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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무사-165 마을로 내려와서 하운은 어디론가 황급히 갔다가 한 시진 후쯤에 돌아와서 멀거니 하늘만 올려보았다. 묻는 말에 대꾸는 하는데 하도 힘이 없어 보여 서 장추삼은 머리를 긁다가 그냥 옆에서 자리만 같이해 주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준비가 안 된 이상 그 의도와 마 음을 전달하기 어렵다. 때로는 지켜봐주는 편이 주절거리는 것 보다 상대방 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기에 쓸데없이 입을 벌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강한 사람이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나아갈 방향을 정할 능력이 있는 이라고 믿기에 어깨를 다독인다든가 하는 그야말로 어설픈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한달의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지루하리만치 긴 시간이기에 산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졌으며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기도 한 달 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외면적으로 이렇게 큰 변화가 있었다면 무림의 이면(裏面)은 또 어떻게 굴 러가고 있을까? 드러나지 않은 곳은 밖으로 나온 형태의 사물과는 다른 구 조와 성질을 가지고 있다. 몇 백 년이 흐르는 동안 아무렇지도 않다가 어느 한순간 전혀 다르게 바뀔 수도 있다는 거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생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괴물은 지금 일어나려고 용틀임을 시작했다. 한복판에 서있는 모두 에게 들리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무언가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을 사야겠소...” “음?” 하운이 벌떡 일어섰다. 근 두시진 동안의 침묵을 깨트리는 일성이라 장추삼 의 놀람은 어쩌면 당연했다. “말 말이오. 다그닥, 다그닥.” 하운이 고삐를 쥐는 시늉을 하는데도 그는 그저 눈만 동그랗게 떴다. 평소 라면 ‘누굴 바보로 알아!’ 하고 툴툴거릴 만도 한데 장추삼은 무슨 생각 인지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하운의 과장된, 그리고 하나도 우습지 않은 몸 동작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썰렁의 한계를 보여주는 하운의 의태어 때문에 몸이 굳은 것도 아 니었다. 전부터 하운의 거의 독문절기화(獨門絶技化)된 재미없는 만담에 익 숙했었는데 동굴에서의 한 달 동안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눈썹 한 올도 흔들리지 않을 경지에 이르러있다. “다그닥이건 털레털레건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알면 됐구려? 말을 사서 구어 먹겠소, 삶아 먹겠소? 아니면 관상용으로 두고 보겠소?” “아아!” 저도 모르게 장추삼은 감탄의 탄성을 흘려야만 했다. 눈썹 한 올도 흔들리 지 않을 경지? 하운을 몰라도 한참을 몰랐다. 그는 어느새 아픔을 바탕으로 썰렁함의 신경지를 개척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우습지도 않은 대꾸 속에 담겨있는 아련한 무엇 때문에 장추삼은 별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니, 그냥 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옳겠지만. 어쩐 일인지 하운은 객잔을 들어가려 하지 않았기에 이들은 그냥 좁은 길의 한구석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하려는 인상이라 의아했지만 그 또한 묻지 않았다. 하운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어서 출발하게나.” 지청완의 재촉만 아니었다면 장추삼의 입장은 무척이나 난처했을 것이다. 걱정과 회한이 담긴 말에 하운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로 (小路)의 나무 그루터기는 일어선 사람의 마음처럼 잔 파랑으로 자신의 얼 굴을 가렸지만 그것 또한 세월의 무게라는 걸 알고 있을까? ‘출발하라고?’ 장추삼의 미간이 좁아졌다. 역시 지 구렁이 사숙은 뭔가를 알고 있다, 하운 에 대해서나 무림에 대해서나... 아니면 그 이면의 복잡한 속사정까지도. 도대체 어떻게 그런 정보를 입수하는 걸까? 산전수전 다 겪은 노강호니까? 아니, 늙으면 천안이나 천이통이 저절로 뚫 린다던가? 부처님이 들으면 세 번은 기절할만한 얘기니 그건 아니고... 그렇다면 비밀세력이 있어서 매일 보고를 한다? 동굴에서 꼬박 한달을 같이 있어본 결과... 비밀보고? 그딴 거 구경도 못했다. 그러나 크게 염두 하지는 않기로 했다. 뭐, 어떤 식으로든 방법이 있겠고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나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가뜩이나 복잡한 머리 에 고민을 추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뻔히 행선지를 안다는 식의 말이었는데 하운은 별로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 다.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그저 나직하게 혼잣말을 했을 따름이다. “강남까지 가려면 꽤나 피곤하겠군...” “강남이라고?!” 지청완이 벌떡 일어섰다. 가뜩이나 큰 체구가 웅크려있다 쫙 펴지자 장내는 그의 그립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착각마저 일었다. 덩치도 덩치려니와 근엄 한 노안에 주름까지 잡히니 그 위압감이란 표현하기 조차 어려웠다. “그렇습니다. 사실 한달이나 지체했으니 일행 분들에게 미안한 미음을 금 치 못하겠군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합류를 해야겠습니다.” 공손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대답인데 지청완의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뭘 생각하는지 고개를 숙인체로 턱을 쓰다듬다가 다시 나무 그루터 기에 주저앉았는데 큰 소리를 내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무거운 느낌이었다. 마음의 메아리는 행동만으로 울려 퍼지는 걸까?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목소리가 발성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그 뜻을 전달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표정 하나, 동작 한번이 몇 마디의 구구절절한 넋두리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몸을 빙글 돌린 하운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폈다. 그러나 지청완의 귀를 파고드는 전음은 그렇게 한가로운 색이 아니었다.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화산의 대사형이라는 위치보다 지금의 무림을 생각하라는... 어느 것이 중요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역시 화산은 위대한 대지다.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을 한다는 거다. 나서지 않으면서 어느새 꼭 필요한 자리에서 무림을 굽어보고 있다. ‘그래... 개인이되 개인이 아닌 심정을 왜 모르겠나... 허나 마지막조차 지키지 못한다니... 많이 아프겠구나...’ 지청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게 할 건가?” “나요?” “그럼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은 사람이 여기 너밖에 더 있느냐?” “내가 행선지가 왜 없는데!” “엥?” 지청완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하운을 따라가는 건 아닌데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가. 아무 생각 없이 퍼져있었는 줄 알았더 니 그새 무슨 꿍꿍이를 품었나보다. 역시 이해하기 힘든 인간이다, 이놈은. “어쩔려고?” “강남 안 가오?” 그의 반응의 분명 의외는 의외였나 보다. 지청완과 하운이 거의 동시에 질 문을 던졌으니까. “내가 뭐 앞도 생각하지 않는 바본 줄 알아?” 순간 둘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의표 를 찔러온다면 아마도 이렇게 얼굴이 바뀌리라. 번뜩!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한다면 장추삼이 아니다. 섬광이 이는 눈동자와 시근 덕거리는 어깨... 하지만 발작을 일으키지도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인다면 스스로를 바보라고 인정하는 것인데 그야말로 바보가 아닌 이상 어찌 그러겠는가. ‘이런 젠장!’ 말없이 둘을 꼬아보던 그가 갑자기 어깨에 힘을 풀었다. 뭐, 그렇게 생각하 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이 난국을 타계하면서 자 존을 세우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장추삼이 목 뒤를 엄지와 검지로 꽉 눌렀다. 왠지 모르 지만 피곤하다, 아니 앞으로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 많아질 것 같았다. 어차 피 강호라는 바깥세상으로 나온 이상 탱자거리며 유유자적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그리고 그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무려 두 가지나 말이다. “난 하남에 남을 거야. 미안하지만 남궁세가로의 동행은 다음으로 미뤄야 겠어.” 장추삼의 눈에서 어떤 결의 같은 걸 엿보았기에 뭐라 하려던 하운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진지한 그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일단 하남에서의 일도 정리하지 못했잖아. 그러면서 뭔가 다른 사건과 부 딪칠 순 없어. 차근차근 정리를 해야지. 아까 표정들 보니까 날 아주 바보 로 보는데... 바보는 바보답게 한 가지씩 일을 처리해야지, 안 그래?” 바보에게 한방 얻어맞은 하운이 쓰게 웃었다. 아무튼 당하고는 못사는 친구 다. 그나저나 하남에서의 매듭짓지 못한 일이라... 얼른 떠오른 건 역시 형의 문제였다. 비록 무룡숙이 와해되었지만 그들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배후를 캔다는 걸까? 그렇다면 굳이 하남에 남을 필요가 있을까? 급작스레 사라진 이들이 설마 등하불명(燈下不明)같은 속담에 취해서 하남 에 웅크리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가능성을 배재하지 못하지만 그런 거라면 남궁세가에 가는 편이 더 빠르다. 그렇다면... “머리 굴릴 거 없어. 그렇게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성격 아니란 말이야. 그 저 하남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니까. 과거 없 는 현재라... 말이 안 되잖아. 무룡숙이든 뭐든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따로 생각해둔 바가 있다. 경황중이라 눈치 채지 못했 지만 형은 미약하나마 무공을 수련했었다. 손바닥에 박혀있던 굳은살은 그 렇다고 해도 부지불식간에 잡았던 파리한 손으로 전해진 집공맥의 미약한 숨결은 잊지 못한다. 고로 형은 그저 죄 없이 뇌옥에 수감되었던 게 아니다. 무룡숙에서 가르쳐준 무공?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직접 타격방식의 장추 삼이 무룡숙의 인원들을 쓰러트리며 얻은 결론은 형의 공력이 이곳에서 기 인되지 않았음이고 그렇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또한 단순하기도 하다. ‘형의 과거가 열쇠지...’ “노... 아니지, 사숙도 하남에 남을 거 아뇨? 유한초자 어르신께서 모습을 드러내셨는데 설마 이대로 하남땅을 떠나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같이 다니 기엔 문제가 좀 있네요. 사숙은 그 바람 든 노인네를 찾아서 이리저리 다녀 야겠지만 난 그럴 처지가 못 되거든. 한군데 자리 잡고 탐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니 아쉽지만 작별해야 겠수다.” 간단히 지청완과의 선을 그어버린 장추삼이 사숙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무림명가의 사람이 보았다면 당연히 분개할 일이고 명문 중에서도 법도를 우선시하는 화산의 대제자인 하운이므로 당연히...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원래 그런 놈이고 행동과 다른 속내를 누가 모르랴. 뭔가 미안은 한데 그렇 다고 미적미적 끌기 싫으니 아예 선언을 하는 편을 택했으리라. 당장은 미 안하고 마음이 걸리지만 그런 말일수록 묵혀두면 악취가 나는 법이다. 형의 과거... 아마도 그것을 쫓다보면 무룡숙의 근원에 접근하게 될 터이고 자연 기학과 그 사형이라는 사람들의 감춰진 이야기도 듣게 될 거다. ‘반드시, 반드시, 기형의 사형이라는 작자들을 보겠어. 나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얼굴에 똥물을 뒤집어쓰게 될 거야. 그래, 기형의 사형들 이라면...’ 허나 기학의 자랑스러운 사형들 가운데 하나가 지휘했다는 조직은 벌써 추 악한 냄새를 풍겼다. 일반적이라는 말은 때론 소수를 누르는 다수의 무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또한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형의 죽음만을 두고 내린 판단이 아닌 까닭이다. 그들은 분명 음습하다. 물 론 한쪽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결정지었기에 한 번 더 확인을 하려 함이니. 지청완은... 싸가지 없는 사질(舍姪)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었다. 무림의 영웅이기보다 복룡표국의 영웅이기를 꿈꿨던 순진한 사질은 원하지 않던 강호의 은원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저 탄식하고 부딪치던 모습에서 이 제 주체적인 생각과 눈으로 세상을 대하려하지 않은가. 지난 한달은 그에게 무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걸 심어줬나 보다. 간간 히 보이던 예리함을 의뭉스러움으로 감추고 폭발적인 기세는 터질 듯 고여 있지만 결코 세나오지 않는다. 이제 사질의 행보 하나하나에 전 무림이 경동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 하다. 그리고... 화산의 대제자라는 것밖에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청년, 하운. 왠지 모를 끌 림은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지만 저 젊은이 역시 돌풍의 발걸음을 강남 으로 딛을 것이다. 문득 지청완은 스스로가 무림을 움직이는 축이라기보다 다가올 신세대의 세 계를 목격하는 관전자가 된 기분이라 묘한 진동이 마음을 타고 흘렀다. ‘무림이나 장강이나...’ 역시 뒷 물결을 거스를 수 있는 앞 물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간단한 식사도 없이, 거창한 작별의 인사도 배제한 헤어짐. 세 명의 사내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들의 판단으로 향하는 자리에서 어떠한 풍운이 몰아칠 지는 전혀 모르는 체. 나이테라고 했다. 허물처럼 떨어지는 낙엽들만으로 자신의 생존을 보일 수 밖에 없는 나무들의 살아온 추억. 한 점에서 파생하여 길게 이어지는 소용 돌이로 보이지만 사실 크고 작은 수많은 원들이 전혀 만나지 않으면서 만들 어내는 거대한 궤적. 그들이 들고 난 자리에 무심히 자리하는 나무의 자취처럼 오늘이라는 시간 은 수많은 무림의 세월 가운데 하루겠지만 어쩌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가을의 초입 가운데 하루인 이 시간이야말로 전체를 결정짓는 날로 자리매김 될지도 모른다. ***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들바람과 달리 해가 중천에서 노닥거리며 이글이 글 한숨을 토하자 여름과 다름없는 한 낮이 되었다. 이럴 때는 그저 객잔에 죽치고 냉차 한잔으로 더위를 식히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객잔이 있어야 쉬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닌가! 장추삼의 두 눈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갈아 마실 것처럼 불타올랐지만 그저 타는데 만족해야 했다. 태양과 싸울 수도 없을뿐더러 후끈한 대기와도 한 판 벌이지도 못하니 그저 투덜거리고 쏘아볼 밖에. 원래 객잔이라는 게 그렇다. 모인 곳에는 다닥다닥 붙어서 호객하는 점소이 까지 따로 두고 호객행위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지만 없는 곳에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에혀... 아까 밥 먹어 둘걸... 죽겠네...’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다. 그리고 그의 후회는 아주아주 많이 늦었다. 배 에서 거의 반란 분위기를 보이는 마당에 뭔 놈의 후회란 말인가. 한 끼라도 거르면 거의 광인화 되는 장추삼일진데 무려 세시진 반을 아무것 도 먹지 못하고 - 하다못해 물 한모금도! - 걷기만 했으니 그의 짜증과 분 노가 어느 정도까지 증폭되었을지는 짐작 못할 바가 아니다. 또르륵.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려도 그냥 내버려둔 채로 털레털레 걷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량 그 자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측은지심을 마구 유발시켰다. ‘물! 음식! 앉을자리! 내게 객잔을 달라!’ 그렇다고 소리 지르면 갈 곳 없이 관아 밥을 먹을 게 뻔하니 그저 입속으로 궁시렁거리는데 이제 침 까지 말라서 입술이 다 부르틀 지경이었다. 걷기 는 걷고 있는데 목적지마저 까먹었다. 발길 닿는 데로... 가다보면 어디든 나오겠지... 인내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기갈 따위야 동굴 5년 동안 아주 지겹도록 겪었 기에 친근하다 못해 가끔 그립기까지 할 판이다. 더워서? 더운 거 좋아할 사람이야 몇이나 되겠는가만 사나이 대장부가 그저 덥다고 어린애처럼 칭얼 거려서야 되겠는가? 그럼 그를 옮아 메는 짜증이 어디서 기인한 걸까? 답이 없다는 거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의 절망감처럼 뭔가 나아질 거란 기대 가 없단 말이다. 처음엔 ‘썩 괜찮은 객잔에 가서...’였다. 아침도 챙겨먹지 못했으니 당연 히 좋은 걸로 배를 달래줘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마음 편하게 차 한 잔 을 곁들일 분위기까지라면 더할 나위 없겠고.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고는 ‘아무 허름해 보여도 음식 맛만 괜찮다면야... ’로 변했다. 어차피 객잔에 들어가는 목적이 잠, 아니면 밥인데 이른 아침 부터 퍼져 잘 일 없으니 음식만 잘하면 된다. 차야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아닌가! 다시 한 시진 후... 그는 더 이상 인간적인 존엄 따위를 포기했다. 다 쓰러져가는 판자집이라도 좋으니까 그저 ‘객잔’ 이면 좋은 상태로 변한 것이다. 옆에서 쥐새끼 몇 마리가 줄달음질을 하더라도 주인장이 다소 특이한 애완 동물을 기르나보다 하고 넘어갈 용의가 있다. 식기에 기름때가 묻어있더라 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따르겠지 라며 못 본 척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뭐하는가, 뭐가 나와야 반응을 보이든가 하지. 이제 그의 정신은 체념을 넘어서서 거의 무아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뭘 생 각하는지, 어디로 가는지조차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다. 그렇게 얼마를 또 걸었을까... 웅성웅성~ 와글와글~ 흐리멍텅하던 그의 사고가 골목 하나를 벗어나자마자 벌떡 기상했다. 어디 를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장추삼은 어느새 커다란 시전(市廛)의 한 복판에 진입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뭐, 뭐야!” 오가는 사람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수많은 물품들, 그 물품의 값어치를 몇 마디의 말로 뻥튀기하는 상인들... 그리고 인생. 인간들은 위대하다.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서도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남 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어울려서 사회라는 틀을 만들어낸다. 사회는 더 큰 사회를 지향하게 되고 그렇게 그렇게 인간은 인류가 되어간다. 소림사를 찾아가는 와중에 이름모를 마을에서 밥 한 끼를 얻어먹었었다. 희 미한 불빛들 사이로 수많은 인간들이 관계를 가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네들의 삶 속에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의 내면을 슬쩍 엿보았기에 내심 흐뭇했었고 아직은 살만하지 않은가라고 위안을 삼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피곤해 죽겠구만 인생은 무슨 얼어 죽을 인생! 감상도 등 따습고 배불러야 나온단 말이다! 지금 그에게 시전은 오로지 소음의 발생지이자 거추장스러운 인파의 진원지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벗어나고 싶단 말이다. 평소에 양양에서의 시전을 구경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여긴 너무 컸다. 그 야말로 열흘마다 한번 정도 열리는 경우 같았다. ‘하남의 인간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온 거야, 뭐야? 젠장맞을!’ 걸리느니 사람이요, 밟히는 게 신발이다. 본래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그 였는데 앞서의 여러 요소까지 작용하자 그 상승작용은 짜증의 극대화라는 결과물을 도출해 냈다. 한마디로 잘못 걸리면 누구든 며칠 앓아누울 생각을 해아 한다! 크르릉...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런데 뭘 느꼈는지 사람들은 장추삼의 주위로 접근하 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표정 하나, 동작 한번이 몇 마디의 구구절 절한 넋두리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다. 곤두선 눈썹, 살광어린 눈동자... 착 가라앉은 발걸음...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화기(火器)일진대 감히 누가 가까이 하겠는가? 자연히 장내는 장추삼을 사이로 두고 좁은 공터가 형성되는 형국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다만 걸을 뿐이었다. ‘객잔, 객잔, 객잔...’ 턱! 웅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뒤로 밀렸다. 아무리 힘을 풀었다고는 해도 뚝심의 장추삼이 무려 두 걸음이나 밀렸다. 그것도 말이나 소가 아니라 사람하고 부딪쳐서 말이다! “뭐야? 씨앙~ 앞 좀 보고 다녀!” 삼류무사-166 이런 거친 말이 나갈 만도 한 것이 자기를 밀려나게 할 정도라면 보통 덩치 가 아닐 터였고 그렇다면 시빗거리로 안성맞춤이다. 미안하다고 물러선다면 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로 뒷머리나 한번 쓱 긁고 말겠지만 대개 의 경우 상대방도 발끈하는 게 상례다. 그렇게만 된다면 짜증도 풀고 간만에 몸 상태도 점검하는 기회이니 이런 걸 두고 일석이조라고 했던가! ‘제발 좀 엉겨라, 제발!’ 그런데 상대 쪽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성질을 내든가 사과를 하든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뭐란 말인가. 고개를 숙이고 걸었기에 부딪친 사람을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딱 잡힌 다리 와 굴강한 허리는 상대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거기다 뭐가 그리 대단한지 모르지만 금실로 수놓은 신발... 이거 진짜 마음에 안 든다. ‘그래, 오늘 아주 임자 만난 줄 알아라. 가뜩이나 껄쩍지근한데 재대로 걸 린 거야.’ 훗, 하고 코웃음을 한번 날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예상과 크게 다 르지 않은 몸집, 옆으로 비껴 걸린 대도(大刀)며 말끔한 검은색의 경장, 그 리고... ‘뭔 놈의 키가 이렇게 큰 거야?’ 흑의 사내의 몸을 따라 시선을 죽 올리던 장추삼이 움찔했다. 고개를 바로 한 정도가 아니라 약간 젖혔음에도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니 당연 히 놀랄밖에. 그렇다고 쫄 그가 아니다. 키와 싸움은 정비례하지 않을뿐더러 지금의 장추 삼이라면 항우장사가 오더라도 우적우적 씹어 먹을 판이니까. 덩치가 크다 는 것은 그에게 단지 때릴 공간이 많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씨익. 누가 봐도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완전히 고개를 젖혀 흑의사내의 얼굴을 직시한 장추삼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런 젠장... 꼬일려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훅의 사내는 쭉 찢어진 눈을 가지고 땅만 바라보면서 걷던 놈과 부딪치기 전부터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비록 별로 아름답지 못한 일 때문에 행한 강호행이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어느 정도 설레임이 있었다. 사실 강호행의 본 목적만 생각한다면 성 하나는 초토화 시켜야 직성이 풀리 겠지만 일단 그런 생각은 안하기로 했다. 정신 건강에도 매우 안 좋을뿐더 러 간만의 강호행을 완전히 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좋은 생각, 재미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며 수려한 풍광으로 눈을 돌리려고 애썼다. 헌데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편안하게 생각하자 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중원에 발을 딛자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의 다짐은 온데 간데 사라져 버렸다. 목적지로의 직진만이 있을 뿐이다! 거역하지 못할 분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하남땅에 잠시도 머물지 않았을 거 다. 여길 왜 오겠는가? 최단거리로 목표하는 성도에 진격했을 거란 말이다. 봉서 때문에, 그놈의 봉서 한 장 때문에 하남에 온 거다. ‘빌어먹을 소림...’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 소림은 거의 봉문 상태였다. 승려들의 안색은 여기가 사찰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굳어있었고 내방객들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향불 같은 건 도저히 염두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차 한 잔을 내놓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장문이 폐관을 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사문의 최고어른에게 볼일이 있는 손님임에 분명한데 이자들은 그저 위 아래로 사람을 한번 훑어보고는 빼앗 듯 봉서를 접수한 게 전부였다. 정말 성질 많이 죽은 거다. 예전 같았으면 만핸가 뭔가 하는 땡중이 다음날 앉아서 밥 먹기 어려웠으리 라. 밥이 뭔가? 탕약이나 죽이면 다행이지. 얼마나 열 받았으면 숭산에서 하산하면서 좀 크고 잘 자랐다고 생각되는 나 무들을 모조리 뽑아버렸겠는가. 덩치 좋은 바위들에게도 한방씩을 선사했지 만 바위가 박살난다고 그의 마음이 풀릴 리는 없었다. 문득 발길을 돌려서 땡중들과 손님 접대하는 방법에 관해 진지한 고찰을 해 볼까 했었지만 만약이라도 알아먹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물리적인 충돌 을 감안하여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그도 자신을 잘 알고 있다. 한번 말을 꺼내면 낮밤이 바뀔 때 까지는 기본 이고 상대방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행동을 보이면 충고의 응징을 선사하는 버 릇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좋지도 않은 일 때문에 나왔는데 문제까지 일으킬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게 나온 성도이니 시끌벅적한 장터가 뭐 보기 좋겠는가. 평소라면 일반 인들의 정겨운 한담이 오가는, 그야말로 삶의 최전선이라고 할 시전의 모습 에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냉막해 보이기는 해도 나름대로 감성적이라고 자부하는 그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따뜻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할 줄 알며, 웃고 즐기는 성격이란 말이다. 평소라면... 이라는 부제가 붙지만.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한담은 무슨 얼어 죽을 한담! 감상도 등 따습고 배불러야 나온단 말이다! 지금 그에게 시전은 오로지 소음의 발생지이자 거추장스러운 인파의 진원지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서 빨리 객잔이나 찾아서 잠깐 쉬고 어딘가 로 가야한단 말이다, 최고의 속도로. 우우웅...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런데 뭘 느꼈는지 사람들은 흑의 사내의 주위로 접 근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표정 하나, 동작 한번이 몇 마디의 구구절절한 넋두리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근엄한 분위기, 차가운 눈동자... 무게 실린 발걸음... 누가 봐도 걸어 다니는 위엄 그 자체일진대 감히 옷깃이나 스칠 엄두나 내 겠는가? 그런 차에 불량끼가 팍팍 흐르는, 아니 흐르다 못해 넘실거리는 젊은 놈이 지 집 마당인양 도로 중앙을 차지하고 걸어오는데 비껴줄 리가 있겠는가? 지가 비켜 갈 일이지. 장님이 아니라면 알아서 길 터였다. 녀석은 똥오줌을 못 가리는지 그에게 똑바로 걸어왔다. 앞에서는 비키겠지. .. 터억! 덩치도 별로 크지 않은 놈이 전달한 감촉은 그리 만만치만은 않았다. 충돌 의 순간 약간의 내공으로 몸을 감싸며 탄(彈)의 운공을 행했기에 웬만한 장 정이라면 족히 세 바퀴는 구르면서 땅바닥에 쳐 박혀야 정석인데 녀석은 그 저 두 어 걸음 물러난 게 전부였다. 그리고 놈이 뭐라고 웅얼거렸지만 흑의 사내에게 들릴 리가 만무 했다. ‘저, 정녕 내가 늙었단 말인가!’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는 아직 창창하다고 생각했다. 또 그것이 사실이었 고. 공력 없이도 바위 한 두 개쯤은 들고 졸아도 별 이상이 없다. 일반적이 라는 말은 그저 보편적인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이지 전부를 말하는 건 아니 다. 나이? 햇수로 계산한다면 뭐 그렇지만 순수하게 몸만으로 말 한다면 자신이 있다. 요즘 비리비리한 아이들과 차원이 다른 그다. 그런데... ‘저딴 동네 양아치자식도 밀어내지 못한단 말인가! 이게, 이 사실이 말이 된다는 거야!’ 자존심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이건 인간의 노쇠화에 자식들의 행동거지가 미치는 영향... 이라는 다소 정신의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문제다. 그 일이 있고나서 영 몸이 뻑뻑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문제가 생긴 거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앞에서 앵앵거리는 녀석이 뭐라고 하건 그의 상념은 좌절의 늪을 넘어 이름 만 아는 어떤 대상에의 증오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 나이에 이런 말하 기 좀 거시기 하지만... 아무튼 그놈은 며칠 앓아누울 각오를 해야 한다... 흑의 사내가 마구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건 장추삼도 마찬가지였다. 재대로 시비 한번 벌어지나 싶었는데 장년인 이라니. 물러서지는 않았지만 이 아저 씨도 꽤나 아팠나보다. 오만상을 쓰며 괴로워하는데 척 보니 자존심상 버티 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 경로사상으로 전신을 두르지는 않은 그라지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하 고, 그것도 자존심과 덩치와 나이로 - 이건 느낌만으로도 한번에 알 수 있 다 - 한 몫 해보려는 가련한 중년을 상대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오늘의 재수는 정말 기록적으로 망가진 거야. 어쩌다 저런 아저씨냐...” 순간 흑의 사내의 정신이 확 깼다. “지금 본인을 아저씨라고 칭했느냐!” 위엄이 뚝뚝 흐르는 저음. 한 배짱 한다는 사내들이라도 그냥 고개를 처박 을 순간인데 녀석은 여전히 심퉁맞게 주절거렸다. 이놈은 간을 집에다 모셔 두고 다닌다는 건가. “내 참, 웃기는 아저씨네. 그럼 아줌마라고 불러드리리까?” “이노옴~!” “얼레? 이제야 성질 내내? 아아, 관둡시다. 기분도 더러운데 괜히 아저씨 건드려서 험한 꼴 보기 싫거든. 시장통에 의원이 상주해 있는 것도 아니니 좋게 좋게 끝내자구요.” “좋게 좋게 끝내자고? 허...” 맥이 다 빠진다. 어쩌다 이런 동네 양아치놈과 말을 섞어서 이 수모를 당한 단 말인가. 정말 접싯물이라도 옆에 있다면 코를 박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바가지 하나 없다. 잘 자란 나무나 바위 따위가 있으면 좋으련만. 다시 크게 한숨을 쉬는 흑의 사내가 왠지 불쌍해서 장추삼도 더는 깐죽이지 않았다. 아마 그도 느꼈으리라. 자존심은 지키고 싶지만 눈앞에 있는 자신 이 녹록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보아하니 상대방도 뭔가 틀어져있어 보이기는 한데 그걸 자기에게 풀려고 했다면 크게 잘못 생각한 거다. 우글우글. 사람들이 그들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아주 싸움이라도 하라는 듯 넓은 원을 만들어 주었기에 흑의 사내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 꽤나 익숙한 장추삼으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게 전부였다. 소시민들의 어쩔 도리 없는 반응... 사실 뒷골목을 전전하던 그로서 이런 경우를 자주 연출하기도 했고, 또 당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불쑥불쑥 솟아 나는 서글픈 마음은 어쩌지 못했다. 아마도... ‘평생 이렇게 살겠지. 나도, 이들도...’ 왜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느냐고? 그들은 소시민이고 앞으로도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니까. 또한 그 역시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할 만큼 못된 심 성을 가지지 못했으며 앞으로 그럴 테니까. “하아~” “하아~” 의미는 달라도 둘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한 사람은 너무 창피해서, 또 하나는 이런 사람들의 반응이 한심해서. “관두자고 했잖소? 이게 뭐요? 사람들만 구름떼처럼 모여놨네, 젠장!” 흑의 사내가 뭐라 대꾸도 하기 전에 고개를 돌린 장추삼이 으르렁 거렸다. 뭐냔 말이다. 숨어서 안 들리 게 속닥거리기나 하고. “구경거리 났어!” 실로 무서운 한방. 모였던 사람들은 찔끔하여 황급히 눈을 돌렸다. 이 시전 바닥에서 힘깨나 써 보이는 깡패 몇몇이 깐죽거리려 했지만 그의 핏빛 눈동 자에 그대로 깨갱이었다. “헐...” 졸지에 바보가 된 흑의 사내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래... 눈먼 미친개가 한 마리 돌아다니다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르고 깐 죽거렸다고 여기자. 그래, 그래, 아무리 열 받는다고 해도 맹수가 똥개에게 이를 드러낼 수야 있나, 암, 그렇지!’ 필사적으로 자신을 위안하는 흑의사내의 모습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지만 장추삼의 한마디로 그런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아저씨도 괜히 얼쩡거리다 경 치르지 말고 집에나 가쇼. 키 좀 크고 무게 잡는 말투로 무장해봐야... 별 볼일 없는 얼간이들에게나 통한단 말이오.” 중간에 말을 멈췄던 이유는 잡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큰 키와 무게 잡는 말투... 딱 북궁단야 아닌가? ‘으음...’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 냉막한 표정과 싸늘한 눈빛이 생각나자 느닷없 이 한기가 몰려온다. 흑의 사내도 이 싸가지 없는 놈을 응징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특히 저 개 같은 혓바닥을 쑥 뽑아버리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지만 참아야 했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뭔지...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주무쇼, 예?” 툭툭. 녀석이 그의 팔을 두드리고 유유히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 사내는 아무 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지금 터진다면 이 시전 자체가 박살날 테니까. ‘차, 차 한 잔이 필요해...’ 새록새록 어떤 놈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며칠 앓아눕는 정도? 어림도 없다. 반병신은 각오해야 한다! 차가 필요한 건 장추삼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데서 열을 냈다가 식어버리 자 뱃속의 공동화는 가속화 되었고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아까의 절망감과 는 차원이 다른... 이런걸 뭐라고 표현할까? 허탈함! ‘그래 무지하게 허탈해...’ 터벅터벅. 아까 까지 두르고 있던 살기의 막은 거둔지 오래다. 자연 사람들과 이리저 리 부딪치고 밀리기도 했지만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걸어 다니는 목내이(木乃伊)라고 불러도 무방한 상태였다. 그냥 이리저리 흘러가는 데로 몸을 맡긴 달까?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화내고 흥분해서 무엇하랴~’ 장추삼! 거의 열반의 경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먹자 언제 지나왔나 모르게 시전을 빠져나온 자신을 발견했다. ‘일체유심조라더니 그 말이 딱이구나!’ 어울리지 않는 문자까지 써가며 스스로의 경지에 취해있던 장추삼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의 고개가 천천히 밑으로 이동하고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그곳은 그의 손이었다. 언제나 똑같은 그저 그런 평범한 손을 갑자기 뭐 볼게 있다고 그리 뚫어지 게 응시하겠는가 만은 이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자기 손은 자기 손인데 자기 손이 아니다. “너... 누구니?” 그 손을 어떤 아이가 꼭 쥐고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 었으니까. 삼류무사-167 문제는 다섯 살도 먹지 않은 아이와 장추삼과의 관계인데 어쩌다 딸려왔다 면 통상적인 아이의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울며 엄마를 찾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소동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장추삼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이리 갸웃, 저리 갸웃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이 녀석은 겁도 없나?’ 사실 장추삼의 첫인상은 썩 괜찮은 편이 아니다. 괜찮지 않은 정도가 아니 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충분히 경계하게끔 만드는 무엇이 있다. 그건 아이들 도 마찬가지인지 옆집 애기라도 안아줄라치면 기겁을 하며 빽빽 울어대기 일쑤였다. 처음 몇 번은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섭섭한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일정 시 간이 흐르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고소짓게 되었다. 무섭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이런 말하면 우습지만 청빈로 일대의 마을에서 장추삼이라고 하면 떼쓰던 아이들도 울음을 그치는 존재였다. 호환(虎患), 마마보다도 무서운... 그런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도 눈이 커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아이의 반응은 너무도 의외라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장추삼이었는데 그 표정은 가관이었다. 뭔가 굉장히 어색할 때 자연히 떠오르는 안면 근육의 움직임. “엄마 손을 놓친 모양이구나?” 이 소리... 일부러 크게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들리도록. 왜냐고? 자칫하다간 유괴범으로 몰릴 판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남들이 보기에 인 상이 곱지 않은 사내가 어린 아이의 손을 움켜쥐고 - 정확하게 말한다면 움 켜쥠을 당한거지만 다른 이들이 믿어줄리 만무하다 - 있는데 부모인 듯한 사람이 느닷없이 뛰쳐나오며 ‘아무개야! 으흐흑!’ 내지는 ‘당신 누군데 우리 아이를 데려가려는 거예요!’ 따위의 언사를 내지른다면? 갈데없다. 이런 경우를 두고 외통수라고들 흔히 말한다. 섬뜩! 위와 같은 상상의 끝은 옥사(獄舍)에서 결백을 주장하는 자신의 처절한 비 명과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 횡하니 자리를 비우는 옥졸의 권태로 귀결되었 다. 절대 안 된다! 이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오로지 하나다. 불쌍한 아이도 돌보면서 좋은 일도 하는 거다! “어디서 엄마를 잃어...” “사내의 손은 이래야 한다고 들었어요.” “엥?” 아이는 장추삼의 말허리를 가볍게 잘랐는데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으로 보아 재대로 교육을 받았다는 걸 말 수 있었다. 입성으로는 그저 중류층 가정의 자식이라고 짐작했는데 가정교육은 아주 엄했나보다. “사내의 손은 음... 그러니까 적당히 거칠면서도... 또 뭐더라... 부드러 워서 남을 쓰다듬어줄 여윤가... 아무튼 그래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지요. 음... 그러니까 아저씨의 손은 그런 거 같아요.” “뭐라고!!!” 장추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음성이 얼마나 컸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돌아보고 아이마저도 한걸음 뒤로 물러섰겠는가. “왜, 왜요? 제가 무슨 잘못했나요?” 찌리릿. 주춤 물러난 아이를 뚫어지게 마라보던 그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처음에 는 매우 완만한 곡선을 그렸기에 언뜻 봐서는 잘 모를 정도였지만 갑자기 그 속도가 빨라졌고 어떤 소리까지 동반되어 나중에는 폭풍후가 몰아치는 느낌이었다. “크하하하하하!!! 너는 비단 가정교육을 잘 받았을 뿐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까지 있구나! 음음... 너 같은 애들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아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장추삼을 빤히 보던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목소리큰 사람이 뭐라고 할지 어떻게 아는가? 야무지게 말을 하고는 있 지만 겨우 네 살이란 말이다.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는지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광소를 터트리는 장추삼을 보았다면 하운이나 북궁단야는 철저히 외면했을 터였지만 아쉽게 도 그들이 자리에 없었다. 그의 독무대다!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 마냥 기분을 내도 된다! “신동이라고 부르지, 신동! 신동이라는 단어를 아는지 모르겠... 음, 모르 는군. 신동이란 말이다. 아주 머리가 좋은 어린아이를 부르는 말이란다. 아 , 단어라는 말도 모르려나? 단어란 말이야 애... 또... 뭐시냐... 문장을 구성하는 말의 최소 단위를 일컫는데... 그... 잠깐!” 신나게 주절거리던 장추삼이 갑자기 주위를 마구 둘러보다 아이의 앞에 쭈 그리고 앉았다. “에구, 내가 뭔 말을 늘어놓고 있는 거냐. 얘, 너 엄마 잊어버린 거 맞지? 이럴 때가 아니잖아? 어서 엄마를 찾아야지?” “음...”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본래 귀여운 아이인데 이런 동작까지 겹쳐지자 볼이라도 만져주 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일단 엄마부터 찾아주고 볼을 잡아당겨도 늦지 않다. “자, 다시 돌아가자. 시장에서 엄마가 널 찾고 계실...” “아니요.” “음?” 장추삼의 말을 야무지게 자른 아이의 배에서 문득 쪼록하는 비명소리가 들 렸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더니 잊어먹고 있었는데 세시진 동안 아무 것 도 먹지 못한 그이기에 당연히 배에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쿠르릉- “아저씨도 배가 고픈가보군요. 잘 됐네요. 이 근처의 객잔에서 소면 한 그 릇만 사주시겠어요? 나중에 어머니를 뵙게 되면 돈을 드리겠어요.” 너무 어른스러우면 아이라도 부담이 되는 법이다. 너무도 격식을 갖춘 말이 기에 순간적으로 보기 싫어졌지만 그렇다고 미아를 유기할 만큼 모질진 못 한 게 또 장추삼 아니겠는가. ‘얼마나 애를 잡았으면 이런담. 자고로 어린애는 어린아이다운 맛이 있어 야지. 요즘 것들 보다야 나은데... 아무리 예의도 좋지만 이건 아니다.’ “아저씨!” “음? 으음? 소면? 소면이 뭐냐! 교자도 곁들여야지. 가자! 가서 먹자고!” 혼자 생각에 젖어있던 장추삼이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다가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하려는데 야무진 녀석은 그가 뭐라고 하기 도 전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만약 길을 잃거나 다른 일이 생기면 근처 객잔에서 기다리기로 했으니까 크게 걱정을 하시지는 않겠죠. 무림인의 자식으로 관아에 가는 법이 아니라 고 했거든요. 그나저나 바로 찾아오셔야 할 텐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길목을 벗어나자마자 떡하니 나타난 객잔을 바라보며 기가 막혔지만 어린애 앞에서 광분하기도 뭐해서 그냥 참았다. 그런 장추삼의 마음을 아는지 모 르는지 아이는 한가하게 종알거렸다. “아까 본 곳인데 또 왔네?” ‘이런 젠장, 골목 하나를 사아에 두고 뺑뺑 돌았다는 거 아냐! 재수가 없 을려니 진짜 사람 바보 되기 쉽구만.’ 객잔 안은 열명 정도의 손님뿐이라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 때문일까? 아까까지의 열 받음도 양광에 눈 녹듯 스르르 가라앉았기에 점소이를 대하 는 장추삼의 표정도 많이 누그러졌다. 소면 두개와 교자 일인분을 시키고 느긋하게 차 한 잔을 호록거리던 장추삼 에게 아이가 묻지도 않은 말을 시작했다.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해도 천상 아이는 아이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양 집안 자랑을 늘어놓았다. 처음 시작하면서 ‘아저씨도 무인이세요?’ 하고 묻는데 그 속내가 가소롭 기 짝이 없었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아이다운 모습이기에 장추삼은 빙그레 웃어주었다. “글쎄... 무인이라... 음, 뭐, 당분간만 무인을 하기로 했다. 그래봤자 삼 류무사(三流武士)지만 말야.” “음, 삼류요... 뭐 어때요! 삼류든 뭐든 아저씨는 착한사람이니까 괜찮아 요. 아버지께서는 강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기에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지 만 아저씨 같은 분이라면 괜찮아요.” “고, 고맙구나. 하.. 하.. 하...” 졸지에 그야말로 삼류무인의 대접을 받은 장추삼이 맥없는 웃음을 흘렸지만 아이는 여전한 얼굴로 무당에 대해 물었다. 무당이라, 그에게는 잊지 못할 문파지만 아무리 봐도 아이의 아버지가 그쪽 계통에 속해 보여서 그냥 평상적으로 대꾸를 했다. 흔히 구파일방의 이름 을 들으면 보이는 반응 말이다. “오! 무당파라면 중원에서 가장 커다란 열 개의 문파 가운데에서도 검으로 는 화산과 최고를 다투는 곳이지! 지금이야 열다섯 개의 문파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통이나 이름으로 볼 때 나머지 다섯은 한 수 아래지.” “역시 알고 계셨군요!”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장추삼은 스스로에게 참 잘했어요, 라 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린아이가 이름을 댔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 그것도 무지 원초적인 이유가.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요?” 도사 나부랭이들에게 검식 몇 초 얻어 배웠겠지... “대 무당파의 속가제자라구요! 그 유명한 대무당파 말이에요!” 어, 짐작은 했어... 그 뒤에 중언부언 떠드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감히 말은 하지 못 했지만 얘기를 종합해 볼 때 애 아버지는 그저 그런 이류급의 무인이었다. 하남 무림맹에서 외당 휘하 소속 무사라면 별보다도 많은 게 현실이니까. 그렇지만 아이의 표정이 너무도 천진스러운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기에 ‘ 우와!’ 내지는 ‘오오’ 따위의 접대용 감탄사로 부지런히 기분을 맞춰주 었으며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의 얘기는 바야흐로 궁극까지 치달아 아버지가 호남에서 가장 강한 - 그래봐야 어디 삼류급의 비적일 게 뻔하지만 - 무인이 악행을 일삼는 걸 보 고 분연히 일어나 단칼에 베어버리는 순간까지 이르렀다. 아이 딴에야 기가 막힌 명장면일지 모르겠지만 터져 나오는 하품을 참으면 서 건성으로 맞장구치는 이에게 집중을 바라는 건 무리다. ‘아아... 난 역시 장사꾼 적 기질이 있는 걸까? 사람의 마음을 이리도 잘 헤아려서 다독거려 주다니. 천고의 재능은 나중에 꽃피어난다는 사실을 오 늘에야 처음 알았네!’ 너무 재미도 없고 심심하여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에게 객잔 문이 열 리며 한 사내의 입장이 잡힌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객잔에 사람 출입하는 게 뭐 대수겠는가 만은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문제는 달라진다. “엑!” 들어서던 사내도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서 장추삼을 발견하고는 뜨악한 표 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개똥을 밟은 얼굴이라고 할까? “어험험!” 어색함을 감추려는 모양인지 과장되게 헛기침을 한 사내가 장추삼네 탁자와 는 가장 먼 거리의 자리에 앉았다. 아마도 똥이 더러워서 피하냐... 라는 생각일 테고 장추삼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기분이 나아지려는데 아까의 일을 떠올리기 싫었다. 그 말다툼까지도 말이다. ‘저 무게 잡는 꼴 좀 봐!’ 흑의중년인은 있는 대로 거드름을 부리면서 턱짓만으로 점소이를 부르더니 음식을 시켰는데... 세상에! “이 객잔에서 제일 잘하는 거 다섯 개만 내오게, 값은 따지지 말고. 그리 고 우선 좋은 차 한 잔부터 마셔야겠다.” ... 라고 했다. 그야말로 돈 냄새 풀풀 나는, 정통 정떨어지는 주문 아닌가! ‘우엑~’ 나서서 깐죽거리고 싶었지만 분란을 야기하기는 뭐하고 해서 싸늘하게 콧방 귀 한번 날리는 것으로 마음을 대변했다. 아이까지 있는데 싸움은 좀 그렇 지 않은가! “아저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기분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족속들이 있다. 물론 장추삼은 그런 부류들 의 수장격이라고 하겠다. 자연히 굳어버린 표정은 아이에게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불안한 한 마디를 던졌나보다. “이런 거 아니?” “뭐요?”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단다?” “예? 두 종류요?” “그렇지. 하나는 돈이 많지만 자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하나 는 꼴 같지 않게 돈 자랑을 하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종류지. 가령 객잔 같 은데 가서 제일 비싼 거만 시키는 사람들 말야. 거기다 그런 사람들은 도저 히 먹지 못 할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을 주문해놓고 거의 다 남긴단다. 그야 말로 물자낭비의 표본이 아니겠냐?” “예... 예...” 우지직. 아이가 갸우뚱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어디선가 젓가락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흐흥!” 해볼 테면 해봐라, 라는 장추삼식 반응. 흑의 중년인은 탄식을 해야만 했다 . 어쩌다가 이런 객잔에 들어왔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늦었다. 다른 객잔 찾을 여력이 없단 말이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 녀석은 교묘하게 혓바닥을 놀려서 그를 공개적으로 비아냥거렸지만 사실 누 구를 지칭한 것이 아니기에 뭐라고 할 말도 없다. 기분 같아서는 단매에 따 려죽이고 싶었지만 옆에 대동한 아들 때문에 그리도 못하겠다. 아들인가본데 지 애비랑은 다르게 또랑또랑한 눈매가 여간 총명해보이지 않 았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은 언제나 통용되지 않는가보다. 그러자 잘난 자식이 떠오르며 기분이 좋아졌다. 훤칠한 키, 완벽한 얼굴, 놀라운 무예... 그야말로 아버지를 쏙 빼 닮지 않 았는가! 차가운 성정이야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사실 냉정한 판단력이 자신 과 다르다고들 말 하지만 그도 할 때는 한다! 차가운 판단을 말이다. 그래서 참는 거다! 놀란 점소이가 급히 새 젓가락과 주문한 음식 가운데 하나를 가져왔다. 물 론 차 한 잔도 잊지 않았고. ‘그래, 이걸로 화나 삭히자. 생각보다 냄새가 그럴 듯 하군.’ 한숨을 쉬며 음식에 손을 가져가려는데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객잔을 강타 했다. 그 소리는 너무도 위력적이라 감히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 같았다. “뭐야! 주문한지 일다경이 지난 소면은 나오지도 않고 만들기도 힘든 전복 요리가 벌써 나와? 이거 사람 차별하는 거야, 뭐야!” “소, 손님!” “더운 날 열 받게 하네, 진짜! 사람 있고 돈 있지, 돈 있고 사람 있어?” “고, 곧 나옵...” “시끄러!!!” “꽥!” 어떻게 수습해보려던 점소이는 그의 일갈에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 이자식이...’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다. 분명 음식을 나중에 시킨 건 그였고 먼저 나온 것 역시 사실이니까. 그런데 화가 난다! 아니 너무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을 지경이다! 아니... ‘이제 더는 못 참아!’ 탁자 모서리에 손을 짚으며 분연히 흑의인이 일어서려는데 객잔 문이 떨어 져 나갈 듯 열리며 한 여자가 들이닥쳤다. 일견 예쁜 용모의 아낙이었을 텐 데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운 여인은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곳 을 응시하고는 몸을 사시나무 떨 듯 하다가 미친 사람마냥 달려갔다. “왜 여기 있는 거야! 엄마가 얼마나 널 찾았는 줄 알아! 으흐흐흑!” ‘어라?’ 흑의인의 동작이 뚝 멈췄다. 알고 보니 귀여운 아이는 버릇없는 놈의 자식 이 아닌가보다. “엄마, 난 괜찮아. 약속했었잖아. 잘못 헤어지면 근처 객잔에서 만나기로 말이야. 그리고 친절한 아저씨가 얘기도 들어주시고 했다? 지금 소면 시켜 놨으니 같이 먹자. 엄마가 좋아하는 교자도 나와.” “흑흑흑흑!” 아이를 부둥켜안은 여인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흐느꼈다. 간간히 울음 섞인 목소리로 시장이 어쩌고 분이 어쩌고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데 아마 도 시장에서 분을 구경하다가 아이와 헤어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려던 장추삼의 표정이 무엇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굳 었다. 귀신을 본다고 해도 이럴까 싶게 얼어붙은 얼굴. 그래, 그랬구나... 그래서 이 아이가 이렇게도 귀여웠던 거였어... |
첫댓글 감사~~~~
즐겁게 보고 갑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