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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운명(運命)'이라고 하는 걸까?)
2차선 지방도 내리막을 달리는데,
나는 갓길은커녕 그 하얀선마저도 아슬아슬한 도로 끝선의 줄타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었는데,
늘 그렇기는 하지만 그 순간도,
이렇게 금방 내려가기만 하면 너무 싱거운데...... 하는 아쉬움도 함께 하고 있었다.
상당히 높았던 고개를 자전거를 끌고 오르느라 다리가 후둘거릴 지경인 것을 생각하면, 잠깐의 상쾌함 한 번의 보상으로 끝나는 건 너무 짧고도 아까운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저 쌩- 하게 속력을 내며 내려오는 대신, 약하게 브레이크를 잡은 상태로 약간 여유있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내려오다가,
길 건너 편 도로 옆 개천 건너에 한 마을이 있는 게 눈에 들어오기에,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그냥 휙 좌로 꺾어 다리를 건넜다.
(물론 뒤에 차가 오는지는 돌아봤지만 아무 것도 없어서)
그러면서 마을로 올라가는 도로는 오르막으로 이어졌는데,
논도 있고 과수원도 보였지만, 그 과수원의 사과나무의 작황이 좋질 않았다.
정성스럽게 가꾼 것도 아니게 보였고 그래선지 과일 자체가 병충해에 절어 볼품도 없었는데,
어차피 오르막이어서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천천히 오르고 있었는데,(고개마루에 올랐을 때 너무 답답한 나머지 두건도 벗은 맨 얼굴 상태였다.)
거기에 웬 창고 같은 게 하나 있었고,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창고 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웬,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고개를 돌려 보니(그 순간),
거기서 고기를 굽고 있는 한 내 또래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 하더니, 대뜸(내 모습을 통째로 다 보긴 했을 테니까.),
"일로 와서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시죠?" 하는 거 아닌가.
당황한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정말, 갑작스런 상황이 펼쳐진 것이고(그 창고 뒤 쪽 그늘에 사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도무지 그런 상황을 상상도 못했는데),
"예?" 하고 놀랐는데, (아마 그 순간, 거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던 것 같다.) 어물어물하다가,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있었다.(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거길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 모두(?),
"그러세요! 오셔서 한 잔 하시고... 가세요!" 하고 아주 호의적으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래도 좀... 저 같은 사람이 이렇게 불쑥 나타난 것도 실례가 될 거 같은데......" 하고 쭈뼛쭈뼛하고 있었는데,
"어서 오세요!" 하면서 거기에 있는 여인들이 오히려 더, 바로 바닥에 있는 자리를 늘리면서, 완전히 무슨 손님을 맞는 식으로 나를 환영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너무 고맙기도 하고 좋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내가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선뜻 들어가지는 못했는데,
"이리 오셔서, 앉으세요." "밥도 있고 하니, 식사도 하고 가시죠?" "거기, 밥통 좀 줘!" 하는 식으로, 정말 여인네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는 그 쪽으로 가면서,
"이런 자리에 저 같은 사람이 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아이, 어서 오세요!" 하고 자리에 있던 남자는 이미 새로운 컵에 막걸리 한 잔을 채웠고,
고기를 굽던 사람은 또 접시에 금방 구운 고기도 올려놓고,
그 자리에 있던 여인들은 반찬이며(김치, 풋고추, 깻잎 등등)를 접시에 덜어서 내 자리 쪽에 마련하는 등,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저, 죄송하지만... 자리에 앉기 전에... 이런 좋은 자리를 사진에 한 번 찍어두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했더니,
"그러세요!" 하고 그것마저도 아주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줘서,
나는 바삐 사진을 찍었는데(더 찍었어도 됐을 텐데, 조심스러워서 두 컷만을 찍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권하던 자리에 앉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들 내가 막걸리 한 잔을 하는 걸 바라보려는 듯 나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일단 막걸리를 한 잔 마시자,
그들 중 막내라는 분(서울에 산다고 했다.)이 상추에 고기까지 싸서 주는 거 아닌가.
그래서 또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걸 받아 먹노라니,
웬걸?
내가 끼고 있던 '인공 틀니'가 빠져, 그 상황에서 갑자기 민망해진 내가(이건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아이, 제가... 임플란트를 하려고 하는데, 지금은 임시 틀니를 끼고 다니다 보니, 이런 일도 벌어지네요!" 하면서 틀니를 빼서 그 옆에 놓으면서도 고기를 우물우물 씹자,
"저도 임플한트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하고 옆의 남자가 웃으며 말하는데 보니, 그 분도 앞니가 임플란트 같아 보였다.
그렇게 그 상황과 이빨 빠진 노인네의 행동을 이해해 주는 것마저도 정감이 갔는데, 한 여인이
"식사도 하세요." 하는데, 다른 여인이,
"식사는 하셨을지도 모르잖아? 아직 점심 시간이 되려면 좀 멀었으니까. 고기 드시면서 막걸리를 드시게 해" 하기도 하기에,
"제가 아직 아침도 안 먹은 상태라서, 식사도 하겠습니다." 하고 염치좋게 달라붙자,
"그러세요. 밥은 얼마든지 있으니......" 하면서 공기에 하나 가득 밥도 퍼주기에,
"근데, 여기가 무슨 자리길래, 이렇게 화기애애하고 분위기가 좋습니까?" 하고 내가 웃으며 묻자,
"우리 셋은 자매구요, 이 분은 저희 오빠고, 올케고... 가족 모임이에요. 서울 용인 여주... 각자 흩어져서 사는데, 오늘 여기서 모인 거고, 지금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인데... 선생님이 갑자기 나타나신 거구요." 하는 것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저 같은 나그네를 불러주셔서...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인심이 좋으시다니요! 근데, 참 이상하기도 하고 희한한 일 아닙니까? 무슨 일인지 제가 방금 전 이 고개를 내려가다가, 별 생각도 없이 갑자기 이 쪽으로 휙 방향을 꺾었고, 마을이나 한 번 둘러보고 가려고 올라왔는데, 정말 꿈에서 상상하지도 않았던 이런 화목한 형제들의 모임 자리에 끼게 된 거거든요...... 저는 지금도 믿을 수 없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네요." 하자,
"그러게요. 이게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신 거 같아요." 하기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요. 호 호 호 호......" 하는 등......
그런 와중에도 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어제 내가 그토록 힘들게 하루를 보냈던 보상이라도 하라는 하늘의 뜻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렇잖고서야 무슨 생각지도 않았던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겨, 서울을 떠나온 이래 식사 한 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탠데(그렇잖아도 어딜 가서 식사를 해야 하나? 하고도 있었는데), 이런 훌륭한 야외에서의 식사에 초대된 꼴이니, 예삿일은 아닌데......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의 사진도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늙은이가 그러는 게 너무 경망스러워 보일 것 같아 자제를 해야만 했는데,
"막걸리도 한 잔 더 드세요." 하기에,
"저, 더 먹고도 싶고 마실 수도 있지만... 그러면 전, '음주운전'하는 건데요......" 하자,
"아! 그렇겠네요!" "그래, 맞아! 더 드리면 안 돼! 자전거 타고 음주운전하면 더 위험할 거 잖아?" 하고 그들도 맞장구를 쳐줘서,
"대신 이렇게 밥을 맛있게 먹잖습니까?" 하자,
"보기는, 고기를 별로 드시지 않네요." 하고 한 여인이 말하기에,
"제가 평소에도 고기보다는 주로 푸성귀를 잘 먹는 사람이라 그렇지, 고기가 싫어서가 아니니 이해해 주십시오." 하기도 했는데,
"근데, 어떻게... 그 연세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시는지, 대단하시네요." 하기에,
"저는 차도 없는 사람이고, 대단한 건 아닌데... 태생이, 가만히 집에만 못 있고, '역마살'이 많이 낀 사람이라, 이렇게 가끔씩 어딘가를 싸돌아다니기도 한답니다." 하자,
"본인이 좋아서 하시는 거라면 행복하고 좋으시겠어요?" "그럼, 여행만 전문으로 하시는 분인가요?" 하고들 묻기에,
"아니요. 그렇진 않은데......"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가만히 보니, 저 자전거도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그렇지요? 맞아요! 하 하 하.... 제가 언젠가 한 번, 이렇게 여행을 하다가 자전거에 문제가 생겨 시골의 어떤 자전거포에 들러 수리를 하는데, 거기 주인이 저에게, '이런 '면 체육대회 사은품' 자전거로 어떻게 전국 여행을 하신다고 그러세요?' 하고 나무랄 정도였거든요. 하 하 하....." 하자,
"정말이네요! 그런 자전거네...... 흐 흐 흐...." 그들도 함께 웃기도 했다.
그럴 즈음엔, 나도 그들의 호의에 뭐래도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해야만 한다는 의무감도) 들고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뭐가 좋을까? 하고 몇 가지 생각도 해 보았는데, 그 상황에서는, 내가 2010년에 냈던 '자전거 아저씨' 책을 보내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주 까놓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다른 자리였다면 이런 얘긴 하지 않는 난데)
"저... 제가 이렇게 다니면서, 주제넘게 책도 냈었는데요......" 하자,
"아! 그래서 우리들 사진도 찍으셨군요?" "어쩐지 뭔가 그런 느낌이 풍기기도 했어!" "유명하신 분인가요?" "그럼, 우리도 책에 나오나요?" 하는 식의 반응이 나오기에,
"저는 결코 유명한 사람은 아닌, 책을 내기만 했지, 팔리지는 않았던 능력도 이름도 없는 사람인데요......"
"그럼, 성함은요?"
"예, 사실은 제 이름까지 밝힐 일은 없었지만, 기왕에 책 얘기가 나왔으니...... 남궁 문이라고 합니다."
"직업은요? 뭘 하셨는데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여인이 묻기에,
"전... 화갑니다." 했고,
"어쩐지!" "정말요?" 하고 그들은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저는 그저,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사람인데, 전혀 유명하지는 않고 책도 팔리지 않을 정도로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 그래서 오늘 이런 얘기로 또 책을 낸다는 말씀은 못 드립니다만, 글쎄요... 제가 조금 전 사진을 찍었던 것은, 이런 너무나 아름답고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순간을 기록에라도 남겨놓기 위한 행위였는데, 이렇게 제가 여러분의 호의로 훌륭한 식사까지 대접을 받다 보니, 저도 뭔가 그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런데요......" 하자,
"아니, 그런 말씀은 안 하셔도 되구요." "그런 부담 느끼지 마세요." "그리고 이렇게 인연이 되어 함께 식사한 것만으로도 즐거운 거 아녜요?" 하고 말들을 하기에,
"그래서, 다름이 아니라... 제가 전에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 '자전거 아저씨'라는 책을 냈는데... 나중에 서울에 돌아가면, 그 책이라도 여러분께 보내드리고 싶어서 그러니, 대표적으로 한 분만 저에게 주소를 주시면, 거기로 책을 부쳐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만난 인연을 서로 기억이라도 하게끔요......" 하자,
"'자전거 아저씨'요? 하 하 하..." 하는데,
"이제는 '아저씨'가 아닌, '자전거 할아버지'가 돼 있네요... 하 하 하......" 하자,
한 여인이,
"00아, 니 주소 알려 드려라. 어차피 같은 서울에 사니까." 했고,
여인 중 하나가 자신의 주소를 불러줘서 나는 그 주소를 핸드폰에 적어두었는데,
그렇게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져 나는 흥분까지 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과수원의 사과를 따가라는 것도 모자라, 풋고추도 맘껏 따서 가방에 채워가라고도 하는 등의 호의를 보여줄 정도로 인정많은 형제들이었는데(길을 떠나야 할 나그네가 어찌 그런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런 여운을 안고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나그네의 길에 올랐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 현지 마을 사람들에게 점심 한 끼를 얻어먹는 일.
물론, 자전거 여행을 다니다 보면(내가 그동안(2005년 시작) 해왔던 자전거 여행을 통 털어서도) 이런 일이 생길 경우도 있다. 어쩌다(몇 년에) 한 번씩은......
그동안 나는 몇 차례 이와 비슷한 일을 경험했고, 그런 내용은 '자전거 아저씨'(책)에 나와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코 쉽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에(그리고 이런 일은 기대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기에), 여행을 하면서는 아예 이런 일이 생기리라는 계산 자체를 하지 않고 다니는데,
게다가 요즘 세태가 갈수록 각박해져서(옛정은 사라지고 있어서) 이런 일은 갈수록 생길 가능성마저 더 희박해져 가는 상황인데,
몇 년만에 어렵게 출발했던 이번 여행에서(더구나 어제는 죽네사네 하는 힘든 상황에 처해, 그래서 오늘은 하루 쉬기로 하고 그저 산보를 하는 기분으로 계획에도 없던 엉뚱한 곳을 가고 있었는데)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아, 떠나오기를 너무 잘했구나! 하는 행복감과, 이 일 하나만으로도 이번 여행에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포만감에 사로잡히고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더라도,
오늘, 뜻밖에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게,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내리막을 내려오다 아무 생각 없이,
어? 하면서, 저 마을을 지나가자!' 하고 자전거 방향을 틀어 몇 발짝 걸어올라가다가 생겼던 일 치고는,
이건,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야! 할 정도로, 나에겐 '여행이 주는 아름다움'이자 가슴 벅찬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흥분이 아마 상당히 오래(죽을 때까지도) 내 가슴 속에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데,
그저 '우연'히 벌어진 일로 치기엔,
너무나 이미 잘 짜여진 각본으로 정해졌던(?), 그러니까 '운명(運命)'적으로 정해졌던 일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간의 영역에선 설명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던 그 무엇이 내 삶에 끼어든......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런 아주 소중한 경험을 한 것이다.
아, 이 '내리막'은 내가 마치 세상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첫댓글 맞아요.
하늘이 준 선물이자 보상입니다.
저는 며칠 동안 겨울 내내 때고도 남을 만큼의 장작을 하느라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매일 아침 밤나무에 가서 밤 줍는 일도 하면서요.
'봄터'님은 참 부지런한 분입니다.
어쩌면 제가 알고 있는 쿠바 친구 '윌리암' 같은... (그를 '개미'같은 사람이라고 들 하더군요.)
평생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된 사람.
성질 값 하느라고요.
정말로 인복도 많으셔,,,,^^
건강 조심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