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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치유와 소통을 위한 여성 여행자 이야기
저- 허경희(인도 역사 전공)
출-인문산책(2013.1.20. 출. 343쪽)
독정-20189년 1월 26일
ㆍ인도는 영감과 도전이 넘치는 매력적 나라다. 다양한 문화, 종교, 인종, 언어를 가진 인도는 인류 역사 발전의 처음과 최첨단을 보여주는 방대한 나라답게 하나의 틀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깜깜한 극장에 들어갔을 때 눈의 착시 현상으로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차차 주위 사물을 보는 것처럼 인도는 시간과 함께 서서히 인식되는 나라다. 세계를 보고자 하는 것은 결국 세계 속 우리를 보려하는 것이다.
힌두교는 타민족과 인종에 대한 배타적 우월의식을 심어놓았다. 텍스트가 없는 나라. 그 속에 전통을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나라, 문핛이 문화가 되고 종교가 되고 삶이 되는 나라라 고전을 가지고 시대에 맞게 제목과 표지만을 바꿔 출판하는 시스템을 고수하는 나라가. 많은 은유와 상징 코드가 보잡하게 얽혀 미스터리 책처럼 처음부터 긑가지 행간을 읽어야만 비로소 그 내용을 이해하듯이 인도라는 텍스트는 아주 생소하고 어렵지만 흥미로운 책이다.
ㆍ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기본적 사회구조를 형성하여 힌두교의 윤회 사상과 맞물려 인도 사회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카스트의 기원은 힌두교에서 시작해도 이 제도는 부족주의 이슬람교, 불교, 시크교. 기독교에 기본을 둔 모든 남아시아 사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카스트가 정해진 계급과 그에 따른 의무 이행을 강조하며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카르마라는 의식 때문이었다. 카르마의 가장 큰 특징은 변화를 체거하는 것이다. 과거에 행한 작은 행동조차 미래 결과의 면분을 가지기 때문에 행동의 제약을 통해 변화를 제거하려는 것이 카르마의 기본 원칙이다. 또한 카르마는 신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신의 섭리나 모든 것이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운명론과 반대다. “어느 누구도 즐거움이나 슬픔을 주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행동만이 그 열매를 가져 온다.”
ㆍ만약 너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와 정신적 평등을 느끼고 고통을 느꼈다면 그것이 사랑이야.
-서로 가슴을 주라. 하지만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하지만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프러스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서 결혼에 대한 내용
ㆍ인도인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위험하게 생각한다. 인도 사회 전체의 거대한 구조성을 본능으로 생득한 그들에게 욕망은 결코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 아니다. 결국 욕망은 정신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경게하고 다스려야 하는 불손한 것이다. 감정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ㅇ벗다. 감정이 생겼더라고 특유의 현실적 방법인 ‘아무도 모르게’ 처리할 것이다. 이 억압된 감정은 구조의 존속에 기여한다. 구조으 피라미드 속에서 생을 유지하고 인내하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개인 감정인 사랑보다는 결혼 제도성을 믿으며 결혼이야말로 영훤한 사랑의 보험이다. 영원한 사랑을 위해 결혼은 철저히 계산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다우라(신부의 지참그몌) 제도를 통해 구체화된다. 결혼 동기는 개인적 민족이 아니라 삶의 목적의 성취다. 사회는 그렇게 유지된다.카스트는 그렇게 세습된다. 서양 이론은 낭만적 사랑과 자유로운 선택에 기본을 둔 결혼흘 추구ㅎ서 사랑에 빠지는 사건에 의지한다. 사랑에 어긋난 사람과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혼을 요구하지 못한다. 동시에 사랑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결혼의 끝임을 인정한다. 서양인에게 성적 사랑이란 열정적 사람이 외적으로 표현된 높은 종교적 이상이다. 흰두의 결혼은 전통 삶의 수행이지 감수성의 사건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결혼이란 사회, 윤리 관계이며 가족은 사회조직의 중요한 요소다.
인도에서는 여성을 재산과 순결의 잣대로 본다. 브라만 남성들은 여성을 보호해애 한다는 명분 아래 사촌 간 결혼을 제도로서 받아들인다. 이 제도는 브라만 계급의 가족제도를 형성하면서 보수적 개인주의 입장이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여성을 보호해 순수 아리안 혈통을 유지하겠다는 것과 그들 재산이 외부 세력에게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현실적 생존의 한 방법이다.
ㆍ인도 역사는 오랜 이민족 침입의 역사다. 600년간의 무슬림 지배와 200년간의 영국 지배를 상상한다면 인도 힌두들은 8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피지배 계층으로 살아왔다. 이방인과 함께 살면서 고유 전통 혈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독특 생존방법을 깨달았다. ㅇ례로 사티라는 풍습을 보면 비인간적이다. 사망한 남편을 화장하는 장작더미에 살아 있는 부인과 함께 화장시키는 풍습이다. 이것의 기원은 과거 한 여인이 죄를 정화하는 불꽃을 통해 죽은 남편과 재결함하기를 열망하여 행한 ‘자발적’행동이었다. 이민족이 겁탈할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괴귀한 형태로 사티가 선택되었을 것이다.
ㆍ인도인들은 높은 계급이 믿는 신과 낮은 계급이 민든 신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무슨 신을 믿는가를 통해 상대의 사회 지위와 카스트를 가늠한다. 상층 브라만 계급에게는 영원한 안정을 보호해주는 비슈누 신이 절대적이고 하층 계급에게는 삶의 에너지를 주는 하누만신이 필요하다.
기쁩과 슾픔이 똬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다가온다. 나를 찾아 떠나는 겨울바다 여행의 닻
ㆍ인도는 10억 가까운 인구 이동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미리 티켓을 예매해야 한다. 일일이 본인 신상 명세아 함게 가려는 목적지와 기차 이읆을 기록해애 한다. 서류를 창구에 접수시키고 한참을 기다려야 목적기 티켓이 발매된다. 철도시스템이 우리의 상상보다 방대한 그물망이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철도시스템은 인도 신경망을 연결하느 산업프로젝트다. 행정 절차는 인도인들의 성격만큼이나 느리기만 하다. 시, 분을 다투며 살아가는 우리 시각으로는 답답하다. 끊임없는 기다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기다림에 익숙해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떠나려는 걸까? 자유를 위해 자유와 여행, 현실이 안겨주는 많은 좌절과 절망을 넘어 출발을 위한 출발이다.
ㆍ만물의 창조주는 인간의 구멍을 바깥쪽으로만 뚫어 놓았다. 따라서 인간은 오로지 바깥쪽만 보고 안쪽은 못 본다. 현명한 사람만 눈을 똘려 참나를 본다.
ㆍ나는 당신을 좋아합닉다. 이 문장에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있다. 내가 존재하고 당신이 존재한다. 나와 당신을 열어주는 감정이 존재한다. 이 감정으로 당신에게 다가간다. 당신의 문이 열린다. 비로소 우리는 친구가 된다. 소혹성의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묻는다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지.”
여우가 묻자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가게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이렴.
ㆍ이스라엘 여성들은 남자와 똑같이 3년 동안 군대 생활을 하고 똑같이 연금을 받자마자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세계르 ㄹ원해 개척하려고. 결코 남성에게 의존해서 다니지 않는다. 철저히 독립되어 있고 혼가 가고 있다. 마치 무소의 불처럼.소리의 바람에 놀라지 않고 그물의 바람에 걸리지 않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가난한 자의 철학, 약한 자의 철학을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억눌려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당당하게.”
ㆍ인도 어느 지역에서나 접하는 북새통은 생존 에너지의 급상승을 의미한다. 오랜 시간 역사 속에서 인도인들은 생존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터득한다.
ㆍ오랜 역사 상처를 안고 있는 델리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쿠트브 미나르 탑이다. 무슬람 통치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인데 1193년 무슬림 세력은 델리에서의 마지막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후 하늘 지를 승리 탑을 세웠다. 거의 73미터다. 탑 벽면에는 승리 기념의 이슬람 경전의 코란 경구가 장식되어 있다. 이방인에게는 뛰어난 조형 에술품으로 보이지만 힌두에게는 치욕 역사의 상징이다. 이 전쟁 패배 후 힌두의 나라였던 인도는 600년 동안 무슬림 통치를 받게 된다.
ㆍ타지마할을 방문하는 꿈 없이는 어느 누구도 델리에 살 수 없다.-인도 작가 니힐 상의 ‘인도의 낮과 밥’ 소설 첫 문장이다. 타지마할은 위대한 사랑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사랑했던 아내 문타즈 마할의 죽음을 슬퍼한 샤자한은 그녀를 위해 묘지를 22년에 걸쳐 만든다. 그는 무자비한 정치가였지만 사랑과 애정에 있어 위대한 능력을 소유한 남성이고 타자마할은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한 불명의 사랑에 대한 헌신으로 지금도 세계적 기념물로 남아 있다. 18년간의 결혼으로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왕비 뭄타즈 마할을 향한 사랑이 만든 위대한 무덤. 떠도는 꿈과 사랑과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곳. 타지마할의 위엄 “이제부터 세계 주민들은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타지마할을 본 사람과 못 본 사람으로”1960년 그녀의 죽음으로 샤자한의 삶은 깊은 공백으로 차게 되었다. “제국의 활기는 사라지고 삶은 이제 나에게 아무 의미도 주지 않는구나.” 그는 거의 2년 동안 슬품에 잠겨 1632년에 묘지를 건설. 1653네 22년 걸려 2만 명의 노동자와 장인의 노동력이 들어 완성된 타자마할은 하얀 대리석에 사랑과 영혼의 꿈을 묘사함으로써 무굴 인도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이 되었다. 후에 아들들은 공사로 재정이 궁핍해지가 왕위 계승 다툼을 벌이며 아버지를 아그라 성에 유폐시켰다.
· 인도 음악은 서양 음악처럼 특별 악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영혼 교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교육법으로부터 영혼을 움직이는 음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리듬을 이루는 타라와 멜로디를 이루는 라카로 구성된 인도 전통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저 넓은 광야에 나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느낌인데 슬픔보다 평화에 가까운 느낌이다. 인도 시타르는 세계적으로 마음 사로잡는 소리로 유명하다. 이 악기는 티크 나무와 커다란 과일 마른 껍질을 건조한 호리병박 열매로 만들어졌다. 보통 2개의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한다. 드럼 세트 두 개를 타블라라 하는데 하나는 나무로, 다른 하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탄부라는 윙윙거리는 소리로 음악 음조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현을 가진 악기다. 또 다른 현악기인 사랭기는 목재 악기로 현은 세로로 길게 뻗쳐져 있다. 나는 인도 전통 악기 중에 타블라와 사로드라는 악기를 좋아한다. 타블라의 가슴 뛰게 만드는 듯한 에로틱한 소리와 사로드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듯한 로맨틱한 소리는 감동을 준다. 음악은 영혼을 울리는 메시지다.
·임베르 궁정 -리자푸트 건축물을 대표하는 -1592년에 건축되기 시작하여 15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18세기 중엽 지아푸르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700년 동안 카츠와하 왕조의 성이다. 벽면에 그려지 다양한 문양. 암벨 성이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것은 무굴 제국과 화친을 맺은 탓. 원래 라지푸드족은 5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건너온 유목민인데 인도의 불의 정화의식을 거쳐 무사 계급, 크샤트리아로 탄생.. 크샤트리아 후옐,ㄹ 과시 왕권과 지배 정당성을 꾀한 배경에는 이슬람 세력과의 대결에서 흰두 문화의 주역이라는 입자를 선명하게 내세울 필요성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힌두족인 라지푸트의 여러 왕조는 10세기말부터 시작되는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수세시겡 항쟁을 거듭, 12세기부터 델리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교들과 350년간의 전쟁을 했다. 하지만 무굴 시조 아크바르 데제는 라지푸트와 전쟁을 혼인 정책으로 환친 맺어 힌두 세력인 라지푸트들을 제국의 군사 책임자로 기용, 유능한 힌두 출신을 고위직에 임명했다. 이에 라자푸드 왕은 자기 여동생을 아크바르 왕비로 만들면서 무굴 제국의 동반자가 되어 특권을 누렸다. 이후 라자스탄 일대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했다.(아크바르 대제는 어다 가든 화가를 데리고 다녀 자기 행적을 그림으로 남겼다.)
· 카주라호는 아주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이다. 에로틱 사원에 새겨져 있느 ㅇ니간 성행위조각상, 사랑에 대한 호기심이 사랑을 향한 외로움만 심는다. 에로틱 석상들은 생명 있는 사랑을 그리워하며 노래한다. “소중한 목숨을 버릴 마늠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누구일까.”
· 평화의 땅 산치- 관용을 정대 의무로 강조한 이소카 대왕(산치 대탑 동서남북 네 개 문에 새겨진 조각상 탑문의 높이는 10미터. 불전도, 본생도, 대상도, 문양도 등이 돋을새김으로 양각되어 있다.
아소카 대왕이 인도아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끔찍함을 몸소 느끼게 되어 마음의 위로를 찾다가 자연스럽게 비폭력과 불살생을 강조하는 불교에 귀의하여 불교를 받아들인 후 다른 종교에 열린 마음으로 관용을 의무고 강조. 진정한 군주는 무력이 아니라 정신 감화로 국민을 통치해야 한다는 이념에 힘입어 광대한 제국은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는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가진 불교에서 통치 원리를 찾았다. 이후 불교는 평화의 메시지로 전파. 산치는 평화의 당으로 전해 내려온다.
·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인도 예술의 가치를 열정의 표현이라 했다. 인도 예술가들은 외국 여향을 받아들이며 그들 자신의 본능에 따라 변화시키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은 마우리아 왕조, 쿠샨 왕조가 북인도의 제국적 우ㅜ얼성을 가졌던 시대, 616세기 무굴 제국이 건축과 그림의 새 학파를 후원했던 시대에 발생했다. 특히 스리랑카와 남아시아 대륙에 인도 문화가 전해졌다. 인도 문화의 의의는 인간 정신 섹를 이끌어나간 선각자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 타지마할 호텔-인도의 민족적 자존시을 상징하는 건물
뭄바이의 가장 큰 정신의 상징은 타지마할 호텔이다. 이 호텔을 세운 타타는 인도 산업 자본가였는데 그가 영국 방문 때 피부색을 문제로 모든 호텔이 출입을 거절하자 돌아와 1903년에 타자마할 호텔을 건설. 이 호텔은 지금도 인도인들만 손님으로 받는다.
·서양의 동양 지배는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면 1498년 포르투칼 장교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 항로를 발견, 인도 서남 해안 캘리커드테 도착. 1503년 포르투칼ㅇㄴ 코친에 첫 항구를 개항하며 할료 무역을 통해 이익을 취득. 이를 바탕으로 1510년 고아를 절멸하여 동양 지배를 시작- 억압적으로 이교도들의 사원과 건물은 허락하지 않고 1540년 힌두 사원은 대부분 철거됨. 그 자리에 포르투칼 양식 교회와 성당이 세워짐.최종 목표는 포르투칼 혈통의 주민을 양성하여 원주민들ㄹ에게 가톨릭 문화를 주입하려는 것. 이것은 새로운 고아인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됨
· 홀리는 여름 시작을 알리는 축제로 미 명절에는 카스트가 해방을 맛본다. 인도 민중에게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해방의 날이다. 해방의 날을 기리기 위해 흰옷을 입고 물감으로 얼굴과 몸을 장식한다.
·북인도와 달리 남인도 타밀나두 지역은 피부색과 언어, 인종이 판이하게 다르다. 다양성에는 오랜 역사적 적대감이 도사리고 있다. 다양한 인도 문화의 공존을 묶는 하나의 끈이 있다면, 단지 인도 민족 종교인 힌두교일 뿐이다. 남인도인들은 석공을 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 어디서나 두들기고 쪼고 다듬는 정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대를 잇는 정신이 이 지역에 위대한 조각품과 건축을 탄생시킨 것이리라. 7세기 남인도의 다양한 힌두 사원 양식을 볼 수 있다.
·서구 열강 세력들의 식민지 쟁탈지
프랑스는 1673년에 퐁디세리에 도착해 해안 마을에 프랑스의 동인도회사를 세웠는데 영국과 경쟁하다 1760년에 전쟁이 일어나 패했다. 프랑스가 인도 지배권을 영국에 넘겨주고 뒤에 프랑스로 귀속되었다가 1954년에 인도로 양도되었다. 지금 모든 간판은 프랑스어와 영어로 되어있다. 식민주의 역사의 끝이다.
오늘날 달라이 라마는 무엇을 위해 싸우나? “내게 노벨평화상을 줄 것이 아니라 티베트의 독립과 자유를 달라.”나라 없는 고통 속에서 티베트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지 삶의 현장을 보려면 작은 국제 도신 다람살리에 간다.
·다르질링의 히말라야
다르질랑는 차 재배지로 유명한 산간 지역이다. 천혜절경의 빼어난 경관과 낭만을 즐기려면 장난감 기차를 타고 서로 무픕이 닿는 좌석에 비좁은 통로레 한 칸에 열댓 명밖에 탈 수 없는 정겨움의 공간 기차에 앉아 버스로 3시간이념 충분한 거리를 9시간만에 거북이처럼 달려가보라. 느림의 여유로움이다.
·나에게는 불교가 익숙한 문화지만 서양인에게는 불교의 가르침은 커다란 신비의 대상이다.
·소금 행진
1,2차 세계대전 기간 1920년, 1930년, 1942년에 시민불복종 캠페인을 시작, 소금행진으로 시작했던 1930년의 캠페인은 78명의 선택된 추종자들과 함께 간디가 소급법의 개정에 대항, ㅇ영국 법을 깨기 위해 바다로 행지, 해변에 도착해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기 시작했다. 간디는 소금 공장을 독점한 영국 권력이 가난한 민중의 이익에 상처를 입힌다며 캠페인에 앞장서 1942년에 6만 명 국민회의 활동가들이 투옥. 간디는 힌두와 무슬람이 하나임을 주장하겨 갈등 종식을 위해 단식하다. 무슬림 편에 있다는 비난을 받다가 1948년 1월 30일에 힌두 극단주의자 총에 죽음을 맞았다.
· 콜카타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죽음을 기다리는 집’-마더 테레사
타고르 못지않게 인도의 위대한 정신 스승은 마더 테레사다. “나를 위로해줄 한 사람을 찾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기에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마더 데래사
콜카타의 수녀원에서 그는 20년간 지리와 교리문답을 가츠리고 다르질링 기차 여행 중 부름을 받아 인도 전통 의상 사리 3벌과 5루피를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1979년 노밸평화상 수상연설에거 그녀는 낙태주의자들을 살인자라 비난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로서 일뱅을 보내고 1997년 축복속에 생을 마감했다.
‘안개 속의 풍경’ 옇화는 두 남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시작하는 이야기 희망의 여행이 아니어도 “우린 행복해요. 우린 여행하고 있으니까.” “안 보이니? 안개 속에 멀리 있는. 나무가 보이지 않니?”
당신은 보았나? 안개 자욱한 풍경을 헤치고 언덕 위 나무로 가는 두 남매를.
-사십대 문턱이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럽게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인도는 나에게 거울이다. 내가 발견한 인도에 대한 은유의 결론이다.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살 뿐 인도에 대한 나의 은유는 끝났다. 안개 속 풍경은 맑은 겨울이 되어 사라지고 나를 비우기 위한 여행, 인도 구석구석을 요행하는 동안 아름다운 풍경들이 내면으로 가득 차 들어왔고 이 풍경들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되었다. 여행은 자신을 비우는 과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