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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기다리는 기쁨
글 : 안셀름 그륀 신부님
기다릴 수 있는 사람만이
어떤 것을 기다릴 수 있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만이
기다림이 필요한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다.
모든 것을 즉시 해결해야만 하는 사람과
모든 욕구를 즉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살아갈 능력을 갖기 어렵다.
그런 사람의 삶은 흥미가 없으며,
욕구를 즉시 해결하려는 데만 혈안이 된다.
배고픈 짐승은 기다리면서 기다림을 통해 기쁨이 커지게 할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잊어버렸다.
기다리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사람은,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없고
충만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기다림은 마음을 넓힌다.
기다림은 기다리는 사람 안에 삶을 증진시키는 긴장을 형성한다.
이러한 긴장 속에 참된 삶과 충만한 삶이 우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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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성탄을 지내면서...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차가운 겨울의 한 중간에 있다.
계절은 겨울로 들어선지 한 달도 더 지나고...
집 밖으로 나서면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부여잡으며 겨울 속에 있는 것을 알게 하곤 한다.
우리 살아가는 세상과 인간사 바람(風)은 그 만큼은 춥지 않으면 좋을 텐데...
성탄이 지나간다.
해마다 그러하듯 참 많은 기다림과 준비로 성탄을 맞았다.
세상과 사람들, 가까운 곳들에도, 그리고 우리 자신들도 그러하였다.
나 자신도 조금은 함께...
일상의 일들 이외에 작은 피정, 강론, 방문, 어느 성당들에서의 판공성사, 그리고 마음과 영혼으로 조그맣게 맞이하는 성탄 메시지와 카드를 주고 받으면서...
그리고 우리는 감사한다.
서로의 도움들과 만남, 작은 메시지와 카드하나에도 고마워하면서...
사실 우리 인간의 행복은 큰 것들로부터가 아니고, 지극히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거나 오고간다.
작은 말 한마디로부터 위로를 받고, 무심코 하는 나의 말 하나에서도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인간의 언어가 그러하고, 우리의 말들이 또한 그러하다.
금년 성탄미사는 비교적 조용하게 지내었다.
12월 24일 낮에는 대림 제4주일로 지내었고, 오후부터는 성탄전야로 지내었다.
12월 23일 저녁부터는 글라라 수도원에서 머물고, 12월 24일 오후에 다시 전주로 왔다.
24일 오후 4시에는 국제결혼가정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성탄미사에 참여하고, 24일 밤에는 중앙성당에서의 성탄 밤미사에 함께 했다.
그리고 25일 낮에는 토머스 쉼터에서 소그룹미사를 드렸다.
약 2시간동안 진행된 나눔과 감사의 제사로...
지금 이곳의 일터로 와서 이제 두 번의 성탄을 지내었다.
몇 번을 이곳에서 더 지내야 다른 일터로 갈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머물러야 하는 날까지, 지낼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머물며 살고 사랑하며 일해야 하는 것일 뿐...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주어진 생명과 시간 속에서 늘 모든 것 다하고
모든 마음을 다 헤아리며 기도하고 사랑해 가야 하는 것임을...
우리 인간의 삶과 길에는 언제나 빛과 어둠이 있다.
항상 행복과 고통이 오고간다.
어느 때에도,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완전한 행복, 온전한 평화란 없을 것이니...
행복과 평화는 언제나 어둠과 고통을 극복해가고 시련과 아픔을 지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임을...
그분께서 빛으로 오셨다.
말구유에 누우신 어린 아기예수의 모습으로,
나약하고 힘없는 한 인간현존으로,
상처받고 의탁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이 땅과 세상 속으로...
그분께서 말구유에 누우신 채 세상을 향해 빛을 내신다.
가장 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참으로 의존적인 한 아기의 현존으로 우리 인간세상을 향해
그분이 빛으로 오셨다.
오,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예수!
어둠 속 세상의 빛과 희망,
인간의 태양이고 달빛,
사람의 별빛과 소망,
우리의 사랑과 기쁨이시여,
죄 많은 우리 인간들의 구원과 생명, 행복이시여,
우리와 함께 인생 길 동행하소서...
우리와 같이 이 세상길 함께 가소서...
오늘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어둠과 그늘에서 쉽게 걷고 방황하는 세상과 우리의 길들을 비추소서...
강복하소서...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구원과 진리의 빛,
영원과 생명이시여...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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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가르침 학습하기 >
교회생활에서의 신앙 감각 - 제 1부 -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는 ‘신앙 감각’(Sensus Fedei)의 본질과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의 위상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위원들은 최종 문서인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을 절대 다수의 찬성표를 통해 ‘특별 형식으로’ 승인하여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제출, 세상에 공개하게 되었다.
‘신앙 감각’은 믿음에 관한 일을 명확히 식별하며, 참된 지혜를 촉진하고, 진리를 선포할 수 있게 해 주며, 오늘날 교회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새 복음화를 위한 중요한 자산’ 이다.
이 책은 비록 짧은 문헌의 성격이지만, 이 신앙 감각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 역사 안에서의 신앙 감각에 대한 이해, 그리고 오늘날 교회와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신앙 감각의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오늘날의 많은 이들의 여론과 신앙 감각, 교도권과 신앙 감각과의 관계 등에 대한 좋은 생각들을 이끌어준다.
이 자료는 권 토마(순) 형제님께서 몇 군데 발췌하여 정리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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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 >
❖ 제1장 신앙과 전승에 나타난 신앙 감각
✓ 7. ‘신앙 감각’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이전까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부’ (1코린 12,27; 에페 4,12;5,21-32; 묵시 21,9참조)이기에 하나의 전체로는 그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진리의 영을 받은(요한 16,13참조) 교회의 모든 지체가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1요한 2,20.27참조)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드러나 있다.
이 제1장에서는 먼저 성경, 그리고 그 이후 교회의 역사 안에 나타난 이러한 생각의 발전과정을 살펴 볼 것이다.
1. 성경의 가르침
가)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는 믿음
✓ 8.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볼 때 믿음은 복음에 대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응답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고자 복음을 선포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1,15) 바오로 사도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성장시키려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사도들이 선포한 것을 상기시켰다.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 (1코린 15,1-2 참조).
신약성경에 나타난 신앙은 구약성경, 특별히 하느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에 뿌리박고 있다. (창세15,6 ; 로마 4,11. 17 참조).
믿음은 하느님 말씀 선포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이며, 그렇기에 참으로 말씀을 믿는 이들이 받는 성령의 은사이다 (1코린 12,3 참조).
믿음의 순종(로마1,5)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고 교회의 지체로 만드시는 하느님 은총의 결과이다(갈라 1,1. 13 참조)
✓ 9. 복음은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복음은 단순히 종교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선포이며,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17 참조 ; 마태 11,15;루카 7,22; 이사 26,19;29,18;33,5-6;61,1-11)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느님 은총의 복음”(사도 20,24)이며, “하느님 신비의 계시(로마16,25)이고 ”진리의 말씀“(에페 1,13)이다.
복음에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곧 하느님 나라의 도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통한 구원과 영광의 신비가 있다.
복음에는 강력한 주체가 있다.
그 주체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파견하셔서 [그들의] 언행으로 복음의 영감을 받은 권위 있는 선포의 직접적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마르12,30) 전인격적 응답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응답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 (히브11,1)이 된다.
✓ 10. 믿음은 신뢰의 행위이자 고백의 행위이다.
믿음의 대상인 내용과 믿음의 태도인 고백은 서로 나뉠 수 없이 결합되어있다.
신뢰란 납득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찬 복음에 대한 동의이고, 고백은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다.
신약성경과 구양성경은 믿음의 내용과 형태가 결합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 2018년 1월호에 제2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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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
2017. 12. 3
마르코 13, 33~37
♠ 복음 공부 : ‘종말의 때는 언제인가?’ 라는 제자들의 첫 질문에 두 가지 비유로(13.28-29) 그때를 알려주시고,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30-32). 종말의 표지로 무화과나무에 이어 멀리 떠난 주인과 종의 비유를 든다(34-36). 그리고 마르코는 종말의 일시는 아무도 모른다는 단절어(32절)와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 비유를 (34-36절)이용하여 13장의 결론을 내린다.
* 33~34절 : 항상 대비하라. 그 날과 그 시간은 종말과 재림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아버지만 아신다고 한다. 예수님이 모르실리 없겠지만, 틀림없이 그날이 오기 때문에 너희 모든 그리스도인은 종들에게 권한을 준 주인이 언제 올 줄 모르기 때문에 주인이 각자에게 맡긴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문지기처럼 조심하고 깨어 지키라”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 35~37절 : 깨어있어라. 예수님시대 로마에서 통용되었던 4등분을 (저녁, 한밤중, 닭이 울 때, 이른 아침) 응용하여 예수님의 재림 시기의 불확실성을 부각시키며, 재림이 갑자기 이루어지기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훈시하신다. “깨어 있어라” 를 4번이나 강조하면서 그릇된 열광주의(13.5-6.21-23)와 잠으로 표현된 부주위한 무관심(13.36)이란 두 가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깨어 지키라” 고 거듭 일깨운다.
♠ 복음 요약 : 마르코복음 13장은 모든 복음의 지평을 종말까지 펼쳐 교회는 대림1주일로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인 “깨어 있어라” 라는 말을 4번이나 한다. 강조한 것은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대림시기에 주님께 대한 희망과 기다림의 자세가 강조된다.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가 역사이듯 우리의 삶도 각자의 역사 안에 신앙으로 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위장된 진리로 우리를 유혹시키는 수많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깨어 하느님께로 가는 걸림돌을 인지하여 회개하고, “아버지의 뜻이 내 삶 안에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의 삶으로 매일매일 성실하게 살아 미래의 희망으로 이끈다.
♠ 대화 방향 : 대림시기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기다림의 시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자주 잠에 빠져든다. 그래서 그분의 뜻과 원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 나에게 깨어있어라 하신다. 나에게 있어 “깨어있어라...” 는 말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특히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 참고 문헌 : ▪ 예수님을 따라 (성서가족을 위한 마르코 복음서 해설 / 성서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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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 / 인권 주일
2017. 12. 10
마르코 1, 1~8
♠ 복음 공부
* 1절 : 마르코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이시다. 머리에서 밝힌다. 곧 그를 사람에게 믿도록 하는데 복음서의 목적이 있는 것이며, 이 믿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리켜 ‘복음’이라는 신앙고백이 마르코복음을 이해하는 열쇠다.
* 2~3절 :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며 하느님은 오시는 중이다. 인용문 하나를 제시하면서 이사야 예언자에게 귀속시킨다. 이 인용문은 본문(말라기 3,1 : 이사야 40.3)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다른 탈출기 23.30을 기억하게 한다. 이렇게 메시아가 걸어가는 길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가는 우리들이 이기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자기 성취가 아니라, 진정한 메시아가 오실 하느님의 길을 준비해야 하며, 메시아가 증명할 하느님의 길은 하느님의 힘을 입어 스스로를 해 방시키는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말라기 3.1의 심부름꾼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사 40.3)가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인물인데,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공적 활동을 준비하는 인물로 바뀐다. 광야는 말라기의 인용 본문에서 성전과 대치되는 것으로 성전은 종교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 당시 유대 민중은 로마의 제국주의, 지도자들의 부패, 사제들의 물질주의와 신앙의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으며 분파와 파벌로 갈라지던 시기의 악조건에서 민중은 메시아가 오실 때를 믿고 있었다. 그래서 본문은 이런 중심지에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인 인간관계를 불평등한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로, 불의한 관계에서 정의로운 관계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메시아가 오심을 준비하도록 성경이 말하는 전령은 누구인가?
* 4~8절 : 우리는 하느님과 만나는 유일한 장소인 성전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 전령을 만나도록 광야로 인도받는다. 요한은 광야에서 살면서 낙타 털옷을 입고 들꿀을 먹으며 사는 모습이 엘리야 예언자를 떠올리게 한다. (2열왕 1.8 참조). 마르코는 엘리아와 비슷한 세례자 요한이라는 새로운 예언자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아가 되돌아오리라고 율법학자들이 예고한 바로 그 엘리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마르 9.11-13 참조) 따라서 광야에서 요한을 만나는 것은 엘리야의 모습을 한 예언자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등장은 지배하고 착취하는 모든 권리에 대항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의 소리가 되살아났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광야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예언운동과 관련된 상징적인 자리가 된다. 세자 요한은 무엇을 선포하는가?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4절)고, 즉 회개하여 주님의 길을 찾으라고 권고하는 한편 “자기보다 훌륭한 분이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7절)을 선포한다. 바로 이 소식은 요한이 선포해야 할 가정 중요한 임무였다. 이 모습에서 구약에서 예언했던 엘리야를 볼 수 있고, 성령이 주체로 등장한다. 그리고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라고 선포함으로써 요한은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종이 주인의 신발끈을 풀어주는 법인데, 자기는 예수님께 그런 일을 해 드릴 자격조차 없는 메시아의 시종에 불과함을 공적으로 인정한다. 메시아가 자기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함으로써 메시아와 실천으로 나타날 하느님의 길은 억눌린 백성이 하느님의 힘을 입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길이며(탈출기 인용), 성령으로 베푸실 세례는 메시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길과 아닌 것을 구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길을 식별하고 그 길을 가로막는 세력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이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것이기에...
♠ 복음 요약 :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신비롭게 이니시아티브를 취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향해서 오시는 분, 스스로 움직이셔서 우리 쪽으로 오시는 중이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이제 곧 요한이 마련한 길을 통해 오실 것이다. 맞이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하고, 메시아가 보여 줄 하느님의 길을 따라 기쁜소식을 받아드릴 자세를 취하도록 세례를 베풀면서 자기는 그분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요한은 허리를 굽혀(이 표현은 마르코만 사용)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은 요한이 행하지 못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 이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아드님이 모델이며 복음이다. 우리에게 기대감과 준비 자세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요한의 외침을 듣는 이는 자기 삶을 바꾸어 주님이 바야흐로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고 깨달아야 한다. 대림 제2주에 요한의 후계자 격인 그리스도인은 ‘지금 여기에’ 비록 명확하게 인지 못할지라도 회개와 사랑의 삶으로 광야로 인도하는 부름을 받고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 대화 방향 : ① 마르코는 첫머리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밝히고, 예수님과 기쁜소식을 하나로 보았던 것입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신지 묵상하고 나누어 보세요.
②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로 회개를 권유한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대림절에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요?
♠ 참고 문헌 : ▪ 예수님을 따라 (성서가족을 위한 마르코 복음서 해설 / 성서와 함께 )
▪ 마르코 복음 읽기 ( E.M.발란친 지음, 김수복 옮김 / 바오로딸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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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 / 자선 주일
2017. 12. 17
요한 1, 6~8. 19~28
♠ 복음 공부 – 들어가기 : 요한복음서는 예수의 행적이나 가르침보다는 오히려 예수의 신비스러운 인격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응답, 곧 믿음도 촉구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신비스러운 예수를 믿고 함께할 때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된다는 메시지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공관복음서에서 인간구원으로 선포된 ‘하느님의 왕정’이 요한 복음서에서는 ‘생명’으로 대치되고, 이 ‘생명’은 곧 예수 자신으로부터 주어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서는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 이라는 믿음의 동기와 그 목적을 서술, 묘사한 복음서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요한복음서의 예수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거나 자기 자신이 고백 및 선포됨으로써 복음선포의 ‘주체’요 동시에 ‘객체’로 소개된다. 요한복음서가 이런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때, 요한복음서는 신비스런 예수의 인격 전부를 서술, 묘사한다거나 신역성서의 메시지를 대변할 만한 유일한 복음서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도 동시에 시사된다. 즉 요한복음서도 신약성서의 다른 책들과 함께 읽혀져 보충, 보완되어야 한다. 각 책마다 고유한 관점이 있고 그 관점은 당시 시대적인 정황, 곧 ‘삶의 자리’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6~8절 : ‘로고스 찬미가’에 속하지 않는 부분으로서 요한 복음사가에 의해서 삽입된 구절들이다. 즉 요한 복음사가도 초대교회의 복음선포 내용이나 다른 복음서에서 볼 수 있듯이 ‘말씀’의 지상 활동에 관한 보도 내용을 세례자 요한 출현과 함께 시작하고자 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빛에 대한 그의 증언은 하느님으로 부터 연유된 것으로 강조된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출현을 구약 예언자들의 파견이야기와 흡사하게 서술, 묘사한 것도 그 맥락을 같이한다.
* 19~21절 :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한 자들도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나는’이란 말이 강조됨으로 인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어느 사람’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도 아울러 시사한 셈이다. 당시 사람들은 재림할 ‘엘리야’와 오시기로 약속된 ‘그 예언자’를 구원의 시대에 등장할 메시아와 같은 인물로 생각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22~23절 : 이사야서 예언서(40,3)를 인용하시는 부분이다. 이사야예언서는 바빌로니아 포로로 끌려가서 생활하다가 다시 유다 땅으로 귀환하는 부분을 기록하는데, 여기서 인용하는 부분은 후반부분에 속한다고 보여진다. 성서를 보면, 이사야 예언서 제2부라는 타이틀로 40장부터 시작함을 알 수가 있다. 그 이후 ‘주님의 종에 대한 노래’ 등 희망찬 ‘기쁜소식’이 기록되어 있다.
* 24~28절 : 세례자 요한의 대답은 자신의 세례보다는 자신이 증언해야만 하는 분의 인격에 집중되어 있다. 즉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자신이 행한 증언의 뒷전으로 물러나 있고, 또한 메시아적인 의미를 가지는 그런 세례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세례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 을 다만 알려주기 위해서 수행하는 ‘물의 세례’일 뿐이었다. 또한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란 말에는 세례자 요한 자신이 그분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복음 요약 : 구원의 큰 기쁨 - 대림 3주일 전례의 핵심은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 (필리 4,4-5)라고 기쁨에 차 노래합니다. 성서형제회를 만나면 늘 기쁜 마음으로 율동과 함께 고백하는 일입니다.
이 기쁨은 <제 1독서>에서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이사 61,10).
<화답송>에서는 마리아의 마니피캇을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루카 1,46-47)
<제 2독서>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기쁨에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1테살 5,16) 이 기쁨의 동기는 물론 구원과 연결되어 있고, 구체적으로는 다가오는 주님의 성탄 축일이 구원의 큰 기쁨이라는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에 있어서 좀 더 본질적인 차원은, 슬픔으로 질식되어 삶에 권태를 느끼는 이 세상에 대해 보다 더 확신에 찬 기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 대화 방향 : ①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언직의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나는 그 사명을 삶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② 마지막 예언자이자 위대한 예언자였던 세례자요한은 복음을 통해 어떤 삶의 자세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일러 줍니까?
③ 성서형제회는 창설자 정신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통하고, 다시 새로이 시작하는 예수그리스도 수도회와 어떻게 서로 협력할 것입니까? 창설 신부님께서는 [남미 에콰도르 25년 선교보고서] 를 통해 “성서형제회안에 설립된 ‘아나윔 공동체’의 활성화가 중요한 문제라고 하시고, 이는 성서형제회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생활화하는데 밑거름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018년을 바라보면서 봉사자로서가 아니라, 성서형제회의 회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얘기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분도 출판사) ▪ 보득솔 (청년성서모임)
▪ 믿음의 길 (수원교구 / 대림.성탄편) ▪ 성서형제회 현황보고 (최규업신부님 25주년 선교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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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
2017. 12. 24
마태오 1, 18~25
♠ 복음 공부
* 18절 : 마리아와 요셉은 약혼했지만 같이 요셉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다.
* 19~25절 : 요셉이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첫째, 바로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함이다.
둘째, 의로운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 꿈속에서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말씀하신다. 셋째, 의로운 요셉은 꿈속에 나타난 천사의 말씀에 순명한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넷째, 의로운 요셉은 즉시 행동으로 실천한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를 맞아 들였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 라고 지었으며, 그 순간부터 임마누엘의 말씀은 요셉에게 첫 번째로 이루어졌으며,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사시게 된다.
♠ 복음 요약 :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다. 의로운 요셉은 진정한 의로움 하느님께 인정받는 의로움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성요셉은 성모님처럼 성경에 별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히 성경을 읽는 후손들에게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에게도 성 요셉과 같은 의로움을 보신다. 예수회 김삼용 신부의 시를 묵상해보자.
주님이 아니시면 우리의 삶은 향기 없는 분향과 같다.
나 그대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무의미..
내가 그대로 인해 살아 있고,
그대는 나로 인해 영광을 받는 나.
그대 아니면 향기 없는 분향과 같아.
♠ 대화 방향 : 성탄을 미리 축하하며, 서로 성탄의 기쁨을 미리 나누어 보자.
① 아기 예수님과 더불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나눠 보자.
② 그리고 다른 형제자매의 행복 체험을 통해 함께 행복해 봅시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주님 주님께서는 생명의 샘이시옵니다. 저희는 주님의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 참고 문헌 : ▪ 사랑이 내게 먼저 다가왔다 ( 김삼용 신부.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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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가정성화주간
2017. 12. 31
루카 2, 22~40
♠ 복음 연구
☞ 개괄적 이해 : 루카 복음서는 ‘구원자’라는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공관복음이며, 하느님께서는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전개하신다.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치러진 마리아의 정결례와 아기예수님의 봉헌례를 통해 예수님의 공현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이어서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가난한 사람을 대표하여 시메온과 한나를 등장시켜 가난한 자와 여성, 보편적 구원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성탄 8일 축제 한 가운데에 있는 성가정 축일을 우리는 세상의 구원이 시작되는 가정의 신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 율법에 순종하신 예수님과 그 부모
* 22-24절 : 정결예식-율법에 의하면 출산한 산모는 일정 기간 출혈이 있기 때문에 불결하다고 간주하여 남자를 낳은 산모는 40일, 여아인 경우는 80일이 지나면 성전에 들어가 속죄예식을 드릴 때 제물로 일년생 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바쳐야 했다. 그럴 형편이 못되면 비둘기 한 쌍을(빈자의 예물) 바쳤는데(레위 12.1-8), 마리아는 빈자의 예물을 바쳤다고 한다.(24절)
☞ 속량법(예수의 봉헌 23절) - 유다인들은 첫 아들이 태어나면 하느님의 차지임을 간주하여(탈출 13.2) 부모가 사서 기른다는 의미로 한 달 안에 성전 비용으로 5세켈을 바쳐야 했다(민수 18.15-16). 이와 같이 ‘예수의 봉헌 이야기’ 는 율법준수를 강조하면서 유다인 사이 널리 고취되어 있던 ‘메시아에 대한 대림 사상’을 잘 알 수 있다.
❊ 메시아의 증언 : 대표적인 인물로 시메온과 한나를 소개하고 있다.
* 25-35절 : 의롭고 독실한 시메온은 하느님께서는 희망이 없어 보이고 세상이 타락할 때도 소수의 독실하고 경건한 사람을 남겨 그들을 통해 어두운 세상을 비추게 하신다.(25-26절) 메시아를 만난 시메온은 구원받은 모든 이들의 상징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으로 들어가 그 아기가 메시아인 것을 말하고 있다. 그에게 메시아를 뵈올 은총을 약속하셨으며, 메시아를 품에 안는 은총까지도 주셨다.(27-28절) 성전에 온 아기가 구약의 완성자임을 깨닫고, 아기를 팔에 안고 시메온의 찬미가를 부른다. 용어, 문체, 그리고 보편적인 구원관에 제2 이사야 (40-55장)과 매우 비슷하다. 성령의 비추임을 받은 시메온은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론 유배의 고통에서 희망을 전해주는 예언이 나온다. 찬미가의 전반부 29.30절에서 메시아를 뵈온 기쁨을 노래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으니‘ 이제 편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반부 31~32절에서 온 인류에게 가져다 줄 메시아의 은총을 노래하고, 전 인류에 대한 보편적 구원 의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모든 민족‘ 앞에서 란 표현은 민족, 계급의 구별 없는 인류를 위한 은총임을 명백히 선언한다.(이사52.10 참조). 그는 ’이방민족에게 계시하는 빛‘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아기를 기념하여 하느님을 찬미한다. 이어서 마리아에 대한 예언(34-35절), 즉 아기의 운명-수난과 죽음, 반대의 표적으로 어머니가 장차 칼에 꿰뚫리는 고통을 겪으리라 한다.
* 36-38절 : 여 예언자 한나의 증거 -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포로가 되어 흩어진 아쎄르 지파 가운데 가난한 과부로 지내며 여호수아가 성막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처럼 성전을 떠나지 않고 이스라엘을 위해 단식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한나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약속을 이루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가 구원자임을 알린다.
* 40절 : 율법에 따른 모든 일을 마친 후 요셉과 마리아는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 복음 요약 : 예식을 통해 주님의 부모님은 율법에 준수하신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으며, 주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들 사이에 가난한 한 가정을 통해 교육되고 양육되어 졌음을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구원을 기다리는 가난한 사람을 대표하는 시메온과 한나에게서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는 은총을 하느님으로부터 받는다.
♠ 대화 방향 : ① 나자렛 성가정의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여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실히 율법을 준수하고 구속자로서의 사명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양육하며, 예수님은 모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자녀들을 하느님의 선물로 어떻게 교육 할 것인지 묵상하고, 나누어 보세요.
② 오늘의 우리 세대에 구원자 예수를 알아보기 위해 지녀야하는 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요? 그러고 지극히 가난한 이들에 둘러 싸여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신 구원자 예수의 봉헌 이야기가 오늘날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 참고 문헌 : ▪ 루가복음 성서못자리 그룹공부 교재
▪ 성서공부를 위한 루가복음 해설 ( 허찬호 엮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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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묵상 >
아기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대축일 복음묵상
광주 FㆍB
장 도미니꼬 사비오 (철호)
❊ 복음 말씀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태오 복음 18, 1~5)
❊ 내용 :
찬미 예수님 !
안녕하세요, 성서형제회 형제자매님들...
오늘은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 대축일입니다.
어린이처럼 섬세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았던 성녀 데레사.
수녀원에서 살았을 때는 동료 수녀들이 그녀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의 일기에서 수녀님의 영성이 밝혀졌고, 교회는 성녀 데레사를 교회 학자로 선포했으며, 전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감곡에 있는 성모님 성지 감곡성당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나스타시아 선생님과 허 데레사님과 함께 예전에 감곡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곳에 계셨던 김웅렬 토마스 신부님께서 그 성당을 지으신 프랑스에서 오신 임 가밀로 신부님은 선교사로 파리외방선교회 신부님으로서 조선이라는 미지의 나라에 선교사로 발령받고 나서, 성녀 데레사 언니가 원장으로 계신 가르멜봉쇄 수녀원을 찾아 갔습니다.
선교사 출발 직전 기도부탁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임 가밀로 신부님은 성녀 소화 데레사 수녀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예사로운 수녀님이 아 아닌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소화 데레사 수녀님께 기도 부탁을 하고 조선으로 출발했습니다.
성녀의 자서전을 보면 메일 모르는 나라와 임 가밀로 신부님을 위해 기도 드린 것이 나옵니다.
저는 얼마나 성녀의 눈빛이 강렬하고 아름다운지 지난번 리지에를 방문했을 때 성녀가 살았던 생가의 성녀 방 벽에 걸어진 사진을 보고 가슴속에 담고 왔으며 그날부터 성녀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녀의 부모민들도 최근 성인품에 오르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 밤에 출발하여 터어키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여 9월23일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터어키 키푸러스 섬에서 학술대회가 열렸는데, 발표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에페소를 방문하기 위해 키푸러스섬 공항에서 이즈미르 공항을 가기 위해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두었던 터어키 저가항공으로 이즈미르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즈미르에서 가까운, 에페소에는 사도 성 요한의 무덤성당이 있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상 유언대로 사도요한은 성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집 성모마리아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가기 전부터 그곳을 방문하고 싶어서 학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두 명의 전공의와 한명의 전임의와 함께 방문한, 이슬람국가인 터어키는 생각보다는 평화로웠습니다.
호남평야처럼 넓게 펼쳐진 밀밭을 보고 룻기가 생각났으며, 가기 전 인터넷으로 예약했던 셀축에 있는 호텔에서 이즈미르공항으로 자동차 마중을 나와서, 자동차를 타고 이즈미르공항에서 에페소로 가는 동안 자동차로 1시간 반 거리이지만, 예전 사도 바오로는 이 길들을 전부 걸어서 다녔다고 생각하니, 바오로사도의 전교여행이 묵상되었습니다.
성모님의 집은 에페소에서 조금 떨어진 셀축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셀축 마을에서 자동차로 25분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산꼭대기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탈리아에서 오신 신부님께서 상주하고 계셨으며, 성지 안에 있는 성물 센터와 커피숍에는 전부 마케도니아에서 온 가톨릭신자들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봉사정신으로 이슬람국가인 터어키에서도 그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에페소 성모님의 집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 주간도 주님 은총 안에서 지내시기를 바라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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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글 >
묵상에 대한 오해들...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ㆍB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성서형제회의 가장 기본조직은 코이노니아로서, 회원들은 코이노니아에서 ‘복음 나누기’를 합니다.
시작기도나 성가로 시작하고... 해당 복음을 봉독하고... 주제발표와 대화방향을 정하고... 회원 각자의 삶 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복음말씀에 비추어 묵상 나눔을 하고... 공동결심과 마침기도 등으로 끝을 냅니다.
우리가 하는 것 중에 가장 잘 안 되는 부분이 주제발표와 묵상이라는 것입니다.
주제발표와 대화방향을 정하는 것은 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준비해오게 되는데,
다음 주일의 복음말씀이 어떤 배경에 작성되었으며, 그 말씀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성경주해서 등을 통해서 알아내어 발표하고, 이에 따라서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의 생활과 어떤 관계인지의 방향을 정해주는 일이 됩니다.
그 방향에 따라서 우리는 그 말씀과 관련된 것 중에서 본인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생사와 연계해서 겪은 일을 코이노니아 시간에 얘기를 하게 됩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코이노니아에 참여해 보면 때로는 주제발표를 마치 자신의 묵상한 것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고, 오히려 묵상나눔에서는 자신의 묵상꺼리를 얘기하기보다는 성경에 대한 배경이나 성경풀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정반대로 우리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통상 준비가 잘 안되어 있는 코이노니아팀에서는 주제발표를 할 때에 성서공부를 해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미사책 안에 있는 묵상부분을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책이나 각 교구의 주보에 실리는 묵상 내용은, 서울교구인 경우는 신부님들이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그 내용을 적어낸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신부님이 생활 중에 경험을 그 주일의 복음내용과 견주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묵상이라고 합니다.
그런 반면 주제발표는 성서형제회 교본에도 명시되어 있다시피, 그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이나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등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서 밝혀야하겠지만,
전문적인 성경공부가 아니면 하기 어려울 것이고, 다만 성서 전문 신부님이 쓴 성서주해서나 성서연구한 자료를 인용해서 발표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형제회는 성경공부 때문에 반드시 지도신부님이 필요하다고 되어있습니다.
지금 성서형제회는 전주교구에서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병환중이시지만 지도신부님이 계시고요, 지도를 해주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게시지만, 우리들이 코이노니아에서 하는 주제발표와 묵상나누기에 대한 영성지도를 세세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피정이나 어떤 행사를 통해서든 나중에 여기에 대한 방향이나 평가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레지오의 영적 독서와 훈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특히 레지오의 가장 기초단체인 쁘레시디움 단장에 대한 교육이나 피정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훈화집을 발간하고, 레지오잡지를 통해서 좋은 훈화내용을 수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봅니다.
초기 회원들은 인원이 몇 명 되지 않았기에 피정이나 여러 가지 교육 등이 가능했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범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러한 부담을 평신도 몇몇이서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그 내용이 상당히 형식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내어서 한 번 쯤은 그 실태를 점검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로 잡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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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7년 10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