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향은 어디냐

[일우]

너의 고향은 어디냐

고향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곳이나 제가 나서 자란 곳이다. 그런데 우리 집 큰 놈은 고향이 셋이다 보니 고향을 물으면 그 때 그때 마다 답이 다르다. 이제는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경기도가 고향이라 하지만 어느 때는 충청도라 할 경우도 있었고 전라도가 고향이 될 때도 있었다. 충청도가 고향인 이유는 조상의 고향이 충청도이며 충청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년을 졸업하기 까지 경기도 전라도를 돌며 다섯 번 학교를 옮기고 졸업을 했다.

경기도 포천 선단초등학교에서 입학하여 전라도 광주 상무초등학교로 전학, 다시 경기도 포천 노곡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고 3개월 만에 포천 이동초등학교로 옮겼다. 노곡초등학교에서 이동초등학교로 옮긴 것은 집에서 이동초등학교가 가까울 뿐만이 아니라 군인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모두 이동초등학교로 다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확인하지 않은 실수로 다시 전학을 한 것이고 다섯 번째 로 옮긴 경기도 구리초등학교에서 졸업을 했다. 그러니까 큰 놈은 문제가 많은 학생이 아니라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큰 놈 밑에 두 딸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가끔은 망설일 때가 있다.

지금부터 43년 전 백마부대 소대장으로 월남 전투에 참여하고 돌아와 기계화부대 창설요원이 되었다.

육군 중위로 창설 부대 전투중대장을 하며 그 때 결혼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전방에는 여단급 이상 참모 지휘관은 부대 인근서 관사 생활을 하고 나머지는 시골집 방하나 얻어 임시 거처할 정도였다. 창설부대 중대장이니 집에 들어오는 시간보다 밖에서 생활 하는 것이 더 많았다. 그래서 부대 가까운 곳에 초가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 했다.

시골 초가집 셋방이니 부엌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겨우 서랍장 하나 들어갈 정도의 한 칸 방이었다. 1년 후 부대가 교체되어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인근에 군단사령부가 있어 주변에 군인 가족들이 많이 살았다.

이 번 에는 먼저 번에 살던 집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별 차이는 없었다. 조금 났다는 것이라면 부엌이 달렸다는 것뿐이었다. 그 때 아내는 큰 놈을 임신 중이었다. 그곳에서 출산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되어 아내가 청주에 있는 친정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큰 놈의 고향이 청주가 된 것이다. 큰 놈이 탄 생 될 무렵 두 번째 이사를 간 곳이 전라도 광주다. 대위로 진급이 되고 중대장을 마치었기 때문에 고등군사반 입교 명령이 난 것이다. 큰 놈의 백일을 그곳에서 맞이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에서 출생신고를 하고 전라도 광주에서 백일기념을 했다. 이렇게 해서 큰 놈은 졸지에 1년 만에 고향이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3도(道)를 동시에 얻게 되었다.

지금은 상무대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고 군인아파트가 들어선 것으로 알 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나 와 같은 고등군사반 피교육생들은 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월세 방 생활을 했다. 고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떠나는 피교육생들을 상대로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놓고 월세로 생활하는 집이 많았다. 5개월 마다 방주인이 바뀌니 어떻겠는가. 지금과 비교를 하면 마치 먼 나라에서 있었던 흥미 있는 이야기 꺼리로 들릴 것이고 실제로 그 곳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화도 많았다.

부사관들은 한 곳에 정착이 되면 같은 지역에서 여러 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장교는 보직이 끝나면 전·후방 어디라도 떠나야 되기 때문에 군에서 익힌 비상훈련이 이 때 요긴하게 쓰인다. 비상훈련으로 숙달된 짐 꾸리고 다시 풀고 하는 요령이다.

병사들이 거주 하는 곳이 병영(兵營)이다. 전투시가 아니면 장기복무 하사(下士) 이상은 영외(營外)거주를 한다.

광주에서 교육을 마치고 최전방 부대로 보직 명령을 받았다. 2차 중대장 보직을 받은 곳이 강원도 양구라는 곳이다. 최근에 최전방 초소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던 22사단과 경계선을 이룬 부대이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면 양구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소양강 땜이 생겨 1시간이면 갈 것을 그 전에는 비포장 길을 몇 시간을 돌아 양구에 도착했다. 논산 훈련소에서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수송차량에 승차하여 사단 보충대에 내리는 신병(新兵)은 우리나라에 이런 곳도 있는가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전라도 광주에서 양구로 이삿짐을 푼 곳은 슬레이트집이었다. 마당도 넓었고 화단엔 예쁜 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이곳도 농사일보다는 군인가족을 상대로 월세로 생활하는 것이 주업인 경우가 많았다. 큰 놈 첫 돌을 그곳에서 맞았다. 나는 GOP중대장이기 때문에 한 달에 하룻밤 외박을 나왔다. 큰 놈이 두 돌이 되는 날 중대장보직을 마치고 대대작전과장(S-3)이 되어 GOP에서 내려와 다시 이사를 했다. 결혼 3년 만에 네 번째 이사를 했으니 9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한 셈이다.

큰 놈은 여기서 새로운 고향 하나를 더 얻었다. 강원도란 네 번째 고향이다.

나 또한 우리나라에서 남쪽 땅 끝 마을과 정반대되는 북쪽으로 마지막집에 사는 영광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북쪽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집, 대한민국 끝 집이었다.

바로 집 앞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고 그 곳 부터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었다.

가을만 되면 병사들이 병영 외에 영외 거주자들의 월동준비까지 해 준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한 겨울을 나도록 해주는 것이다. 연탄을 때지 그러느냐 라고 할 텐데 연탄이 그곳 까지는 배달이 되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정훈병과로 전과가 되어 육군행정학교로 이사를 했고 교육을 마치고 다시 전방으로 올라갔다. 내가 1차 중대장을 마친 맹호부대 여단정훈참모였다. 이 번 에는 부대 울타리 안에 집을 얻었다.

부대 울타리 안에 있는 민가(民家) 3가구 중 하나였다. 전기는 겨우 들어왔지만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변을 보고 나면 재로 덮어서 처리를 하는 그런 화장실이었다. 이런 화장실이니 밤에 한 번 화장실 가는 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내가 내 승낙도 없이 경기도 구리시에 단독주택 매매 계약을 하고 왔다. 그 당시 구리시는 경기도 양주군에서 남양주군으로 분리되어 나와 면소재지 였다. 전문적으로 집을 지어 파는 사람이 있어 가까운 친척의 소개로 매입하게 된 것이다. 중위 때 월남을 다녀오고 전방부대에서 살다보니 크게 돈 쓸데가 없었다. 전세를 끼고 부족한 부분은 은행 대출을 받아 처리를 하고 왔다는 아내의 말이었다. 이일로 인하여 그날 아내는 나에게 많은 잔소리를 들었다.

군인이 무슨 집이 필요하냐. 집은 나중에 제대를 하고 구입하면 될 것을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핀잔이었다.

소령으로 진급을 하고 경기도 포천에 있는 공병여단 정훈참모로 갔다가 그곳에서 육군대학을 졸업 할 때 까지 ‘꽃밭집’이 살았다. 1만평의 대지에 각종 묘목을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마침 주인이 서울로 집을 지어 이사를 가는 바람에 농장 관리도 할 겸 그냥 들어간 것이다. 주변에서는 그 집을 꽃밭집이라 했는데 그 당시 그 지역에서 꽃밭집하면 다 알고 있었다. 참모 관사가 별도로 있었지만 더 좋은 꽃밭집이 있어 그 곳에서 4년을 살았다.

이 때 큰 놈이 선단초등학교 1학년을 입학했고 그 밑으로 여 동생 둘이 더 있었다.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전라도 광주 상무대로 이사를 했다. 상무대 정훈참모로 새로운 보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 부터는 아파트 생활을 했다. 큰 놈이 상무초등학교 3학년이고 큰 딸이 1학년입학을 했다. 이래서 큰 놈은 광주에서 두 번을 살게 된 것이고 두 딸은 경기도에서 전라도 사람이 된 것이다.

마지막 군 생활을 마친 곳이 경기도 포천군 이동이다. 군인아파트로 들어왔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면 그런 곳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바로 내가 마지막 머물고 떠난 0군단 군인아파트가 있는 곳이다. 나무가 얼마나 우거졌는지 하늘에서 내려다보아도 부대 건물이 잘 안 보였다. 소화기능이 안 좋은 병사가 3년간 있다가 가면서 위장병 까지 고쳤다는 곳이다. 지금도 가끔 큰 놈이 그 때를 회상하며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0군단아파트 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고.

다음 계획을 위하여 40대 초반에 군(軍)에서 나와 경기도 구리시로 돌아왔다. 아내가 군인과 결혼 하여 10번 째 짐을 싼 긴 여정을 마치고 10년 만에 내 집으로 올 때는 많이 변해있었다.

집 앞에 2차선 상업도로가 나고 코너 건물이 되어 땅 값도 많이 뛰었다. 상업지역 코너니 종전의 건물을 헐 고 다시 지었다. 주택이 딸린 3층 상가를 신축 했으니 남이 보았을 때 어엿한 빌딩 사장이다. 그 동안 전·후방 부대를 옮길 때 마다 보따리를 쌓던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 이제는 여기서 3남매와 함께 영원히 이사 가지 말고 살자고 했다.

이것이 아내의 꿈이요 희망이었다. 그 때 아내의 말 만 들었어도 아내의 꿈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면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라는 말이 얼마나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이 때 알게 되었다. 한창 일 할 나이에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만 받아먹고 사는 것이 나 답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와 아무 상의도 없이 건물을 담보로 하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 했다.

군(軍)출신이 아무 경험도 없이 남의 말 만 듣고 일을 저질렀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1년 만에 대출금 모두 날리고 내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이것을 글로 다 옮기자면 소설책 한 권쯤은 나올 것이다.

가끔 건물가지고 사업 하다가 실패 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기도 했는데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나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운이 좋아 다시 재기를 했고 탄탄대로를 가는 듯 했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도 잘 넘기었다. 그러나 오늘 햇빛이 보이면 내일은 비가 오듯이 20여년 잘 나갔던 사업을 정리해야만 했다. 더 이상 망하기 전에 미련을 접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 동안 3남매 모두 대학 졸업시켰고 나도 해보고 싶은 것 다해봤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 하고 구리시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온지 8년째다. 큰 놈과 막내딸은 결혼을 하여 분가를 했고 아내와 조용히 살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1960년대 공기업 사장 별장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곳도 앞에 살던 주인의 사연이 많은 곳이다. 바로 전(前)주인은 그 당시 별장 관리인으로 어렵지 않게 회사 사장 별장 을 인수를 받아 한 가족이 영원히 살자고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처음에 이사를 올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인근에서 가장 오래 된 은행나무였다. 뜰 앞에 엄나무는 지금 까지 보지 못한 거목이었고 자두나무역시 그동안 전 주인이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손질을 잘 해놓았다. 봄이 되면 자두나무와 주변의 배꽃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사 왔던 이듬해부터 4차선 도로가 난다고 했다. 다행으로 집 앞에 있는 기존도로에서 확장이 된 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시 변경되어 바로 집 앞으로 도로가 난다고 했다. 한 동안 도로공사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이사를 다시 해야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새로운 문젯거리가 되었다. 그 바람에 은행나무와 자두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엄나무만 남아있다. 아내는 그냥 이사 가지 말고 여기서 살자고 하는데 도로가 개통이 되면 먼지와 소음으로 과연 살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내 팔자에 분명히 역마살은 끼지 않았는데 아내의 간절한 소원인 이제는 다시 이사 가지 않을 그곳은 어디인가.

오래전 내가 태어난 고향집에 가봤다. 가까운 곳에 당숙이 살고 있어 당숙 집에 들릴 기회가 있어 잠시 시간을 냈다. 지금은 대전광역시로 편입 되었지만 그 당시는 충남 대덕군의 산골 마을이었다.육이오(6.25) 당시 북한군으로부터 대전이 점령되자 우리집이 잠시 북한군 지휘본부로 사용 될 정도로 꽤 넓은 터였다. 절터를 집으로 샀으니 안채 바깥채를 따로 지을 필요가 없었다. 마당에는 오래 된 감나무가 세 그루 있었고 돌담은 담장이덩굴 대신 으름덩굴이었다.

가을이 되면 돌담에서 으름과 홍시 따먹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갔을 때는 세 가구가 들어서있었다. 그러니까 다음 사람이 세 필지로 분할하여 땅을 팔았던 것이다. 일부 돌담은 그대로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옛날 모습은 아니었다. 잠시나마 내가 태어난 고향집을 찾아 옛날을 회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런 고향을 어디라 답 할 것인가.

[우리보드(주)최영기]

고향은 고향인가 봅니다 문득 강원도 동해시 옛집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소방도로가 나면서 철거되었지만
빛바랜 사진속에 남아있는 고향집 잘 읽고 갑니다

[일우]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내가 태어난 충남 대전이라고 합니다. 아마 고향은 이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