 낮추고 중책을 맡아 솔선수범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표본을 보여주었다. 그의 공적은 흔히 공자 문정(門庭)의 자공(子貢)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의 열반소식을 접하고 소태산이 낙루한 것은 사제지간 이상의 정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광선이 소태산을 찬탄한 세 가지의 학이불능 표현은 소태산관을 정립하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위연(喟然) : 성현의 위대한 발자취를 보고 크게 감동하며 스스로는 도저히 그렇게 따라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탄식하는 모양을 형용하는 말.
종문(宗門) : 각기 주장하는 교리를 따라 세운 불교의 갈래
순일 무사 :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전일(專一)함. 잡된 것이 없는 것을 순(純)이라 하고, 둘이 아닌 것을 일(一)이라 한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고 순수함. 스승의 지도를 받을 때, 또는 도가에서 공부와 사업을 할 때 사심(私心)없이 오롯하게 행하는 것을 순일무사(純一無私)한 신심·공심이라고 한다.
청탁 병용(並容) : 착한 사람 이라고 해서 더 좋아하거나 악한 사람 이라고 해서 더 미워하지도 않으며, 좋은 것은 좋은대로 나쁜 것은 나쁜대로 버리거나 집착하지 않고 다 활용하며, 세속 이라고 싫어하고 극락 이라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세속과 극락을 다 같이 극락세계라고 수용하는 마음.
운심 처사(運心處事) : 마음을 사용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 심신작용을 법도(法度)에 맞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길룡리 : 원불교의 제1성지인 영산성지 일대로 전남 영광군 백수읍에 소속된 마을 이름. 옛 민적(民籍)에는 길흥리(吉興里)라고 표기되어 있다. 원불교를 창립한 소태산대종사가 탄생하고 성장했으며, 구도생활과 대각을 이룬 마을. 현재 행정구역상의 지명은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이다. 영광읍에서 법성포 방면으로 10여km의 거리에 위치함. 백수면은 동쪽으로 영광읍과 군서면(郡西面), 서쪽으로 서해, 남쪽으로 군남면(郡南面), 북쪽으로 법성면(法聖面)과 좁은 만(灣)을 사이에 두고 홍농읍(弘農邑)과 접한다. 원래 구수(九岫)·영마(靈馬)·봉산면(鳳山面)이었는데 1931년 통합되어 백수면이라 칭했다가 1980년 12월 1일 읍으로 승격했다.
간석지 : 간석지란 호수나 바닷가 개펄의 땅을 막아 제방을 쌓고 전답을 만드는 간척사업에서 자주 거론되는 용어이다. 바닷가를 막아서 간척사업을 할 수 있는 유휴지의 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간척사업을 할 수 있는 간석지가 해안선을 따라 있는 지역적 특성을 지닌다. 간석지라는 말 외에 간척지, 개간지 등의 용어가 유사어로 쓰이며, 이 용어들은 대체로 바닷가에 위치하여 썰물이 되어 개펄이 드러나면 이를 막아 간척사업을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