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80년대 여성언술의 특성
나. 구술의 확산성1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여성의 문체는 남성의 문체와 비교할 때 격식 바른 구술 표현적 부분이 매우 적다. 여성들은 말이 글로 되었을 때부터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시작된 것처럼 느끼기에 그런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잃어버렸던 말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 말을 하기 위한 글, 글보다 우선시되는 말,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글 등이 부각될 수 있는데, 이러한 양식이 곧 구술과 광기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구술과 광기의 언어는 ‘몸으로 글쓰기’의 전형으로서 이야기와 경험이 유리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이다. 여성은 ‘중심’으로 상징되는 권위나 이성을 부정한다. 잘 정돈된 ‘글’은 하나의 ‘중심’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정돈되지 않고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 ‘말’은 ‘주변’에 해당한다. 따라서 ‘글’을 쓰면서도 ‘말’을 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글’을 ‘말’처럼 하고 싶어 하고, 이때에 나타나는 것이 바로 구술과 광기의 언어가 된다. 구술과 광기의 언어는 앞뒤가 분명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행위로부터 벗어난다. 때문에 거침없이 흘러가는, 그래서 멀리 퍼지는 언어를 형성하게 된다.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 이야기를 풀어내게끔 만드는 언어, 살아남거나 살리기 위한 언어가 바로 이러한 ‘흐름’의 언어인 것이다.
먼저 구술의 언어는 단순히 사고를 표현하는 기호가 아닌 행동의 양식을 의미한다. 말하기 자체가 역동성과 내면성을 확보하는 목소리의 문학과 연결되면서 자연스러움과 직접적인 전달 가능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구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곧 타자와 직접 연결되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기존의 남성중심적 ‘쓰기’의 언어에서 도외시되었던 ‘말하기’의 언어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토끼를 먹은 뱀 생각이 났지만, 말을 끊지 않으려고 가만히 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 대학’, ‘확신 학교’, ‘성공 대학’… 다 외우지를 못했어. 졸업 때 쓰는 검은 사각모를 쓰고는 부드러운 흙길을 두꺼운 장화 같은 신발을 신고는 쾅쾅 걸어갔어. 나는 앞만 보고 성난 듯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시 없는 꽃을 보라고 소리를 질렀어. 앞만 보고 걷다가 중간 줄에 어느 한 사람이 나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볼 수가 없었어. 네모 난 검은 모자들은 줄을 똑바로 맞춰서 간격이 없이 걸으니까. 한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서로 부딪치고, 모자 끝에 달린 노란 술들이 달랑거리다가 서로 엉키고 난리가 났어.
나는 너무 놀랐어. 그 사람들도 당황해서 삐뚤어진 모자를 바로잡고, 넘어지려는 사람은 안 넘어지려고 허우적거렸어. 그러다가 행복 대학의 검은 모자를 쓴 사람과 잠깐 얼굴이 마주쳤는데 전혀 행복해 보이지 낳았어. 굳은 표정에 입술은 꽉 다물어 성난 것 같고, 눈은 불안해 보였어.
먼지를 내며 행렬이 지나갔는데 아무도 이 동산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은 없었어. 돌길에 부딪는 쇳소리 같은 여운만 남았지. (굵게 강조 : 인용자)
_ 조재은,「어린왕자 패러디․1」중에서
말을 하는 듯한 어투로 현대인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술은 잘못하면 광기의 노출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여성작가는 이를 ‘어린 왕자’의 모작-패러디로 처리하고 있다. 현대인은 ‘행복’과 ‘편리’라는 개념을 혼동한 채 어떠한 확신도 없이 발등에 이글거리는 불길을 잡는 데만 급급하는지도 모른다. 전자는 보다 정신적인 것을, 후자는 신체적인 것에 부여된 가치이기에, 이를 대비하는 자체가 잘못일 수도 있다. 현대인은 행복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공간에 진입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인다. 그들은 일련의 진입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보장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확신으로 들뜨게 된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한정된 시간밖에 살 수 없는 숙명적 존재고, 모든 일에는 상대적 상황이 존재하는 사실을 무시한 채 서둘러 자신의 삶을 휘몰았기 때문에 절망하게 된다.
나는 전남 담양의 농사꾼의 딸로 태어났다. 1남 3녀 중 막내. 어머니께서는 위로 아들이 한 명이고 딸이 둘이어서 아들 하나 더 둘까 하고 나를 낳았다 한다. 하지만 뒤늦게 둔 자식이 아들이 아니고 딸이어서 어머니는 몹시 섭섭해 우셨다고 한다. 이렇듯 나는 태어날 때부터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흐르게 했고, 그 딸이라는 굴레는 평생 붙어 다니며 나를 억누르는 제일의 억압자였다. 물론 딸이어서, 여자이어서 겪는 아픔은 비록 나 한 사람만이 당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지금에 비해 훨씬 보수적이고 봉건적이어서, 내 또래의 여자애들이라면 남자애들보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이 훨씬 더 했다. (굵게 강조 : 인용자)
- 이소라, 「이 땅의 딸로 태어나」 중에서 -
이런 구술의 언어 유형은 수필에서는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고백적 구술자로 나타난다. 이소라는 가부장 중심적 사회에서 딸로 태어나 겪는 아픔과 한을 여성이라는 동류의식에 기대어 표출하고 있다. 인용 예문은 그 도입부로서, 마치 이야기를 하듯이 출생 과정의 비애를 털어놓고 있다. “하나 더 둘까 하고 나를 낳았다 한다.”, “어머니는 몹시 섭섭해 우셨다 한다.” 등의 어투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마치 독자를 앞에 두고 직접 말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여자로 살면서 겪어야 하는 설움에 대한 정보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