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열며] 차별의 시대
어릴 적 같이 놀던
내 동무 집은 가난했으나 식구는 많았다.
딸이 다섯에다 아들이 하나였다.
어느 날 나는 그 집에 놀러 갔다가
아들과 딸들의 밥이 다름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내 동무 어머니는 아들과 딸들, 남자와 여자의 밥을
한솥에서 분리되게 지으셨다.
보리를 먼저 솥에 안치고
가운데에 흰 쌀을 두어
주먹 살포시 올려놓아 지은 쌀밥을
남편과 아들 밥그릇에 푸고
나머지 꽁보리밥을 딸들 밥그릇에 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공평하지 않은 차별에 불쾌함을 느꼈다.
보리밥이든 쌀밥이든
아들딸 구별 말고 똑같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 동무는 밥을 먹을 때마다
차별받는 자신의 자존감에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은 딸이 나 하나뿐이어서인지
먹는 걸 가지고 차별을 두지는 않았다.
남자 여자의 차별은 밥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섯 딸은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공장이나 다른 집에 애 보는 아이로 보내져
입을 줄이거나 남동생의 학비를 보태야 했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당시엔 아들딸 차별은 당
연한 사회관습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요즘 미 연방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2020)의 사망으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회자하고 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만 해도
가장 문명국이라 여겼던 미국에서도
남녀의 차별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대학 졸업 후
잠시 사회보장국 오클라호마 지부에서 일했으나
임신을 이유로 직장에서 강등되었다.
그녀는 하버드 법학대학원에 입학했지만,
학과장은 500명 중 9명밖에 없는 여학생들을 불러모아
“왜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와서
남자의 자리를 차지하느냐”라고 말했다.
루스는 그 말을 들으며 불평등한 남녀 차별을
철폐할 각오를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컬럼비아 법과대학원을 공동수석 졸업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받아주는 직장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루스는 럿거스 로스쿨과 콜롬비아 로스쿨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그녀를
연방 컬럼비아 항소구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하여
10여년 넘게 연방 판사로 재직하였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녀를 연방 대법관에 지명하였고
그녀는 사상 두 번째 연방 여성 대법관이 되었다.
그녀는 주로 여성의 권리증진을 위해 많은 일을 해내었다.
여성의 입대, 남녀 임금 차별금지,
여성 자신이 임신중절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장애인 차별 금지법 등 그녀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많은 차별을 걷어내려 애썼다.
그녀의 노력으로 지금 우리는 이 정도의
남녀평등의 사회에 살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녀는 2015년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것에 일조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것은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으로서 장차 인류에게
큰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이기도 하다.
출처 : [하루를 열며] 차별의 시대 /이경애 / 수필가
덕향의 미국편지