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충주호를
바라보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한낮, 유람선 한 대가 충주호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떠들썩하던 갑판은 조용했다. 비가 내리자 관광객들이 모두 배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갑판을 지키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무심히 물결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뱃전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를 통해 충주호를 소개하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모두 편안한 여행길 되고 계시는지요? 충주호는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아 만든 다목적 호수로 우리나라 호수 가운데 가장 크고
깨끗한 호수랍니다. 월악산국립공원과 송계계곡, 청풍 문화재단지, 단양 8경, 고수동굴, 구인사, 수안보온천, 노동동굴 등 수많은 관광지들이
주변에 산재한 아름다운 곳이지요.”
30대
중반 정도의 남자 안내원이 마이크를 든 채 선실 안의 관광객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은 안내원을 곁눈질하며 쓸쓸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강선대 아래 작은 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무덤을 오래도록 동공에 담았다. 이름
모를 새 몇 마리가 무덤 주변을 천천히 날고 있었다.
퇴계와 두향을 닮은
사랑이야기
“에,
여러분이 타고 있는 유람선은 충주댐나루터를 출발하여 충주호 뱃길 130리, 옥순봉과 구담봉, 만학천봉, 초가바위, 고래 바위, 현학봉, 오노동,
신선봉, 강선대, 버들봉, 오성암, 설마봉, 제비봉, 두무산 등을 돌아 신단양 나루까지 운항되고 있습니다.” 노인은 담배를 비켜 끄고 푸후
한숨을 내쉰 후 내리는 비를 그냥 맞으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안내를 마친 안내원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갑판으로 올라왔다. 그는 우산을 펼쳐
노인을 씌워 주었다. 노인은 웃으며 우산을 거절했다. “비를 좀 맞고 싶네.” 안내원이 물었다.
“어르신은
수몰지역이 고향이신가 보네요?”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안내원은 멋쩍게 머리를 긁 었다. “이쿠, 실례를
했습니다. 계속 강물만 내려다보고 계시기에…….”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죽은 마누라 생각이 나서 말야. 아내 고향이 이쪽
어디였거든. 이태 전 죽은 뒤 화장을 해서 강선대 근처에 뿌렸네. 아내의 유언이었지.” “아…….” 안내원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대라면
퇴계와 두향의 전설이 어린 곳 아닙니까? 무슨 사연이라도?” “사연이랄 것까지는 없고. 아내는 나의 첫 제자였다네. 나보다 딱 다섯 살이
어렸으니 퇴계와 두향과는 거리가 있지.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곳이 이곳 충주의 한 여상이었거든.” “그러니까 첫 부임지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셈이로군요?” “그렇지. 꽃같이 착한 아내였는데. 아내는 꽃을 좋아해서 매일같이 화단을 가꾸는 게 취미였네. 나는 그런
아내를 위해 종종 시를 지어 바치곤 했지.”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의 러브스토리도 영락없이 퇴계 선생과 두향을 닮았는걸요?” “그런가? 하하.” 노인은 쓸쓸히 웃으며 멀어지는 두향의 묘를
쳐다보았다.
“물결마다
굽이마다 이야기가 서려있는 충주의 남한강은 퇴계와 두향이 주고받은 마음처럼 따뜻하고 진한 정이 넘쳐 흐른다.”
매화와 시로 띄워 보낸
마음
두향은
지금의 충주호 인근, 옛 두향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퇴기의 손에 의해 길러진 두향은 어려서부터 거문고 타는 재주와 시문에 능해
기생이 되었다. 매화를 가꾸는 솜씨 또한 수준급이어서 다른 기생들이 모두 두향을 부러워했다.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내려온 것은
1548년이다. 퇴계는 단양군수로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둘째 아들을 잃고 쓸쓸함으로 연일 고통스러워했다. 당시 퇴계의 나이는 마흔 여덟이었다.
첫째 부인 허씨는 일찌감치 산후풍으로 죽고 둘째 부인 권씨마저 두 해 전 죽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까지 잃었으니 퇴계의 슬픔이
오죽했겠는가.
그런
퇴계에게 다가온 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기생 두향이다. 당시 두향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퇴계는 매화를 소재로 118편의 시문을 지었을 정도로
매화를 사랑했다. 그러니 매화를 잘 돌보는 두향이 퇴계에게는 아니 어여쁠 수 없었다. 죽은 가족들 생각이 날 때마다 퇴계는 두향을 데리고
옥순봉을 유람하며 조금씩 정분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퇴계의 형제 중 한 명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형제가 같은 도에서 일할 수 없다는 생각에
퇴계는 이웃 고을인 풍기군수로 물러날 것을 조정에 건의했다. 군수 임기가 5년이지만, 조정에서는 고심 끝에 퇴계의 상소를 받아들였다. 퇴계가
단양에 온 지 채 열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두향은
눈물을 흘리며 퇴계를 전송했다. 단양에 속한 탓에 임지로 가는 전임군수를 따라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퇴계 또한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두향의
나이가 젊고 창창했기에 여인으로서의 다른 길을 열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두향은 떠나는 퇴계에게 자신이 직접 주워 간직한 수석 두 개와 매화
화분을 선물로 주었다. 일설에는 시를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충주호
옆 들녘에는 정화수를 떠놓고 퇴계의 안녕을 빌던 두향의 마음처럼 .. 소박하고 수수한 개망초가 한 가득 피어 있다.”

한번
품은 그 마음은 꺾이지 않고
이후
두 사람은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해가 될까 봐 조심했기 때문이다. 그리움에 견디다 못한 두향은 정계를 떠난
퇴계가 도산서원에 머문다는 얘기를 듣고 난초를 보냈다. 그것은 아직도 꺾이지 않고 있는 두향의 마음이었다. 퇴계는 자신이 마시던 우물을 퍼올려
두향에게 보냈다. 건강하게 장수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헤어진 지 20년 뒤에 벌어진 일이었으니 그때 두향의 나이는 어느덧
서른여덟이었다.
퇴계는
난초를 머리맡에 두고 매일같이 바라보았다. 두향도 마찬가지였다. 퇴계가 보내온 우물을 먹지 않고 매일 아침 정갈하게 목욕을 하고 앉아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사용했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흘렀던 어느 날이다. 그날도 예외 없이 두향은 정화수를 떠놓고 퇴계의 건강을 빌어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에구머니나.” 두향을 깜작 놀라며 퇴계가 있는 경상도 땅으로 눈길을 주었다.
정화수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날, 퇴계는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당부하였다. “조정에서 내려주는
예장(禮葬)을 사양하라. 또한 비석을 세우지 말고 조그만 돌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새겨라. 또한 빌려온 책과 물건을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라.”
퇴계가
죽은 것은 일흔 살 되던 1570년이었다. 음력 12월5일, 퇴계는 제자들을 불러 시신을 염습할 준비를 하도록 명하고 그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두향이 정화수에서 핏빛을 보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퇴계가 죽기 바로 직전 남긴 유언은 이러하다. “매화에 물을 준 뒤 다른 방에 옮겨
두어라.”
퇴계가
죽었음을 직감한 두향은 한달음에 도산서원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퇴계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다. 두향은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먼발치서
님의 운구를 바라보았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온 두향은 남한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두향을 안타깝게 여겨 그의 시신을 퇴계와
자주 거닐었던 강선대 아래에 묻어 주었다.
두향이
죽은 뒤 퇴계의 후손인 이산해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었다. 원래의 묘는 강선대 아래쪽에 있었으나 충주호가 생겨나면서 200미터쯤 위로 묘가
옮겨졌다. 지금도 퇴계의 후손들과 유학자들은 퇴계의 제례를 지내고 나면 충북 단양의 강선대로 와 두향의 묘를 참배한다. 조선시대 시인
이광려는 두향의 무덤을 찾아 이렇게 읊었다.
외로운
무덤이 길가에 누웠네 물가 모래밭에는 붉은 꽃 그림자 어려 있고 두향의 이름 잊혀지면 강선대 바위도 없어지겠지
“산과
산 사이를 드넓게 흐르는 남한강 물길 위 의 유람선. 바람과 강물을 가르는 배위에 몸을 실으면, 지나간 사람과 사이에 추억이 흐르는 기억의
강으로 들어서게 된다.”
좋은 배필 생각나는
충주호에서
유람선은
어느새 버들봉을 지나 오성암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멀리 산자락을 배경 삼아 엷은 무지개 하나가 피었다가 천천히 스러졌다. 선실로
들어갔던 관광객들이 하나 둘씩 갑판으로 올라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 경치를 즐겼다. 젊은 안내원은 노인이 마음에 걸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누었다.
“이런
날은 그저 막걸리에 파전이 최고죠.” “그러게. 비가 오락가락하니 운치가 더 있구만.” 안내원이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사모님은 어떻게 인연이 되었습니까? 제자와 스승 사이라면 부부의 연을 맺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노인은 껄껄 웃고 나서 옛 생각이
나는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아내는
참으로 총명한 학생이었네. 앞자리에 앉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수업을 듣곤 했지. 그러다가……. 수업이 끝난 뒤 매주 토요일마다 나는 문예반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시를 쓰게 했는데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함께 시를 쓰고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며 더욱 친밀해졌으니까.”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반대가 심했을 텐데.” 노인은 손을 저었다.
“반대가
심하진 않았어. 다섯 살이면 그다지 많은 나이 차이도 아니고. 졸업 후 아내는 서울에 있는 친척의 회사에 경리로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그 뒤부터
우린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나누었네. 편지로만 이야기를 하다가 매주 만나는 사이가 됐고 더는 떨어져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청혼했지. 돌이켜보면 참으로 꿈같은 세월이었네.” 노인은 멀리 하늘 끝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결혼했는가? 안 했다면
애인은?” 안내원이 대답했다. “저는 아직 노총각입니다.”
노인이
소리쳤다. “예끼, 이사람. 지금까지 짝 하나 만들지 않고 무얼 했는가?” 안내원이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빨리 어르신처럼 좋은 배필 만나보고 싶어요.” 노인이 대답했다. “그럴 거야. 사람은 누구나 다 인연이 있으니까.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유람선은 뱃고동을 울리며 마지막 목적지인 신단양나루로 나아가고 있었다.
<주변광광지>
* 충주 탄금대와 탄금공원 043-850-2246 * 관아공원
043-850-7303 * 충주 미륵사지 043-850-6632 * 송계계곡 043-653-3250 * 중원고구려비 043-850-6631 * 충주호 유람선 043-422-1188
|
첫댓글 송계계곡 생각나네요..감사.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