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는 계절에 /김기수
무심천
벚꽃이 필 때 이 땅에 봄이 왔다며 기뻐하다가
사흘도
못 가 바람은 향기를 잃었고
벌들은
방향을 돌려 먼 숲 속으로 떠나갔습니다
그
꽃 길을 찬양했던 무수한 발길이
떨어진
꽃잎을 무참히 짓밟는 발길이 될 줄은
혀
나간 신발 한 짝이 나뒹구는 걸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개울가
왕버들 씨눈 돋으며 환호하던 이파리들이
굴삭기
굉음에 휘말려 뿌리 채 실종되었습니다
녹음
푸르르던 아버지의 굴참나무 이파리가
신음소리
내는 갈빛으로 뒹굴고 요양원 한 켠에서
남은
봄을 세어보는 아버지의 손가락을 조물조물
만져보고서야
생명의 앙상함을 알았습니다
그토록
사랑한다며 행복해 하던 내 지인의 부부가
이별은
상상도 못하고 있다가 돈벌이가 시원찮아 지자
성격차이라는
변명으로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선거
철 내가 찍어준 자칭 머슴이 성원에 보답하겠다는
현수막을
내걸고는 완장의 위력으로 권패가 되어
나타날
줄은 익히 알고도 매번 속아 준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숨을 쉬며 살아가는 데 그다지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만 계절에 뒤틀린 내 영혼의 봄은
벚꽃잎
하나에도 속절없이 하늘로 던져집니다
작은
바람에 원초적으로 흔들리며 애걸하지도 않는
그렇게
문득 일깨워 주고 가는 꽃
어쩔
수 없는 것들이기에 이를 순리라 합니다
실종된
영혼에 위안이 될 비문 한 줄 찾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