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5000호점’. 지난 8월16일 보광훼미리마트가 서울 송파동 송파호수점 등 네 곳에 신규 점포를 동시에 개설하면서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가맹점 5000점을 돌파했다.1990년 10월 가락동에 훼미리마트 1호점을 연 지 20년 만이다. ‘업계 최초 5000점’이라는 상징성이 부각되면서 편의점 브랜드 간 점포 경쟁이 더욱 뜨거워졌다.
현재 시장구도는 3파전 양상. 보광훼미리마트가 5000호점 돌파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GS25(4600여 개), 바이더웨이를 인수한 세븐일레븐(4120여 개) 등이 바짝 뒤를 좇는 형국이다.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편의점 수는 총 1만5119개로 지난해 말(1만4130개)보다 989개 늘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약 5곳의 편의점이 생겨나는 셈이다.
1989년 서울 방이동에 국내 1호 편의점 등장
국내 편의점 역사는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5월,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세븐일레븐이 처음 문을 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편의점이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국내에 처음 선보인 것이다. 당시 이를 다룬 <매일경제>에 실린 기사 내용이 흥미롭다. “(중략)…40평의 매장 규모에 상품 구성은 식품 위주로 2000여 종, 1일 24시간의 영업체계로 소비자의 이용 편의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는데 모두 11명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현재 66㎡(20평) 내외, 1~2명으로 운영하는 편의점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당시엔 중소형 슈퍼마켓을 24시간 운영한다는 개념에 더 가까웠다. 1989년 그해, 총 7곳의 편의점이 문을 열었다. 이때만 해도 편의점은 ‘서울에 가서야 볼 수 있는 24시간 슈퍼마켓’으로 인식됐다. 그러다 1991년, 238개의 점포가 한꺼번에 개점하면서 ‘편의점’이란 말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세븐일레븐 이후 보광그룹, 희성산업(현 GS리테일), 농심, 해태유통, 태인유통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1993년 전국 편의점 수는 1000개를 넘었고, 1997년 2000개도 돌파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편의점업계는 잠시 위기를 맞는다. 극심한 불황으로 그해 고작 6군데만 개설됐다.
편의점 사업이 피기도 전에 지는 줄 알았지만 외환위기는 또 다른 성장의 기회였다. 2000년 들어 기업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면서 대량의 퇴직자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왔고 이때 편의점은 저금리 바람을 타고 퇴직자들의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매년 1000개 이상의 신규 점포가 생겼고 2002년에는 단숨에 2000개 가까운 편의점이 새로 문을 열면서 전국 편의점은 5600개에 이르게 된다. 경기 부침에도 편의점은 꾸준히 성장하면서 올해 1만5000개를 넘어섰다. 1998년 국민 2만3000명당 1개꼴이었던 편의점은 현재 3000명당 1개꼴로 거리 구석구석에 들어섰다.시장도 덩달아 성장했다. 1997년 1조원에 그쳤던 편의점 시장은 지난해 6조4881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16.7% 신장하며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24시간 생활 서비스’ 편의공간… 편의점의 진화
편의점이 대중화하면서 그 역할도 진화됐다. 사업 초기 24시간으로 운영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었지만 요즘은 ‘24시간 생활 서비스’를 갖추는 것이 생존 전략으로 확대됐다. 최근 편의점은 ‘안 되는 게 없는’ 거의 모든 서비스가 가능하다. 금융기관과 택배 서비스는 기본이고 지역과 상권에 따라 문구점, 세탁소, 사진관까지 특성화 된 매장이 늘었다. 동네 구석구석 자리잡은 편의점의 유통망 덕분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와 경품을 내놓기도 한다. 기존 생필품 위주의 판매에서 벗어나 요트, 수입 자동차, 가전제품, 골프채, 휴대전화 등 별의별 상품까지도 취급하고 있다.
GS25는 올해 업계 최초로 3억원이 넘는 고급 요트를 판매하고 있다. 7월30일 판매를 시작해 9월23일까지 전국 GS25에서 카탈로그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요트 외에 추석선물세트로 일본의 유명 골프용품 브랜드 ‘마루망’의 골프채도 판매하고 있다. GS25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3000만원이 넘는 수입 자동차 푸조(모델명 307 SW HDi과 407 HDi Sports)를 10대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요트 판매를 담당하는 이효섭 비식품팀 과장은 “요트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아직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상담은 꾸준히 오고 있다”고 전했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 이벤트를 펼치는 이유는 편의점이 마케팅과 유통 판매 채널로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일용 GS리테일 홍보팀장은 “편의점은 20~30대 젊은 소비자들이 많이 이용하고 지방까지 점포가 확대돼 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마케팅과 판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보광훼미리마트는 다양한 가정용 전자제품을 선보였다. SK텔레콤과 제휴해 갤럭시S를 비롯해 최신 스마트폰과 다양한 무료 폰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도 일반 전문매장보다 3만∼4만원가량 저렴하다고 회사 측은 밝힌다. 뿐만 아니라 엔틱 오디오와 데스크톱PC, 닌텐도 위(Wii), 아토케어 살균진공 청소기 등도 판매한다.
세븐일레븐은 금융기관과의 제휴 폭을 넓혀 ATM 수수료 면제 서비스를 확대했다. 회사는 은행(IBK기업은행, 한국씨티은행, 부산은행), 증권(동양종금, SK증권), 신용카드(롯데카드), 캐피탈(롯데캐피탈) 등과 제휴해 해당 금융기관 고객들이 세븐일레븐 ATM기기를 이용할 경우 업무시간 중에 무료로 입출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현재 1600곳 매장에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올 연말까지 2300곳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상품경쟁뿐 아니라 가격경쟁도 펼친다. ‘편의점 제품은 비싸다’는 인식을 줄이기 위해 PB상품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생산이 가능한 우유나 생수부터 라면, 스낵류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10~30%까지 PB 비중을 높였다. 또한 요즘은 도시락, 베이커리 등 즉석먹을거리도 늘었다. 전체 편의점 매출에서 즉석먹을거리가 판매되는 비중이 많게는 30%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GS25는 베니건스, 놀부, 제너시스BBQ 등 기존의 외식 브랜드와 손잡고 특화상품을 만들었다.
틈새시장 무진 vs 동네 상권 죽인다
국내 편의점 업체들은 ‘과당경쟁’과 ‘시장 포화’라는 지적 속에 꾸준히 성장해왔다. 아직 성장할 여력이 많다는 게 업체들의 주장. 최근 편의점 판매액은 월간 기준 사상 처음 6000억원을 돌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편의점은 지난 5월까지 무점포판매(인터넷쇼핑·홈쇼핑 등)를 제외한 오프라인 소매점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율 증가를 이뤘다. 편의점의 판매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6%로 증가하면서 백화점(12.5%)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업계에선 올해 시장 규모가 8조원에서 2012년 10조, 2015년 14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도 편의점업체들이 점포 수와 매출액을 꾸준히 늘린 비결에는 ‘끊임없는 변신’에서 찾을 수 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에 맞춰 편의점들은 치열한 생존전략을 펼쳤다.이를 근거로 편의점업체들은 아직도 틈새시장이 많다고 주장하지만 기존 ‘구멍가게’ 영세 자영업자들은 동네 상권을 죽인다고 맞선다. 최근 친서민 정책을 내세우는 정부 기조에 맞서 무분별한 동네 상권 진출은 어렵다. 또 대기업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진출과 맞물려 편의점업체들은 새로운 변화에 직면했다.
업체들은 “편의점 이용시간과 주 고객층이 다르기 때문에 SSM이 편의점에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동네 상권을 두고 SSM 진출이 가속화할 경우 향후 시장 경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