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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 공정함, 절기 등의 법
1-9절, 공정한 재판에 대한 법
[1절] 너는 허망한 풍설[헛된 소문, 거짓된 소문]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誣陷)하는(카마스)[남을 해치는] 증인이 되지 말며.
우리는 헛된 소문을 전파하지 말아야 한다.
레위기 19:16은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이웃에게 돌아다니며 헛된 소문,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잠언 20:19는 “두루 다니며 한담[중상]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말씀했다. 우리는 사실이라도 남의 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 하물며 사실이 아닌 것을 전하는 것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남의 명예를 훼손하고 거짓말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다.
우리는 또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誣陷)하는[남을 해치는] 증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무함(誣陷)’이라는 말은,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서 남을 나쁜 구덩이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악인과 연합하여 거짓말로 남을 해치는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참으로 악하고 죄악된 일이다.
[2절] 다수(多數)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정의를 왜곡하는] 증거를 하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따라’라는 말을 반복하시며 다수를 이용한 악을 경계하셨다.
좋은 일을 널리 전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쁜 것을 좋은 것처럼 포장하여 널리 퍼뜨리고 대중을 선동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다.
또 법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 양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증거하는 일도 매우 나쁜 일이다.
[3절]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15에서도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는 사람들의 배려가 필요한 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그가 행한 악이 정당화될 수 없다.
가난한 자의 편을 무조건 두둔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모든 판단을 공정하게 하고 편벽되지 않게 해야 한다.
[4-5절]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
우리는 원수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하고 그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긴 것을 볼 때 못 본 체하지 말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로마서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6절]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우리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아야 한다. 3절에서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재판은 공정해야 한다. 재판에서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그에게 부당하고 억울한 판결을 내려서도 안 되지만, 무조건 가난한 자의 편을 들어서도 안 된다. 재판은 공의롭게, 공명정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7절]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우리는 거짓된 일을 멀리해야 하고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며 진실한 말을 권장하시고 거짓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는 거짓된 일을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의로우시며 의를 권장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결코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매우 악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 그는 공의로우시며 공의로운 재판장이시다. 그는 의는 의라고 판단하시며 불의는 불의라고 판단하신다. 또 그는 의인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악인에게는 영원한 지옥 형벌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고, 선한 자를 죽이는 일이나 악한 자를 칭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8절]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뇌물은 순수하지 못한 목적과 의도가 있는 선물을 가리킨다.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도는 뇌물을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한다.
[9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네페쉬)[영혼, 심정]을 아느니라.
우리는 이방 나그네들을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날 애굽에서 종살이하였을 때 나그네의 심정이 어떠함을 체험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방 나그네들의 어려운 심정을 생각하고 그들을 압제하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2:21에서도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반복하여 이 법을 강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에 대하여 선한 마음을 품고 살며 이방 나그네들에게도 선함과 긍휼함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기를 원하신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거짓과 악을 행치 말아야 한다.
1절, “너는 헛된 소문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남을 해치는 증인이 되지 말라.”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려는 뜻이 없다면 그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헛된 소문을 내는 것은 남을 해치고 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가 천국에 못 들어갈 것이며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경고하였다(계 22:15; 21:8). 특히 사람이,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큰 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매우 미워하신다. 우리는 범사에 진실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하며 특히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공정한 태도를 가지고 공의롭게 행해야 한다.
2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증거를 하지 말라.”
우리는 무조건 부자를 지지하고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해쳐서도 안 되지만,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거나 부자를 무조건 정죄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부자에게든지, 가난한 자에게든지 범사에 공정하고 공평하게 생각하고 공의롭게 판단해야 한다.
잠언은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말하였다(잠 17:15; 28:4).
셋째로, 우리는 선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탈북자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사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 우리는 교회에서 친한 교우들과만 인사하지 말고 신입교인들에게, 아니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교회에 처음 나온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교우들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친절히 대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모두의 마음도 기쁘고 더욱 평안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10-19절, 절기에 대한 법
[10-11절] 너는 6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7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이것은 땅의 안식년에 대한 법이다. 논이나 밭, 포도원이나 감람원은 6년 동안 파종하고 제7년에는 묵혀 두어야 했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들이 먹도록 배려하신 법이기도 했다. 또 그것은 땅의 생산력을 높이는 데도 유익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을 본받아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고 들짐승들에게도 그러해야 한다.
[12절]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안식일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가축들과 종들도 배려하신 계명이다.
집에서 일하는 소와 나귀도 안식일에 쉴 것이며 여종의 자녀들과 나그네들도 숨을 돌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과 종들과 집에 거하는 나그네들을 배려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너그러우신 분이시다.
그는 피조물들의 수고로움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13절]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
하나님의 법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겨야 한다. 모든 법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그가 주신 법을 지키는 것이다. 온 우주에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우리는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우리의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14절] 너는 매년 3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모세의 율법은 열 가지 절기들을 규정한다.
안식일, 월삭, 유월절-무교절, 보리 초실절, 맥추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안식년, 희년 등 열 가지이다.
그 중 연중 절기가 여섯이고, 또 그 여섯 중 세 가지가 대표적인데, 그 셋은 다음에 명령된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이다.
[15절]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연중 3대 절기 중, 첫 번째는 무교절이다.
무교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아빕월(출 13:4; 23:15; 34:18; 신 16:1) 즉 1월에 지키는 절기이다. 1월 14일 저녁은 유월절이며, 1월 15일부터 7일 동안이 무교절이다(레 23:5-6). 그것은 양력으로 3월 중순쯤 된다.
무교절은 7일 동안 누룩 없이 만든 떡을 먹기 때문에 무교병[누룩 없이 만든 떡]의 절기 혹은 무교절이라고 불린다. 무교절의 첫날인 1월 15일과 제7일인 1월 21일은 안식일이며 성회(聖會)로 모였다(레 23:7-8).
유월절과 무교절은 시간적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신약시대에는 더욱 그러하였다(마 26:17; 막 14:1, 12; 눅 22:1, 7).
유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때 흠 없고 1년된 숫양을 죽이고 그 피를 문틀 위와 좌우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되,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다.
무교병은 옛날에 애굽에서 급하게 나온 사실과 흠 없는 제물을 상징했다. 쓴나물은 애굽에서의 고통스런 생활을 상징했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고린도전서 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유대인들이 어린양의 피를 집 문틀 위와 좌우에 발라 하나님의 재앙을 피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연중 3대 절기 때에는 하나님께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정성의 예물을 드려야 했다.
신명기 16:16-17도, “공수(空手)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하였다.
[16절]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연중 3대 절기 중, 두 번째는 맥추절이다. 맥추절은 ‘밀 초실절’(출 34:22)이라고도 불린다. 그것은 밀 추수를 시작할 때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이다.
유대 땅에서 곡식 추수는 무교절 기간의 보리 추수로 시작하여 맥추절 기간의 밀 추수로 끝난다. 무교절의 7일 중에 보리 추수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또 하나의 절기가 있는데, 그것이 ‘보리 초실절’이다.
그 날은 보리 추수의 첫 단을 안식일 다음날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 날이며(레 23:10-11), 전통적으로 1월 16일이다. 보리 초실절로부터 일곱 안식일을 지난 그 다음날이 맥추절이다. 그래서 맥추절을 ‘칠칠절’(신 16:16)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부른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예표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불리신다(고전 5:7).
무교절 기간에 있는 보리 초실절(1월 16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했다고 본다. 주께서 잠자는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 이것들과 비교하여, 맥추절은 성도들의 중생과 구원을 예표했다고 본다.
그 날 성령께서 강림하셨고(행 2:1-4) 신약교회의 구원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날 3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행 2:41).
레위기 23:17에 보면,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어 구운 떡 두 개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것들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롬 8:23), 즉 구원은 얻었으나 아직 죄성이 남아 있는 자들을 상징했다고 본다. 또 떡 두 덩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상징한 것일 것이다.
연중 3대 절기 중, 세 번째는 수장절(收藏節)이다. 수장절은 연말에 밭에서 거둔 것들, 곡식들을 비롯하여 각종 열매들, 기름, 포도주 등을 저장하는 절기이다. 수장(收藏)이라는 말은 ‘거두어 저장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불리는데(레 23:34; 신 16:13),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 동안 초막에 거하였던 것을 기억케 하는 뜻이 있었다. 수장절 혹은 초막절은 연중 3대 절기 중 가장 기쁘고 즐거운 절기이다(레 23:39-40; 신 16:13-15).
이 세상은 광야와 같고 성도의 삶은 순례자의 생활과 같다. 또 우리의 몸은 영구적 집이 아니고, 임시적 초막과 같다.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다. 우리의 본향은 장차 올 천국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 . .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했다.
[17절]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앞에 다함께 모여야 했다.
구약시대의 절기들은 출애굽과 추수와 관계된 뜻이 있었고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했다. 또 절기는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임을 보인다.
오늘날 신약 성도들은 우리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영육의 공급하심을 항상 감사하며 힘써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할 것이다.
[18절]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지니라.
누룩 없는 떡은 죄 없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또 그것은 예배하는 자의 거룩한 마음가짐도 내포한다. 우리가 마음에 죄를 품고 회개치 않은 채 하나님께 예배하거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시편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또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말씀은 유월절 제물을 가리킨 것 같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 날 불에 구워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아야 했다(출 12:9-10).
출애굽기 34:25,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
[19절]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가장 좋은 것](NASB)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우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민수기 18:12-1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또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이스마엘 사람의 풍습이었다고 보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을 금하게 하신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짐승의 어미와 새끼 간에 세우신 관계를 멸시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일 것이다(카일-델리취).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가난한 자나 들짐승이나 가축까지도 배려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안식년과 안식일 계명도 가난한 자를 배려하고 들짐승이나 가축까지도 배려하는 뜻이 있었다.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자가 되고 특히 가난한 자와 짐승까지도 배려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결코 무심한 자나 잔인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절기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뜻이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며, 초막절은 광야 40년 생활을 상기시킨다. 연중 삼대절기는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은혜와 추수감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
셋째로, 우리는 정성껏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고(신 6:5) 처음 익은 열매를 그에게 드려야 한다(잠 3:9-10).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또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20-33절,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리라
[20-21절]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세상에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하셨다(골 1:16).
본문의 사자는 23절에서 ‘나의 사자’라고 불린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자를 이스라엘 백성 앞서 보내실 것이다. 그는 길에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서 보내실 그 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해야 했다. 그들은 그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그에게 있고 만일 그들이 그 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그 사자는 그들의 허물을 사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사자가 단지 한 천사가 아니고 특별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본문의 하나님의 사자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 같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렀는데 그는 하나님이셨다(창 22:11-12).
야곱은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하였다(창 31:11, 13).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소서”라고 말하였다(창 48:16).
이런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되었는데, 그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보인다.
[22절]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약속된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자이시며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왕이시다. 그는 천둥과 벼락, 태풍과 지진을 주장하신다.
이 세상에는 그와 다투어 이길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는 우리편이시며 우리를 위하신다. 단지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지켜야 한다.
[23-26절]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완전히 멸하리니]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을 타파하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하나님의 사자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앞서 가서 그들을 가나안 족속들에게로 인도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멸하실 것이다. 그의 사자께서 앞서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는 것이다. 그가 그들 앞에 행하시면 대적들은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단지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타파하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원문에 ‘. . . 말며 . . . 말며 . . . 말고’라는 말은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8) 또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타파하라’는 원어는 ‘그것들을 완전히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완전히 타파하라’는 강한 뜻을 가진다.9)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자, 섭리하시는 자, 심판하시는 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자이시다. 그는 지금도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면, 즉 그들이 참된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하면, 그들의 양식과 물의 복이 약속되었다. 양식과 물, 즉 먹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생존에 필수 요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필수 요건인 양식과 물을 보장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건강도 약속하셨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이다. 또 자녀 출산과 인구 증가도 가정과 사회의 복이다.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는 말씀은 ‘충분하게 살게 하겠다, 장수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지만(시 55:23), 의인들은 충분하게 장수할 것이다.
[27-28절] 내가 내 위엄(에마시)[나의 두려움]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두려움을 앞서 보내셔서 가나안 땅의 백성들을 두렵게 하시고 그들을 파하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로 그들을 등지게 하실 것이다. 원수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고 다 도망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왕벌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성경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신 7:20; 수 24:12). 왕벌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을 가리킨다. 고대 이방인들의 글에는 가나안 거주자들이 개구리나 이나 벌 등 때문에 그 거주지를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Poole).
그러나 성경에서 여호수아나 사사기에 그런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왕벌은 그가 가나안 족속들에게 내리실 여러 재앙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29-33절] 그러나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1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참으로] 너의 올무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황폐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이스라엘을 해할까 하여 1년 안에는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이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땅 경계를 홍해(아마 홍해의 동쪽 북단 엘랏)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아라바]에서부터 하수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교제의 문제로서 이스라엘의 순수한 신앙을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의 신들과 언약하고 그들을 허용한다면 그들은 범죄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그들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 잘못된 교제는 신앙생활에 큰 시험거리이다. 그것은 참된 경건의 변질인 배교와 영적 부패의 첫걸음이 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들 앞에 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자와 왕벌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신약 성도들에게도 그러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8:20). 또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항상, 영원히 거하신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며 그 명령대로 행해야 한다.
성경 교훈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그것을 깨닫고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 모세는 신명기 10:12-13에서 하나님의 뜻을 요약하여 말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은 신약 성도인 우리는 오직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믿고 순종하며 그 명령대로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성경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우리는 평안과 승리를 누릴 것이다.
22절,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25-26절,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이것은 율법의 약속이요 합당한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사 48:18).
사도 바울도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말했다(빌 4:9).
오늘날도 하나님의 평안과 승리를 원하는 자마다, 성경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