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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존21 - 지진,재난,전염병,전쟁,사고로부터의 생존 원문보기 글쓴이: 코난.카페장(경기)
2차대전 영화를 보면 병사들이 초코렛을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이보다는 실제론 스팸이 더 많이 보급됬다죠
언재 재보급을 받을수 있을지 모르고 추사도 힘든 열악한 전쟁터에서 그래도 간단히 캔 개봉해서 고기를 먹을수 있다는게 정말 큰 장점이었고 이게 미군이 승리한 한 이유이기도했습니다
스팸이 미군의 아주 요긴한 전투식량였지만 문제는 너무나 많이 갖다줘서 나중에는 처치 곤란했고
이게 지금 스팸메일의 원조가 됬습니다 ㅎ
이제 곧 추석인데 저도 전에 직장다닐때는 추석선물로 참치캔이나 스팸세트 주면 이런거 줬다고 툴툴댔는데
회사나오니 이것조차도 참 고마웠군아 싶습니다 특히 추석전날 거리 나가면 많은분들이 스팸이나 참치캔세트 받아들고 집에 가는 모습보이는데 참 부럽습니다 ㅎ
이것들은 유통기한도 7년정도되니 받으시면 당근에 팔지 마시고 비상식량으로 잘 보관해주세요 ㅎ
미국 전투식량이 ‘국민 밥도둑’ 되기까지…37살 된 ‘통조림 햄’ [1000억 식품의 비밀]
국내서 1987년부터 CJ제일제당이 판매
연매출 4000억원대, 명절 때 절반 이상 팔려
스팸은 1987년 5월부터 CJ제일제당이 미국 호멜 사와 기술제휴 및 라이선스를 얻어 생산하면서 수입산이 아닌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제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사진 CJ제일제당][이코노미스트 김채영 기자] ‘국민 반찬’, ‘통조림 햄의 원조’, ‘1등 명절선물’. 짭조름하고 기름진 맛이 특징인 스팸은 37년 동안 한국인 식탁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한국은 미국, 영국에 이은 세계 3위의 스팸 소비국이다. 스팸은 특이하게도 한국에서 명절선물로 각광받으며 매년 매출 1000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다.
스팸의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87년 70억원에서 1997년 520억원으로 10년 새 7배 넘게 늘었고 ▲2017년 3300억원 ▲2018년 4190억원 ▲2019년 4200억원 ▲2020년 4500억원을 달성했다. 국내 캔햄 시장에서 스팸의 시장점유율은 2017년부터 50%를 넘어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팸은 미국의 호멜 식품(Hormel Foods)에서 생산하는 제품으로, 스팸을 만든 사람은 설립자의 아들 제이 호멜이다. 제이 호멜이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에 주둔했던 미 육군 88사단 351보병연대의 병참 장교로 근무하던 중 가공육 전투식량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1차 대전 종전 이후, 제이 호멜은 연구 끝에 1926년 돼지 어깨살과 햄에 소금 등을 가미해 만든 세계 최초의 통조림 햄을 개발했다.
스팸이라는 이름은 양념된 햄을 뜻하는 ‘조미 햄’(SPiced hAM)을 줄여 사용한 것이다. 스팸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훌륭한 맛으로 출시된 지 4년 만에 일반 판매량 1만8000t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순식간에 호멜 식품 주력 상품이 된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미군은 식품 회사들에 휴대가 쉽고 가볍고 썩지 않는 고열량 단백질 식량을 주문했는데 그중에서도 호멜사의 스팸은 군대의 요구사항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식품이었다. 호멜사의 스팸은 2차 대전 동안 1억 개가 팔리며 소위 ‘대박’을 치게 된다.
스팸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계기도 바로 한국전쟁이다. 1950년에 시작된 6.25전쟁으로 스팸은 자연스럽게 한국에 수출됐고, 가난해서 육류를 섭취하지 못했던 한국인은 대체식품으로 스팸을 선호하게 됐다. 미군 부대 앞에서 스팸, 초콜릿 등을 받은 한국인들은 스팸을 찌개에 넣어 먹기 시작했는데 이때 탄생한 것이 부대찌개다.
국내에서는 1987년 5월부터 CJ제일제당이 미국 호멜 사와 기술제휴 및 라이선스를 얻어 생산하면서 수입산이 아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흰 쌀밥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며 국민 반찬으로 불렸다. 현재 국내 캔햄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은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CJ제일제당 측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제조법과 철저한 품질 관리로 스팸의 이미지 변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우 김래원, 하정우, 에릭, 이서진 등이 스팸 광고를 찍었다. [사진 온라인 캡쳐]
당대를 대표하던 유명 연예인들의 스팸 광고도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특히 2002년 방송인 김원희를 모델로 한 광고에서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란 문구가 나오며 대중성을 확고히 했다. 해당 문구는 202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스팸 광고에 쓰이고 있다. 이외에 배우 김래원, 하정우, 에릭, 이서진 등도 스팸 광고를 찍었다.
한국에서 스팸은 참치 통조림과 함께 명절 선물로 각광 받으며 이 기간 매출이 가장 크게 오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명절 기간 매출을 따로 집계하진 않지만, 이 기간 선물세트로 판매되는 양이 평소에 판매되는 양보다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명절 기간에만 스팸 매출이 2000억원이 넘으며 전체 매출의 절반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선진국에선 스팸이 빈곤층이 주로 먹는 가공육이란 인식이 아직 있지만, 국내에선 국민 반찬으로 전 연령층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CJ제일제당 측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제조법과 철저한 품질 관리로 스팸의 이미지 변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20년 저염 선호 트렌드에 맞춰 나트륨 함량을 100g당 510mg으로 낮춘 ‘스팸 25% 라이트’를 출시했다. [사진 CJ제일제당]
주요 구매자인 30·40대에서 10·20대까지 소비층을 넓히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맛 트렌드를 반영한 ‘스팸 리치치즈’, ‘스팸 핫&스파이시’ 등 신제품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소비자 니즈도 적극 반영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20년 저염 선호 트렌드에 맞춰 나트륨 함량을 100g당 510mg으로 낮춘 ‘스팸 25% 라이트’를 출시했다. CJ제일제당 측에 따르면 510㎎은 캔햄 시장점유율 상위 3개 제품의 나트륨 평균보다 25% 이상 낮은 수치다. 최근 나트륨, 당 등 특정 성분을 줄인 ‘로우 푸드’(Low Food) 트렌드에 부합하는 제품으로 세분화된 소비자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스팸 |
뉴욕에서 부목사로 있었던 때 기억나는 권사님 한 분이 있다. 교회의 관리부장을 하셨던 전 권사님이시다. 은행원으로 은퇴를 하신 전 권사님은 매주 마다 평일날 하루를 교회에 출근하셔서 교회의 이곳저곳을 수리하시는 봉사를 하셨다. 인상좋고 유머있으신 권사님께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스팸이라고 말씀하시며 스팸 한통만 있으면 밥을 맛있게 먹는다고 했다. 나 또한 흰쌀밥에 잘 구워진 스팸 몇 조각이면 밥 한그릇 뚝딱 해치웠기에 그분의 스팸사랑에 충분히 공감이 갔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스팸은 ‘싸구려 통조림 햄“일 뿐이었다. 실제로 고기가 너무 저렴하게 판매되었기에 굳이 햄을 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스팸을 두 번째로 많이 소비하는 우리나라처럼 스팸이 인기가 있지 않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명절 때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고급스럽게 포장된 스팸 선물세트가 엄청나게 판매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스팸은 언제 어디서 만들어진 것일까? 스팸은 미국 호멜사에서 1937년 7월 5일 처음 출시되었다. 호멜사의 창업자는 조지 호멜이다. 미국 시카고 도살장에서 일했던 조지 호멜은 1891년 미네소타 주에 있는 도시, 오스틴에 조지 호멜 컴퍼니라는 육류가공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후에 조지 호멜의 아들 제이 호멜은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배우면서 회사의 부사장이 된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1917년 제이 호멜은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상의 이유로 입대를 미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고 있던 미네소타 출신 중 가장 먼저 지원 입대하여 프랑스에 있던 미 육군 88사단 351보병연대의 병참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장교생활을 하면서 제이 호멜은 군수품으로 보급된 고기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고기 안에 뼈가 있어 크기가 크다 보니 혼자 들기도 힘들고 수송에 매우 불편함이 있을 뿐 아니라 여름에는 상온에 잠시만 노출되어도 고기가 상해버린다는 문제점이었다. 그래서 고기에서 뼈를 분리한 후 잘게 다져 상하지 않게 통조림형태로 보관하는 방식으로 가공한 군수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옮기기도 쉽고 상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대 후 제이호멜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고 이 통조림 사업을 시작해보려고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그런데 통조림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비싼 고기를 넣자니 팔기가 힘든 것이었다. 통조림을 비싼 돈 주고 먹을 바에 그냥 고기를 먹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햄을 만들고 남은 부위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럼 단가도 낮아지고 남기는 고기도 없으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뼈를 분리하는 과정이 복잡한 돼지 어깨살, 지방이 많이 붙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부위 등 맛은 있지만 팔리지 않는 처치 곤란 부위들을 모두 넣고 갈아버린 후 지방의 산화를 막고 향미를 높여주는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한 뒤 향신료를 넣은 ‘호멜 향신료 햄’(Homel Spiced Ham)을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매력 없는 이름 때문인지 잘 팔리지 않자, 이 햄의 이름을 짓기 위해 100달러를 걸고 콘테스트를 열게 되었는데 호멜 컴퍼니 임원, 랄프 데이누의 형제였던 배우 ‘케니스 데이누’가 스파이스드 햄(Spiced Ham)을 줄여 ‘SPAM'이라는 이름을 제출하게 되는데 이 이름이 최종 채택되며, 1937년 7월 5일 스팸(SPAM)이 공식 출시된다, 1937년 처음 공개된 스팸은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맛에 먹기 좋은 분홍빛까지 띠어 금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더구나 다른 고기 요리들과 달리 미리 양념이 되어 있고 간단히 열만 가하면 먹을 수 있으니 호응이 컸고 특히 저소득 계층에게는 값싼 고기를 맛볼 수 있었으니 더 인기가 많았다. 스팸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였다. 당시 미국은 영국에 무기와 탄약, 식량 등 어마어마한 양의 보급품을 원조하고 있었다. 미국은 제이호멀의 예상대로 고기를 보급하길 원했고 그것도 보급이 쉬운 고기를 원했다. 당연히 스팸은 미국의 어떤 회사보다 보급이 쉬운 형태로 제작되어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기에 미국의 보급품으로 안성마춤이었다. 값싸게 고기를 맛볼 수 있었고 심지어 지방이 많은 부위였기 때문에 열량도 높아 군인들의 체력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스팸을 모든 미군 장병에게 보급하기 시작한다.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은 독일 해군의 잠수함 작전 때문에 제대로 식량을 공급받기 어려웠다. 특히 독일 해군은 영국을 둘러싼 해협에 잠수 함대를 풀어 놓고, 영국으로 가는 연합국 측의 보급선을 닥치는 대로 격침시켜 영국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미국은 비행기로 영국에 대규모로 물량을 공급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팸이었다. 처음에는 좀 낯설어했지만 영국인들은 이내 스팸에 맛에 빠져들었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이 있는 유럽, 태평양전선 등 모든 곳에 스팸을 비롯한 식량이 보급되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도 미군이 들렸다 하면 스팸이 전파되었다. 이때 호멜 컴퍼니는 일주일에 1500만 톤의 고기를 동맹국으로 수출했는데, 그 중 대부분이 스팸이었다. 1944년까지 호멜 컴퍼니의 통조림 식품 90%이상이 전투식량으로 출하되고 1945년 초까지 모든 호멜식품의 65%가 유럽과 태평양 전쟁에서 전투식량으로 소비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생산된 스팸이 양이 무려 1억 3천 3백만 개 정도였다. 전쟁 후에 군에 보급된 많은 스팸의 물량은 미국 내에 풀리게 되었다. 엄청난 양의 스팸이 미국 본토에 쏟아진 것이다. 안 그래도 싼 가격이 더 폭락해 헐값이 되어버렸고 미국에서는 싼 고기에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인식이 완전히 박혀버리게 되었다. 미국에 이렇게 많은 스팸이 공급되었던 탓에 스팸은 지나치게 많고 무분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스팸메일이라는 단어도 여기서 유래되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6.25전쟁 때 미군이 스팸을 가져왔다. 이때도 양 조절이 실패해 스팸을 엄청나게 갖고 왔는데 당연히 많은 양이 남게 되면서 주변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한국군이 나눠먹게 되었다. 스팸을 몰랐던 한국인들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고기라고 스팸을 부대고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스팸과 쌀밥의 조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고 단숨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또한 1950년대 국민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은 거의 미군부대가 전부였을 정도였으니 한국인에게 스팸의 의미는 엄청났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본 제일제당은 1986년 3월 미국 호멜사와 제휴를 맺고 1987년부터 스팸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팸을 명절용 선물세트로 기획하여 판매했는데 출시 첫 해부터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은 500톤이 판매되며 대박상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97년 IMF 이후 부터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맛있는 ‘고기’를 선물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명절선물’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오늘날 한국인의 밥도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차대전때 군인들이 먹고 남은 스팸캔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다. 먹고 남은 수많은 통조림 캔은 참호안 바닥에 깔아서 비온 후 열악한 참호안 환경을 개선하였고, 스팸에 충분히 포함된 기름을 피부에 발라 수분 유지를 도왔으며 총기 등의 기름칠을 하거나 불을 피우는데도 사용했다. 이렇게 스팸은 미군의 든든한 식량이 되어주었고 또 집이 되어 주었고 불이 되어 주었다. 스팸덕분에 미군은 더 든든하게 밥을 챙겨먹고 전투에 임할 수 있게 되었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스팸을 통해 더 나은 전투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미국을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든 음식, 스팸의 탄생일화를 떠올리며 오늘 저녁은 따뜻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