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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시집 해설
자연사물에 비유와 음악제재 수용, 그리고 풍자적 시선
공광규 (시인)
1.
유진 시인은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하였으며 부산시립교향악단 단원, 포항시교향악단 첼로 수석단원을 역임하였다. 2003년 월간《조선문학》으로 시와 수필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시집 『참선일지』 『가버리는 것들과 떠나야 하는 것들』『척』 등을 출간하였고, 현재 선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문예창작 지도를 전담하고 있다.
이번 시집 원고를 읽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오랜만에 시의 재제 수용 폭이 매우 넓은 시를 만났다는 즐거움이다. 시의 제재의 폭이 좁거나 난해하여 상상력의 제한을 받아야 하는 현재 시단의 갑갑함과 답답함을 넘어, 시를 읽고 난 뒤에도 마음에 쾌적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관념적 어휘에서부터 음악과 불교, 곤충과 꽃 등 동식물, 바위 등 다양한 소재를 동원해 주제를 감각적으로 때로는 지적으로 엮어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시집 원고를 제제나 주제별로 유형화하면 대략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오랜 세월 주로 시인들이 써왔던 방식인 자연 사물이나 사건에 자신의 심정을 비유하거나, 시인의 전공과 관련된 음악 제재 수용이다. 또 지적 시선으로 세태를 비평하는 풍자 정신이다. 이렇게 시집 속에서 유형화되고 주류화된 시의 특성들은 시인의 창작법을 특징지으며, 동시에 시인의 시적 개성을 형성한다.
2.
시가 발명된 이후 자연의 사물이나 사건에 시인의 심정을 투영하는 방식의 시들이 가장 많이 씌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오래된 시의 작법이며, 그럼에도 이런 비유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 시의 수명과 같이 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시를 살펴보면 화조풍월을 제재로 한 시들이 많은 것은 그 이유이다. 그리고 나무와 풀들의 비유가 많으며, 꽃과 새들의 비유가 많다.
유진의 시에서는 「족보」 「나비」 「챙을 내리는 모자」 「꽃무릇」 「오월, 우포」 「나팔꽃」 「두발가락나무늘보」 「척사길 몽돌」 「티격태격 봄날은 간다」 등이 해당한다. 그의 시에는 나팔꽃이 있고, 물풀과 가시연꽃이 있고, 유채가 있으며, 우렁이와 다슬기가 산다. 홍자색으로 초가을 화단을 발갛게 익히는 꽃무릇이 있다. 동글동글한 바닷가 몽돌이 있다. 봄날 육교 난간 위를 아슬아슬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걷는 미니스커트가 있다.
사라진 표정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나는
두 발로 걷는 파충류
완벽한 텔레파시 홀로그램 초능력을 소유했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다 먹어 치울 수 있어요
잉카의 우루밤바 강변을 우아하게 배회하거나
이집트의 모래언덕을 위태롭게 질주하기도 해요
외계인 아냐고요?
쉿, 은하의 가장 오랜 파충류
ㅡ「챙을 내리는 모자」 부분
화자는 챙이 내리는 모자를 쓴 외형에서 외계인을 상상하고, 표정 없이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자신을 파충류로 비유한다. 파충류는 뱀이나 도마뱀, 거북이와 악어 등 동물군을 말한다. 흔히 벌레나 새로 사람을 비유하는 것이 흔한 방식인데, 낯선 파충류로 비유란다. 화자가 척추동물의 중간적 위치에 있고, 피부가 각질의 표피로 덮여있는 동물로 자신을 비유하는 것이 낯설어 서정적 충격을 준다.
이렇듯 유진이 자연을 보고 해석하는 시선은 남다르다. 시 「족보」에서 한여름 염천의 화단에서 교미하고 있는 호랑나비의 행위는 “유구한 잎맥의 문서에” “고결한 유전자를 기록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손을 번성시키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족보를 쓰는 것과 같다는 발견이다. 나팔꽃은 “까르르르 쏟아지는 열댓 살 웃음”(「나팔꽃」 부분>)으로, 늘 떠밀리고 사는 두발가락나무늘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동물에게서는 “모른 척 뺏겨주는 미덕의 숭배자 / 멸종 위기의 자율적 휴머니스트”(「두발가락나무늘보」 부분)로 비유한다.
시 「척사길 몽돌」에서 몽돌을 세파를 견디고 살아온 여인으로 의인화 한다. 세파에 치이느라 “몇 백 년 둥굴어진 몽돌보다 잘 견디는” 여인은 “자루 속 송곳 같은 시집살이”를 겪었고, 남편과 자식을 앞세운 내력이 있다. 늙어서 물가에 나온 물고기처럼 “꾸덕꾸덕 말라가는 몸”을 가진 척사마을에 사는 여인. 출세하여 대처로 나가 사는 자식들보다 같은 처지의 여인들끼리 옆에서 티격태격 “동글동글 기대고” 사는 것이 미덥다고 한다.
미수의 시누올케가 또 냉전 중이다
티격태격 기대고 사는
아랫집 윗집 팽팽한 줄당기기가
엇갈린 남북협상 같다
보탠 거라곤 고약한 심술보
매몰스런 입방아에 대못이 박혔다며 가슴팍 치는 어머니
고생 몰랐던 평생에 무슨 푸념이냐고
삐죽거리는 고모
나무랄 수도 없고 편들 수도 없는 양쪽을 오가며
맞다, 맞아요! 맞장구치다
어느새 귀가 순해진 올케와 나는
미수의 스무 권을 다 받아적지 못하고
번갈아 흘끔거리는 휴전선 변방
수돗가에 곰솥 불 지펴두고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장작개비 장단으로 늘어지게 불러본다
- 「티격태격 봄날은 간다」 전문
전문을 인용한 「티격태격 봄날은 간다」는 원관념인 인생비평을 보조관념 남북관계로 끌어와 시적 거리의 폭을 넓힌다. 좋은 시들은 대개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크다. 대부분의 일생은 척사길에서 만난 바닷가의 몽돌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과 티격태격하면서 한 생을 마감한다. 시는 발견이다. 사물이나 사건을 볼 수 있는 시인의 지적 수준이나 정서적 환경이 발견의 정도를 결정한다.
시인은 이러한 인생의 원리를 어머니와 고모, 즉 시누와 올케 사이에서 발견한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바닷가의 둥근 몽돌처럼 서로 가까이서 부딪치며 잘 살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보편적 우리네 살림살이를 이야기한다. 특히 시누와 올케 사이의 티격태격을 역사적이고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엇갈린 남북협상”이나 “휴전선 변방”으로 이동시키면서 비유의 공간을 확장한다. 이런 광폭의 비유,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멀수록 공감의 폭은 넓어진다.
3.
시에 음악 제재를 수용하는 것도 유진 시의 특징이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교향악단 일원으로 음악활동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시가 탄생할 무렵 시는 곧 노래였고, 노래는 곧 시였다. 시와 음악은 오랫동안 동족의 친연관계를 가져왔다. 오히려 음악에서 시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더 그랬고, 지금도 시에서 리듬과 율격, 즉 시의 음악성은 시의 주요한 요소로 인정된다.
서사시가 음악성이 퇴화하고 이야기만 남아 현재의 소설이 된 것처럼, 시가 음악성을 버릴 때, 시는 완전히 다른 문예양식의 탈바꿈할 것이다. 유진의 시집에서 음악성이 아니라 음악 제재가 수용된 시는 「월광 소나타」 「흡수골 변주」 「왈츠의 사생화」 「콘드라바스를 듣다」 「우울 소나타」 등 여러 편이다. 음악이나 악기가 체화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유진만이 가능한 시편들이다.
내가 버려지는 저녁은
우울이란 말조차 사치일지 몰라
목이 쉰 노을 냄새는 어둡고 칙칙해
계절의 절반은 침묵
그림자 없는 그늘을 헤집는 길고양이 울음에
칼에 베인 침묵 다시 베이고
찻잔 바닥에 울컥 바다가 고였어
배우기도 전 잃어버린 사랑의 말 아득하고
어둡게 울고 있는 바다는
소리를 잃은 내게 출렁이는 배경일 뿐
금 간 바윗덩이를 끌어안고
무얼 하지
무얼 할 수 있을까
버려진 나와 버려지지 않는 나는
어떤 코다로 만들어야 될까
- 「우울 소나타」 전문
시에 각주를 통해 코다coda를 한 작품 또는 한 악장의 종결 악구로 성명 했듯, 유진의 시는 체화된 음악 언어로 자신의 서정적 자아를 표현해 낸다. 음악을 공부하고 알아야 가능한 시인 개성의 한 부분이다. 이런 방식의 시는 아마 죽은 시인 김종삼이 썼고, 현재 시인 박몽구의 많은 시편들이 음악제재를 자신의 심경을 담아내는 상관물로 사용하고 있다.
우울은 집단에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버려지는 상황에서 발생되는 심리적 기제로 현대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병리현상이다. 대중 속에 있든 대중 밖에 있든 홀로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울이 침투한다. 화자의 우울은 깊어 “우울이란 말조차 사치일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런 심리의 화자에게 노을은 “목이 쉰 노을”이며, “노을 냄새는 어둡고 칙칙”하다. 화자의 가시권과 가청권에 있는 길고양이 울음과 찻잔 등 모든 사물과 사건이 화자의 우울을 증폭시킨다.
우울이 우물처럼 깊은 화자의 내부에는 사랑의 말이 아득하고, 바다는 어둡게 울며 출렁인다. 가슴에는 금 간 바윗덩이를 끌어안은, 방향을 잃어버린 삶의 코다, 삶의 종지부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 갈등하고 있다. 「월광 소나타」의 첫 연은 달빛을 연두로, 광학적 세계를 식물성으로 대체한다. 무생물의 세계를 생물의 세계로 전이시킨다. 시의 전개 과정에서 화자는 자신을 “나는 연두였지/ 사소한 바람에도 상처가 났고/ 달빛 아래선 길눈이 어두워졌지”라고 고백한다. 달빛과 연두 사이에 방황하는 ‘존재로서 존재하는 나’를 쉼 없이 변주한다.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와 요요마의 무반주 바하는
무엇이 같고 어떻게 달랐는지
쟈클린의 눈물에 젖은 밤들은
어떻게 말라가고 있을까
시인의 마을로 흘러든 소리는 어떤 노래가 되었나
수식어 없는 시들은 어떻게 흐느끼나
- 「흡수골 변주」 부분
화자는 “어둠보다 별이 더 많은” 몽골의 흡수골 8월의 밤 들판에 누워 별을 보고 있다. 초원의 “은하 어디쯤 손끝을 대면/ 폭포처럼 별물 콸콸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분위기에서 자신이 추구해온 음악과 시를 생각한다. 노래로도 가슴으로도 울어보지도 못했다는 회한과 이전의 연주자들의 연주를 생각하며 분석한다. “빗금으로 떨어지는 유성조차 화성을 이루는/ 소리의 바다”인 몽골의 초원에 누워있는 화자. 이런 “환상의 심포니에 가만가만” 자신의 노래를 잇대보는 것이다.
유진의 상상력은 거리가 먼 사물을 연결시켜 시적 물리적 심리적 공간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는데 익숙하다. 「왈츠의 사생활」에서 시인은 “조율하지 말아요 정련된 두 박자는 단조롭고/ 제도와 권위는 뻣뻣하고 지루해요”라고 한다. 음악과 제도 및 권위를 상응시킨다. 수시로 모양이 바뀌는 구름의 변화를 체위를 바꾸는 사람의 사건으로, 또 에로틱 낭만으로 상상한다. 데카르트 침대와 은하수의 거리, 거기에 안나푸르나의 등산 경험을 합주하면서 한 편의 시를 왈츠처럼 경쾌하게 끌고 간다.
「콘드라바스를 듣다」는 “나이보다 웃자란 아이였던” 시인 자신,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을 화자를 통해 시로 형상하고 있다. 웃자라 늘 먼 세계를 꿈꾸던 아이는 “늘 까치발”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미 수십 년을 성장하고, 성장을 넘어 “예전의 내”가 아닌 내가 되어버린 화자. 화자는 “넓은 음역의 네 현이 읽어내는/ 드라고네티 A장조 협주곡”의 “울창한 비애”를 들으며, “불협화음의 절묘한 어울림”을 통해 꽃을 피우고 비늘을 털며 성장하는 자신을 본다.
4.
유진의 지적 시 쓰기는 비평적 시를 생성한다. 유진은 풍자적 비평의 시선으로 세태를 비판한다. 풍자를 통해 시적 대상을 비판하고 독자를 깨우치고 반응의 즐거움을 얻는다. 풍자는 “악이나 어리석음을 문책”하며, 풍자의 목적은 “악의 교정”이다. “인간의 우행과 위선”을, “사회의 악덕과 부조리를 폭로”하는 것이 목적이다. “부정적 대상과 가치를 개선하고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는데 있다.(졸저, 『이야기가 있는 시창작 수업』, 시인동네, 2009, 208쪽 참조)
풍자적 시 쓰기는 오래된 방법이다. <<시경>>의 많은 시편과 <<삼국유사>>에 나라의 정치를 근심하여 길거리에 뿌린 다라니 은어, 삿갓 김병연과 프랑스의 보들레르, 현대의 신동문과 황지우 까지 풍자적 태도와 시편을 창조했다. 공자가 말한 시의 원리 ‘흥관군원’ 가운데 ‘원’에 해당되는데, 시적 대상을 원망하고 비판하는 시의 기원은 오래되었다. 유진의 시집에서는 「척」 「8월, 메노 모소」 「스몸비족」 「적요를 걷다」 등이 풍자적 시편에 부합한다.
척이 걸어가네
턱은 약간 위로 시선은 아래 사선으로
등 어깨 목을 최대한 곧추세운
척들은 하나같이 독일병정이 되네
힘센 투명 줄을 잡은
척과 척의 비밀 쉬 쉬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여덞이 되고
척을 가르면 쏟아지는 표정들
사랑인 척, 아닌 척, 궁금한 척, 놀라운 척,
모르면서 아는 척, 알고도 모르는 척,
척, 척들
척이 마을을 이루네
척이 척을 갉아 먹네
아이가 부모를, 부모가 아이를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람이 사람을 갉아먹네
깁스를 한척들이 아슬아슬 걷네
다물지 못하는 입들이 뭉게구름이네
- 「척」 전문
물론 ‘척’의 사전적 의미는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이며, 이 시에서는 그런 사람을 대신하는 대명사다. 진실이 아니라 관습이나 위선에 굳어진, 세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유연성이 없는 현대인을 ‘독일 병정’에 비유한다. 현대인은 자신의 속이기 위해 외형을 경직시킨 채 걸어 다니는 병정에 불과하다는 풍자다. 그러면서 자신의 욕망을 발현하고 관철하기 위해 보이지 않은 줄을 잡고 집단을 이루고 있는 세태를 묘파하고 있다.
사랑이 아니면 아니라고 하고, 마음에 두고 있으면 두고 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알면 안다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 세태를 비평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회는 척이, 위선이, 진실하지 않은 것이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 같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척이 척을, 위선이 위선을 갉아먹게 된다. 서로 삶을 갉아먹는, 위선이 지배하는 세계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좀 진실한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 사회의 삶을 추구해보자는 시인의 제안이 화자를 통해 비평적 발성으로 드러낸다.
한 손은 테이크아웃 한 손은 스마트 폰
지네 같은 다리들이
카페 통유리를 느리게 지나간다
더위와 느림과 수다는 한통속
과일 조각 다 건져내고 젤리만 남은 오후
유리그릇 빠져나온 식은 입술들이
빙설 아닌 빙수로 일관한다
- 「8월, 메노 모소」 부분
흔들리는 버스, 공원 숲 근처
침대와 책상, 소파, 식탁
엉덩이를 걸칠 수 있는 어디든 상관없어
뉴스도 쇼핑도 길 안내도
고개 숙인 자들만이 공유하는 거야
- 「스몸비족」 부분
시인은 자신에게 못마땅한 현재 문화와 세태를 비평하고 풍자하고 있다. 시의 중반부는 올림머리에 선글라스를 얹은 두 젊은 여성이 배꼽 피어싱을 뽐내며 걸어오는데, 선팅된 카페 유리 안에서는 이들의 맨살 허벅지를 쳐다본다. 젊은 여성들은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이들의 다리는 지네 같다. 더위와 느림과 수다를 하나로 묶는 시인의 상상력. 한여름에 카페 안에서 빙수를 먹는 사람들의 표정을 안팎 공간의 상황과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스몸비Smombie는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다. 시 「스몸비족」에서 시인은 스마트폰을 보느라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사람들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족속으로 풍자한다. 위 시 「8월, 메노 모소」에 등장하는 인물도 이 스몸비족의 일부다. 화자는 이런 “고개 숙인 공손이 지구를 점령하고/ 우주를 정복하는 날”이라며 과장하고 호들갑을 떤다. 이런 과장과 지나친 호들갑도 풍자의 일종이다.
5.
유진 시집 원고를 읽어가면서 주제를 유형화하고 제재를 분류해보고, 내용과 방법을 살펴보았다.
첫째, 자연의 사물이나 사건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비유적 방식의 시들이 많다. 사람을 파충류로 비유하거나, 나팔꽃이나 물풀, 가시연꽃과 유채를 어휘로 동원하며, 우렁이와 다슬기를 등장시킨다. 홍자색이 만발한 꽃무릇과 육교 난간 위를 아슬아슬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미니스커트의 에로와 활력이 있다.
둘째, 그의 시에 음악 제재를 빈도 높게 수용하는 것도 확인하였다. 유진 시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음악을 전공하고 교향악단 일원으로 음악활동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시적 수용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시와 음악은 오랫동안 동족의 친연관계를 가져왔다. 지금도 시에서 리듬과 율격, 즉 시의 음악성은 시의 주요한 요소이다. 오랜 경험으로 체화한 음악이나 악기의 용어가 적절하게 주제의 효과를 내고 있다.
셋째, 시인은 여러 시편에서 풍자적 태도로 시편을 창조한다. 유진의 지적 시 쓰기는 비평적 시를 생성한다는 걸 발견하였다. 시를 통해 “악이나 어리석음을 문책”하며, “악의 교정”하려고 하는 듯, 풍자적 비평의 시선으로 세태를 비판한다. 척하며 사는 위선적인 세태와 솔직한 신세대의 복장과 소모품, 스마트폰에 몰입하여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신생 인류 등의 모습을 과장과 호들갑으로 위장하여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