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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3월 23일 목요일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 제오르지오 순교자 또는
[홍] 성 아달베르트 주교 순교자
말씀의 초대
필리포스는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나 세례를 주고,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며,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작가 칼릴 지브란은 말합니다.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눈에 보이는 사건 너머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사랑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대로, 우연처럼 보이는 일 뒤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예비하심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가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필리포스를 먼저 준비시켜 보내십니다. 내시가 말합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사도 8,31)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
주님께서 먼저 나를 선택하시고 이끌어 주셨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이 시작됩니다. 모세의 손을 통하여 홍해가 갈라졌지만, 그 일을 이루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던 이스라엘의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현실에서 도움을 받거나 바라는 일을 이루기 위한 신앙을 넘어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을 믿어서 삶이 변화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눈에 보이는 사건이나 사람에게만 의지하고, 그 뒤에서 이끄시는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인간적 한계와 실망 앞에서 믿음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필리포스가 떠난 뒤에도 내시는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갑니다]”(사도 8,39).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 자신을 이끄시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나를 이끄시는 분이 결국 하느님이심을 기억하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성체성사의 그리스도여, 당신과 함께라면 저는 그 무엇도 할 수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도 여전히 복음 말씀의 주제는 생명의 빵입니다.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복자 한 분이 계십니다.
카를 라이스너 신부님입니다. 이분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죽을 고생을 했던 신부님입니다. 1915년에 태어나셨고 종전을 목전에 둔 1945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장소는 아우슈비츠 못지 않게 악랄했던 다하우 강제 수용소입니다.
이분의 사제로서의 삶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24살에 부제품을 받은 라이스너 부제는 부제품을 받자 마자 곧바로 나치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건강했던 그는 거기서 꽤 긴 기간인 4년간 버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종전을 목전에 두고 몸이 점점 약해지고, 결핵에 걸려 쓰러집니다.
부제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죽는 것은 아무 미련도 없지만, 사제품을 받지 못하고, 죽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고 안타까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이스너 부제는 한 가지 지향을 두고 간절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얼토당토 않은 청이라 여기시겠지만, 혹시라도 제게 사제품의 영광을 주실수는 없겠는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부제의 간절한 청이 하늘에 도달했습니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는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갇혀 있었는데, 그 중에 주교님도 한 분 계셨던 것입니다. 부제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주교님이 부제가 누워있는 방을 찾아와서 사제품 주신 것입니다. 1944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던 라이스너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소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미사를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강제 수용소에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병세가 깊어진 부제를 보고 군인들은 그를 가스실로 보내려고 했는데, 부제님의 얼굴을 보니 그럴 필요도 없겠다 싶어 강제 수용소 밖으로 내던져 굶겨 죽이기로 했습니다.
들것에 실려 밖으로 나가던 부제는 자신을 싣고 나가던 군인 두 명에게 자신이 겪었던 그간의 일들을 말해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제가 되었지만, 아직도 미사를 단 한번도 드려본 적이 없다. 죽기 전에 미사 한번만 드릴수 있도록 도와줄 수 없겠냐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독일군들도 신자였습니다. 그들은 카를 신부를 수용소 밖으로 데려나가다가 다시 유턴해서 수용소 병실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미사 도구들을 챙겨다 주고 첫미사를 봉헌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죽기 일보 직전 병원 침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유일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카롤 신부는 단 한번의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봉헌하는 미사이다 보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라이스너 사제의 눈에서는 미사 내내 감사의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 수감자들은 다들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습관처럼 봉헌하는 미사가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 가장 간절한 소원이라는 것, 기억하면, 우리의 미사가 더 간절해져야겠습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 카롤 신부의 그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한다면 그 미사가 얼마나 은혜롭겠습니까?
라이스너 신부의 고백입니다.
“성체성사의 그리스도여! 저는 당신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저는 그 무엇도 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의 그리스도여! 당신은 저의 안식처요 집입니다! 성체성사의 그리스도요! 저는 오직 당신께만 속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미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미사에 대한 최우선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까?
생명의 양식은 나를 먹고 새 삶의 방식을 제공한다
전삼용 요샙 신부님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어야만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먹는다'는 행위를 내가 대상을 파괴하여 내 몸의 영양분으로 만드는 일방적인 약탈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먹음'은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내가 먹은 대상에게 내가 다시 먹힘으로써, 나의 낡은 주권이 사라지고 그 양식의 새로운 법칙에 의해 재창조되는 '거룩한 통합'의 사건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은총)'와 '법칙(진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진짜로 오래 살게 만드는 양식은, 내가 그것을 먹었을 때 오히려 그것이 나를 먹어치우고 나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먹음으로써 먹히는' 신비가 어떻게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지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현대 생물학의 『세포 내 공생설』(Endosymbiotic Theory)은 먹고 먹히는 관계가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지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모형입니다.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된 박테리아였습니다.
약 20억 년 전, 거대한 세포 하나가 이 작은 박테리아를 잡아먹었습니다. 일반적인 자연계라면 박테리아는 소화되어 사라졌겠지만, 여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먹힌 자(미토콘드리아)가 죽지 않고 오히려 먹은 자(대세포)의 자원을 먹으며 그 안에서 '에너지 공장'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논리가 나옵니다. 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먹었지만, 결과적으로 세포의 주권은 미토콘드리아의 법칙에 먹혔습니다. 이제 세포는 미토콘드리아가 제공하는 '에너지의 법칙' 없이는 단 1초도 살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체성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자아를 땔감 삼아 태우시고, 그 대신 '성령'이라는 하늘의 에너지를 방출하십니다. 내가 주님을 먹었으나 결국 그분의 에너지에 내가 먹힘으로써 그분의 방식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
생명의 시작인 '수정' 과정 또한 이 일치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는 순간, 난자는 정자를 '먹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에 난자의 운명은 정자가 가져온 유전 정보라는 법칙에 완전히 먹힙니다.
정자가 가지고 온 유전자라는 '법칙(진리)'이 난자의 핵 속으로 침투하여, 난자를 이제 더 이상 난자가 아닌 '태아'라는 전혀 새로운 정체성으로 재창조하기 때문입니다. 난자의 생명 주기는 고작 1달이지만, 정자를 먹고 그것의 법칙에 자신을 내어줄 때 비로소 9달을 살고, 다시 수십 년을 사는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성체를 모시는 우리 영혼이 바로 이 난자와 같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먹음)하지만, 그분의 신성한 법칙이 내 영혼을 먹어치워 나를 '죄인'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완전히 탈바꿈시킵니다. 먹었으나 먹힘으로써 이전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인간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출처: 스콧 길버트, 『발생생물학』)
이제 요한복음 21장의 신비를 연결해 봅시다. 베드로가 낚아 올린 153마리의 물고기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베드로(교회)는 그들을 그물로 낚아 올렸습니다. 어떻게 잡았을까요? 바로 그들에게 '먹힘'으로써 잡습니다. 낚시꾼은 미끼를 내어주고 물고기를 잡듯, 교회는 성체라는 미끼를 세상에 내어줌으로써 영혼들을 낚아 올립니다.
하지만 잡힌 물고기들은 결국 어부의 에너지와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물고기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은 교회의 입속으로, 즉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으로 '먹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에만 있으면 그저 짐승일 뿐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교회)에게 잡히고, 그리스도의 지체들에 의해 '먹히게' 될 때 그 물고기는 비로소 '하느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정체성으로 통합됩니다. 먹힌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한낱 미물이었던 존재가 하느님 가족의 살과 피로 재구성되는 승격의 사건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복음 주해』)
여기서 우리는 아주 실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먹으며 살고 있는가?" 인간은 먹는 대로 됩니다. 삼겹살을 먹으면 돼지 세포가 내 몸을 구성하듯, 내가 어떤 '사상'과 '논리'를 먹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길이 결정됩니다.
그리스도를 먹으면 새로운 운영체제(OS)가 설치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지식이나 돈을 먹으면, 그것은 나의 '삼구(욕망)'를 채우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라는 빵을 먹으면, 우리 영혼에는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인생 운영체제(OS)'가 설치됩니다.
이 신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성인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기도 중에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주님, 제 마음을 당신께 다 드릴 테니 당신의 마음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자 놀라운 환시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가타리나의 가슴을 열어 그녀의 심장을 꺼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심장을 '먹어(흡수해)'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주님은 당신의 불타는 심장을 가타리나의 가슴 속에 넣어주셨습니다.
이후 가타리나는 고백했습니다. "이제 저는 제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제 안의 낡은 가타리나는 주님의 사랑에 먹혀 사라졌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제 안에서 숨 쉬고 계십니다."
그녀가 주님께 먹히기를 자처했을 때, 그녀는 일개 여인이었음에도 유럽의 평화를 이끄는 하느님의 대사가 되었습니다. 나를 먹어주시는 주님을 모실 때 비로소 우리는 위대한 존재로 상승합니다. (출처: 레이몽드 드 카푸아,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전기』)
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 부르셨을까요? 세상의 다른 모든 양식은 나를 '나'로 남겨두지만, 예수님은 나를 먹어치워 '하느님'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빵은 내 위장을 잠시 채우고 썩어 없어지지만, 위에서 온 양식은 내 자아를 먹어치우고 나를 영원으로 인도합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의 영양분을 먹고 대신 빛과 열을 내주듯, 여러분이 모시는 성체가 여러분의 이기심을 먹게 하십시오. 그분이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의 자존심을 땔감 삼아 성령의 불꽃을 피우게 하십시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지막 권고를 가슴에 새깁시다.
"그대는 그대가 먹는 바로 그것(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한다. 먹힘으로써 그대의 비천한 인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성이 채워질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유일한 방식이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강론집』 27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저는 5대째 가톨릭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1달이 안 되어서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동생과 함께 첫영성체를 하였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물고기가 물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교회는 제게 마치 물고기가 살아가는 물과 같았습니다. 어르신들은 ‘본명’을 불러주었습니다.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은 ‘재형’이지만 저의 본명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언젠가 천상에서 부를 본명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 묵주기도, 연도는 자연스러운 기도였습니다.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두 가지를 물려 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으로 이루어진 영혼의 이름입니다. 어려서는 이런 가정환경이 얼마나 큰 축복인 줄 몰랐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야 신앙 안에서 살지 못했던 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같이 입학한 형 중에는 예비역이 많았습니다. 군대를 다녀왔고, 일반 대학을 나왔고, 직장 생활하다가 신학교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어찌 그리 먼 길을 돌아왔는지 물어보면 하느님을 늦게 만났다고 합니다. 세례를 늦게 받았다고 합니다. 형들은 그래서 더 감사하며 신학교에서 지냈습니다. 늦었기에 더 열심히 사목하였습니다.
요즘 우리는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을 수학적인 공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법칙으로 알아내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수학적인 계산으로 답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물리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도 물어보십니다. ‘여러분들도 내 곁을 떠날 것입니까?’ 베드로 사도는 대답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았습니다. 스테파노 부제, 바오로 사도, 신앙의 선조들은 이런 삶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분들에게 물리적인 방식의 영원한 생명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수학적인 방식의 영원한 생명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지나간 날을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지도 않은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충실한 삶이 과거가 되는 것이고, 지금의 행복한 삶이 미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삶은 신앙 안에서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과 갈망이 만나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건들을 모아서 어려운 이웃에게 보내주는 자매님이 있습니다. 귀찮은 일입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을 몇 년째 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의 사랑과 갈망은 굶주리고, 병들어가는 이들에게 생명의 빵이 되고 있습니다.
물리학적인 시간, 생물학적인 시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순간을 말씀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신앙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끝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 끝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매일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오늘의 성인
성 제오르지오 (George)
활동년도 : +303년경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게오르그, 게오르기오, 게오르기우스, 제오르지우스, 조지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는 영국, 포르투갈, 독일,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특히 베네치아(Venezia)와 페라라(Ferrara)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으며, 군인과 보이 스카우트의 수호자이고 동방 교회에서 ‘위대한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 성인이다. 그러나 성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콘스탄틴 대제 이전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디오스폴리스(Diospolis)라고도 불리던 리다(Lydda)에서 순교하였다는 것과 황제 근위대의 군인이었다는 것뿐이다.
그 외에는 6세기경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신화와 전설들이 전해지고 있다. 성인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한 것이 “황금 성인전”(Legenda Aurea)에 언급된 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인이 어느 나라를 지나다가 어떤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은 용의 제물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나라는 계속 어린 양을 용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양들이 다 바닥나자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돌아가면서 딸들을 바치다가 공주의 순서가 되자 그 하녀가 대신 제물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성인은 하녀와 함께 기다리다가 용이 나타나자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용을 붙잡았다. 이때 성인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다면 용을 죽이겠다고 하자 왕과 백성들이 동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창으로 용을 찔러 죽였고 왕을 비롯한 15,000명이 세례를 받았다. 성인은 왕국의 반을 주겠다는 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하느님의 교회들을 잘 돌보고 성직자들을 존경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보아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 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7-8세기에 영국에 알려진 성인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영국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중세 이후에는 기사도와 군인들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성인의 문장은 흰 바탕의 붉은 십자가인데, 현재 영국 해군에서 사용하는 기장이 바로 하얀 바탕에 붉은 색으로 커다란 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가가 그려진 모양이며, 이는 영국 국기(유니언 잭) 도안의 일부이기도 하다
성 아달베르토(Adalbert)
활동년도 : +956-997년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프라하(Prague)
같은 이름 : 아달베르또, 아달베르뚜스, 아달베르투스, 아달베르트
성 아달베르투스(Adalbertus, 또는 아달베르토)는 보헤미아(Bohemia)의 리비체(Libice)에서 출생하고 그다인스크(Gdansk)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마그데부르크(Magdeburg)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견진성사를 받을 때 그의 스승이자 마그데부르크의 초대 대주교인 아달베르투스의 이름을 따 세례명을 보이테크(Vojtech)에서 아달베르투스로 바꿨다.
981년 스승이 사망하자 선교활동과 성직자 개혁의 원대한 이상을 품고 보헤미아로 돌아와서, 이듬해 30세가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프라하의 주교로 서임되었다. 그는 체코인으로서는 최초로 프라하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사목적, 정치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로마(Roma)에 수차례 사표를 제출하였고, 보헤미아의 대공 볼레슬라프 2세와의 충돌로 인해 로마로 가서 '성 알렉시우스(Alexius)와 보니파티우스(Bonifatius)의 베네딕토 수도원'의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프로이센(Preussen) 지방의 이교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유럽 북동부 발트 해 연안의 평야 지역인 포메른(Pommern)으로 가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쳐 처음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많은 이교도들의 반발을 사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997년 4월 23일 그다인스크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그의 시신은 볼레슬라프 2세에 의해 그니에즈노(Gniezno)로 옮겨졌다가 1039년에 프라하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그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 오토 3세와 절친한 친구였으며, 슬라브 지역 선교에 큰 영향을 끼쳐서 슬라브의 사도요 프로이센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복녀 헬레나 (Helen)
활동년도 : +1458년
신분 : 과부
지역 : 우디네(Udine)
같은 이름 : 발렌티니, 헤레나, 헬렌
이탈리아 북동부 우디네에서 태어난 헬레나 발렌티니(Helena Valentini)는 15세 때에 플로렌티네(Florentine)라는 기사와 결혼하여 27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아내와 어머니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다. 남편이 사망하자 그녀는 아름다운 머리털을 자르고 치장하던 보석을 모두 관 속에 넣으면서 “이 모든 것은 당신만을 위한 것이니 당신과 함께 묻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의 3회원이 되었다. 그 후 그녀는 기도와 고행에 몰두하면서 자선활동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침묵 서원을 발하고 성탄절 밤 외에는 늘 침묵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소음에 대한 유혹이 많았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48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복자 에지디오(Aegidius)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아시시(Assisi)
활동연도 : +1263년
같은이름 : 아이기디오, 아이기디우스, 에지디우스, 자일스, 지르, 질르
아시시의 복자 에지디오(Aegidius) 이탈리아의 아시시 태생인 에지디우스( 에지디오)는 성 프란치스코의 초기 동료 가운데 한 명으로 1208년에 수도복을 받았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를 수행하여 아시시 지방의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하였고,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순례를 비롯하여 로마(Roma)와 예루살렘(Jerusalem) 성지를 방문하였으나, 사라센인들을 회개시킬 목적으로 갔던 튀니스(Tunis) 여행은 실패로 끝났다.
튀니스의 신자들은 그의 뛰어난 신앙심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까봐 그를 억지로 배에 태워서 돌려보냈다고 전해온다.
그 후 그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살았는데, 1243년경부터는 몬테 라피드(Monte Rapido)의 은둔소에서 생활하였다.
그는 자주 탈혼하였고 체토나(Cetona)에서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다.
그는 초기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모델로서 존경받는다.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에 그에 대한 행적이 나오는데, 성 프란치스코는 그를 ‘원탁의 기사’로 불렀다.
“에지디우스 수사의 금언”이란 책에서는 그의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낙천주의 그리고 뜻 깊은 유머가 빛을 발한다.
그는 질(Giles)로도 불린다.
에지디오는 1209/1210년에 프란치스코가 인노첸시오 3세를 만나러 갈 때 동행했던 동료들의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인노첸시오 3세는 이 때 작은 형제들의 생활양식 “Propositum vitae”를 구두로 인준해 준 사람이다.
그들은 로마에서 돌아오면서 Orte를 거쳐서 왔고, 포르치운쿨라에 정착할 때까지 리보토르토에서 몇 달간 머물렀다(1첼라노 32-42).
24명의 총봉사자들에 관한 연대기는 에지디오를 순회 설교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Mantova와 Ferrara 사이에 있는 Ficarolum이라는 곳에 갔으며, 성지와, Ancona, Gargano 산, 대천사 성 미카엘 성지, 성 니콜라오의 성지인 Bari에도 갔다.
1219년의 총회는 에지디오를 북아프리카의 Tunis로 파견하였다. 그는 선교를 너무나 열심히 하였기에 그곳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슬람인들과 상업 거래에 피해를 줄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이태리로 돌려보냈다.
1225년에 에지디오는 리에티로 가서 Clairvaux의 니콜라오 추기경 관저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그는 매일의 양식을 구걸하면서 살 허락을 받았다.
1226년 가을, 에지디오는 아씨시로 돌아와서 임종을 앞두고 있던 프란치스코와 함께 살게 되었다.
프란치스코가 죽자 에지디오는 페루지아 근처에 있는 Monteripido 은둔소에서 그의 여생을 보냈다.
그는 1262년 4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교황 비오 6세가 그를 시복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