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그거 아세요? 사실 고양이는 액체래요!”
“포브스 선정 집에 두고 오면 가장 짜증나는 물건 1위는?”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영화 대사 같기도 하고, 다르게 들으면 사업 설명회의 멘트같기도 한 흥미로운 말들이 한 장소에서 울려퍼졌다. 지난 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1 페임랩코리아’ 본선 현장이다.(최하단 영상 참고)
자신의 연구 분야나 최신 과학 이슈를 3분 동안 발표해야 하는 페임랩코리아에선 매년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소품을 바탕으로 과학 소통에 나서는 이들이 등장한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는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총 72인의 과학커뮤니케이터가 이를 통해 데뷔했다.
지난 4일 ‘2021 페임랩코리아’ 본선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현직 연구자에서부터 학부생까지, 이날 참석한 이들의 전공과 직업은 각각 다르지만 과학소통을 위한 열정만은 모두가 같았다. ⓒ 김청한 / Sciencetimes
2차례 예선을 뚫고, 이날 본선에 참가한 10명의 참가자 역시 자신만의 영역을 갈고 닦은 준비된 인재들이다.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현직 연구자에서부터 학부생까지, 각자 전공과 직업은 다르지만 과학소통을 위한 열정만은 모두가 같았다. 이들의 열정을 냉정히 평가해 줄 심사위원으로는 장이권 이화여대 교수, 장동선 궁금한 뇌 연구소 대표, 원종우 과학과 사람들 대표, 송민령 KAIST 연구원 겸 작가가 참여했다.
양력과 자이로스코프 효과, 부메랑 속 숨겨진 과학적 원리
어려운 과학적 사실을 짧은 시간 내 흥미롭게 전달하기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각 참가자는 다양한 스토리 구성을 통해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성유전학을 유산상속에 비유하고, 유명 영화 대사를 활용하는 등 참신한 시도가 이어진 것이다.
이중 대상 수상자인 김형욱 씨의 발표에선 한 편의 광고와도 같은 잘 짜여진 도입부가 돋보였다. 김씨는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는 외침과 함께 과감히 무언가를 던지는 모션으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이어 “사랑, 저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결국, 이 부메랑뿐”이라 말하며 부메랑 속 숨겨진 과학을 소개했다. 다소 과감한 전개로 청중의 눈길을 끌면서도 자연스레 과학 원리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진행이었다.
한쪽 날 끝을 잡고 부메랑을 던지면 빠르게 회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양력이 발생한다. 김 씨는 비행기 날개와도 비슷한 부메랑 단면을 보여주면서 “아랫면은 평평하고 윗면은 볼록하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모양의 차이 때문에 윗면 공기 흐름이 아래보다 빨라지고, 이는 압력의 차이를 만들어 힘(양력)이 작용하게 된다는 것.
그런데 이런 양력은 속도가 빠를수록 증가한다. 김 씨는 “부메랑이 수직으로 회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때, 윗부분은 부메랑 진행 방향과 회전 방향이 일치해서 속도가 빠르고 아랫부분은 반대라서 상쇄가 되어 상대적으로 느려지게 된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양력을 더욱 많이 받은 윗부분이 더 많이 움직이기에 수직으로 던진 부메랑은 틀어지게 된다.
대상 수상자인 김형욱 씨는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물리학 내용을 적절한 액션으로 풀어냈다. ⓒ 유튜브 채널 사이언스프렌즈 캡처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자이로스코프 효과다. 모든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하는 방향으로 각운동량을 발생시키는데, 인위적으로 방향을 바꿔주면 해당 방향으로 회전력이 생긴다는 것.
김씨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자이로스코프 효과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바로 오토바이 경주다. 그는 “오토바이 경주에서 코너링을 돌 때는 핸들이 아닌, 오토바이 자체를 기울이는 방법을 쓴다”라며 “이는 각운동량 방향이 바뀔 때 생기는 회전력을 이용한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이어 “부메랑 역시 양력의 불균형에 의해 회전축이 틀어지게 되고, 자이로스코프 효과에 따라 크게 원을 그리면서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 부메랑의 원리를 요약했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물리학 내용을 적절한 액션으로 풀어낸 발표였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은지 씨는 지질학과 일기장을 연결하는 등 공감을 이끌어 내는 발표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유튜브 채널 사이언스프렌즈 캡처
“지구는 일기장, 서러운 기록 이젠 없어야”
최우수상을 받은 이은지 씨는 공감을 이끌어 내는 발표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질학을 전공한 이씨는 지층과 암석에 기록되는 지구의 변화를 일기장에 비유하며 “지구는 지구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일기를 쓴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어 “6600만 년 전 수많은 생물을 멸망시킨 운석 충돌에 대해서 지구는 서러운 일기를 남겼다”라며 “현재 지층 등에서 점점 플라스틱 농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구를 서럽게 만들었던 운석보다 지금 우리가 더 큰 잘못을 하는 건 아닐까?”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지리학을 일기라는 보편적 소재와 결합해 표현하면서도, 공룡 멸망과 환경오염이라는 과학적 이슈와 연동시킨 이 씨의 발표는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
우수상을 수상한 양현식 씨는 액체 상태를 고양이에 비유하고, 기체 상태를 저글링 액션으로 표현하는 등 참신한 비유와 소품 활용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발표를 진행했다. ⓒ 유튜브 채널 사이언스프렌즈 캡처
우수상을 받은 양현식 씨는 액체 같기도 하고 기체 같기도 한 초임계유체를 설명했다. 양씨는 액체 상태를 고양이에 비유하고, 기체 상태를 저글링 액션으로 표현하는 등 참신한 비유와 소품 활용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발표를 진행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외에도 발표를 진행한 10인 모두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정식 위촉을 받았다. 이들은 향후 과학 강연 및 공연, 동영상 제작 등 여러 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과학소통에 나설 계획이다.
수상자 미니 인터뷰(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김형욱(대상,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 석사과정)
수상을 축하드린다. 간단한 소감 한마디
대상을 타게 돼서 감사하다. 사실 얼떨떨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앞으로 국제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활동할 것이다.
페임랩 코리아에 참여한 계기는?
평소 과학에 대해 소소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점을 눈여겨본 대학원 후배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됐다.
부메랑이라는 주제가 독특하다. 해당 주제에 대해 한 말씀
현재 대학원 주전공이 공기역학, 유체역학 실험이다. 이와 관련된 지식 그리고 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를 결합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부메랑이라는 교집합이 떠올랐다
본인이 생각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장점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내는 것을 잘한다. 생동감 있게 잘 얘기한다는 말을 평소에 많이 들었고, 그런 것들이 이번 발표에도 도움이 됐다.
향후 활동 계획은
대회를 준비하며 많은 즐거움을 느꼈다. 앞으로 과학버스킹 공연 등 과학소통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에게도 이 즐거움을 주고 싶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상자가 된 영광의 얼굴들. 좌측부터 양현식(우수상), 김형욱(대상), 이은지(최우수상) 씨. ⓒ 김청한 / Sciencetimes
이은지(최우수상, 충남대 우주지질학과 석사수료)
수상을 축하드린다. 간단한 소감 한마디
대회 마감 3일 전에 알게 돼 급하게 신청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 아직도 정신이 없고 기분이 이상하다.
페임랩 코리아에 참여한 계기는
현재 대학원에서 지질학을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는데, 이를 알릴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참석했다.
지질학과 일기장을 연결한 아이디어가 독특하다. 이에 대해 한 말씀
교수님들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신다. 이를 바탕으로 평소 하던 생각을 정리해 스토리로 다듬은 것이다. 지질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지구 일기를 읽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본인이 생각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장점은
지질학은 과학 중에서도 소외당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 대회에서도 지질학을 다룬 사람은 나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소성은 반대로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지질학은 상상력이 동반돼야 하는 학문인데, 상상력이 풍부한 것도 강점이라 생각한다.
향후 활동 계획은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어디든 가서 지질학을 재미있게 얘기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 또한 과학 기자가 되어 재밌고 유익한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양현식(우수상, 숭실대 전기공학부 재학)
수상을 축하드린다. 간단한 소감 한마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심에 감사한다. 나이가 어려 기죽을 뻔했는데, 옆에서 격려해 준 다른 참가자분들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
페임랩 코리아에 참여한 계기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 권유로 청소년 과학상황극 톡신대회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고자 하는 꿈이 생겼다. 이후 페임랩 대회에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성인이 되자 바로 참여하게 됐다.
초임계유체는 어렵지만, 흥미 있는 주제다. 이에 대해 한 말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중 초임계유체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페임랩 준비를 위해 재미있는 것을 찾다가 떠올리게 됐다. 특히 과학이 공학으로 변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
본인이 생각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장점은
드라마틱한 연출이다. 한순간에 사람의 시선을 끌거나, 분위기를 환기하는 등 연출에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향후 활동 계획은
바쁘게 살아가고 싶다. 대학 입학 후 비대면 수업 등으로 무료한 일상이었는데, 대회 참가를 계기로 바쁘게 사는 재미를 알게 됐다. 앞으로도 새로운 꿈을 찾고 도전하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