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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
말세의 마지막 신부①* 계시록 21장2절/강문호 목사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상징하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자와 양/ 포도나무와 가지/ 주인과 종 /구세주와 죄인 /그런데 예수님은 신랑이라고 우리는 신부라 부르기도 합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계 21:9)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언제 주님 오실지 모르지만 반드시 오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신랑으로 오시고, 우리는 신부로 맞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175장입니다. “신랑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밝은 등불 들고 나갈 준비 됐느냐 그날 밤 그 날 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아담이 신랑의 모델이고 하와가 신부의 모델입니다. 역사상 첫 신랑은 아담이고 첫 신부는 하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부터 창조하셨습니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창 2:7)
남자에게 생기를 넣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카필입니다. 카필은 힙입니다. 용기입니다. 신랑에게는 힘과 용기를 주셔서 에덴 동산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에덴을 지키라는 말씀속에는 에덴 동산 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일가요? 자기 아내 신부입니다. 가정입니다.
그리고 모든 동물, 식물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신랑된 아담의 첫 임무는 신부 하와를 지키는 것입니다. 남자의 첫 임무는 아내를 지키는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와 신부 창조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주( LORD)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주( LORD)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창 2:20-23)
여자는 남자를 도우라고 창조하셨습니다. 신부는 신랑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제르(רזע)입니다. 에제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 세 글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이(ע), 자인(ז) 그리고 레쉬(ר)입니다. 아이는 눈입니다. 자인(ז)은 무기입니다. 레쉬(ר)는 마음입니다. 여자란 남자가 보지 못 하는 것을 보는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남자를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세 글자가 합쳐진 에제르는 지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신부는 신랑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랑도 신부도 모두 지키라고 창조하셨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지키라고, 신부는 신랑을 지키라고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둘 다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신랑을 7바퀴 돕니다.
내 생각입니다. 1. 다른 여자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2. 위험으로부터 남자가 보지 못 하는 것을 보고 지켜 주어야 합니다. 3. 건강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요즈음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인명재(人命在妻)처라고 합니다. 4. 인격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5. 게으름으로부터 지켜 주어야 합니다. 6. 사탄으로부터 지켜 주어야 합니다. 7. 가난으로부터 지켜 주어야 합니다.
신부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5-28) 그런데 하나님은 흠이 있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신부에 대용하고 있습니다.
“주( LORD)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주( LORD)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레 21:16-21)
신부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11가지 조건이 흠이 없는 것입니다.
1. 곧 맹인이나 맹인은 눈이 먼 사람입니다. 눈이 먼 사람은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 예수님의 신부도 될 수 없습니다. 눈먼 사람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영적으로 볼 것을 보지 못 하는 사람입니다. 영의 세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7-18) 자기가 눈먼 것을 알지 못 합니다.
친구 목사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신경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격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자는 동안에 시신경이 끊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자기가 눈이 먼 것을 몰랐습니다. “여보! 불 좀 켜요.” 아내는 이상히 여기며 말했습니다. “아침이예요.” 그 때서야 자기가 눈이 먼 것을 알았습니다. 눈은 떴으나 안 보이는 것이 있는 사람이 영적인 맹인입니다.
영의 세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죽음 이후의 세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음식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라도 먹어 보면 압니다. 소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라도 귀로 들어 보면 압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을 감고라도 마음으로 보면 보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를 보는 눈이 열려야 마지막 때 마지막 신부입니다.
2. 다리 저는 자나 저는 다리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우선 힘이 없는 다리입니다.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잠 26:7) 힘이 없는 사람은 제사장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날마다 독수리와 같이 올라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리란 균형이 안 잡힌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반듯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알뜰하지만 인색합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 데 행함이 없습니다.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이를 노을이라고도 합니다.
르네상스 시기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그리기 힘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다빈치가 말했습니다. “저녁 해질 녘에 저 들에 드리워진 노을을 그리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왜 노을을 그리기가 그렇게 힘든가요?” 다빈치가 대답하였습니다. “저녁 노을에는 빛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빛만 있어도 그리기가 쉽고, 어두움만 있어도 그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빛과 어두움의 조화를 그리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잘 그리기만 하면 명작이 됩니다. 조화를 잘 그리면 명화가 되지요.” 균형이 잡힌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3. 코가 불완전한 자나 코가 불완전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가요? 얼굴의 중앙이 이상한 모습입니다. 보기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히룸은 이그러져 정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못 생긴 코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비밀이 있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욥 27:3) 코는 하나님의 기운이 머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코에 머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가 크면 영적 분별력이 크고 작으면 영적 분별력이 작습니다.
아가서 술람미 여인은 코가 망대같이 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메섹을 보는 망대입니다. 다메섹은 이스라엘 원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원수들을 보는 영적 분별력이 있는 여인이 솔로몬의 아내입니다.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아 7:4) 코가 불완전한 자는 마지막 때 마지막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4. 지체가 더한 자나 더한 자란 히브리어로 사루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쓸 데 없는 것이 더 붙어 있는 사람입니다. 육손이 이에 해당됩니다. 지나치게 넘치는 사람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남보다 더 위에 있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표를 내는 사람입니다. 자기 잘난 척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지막 때에 마지막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5. 발 부러진 자나 비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발은 움직이는 기관입니다. 발이 부러져서 활동하지 않는 사람은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일해야 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부지런히 다녀야 합니다.
6. 손 부러진 자나 손이 부러진 사람도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마지막 때 마지막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손이 부러졌다는 말은 일하지 않는다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6:9-11) 손이 부러진 사람은 게으르거나 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 마지막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7. 등 굽은 자나 히브리어로 기벤입니다. 이는 곱추를 말하고 있습니다. 곱추란 영적으로 다른 사람의 짐을 지어줄 수 없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혼자만 잘 살겠다고 하는 개미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남의 짐을 대신 지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십자가를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란 예수님의 짐이 아니라 우리의 짐입니다. 남의 아픔을 모르는 척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 마지막 신부는 남의 짐을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교회에서 이야기할 때에 빠지지 않는 성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시어도라 성자입니다. 시어도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수도승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도 수녀원에 들어갈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떨어지기 싫었던 시어도라는 아버지와 함께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행히 그 녀의 외모는 얼핏 보기에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자 수도원은 그 녀를 수도승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녀의 “남성” 변장술 때문에 시어도라는 수도원 형제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어도라 역시 그들을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가끔 수도원장은 시어도라와 두 명의 수도승을 멀리 떨어진 마을로 보내 수도원에 필요한 물건을 사오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한 여관에서 잠을 자곤 하였습니다. 여관 주인에게는 예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은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도 아끼던 딸이 임신을 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은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몹쓸 짓을 했는지 밝히라며 딸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불같은 성질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남자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젊고 잘생긴 수도승이 그랬어요.” 아버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수도원장에게 달려가 따졌습니다. 수도원장은 시어도라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동료 수도승 중 한 사람이 한 짓이라고 생각한 시어도라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그랬습니다!” 만일 자기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동료 수도승은 수도원에서 쫓겨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어도라는 그 사람이 수도승 신분으로도 이런 죄를 지었으니 수도원에서 쫓겨난다면 훨씬 더 나쁜 짓을 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녀는 이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죄입니다!” 그래서 시어도라는 즉시 수도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도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몇 해 동안 그 녀는 추우나 더우나 수도원 문밖에 서서 살았습니다. 수도원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마침내 수도원장은 그 녀를 불쌍히 여겨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녀는 죽을 때까지 힘들고 천한 일을 하였습니다.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수도원 규정에 따라 시신을 씻게 되었습니다. 그 때서야 그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녀는 동료 수도승이 경건한 수도원에 계속 남아 더 깊은 죄에 빠지기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의 죄를 대신 덮어썼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 정교회는 시어도라의 이름에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등이 굽은 곱추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이야기입니다. 남의 짐을 질 줄 알아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8. 키 못 자란 자나 히브리어 다크는 난쟁이를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 3:1-2)
젖이나 먹는 어린아이가 난쟁이입니다. 성숙하지 못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성장하는 10대 교회중에 하나가 겔로웨이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새소망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세운 데일 겔로웨이 목사는 12년 동안 같이 살던 아내와 이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였습니다. “과연 이혼한 사람이 복음적인 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퍼시픽 노스웨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세속적인 도시였습니다. 더구나 반 이상이 이혼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이혼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혼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기를 통하여 이혼한 이들에게 복음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성막 목회처럼 10명씩 이혼한 이들을 조직하여 작은 천국을 만들었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행복감을 맛보게 만들었습니다. 이혼한 이들을 위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작은 그룹들은 의무적으로 6개월에 이혼한 가정을 한 가정씩은 주앞으로 데리고 오게 하였습니다. 옆에 한 자리는 비워 앉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혼한 아픔을 당한 이들의 안식처를 만들었습니다. 아픔을 주신 것은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게 사랑하고 위로하라고 주신 사명의 선물입니다. 겔로웨이 목사님은 이혼을 당한 것이 큰 사역으로 연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도 예고하여 주십니다.
내가 신학교때 가르친 학생 중에 최수동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 사막에서 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를 잘렸습니다. 트럭 운전수가 "어설프게 살아 있으면 골치 아프다. 아예 깔아 죽여"라는 소리를 얼떨결에 들었습니다. 트럭이 다시 덮쳤습니다. 하나 남은 다리마저 잘려 나갔습니다. 죽은 줄 알고 트럭운전수는 갔지만 간신히 구사일생으로 살아 났습니다. 그는 <두 다리 선교회>를 만들어 다리가 없는 자를 모아 사랑하고 있습니다. <불속에라도 들어가서>라는 복음송은 그가 지은 노래입니다. 성숙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9.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눈에 백막은 흰 점이입니다. 눈에 흰 점이 있는 사람은 시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보지 못 합니다.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 합니다. 자기 눈에는 들보가 있는 데 남의 눈에 티를 봅니다. 자기가 자기를 보면 깨끗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돼지처럼 더러운 사람입니다. 사건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 합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한 수도사가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여기 어린 사과나무가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비를 내려 주세요.” 주님은 부드러운 소나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수도사는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무에게 햇볕이 필요합니다. 태양을 비춰 주세요.” 주님은 구름 사이로 따뜻한 햇볕을 쬐여 주셨습니다. 수도사는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 서리를 내려 주세요. 세포를 지탱하려면 서리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서리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린 나무는 차가운 서리를 맞고 죽어버렸습니다. 수도사는 선배 수도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과나무를 심고 기도를 했더니 주님이 기도를 다 들어주셨는 데 사과나무가 죽어버렸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선배 수도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도 작은 사과나무를 심었지. 보게나 이렇게 잘 자라서 해마다 맛있는 사과를 따먹는다네.” “이렇게 사과나무를 잘 키운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는 사과나무를 주님께 맡겼네. 주님이 나무를 창조하신 분이시니 이 나무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아시지 않으시겠나? 그래서 나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조건도 달지 않고, 방법이나 수단도 정하지 않고 ‘주님, 이 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보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네.” 이 얘기는 딜로우(Linda Dillow)의 ‘만족'(Calm my Anxious Heart)에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기도는 소용없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적인 눈에 백막이 있는 사람, 사건을 정확하게 보지 못 하는 사람은 마지막 때 마지막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10. 습진이나 습진은 히브리어로 가라브라고 하는 데 이는 괴혈병입니다. 보통 비타민 C가 결핍되어 생기는 병입니다. 출혈이 심한 병입니다. 전신이 무기력하여 지는 병입니다. 영적으로 무기력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 마지막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11. 버짐이 있는 자나 버짐은 히브리어로 얄레페트라고 합니다. 이는 백선균이라는 균으로 인하여 생기는 병입니다. 얼굴이 얼룩얼룩하여 지는 병입니다.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 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입니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러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활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사람입니다.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관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다르고 저기서 다른 사람입니다. 통일성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 마지막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12. 고환 상한 자나 이는 생산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전도입니다. 해산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성기능이 저하되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영혼 구원이 없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 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바바라 월터스의 별명이 있습니다. <인터뷰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미국 텔레비전 인터뷰에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그는 텔레비전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전 세계 국가 정상의 지도자들을 거의 다 만났습니다. 영화배우, 심지어는 범죄자 살인자등 뉴스 메이커들을 불러 마음을 열고 말하게 하는 명수입니다. 흉금을 열어놓았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 메나헴 베긴, 조지 부시 부자, 지미 카터에서부터 피델 카스트로, 모나카 르윈스키등 수많은 이들이 그녀와 마주하면 속을 다 들어 내놓고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하는 일마다 잘 되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늘 바바라 월터스에게만 붉은 카펫을 깔아놓고 걷게 하신다.” 소통의 여왕입니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지 소통을 잘 하게 됩니다.
바바라는 그 소통의 비결을 그의 자서전 <내 인생의 오디션>이라는 책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공, 성취하게 된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언니에 대한 나의 감정과 맞닿아있습니다. 정신지체아인 언니는 나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언니가 정신지체자였습니다. 바바라는 언니의 아픔을 이해하여 주고 공감대를 가졌습니다. 늘 언니 입장에서 보고 말하고 대화하였습니다. 공감지수가 높을수록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깊이 깨달은 것은 언니 때문이었습니다. “상대방의 아픈 부분은 무엇인지 가만히 귀기울이고 공감해보십시오. 열 마디 말보다 따뜻한 공감의 파동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바바라 월터스 이야기를 하나 더 드리려고 합니다. 바바라가 유명한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때 방송국을 위하여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하여 초청한다고 말해줍니다. 방송에서 인터뷰하면 당신에게 이런 유익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인터뷰에 임하게 됩니다. 그가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잠간 보려고 합니다. “내가 그에게 왜 내가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지를 말하지 않고, 그가 왜 나와 인터뷰해야 하는지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컨대 닉슨대통령의 보좌관 로빈슨 핼드맨에게는 ”인터뷰가 대통령에게 도움을 줄 것이며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며 그렇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말해줍니다.“
삼류 세일즈맨은 상품을 파느라 구차한 보따리장수가 되지만, 일류 세일즈맨은 그 상품이 상대에게 어떤 유익을 주나를 설명하기에 오히려 현명한 멘토가 됩니다. 바바라 월터스 에피소드입니다. 너무 유명한 데다가 여자입니다. 그리고 지방 신문 기자 출신입니다. 그래서 신문기자들이 모이면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였습니다. 1975년 기자단 일원으로 쿠바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때 기자단 앞에 카스트로 대통령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바바라는 어디에 있나요?” 대통령이 바바를 찾았습니다. 그 때 바바라가 <네. 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뛰어 나가 단독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바바라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하께서 우리와 기자회견을 해주길 기다리며 며칠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정적 계기에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두가 공유하려고 할 때 모두와 잘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통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감동을 주는 사람이 마지막 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장성한 그리스도인이며 주님의 신부가 되어서 주님을 맞이 할때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을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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