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시설을 합해서 카타콤이라 부른다. 형성기 때 매장시설은 로마의 공동묘지를 사용했는데, 당시 로마의 공동묘지는 지하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로마시내에는 묘지를 지을 수 없어서 성 밖에 위치하는데 비아 아르데아티나, 바이 아피아, 비아 라티나 등의 거리에 몰려 있다. 이 거리에는 성 세바스찬의 카타콤, 도미틸라의 카타콤, 성 칼리스투스의 카타콤 등 대표적인 카타콤이 위치한다. 건축적 구성은 중앙통로와 묘실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중앙통로는 주로 일반 신도를 위한 곳으로 양옆의 벽면에 벽감을 파서 석관이나 옹관을 뒀다. 묘실은 쿠비쿨룸이라는 별도의 명칭이나 히포게움이라는 일반적 명칭 등으로 불렸다. 묘실은 재력가, 순교자, 성인 등을 위한 별도의 매장공간이었다. 형태는 사각형을 기본으로 육각형, 팔각형, 비정형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 지어졌다. 종교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묘실인 경우 고전주의 파사드로 장식하거나 아치로 벽감을 파는 등 별도의 건축적 처리를 가했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과 기독교 건축의 완성
4세기의 승리기를 이끈 것은 콘스탄티누스(재위 306~337)였다. 311년의 기독교 관용령을 시작으로 312년에는 스스로 기독교로 개종했고 313년에는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했으며 326년에는 동로마의 국교로 선포했다. 정치적 야심이 큰 인물이었는데 여기에 기독교 교회의 수장 자리를 자임하면서 황제의 현실 권력에 기독교를 합해 이후 1500년 서양 역사를 이끌어 갈 거대권력을 탄생시켰다. 막센티우스와의 권력투쟁에서 기독교도의 참여로 결정적 승리를 거둔 점이 좋은 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