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白夜)
-어느 몽상가의 회상에서-
도스또예프스끼는 1881년 60세로 각혈하며 자식들에게 복음서를 읽고 성경을 건네주며 고단한 한 생애를 마쳤다. 영광과 패배의 순간들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며 거의 초인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불멸의 작품들을 남겨 놓았는데- 인류의 정신문화에 심오한 성찰을 심어 놓았다.
현재로부터 143년 전이다.
도스또에프스끼-대표작 <罪와 罰>에서 법학도였던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의 노파와 그 여동생을 도끼로 살해하는 상황 기억과 소냐와 구원의 관계망을 희미하게 떠 올릴 수 있다면, 또 다른 작품의 무게 내용을 망각해도 독자로서 추락감을 느낄 일은 아니다.
-노령산맥 넘느라고 땀흘린 그림자만 돌아봐도 명멸의 대조에서 어느 세대였던 결코 하찮은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잖은가?
솔직히 젊은 문학도의 열정이 없다면, 그의 소설을 판독하기란 쉽지않다. 흡인력의 難破에 책장을 덮을 때가 많다.
-白夜- 제목이 주는 이미지가 낭만과 哀愁의 파문을 예지한다.
그를 연구하고 해석하는 수많은 논평가들은 이 중편을 매우 진지하게 평가하고 있다는데 놀랍다. 그러나 여기엔 스토리가 없이 젊은 영혼의 방황과 동경이 밤하늘과 대지 인간의 마음속에 곽 들어차 있다.
<첫 번째 밤> <두 번째 밤> <나스껜까의 이야기> <세 번째의 밤> <네 반째의 밤> <아침>으로 나눠져 처음부터 백야를 바라보는 환상적 기류 몽상은 雲霧 해체의 반복과 같다. 어느 누구나 기억해 만들어 보는 한시절의 彼岸여행?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그토록 별빛이 영롱하고 찬란한 밤을 쳐다보면 저도 모르게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친한 사람이라고는 거의 아무도 없이 8년동안이나 ‘빼째부르그’에 존재해 왔다. 그러나 호수와 산책길, 섬, 綠林과 별장에서 그들은 우아한 친교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불청객으로 異邦人인 것같았고 실제로 나는 이방인이었다.
‘천지에 솜털 같은 새싹이 돋아나고 알록달록 물감을 들인 듯 꽃이 만발 할 때, 자연이 곱게 몸단장을 할 때 거기엔 무언가 감동이 있다....
질식해 버리다시피 한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저 구슬프고 침울한 두 눈에 그런 불길을 타오르게 해준 것은 어떤 힘일까?> 소녀의 얼굴이 미소로 빛나는 것은, 불꽃처럼 반작이는 웃음 덕에 생기를 되찾은 것은 무슨 연유인가?
연미복을 입은 신사의 등장은-나는 왜 이렇게 비틀거리나? 어떻게 접근하여 그녀를 구하지-그녀의 까뭇한 속 눈썹에는 아직도 작은 눈물방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 나이 벌써 스물여섯인데 아무도 만난 적 없었습니다. 나는 여성이란 존재에게 완전히 이방인 이었습니다. 내 안의 흔들리는 환영의 존재 실체는 누구인가? 나는 몽상가입니다.
내게 현실적인 삶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혼자 외로이 살아왔어요 -할머니는 저를 한 눈팔 수 없게 잡아둘 수 없다는 걸 눈치 채시고 저를 불러 당신 옷에 제 옷자락을 핀으로 고정시켜 놓았어요. 할머니는 앞이 안 보이시죠. 그러나 양말 뜨고 저는 옆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책을 읽어드리죠. 벌써 2년째 핀이 꽃혀 있다니 괴상한 습관이죠.
「제 이름은 나스젠까예요」
순수한 환상과 불타는 이상에 둔감하고 산문적인 어떤것에의 자연스런 변화? 또는 風化라고 해야 할까?
몽상과 가슴속의 독백은 맑은 시냇물이 낙차가 있는 곳에서 새하얀 물방울이 되어 용솟음치는 몸부림으로 모였다 흩어진다. 그 내면의 흐름으로 또는 진정한 호소력으로 이어져간다.
자- 그 단면의 다층적 다변화의 한 서술만을 보자!
“어제는 우리의 세반째 만남의 날이었고, 우리의 세 번째 白夜였다.....
하지만 기쁨과 행복은 어쩌면이리도 사람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지! 심장은 또 얼마나 사랑으로 뜨겁게 끓어오르는지! 자신의 온 마음을 다른 사람의마음에 흘러 보내고 싶소, 모든 것이 기쁘게 웃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다니, 이 기쁨은 도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지! 어쩨 그녀의 말투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그녀의 마음은 나를 향한 호의로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얼마나자상하게 내 기분을 맞춰주고, 얼마나 귀엽게 응석을 부리고, 또 얼마나 부드럽게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던가! 아아, 행복감에서 나오는 그 애교스런 행동들! 그런데 나는 이 모든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생각했다. 혹시 그녀가.........”
순박한 서정성으로 담겨진 감상소설은 다섯장의 마지막 ’아침‘을 현실로
맞이 한다. 환상의 반추-
순수한 사랑의 본질과 二重性, 그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당한다.
마지막 문장-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End-
첫댓글 도스또예프스끼는 들어봤어도 백야(白夜)? 금시초문은 아닌 것 같기도 함다만.... .
참말로 이런 류의 소설은 재미가 없었지요.
특히나 큰 상을 받은 것일수록 그랬음다. 무지함 탓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panama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던 더위가 가네요. 지 넘도 별 수 없었나 봄다.
축하함다. 좋은 계절, 기운내세요. 건강하시고요. 부사넘
늑점이 님!
이 기나길고 죽음과 같은 어둠의 터널을 假死상태에서 기어 나오다보니, 기적이 있기는 있는가 봅니다.
정말, 힘든 여름이었습니다.
"살아 움직여야 정의다"라는 말이 이렇게 실감 날수가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젊은 문학도의 열정이 없다면, 그의 소설을 판독하기란 쉽지않다.>면서 노할매 앞에 척 올려두면 어리둥절.ㅋㅋ
단어라도 까먹지 않으려면 어려운 문장도 읽어야 한다고 해서 세 번 읽었습니다.ㅎ
양양엔 비가 내리네요. 가을을 재촉하는 빗소리!
반갑기는 하지만 한가위 준비를 하라는 소리 같아서리......^^
늘 건강하시고 즐겁게 나날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김능자 님!
와~~ 여름 탈출!
제가요, <악령><에도가와 란포 선집><백야>를 도서관 대출로 가져와서, '백야.만 선택으로 읽었어요!
'악령'은 그 두께에 완전 깨갱하여 포기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바구 중심'의 책이라야 쫌 읽히는것 같아요!
악령 -이거 독파할거예요.
이제는 젊은 감성도 가뿔고, 거의가 허황된 기분입니다!
[양양에 비내리는 풍광]을 사랑합니다!
-가을,오네요!
행복하세요! 댕큐^-^
아직도 대단한 열정에 놀랍습니다.
팔순을 넘기니까 외출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림자 보듯 하니까요.ㅋㅋㅋ
인사 글 주셔서 고맙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