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 무(農舞)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 <창작과 비평>(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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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에서 '임꺽정 이야기'를 삽입한 효과
꺽정이와 서림이의 등장은 60년대 농촌의 현실과 조선 명종 때 현실을 비유적으로 결합시키게 한다. 임꺽정과 서림이는 60년대 농촌 현실에 갑자기 나타난 이질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 시의 문맥 속으로 임꺽정 이야기를 끌어들임으로써 60년대의 현실과 조선 시대 현실 사이에 대화 관계를 설정하게 한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 의적의 우두머리이며 서림이는 임꺽정의 모사이다. 조선시대 봉건제의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남다른 힘과 재주를 지녔지만 신분적 한계 때문에 그 힘과 재주를 적절히 쓸 수 없었던 그들의 울분과 한은 그들로 하여금 도둑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임꺽정의 이야기는 이 시를 단순한 농무에 대한 묘사로 만들지 않고 농무로 하여금 60년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소외된 농촌, 농민들의 울분을 표현하는 춤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 시는 산업화의 거센 물결로 인해 급속도로 와해되어 가던 1970년대 초반의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농촌의 절망과 농민의 울분을 고발, 토로하고 있으면서도, 그 울분이 선동적이거나 전투적인 느낌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그것은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끝나는 작품 구조에 의해서 교묘한 역설과 시적 운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울분과 절망을 정반대의 '신명'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통해 그들의 아픔이 역설적으로 고양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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